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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306화 (306/325)

#306

잇즈 낫 마이 비즈니스

“CGM은 계속 저희들의 기대와 멀어지는 경영 노선을 밟아가기 시작하더군요. 특히 수년 전 한국 시장 진출 건은 저희 쪽에서도 몇 차례 우려의 뜻을 내비쳤던 사안이었죠. 물론 그들의 큰 그림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시장이 한국 시장이라는 부분은 저희 역시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 진출을 꼭 한국 시장을 독점해 놓고 가야 한다는 부분엔 동의를 하지 않았죠.”

“….”

“그리고 홍성에 막혀서 한국 시장에서 처음 철수를 하게 됐을 때에도, 저희 안창은 CGM 쪽으로 관세에 대한 부담이 커지더라도 한국을 거치지 말고 홍콩에서 센젠을 거쳐 본토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몇 차례나 제안을 했었죠. 결국 안 듣더라고요. 어쩌면 안창은 그때 CGM의 손을 놓았어야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덩치를 키워서 인정을 받고, 그렇게 확보한 인정으로 후계 자리를 안정화시키는 건 그들의 목적이지, 저희 안창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니까요. 미스터 공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CGM의 한국 진출이 두 번째 막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처음 접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안창은 당시 꽤 흥미로웠습니다. 홍성이 CGM을 막아냈다는 이야기에 분명 우리가 응원을 해야 하는 쪽은 홍성이 아니라 CGM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지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아시겠지만, 홍콩 마켓… 이미 끝난 지 오래입니다. 하버타운에 들어간 폭스타운 역시 수년 전 계속되는 적자의 부담을 견뎌내지 못하고 철수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 폭스타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루가노 한 곳뿐인데… 글쎄요, 홍성 타워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스위스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또 업계 전반에 퍼지기 시작한 CGM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사업적으로만 놓고 보면 이쯤에서 손을 털고 나오는 게 맞는 거겠지만, 안창 그룹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견인해 줬던 사업장이었던 만큼 폭스타운이라는 이름만큼은 미련이 남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아직 정확하게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를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상태.

하지만 우리 측은 상대가 뭘 기대하고 있는지 이미 감을 잡은 상태로 우린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해 나갔다.

조심해야 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더 노골적으로 흘러가게 되면, 이미 그런 노골적인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에 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

그 파란은 자칫 홍성을 향한 만토바나 링겐 쪽의 견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난 그 부분에 대해 침묵도 깨뜨릴 겸 홍성의 입장을 먼저 전달했다.

“이미 홍성 인터내셔널은 CGM을 상대로 그동안 CGM이 해 왔던 지저분한 사업 스타일을 응징할 만반의 준비를 다 끝내 놓은 상태입니다.”

“메칭엔 쪽과도 접촉을 하셨다고요.”

“…!”

“그 정도 정보는 저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본사 쪽으로 CGM을 고발하는 메일을 다 보내셨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오늘 홍성 타워 그랜드 오픈 일정을 알고 직접 찾아왔겠습니까? 잇즈 낫 마이 비즈니스, 애니모어. CGM이 저희 쪽 우려를 무시하고 애써 한국 시장에 진출을 했다가 자기네 회사뿐 아니라 폭스타운의 이미지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에도 저희는 인내했습니다. 사업적으로만 놓고 보면 절대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건데, 미련하게도 저희는 인내라는 걸 하기로 결심을 했죠.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오늘 이 상황까지 오게 됐네요. 아시겠지만, 홍성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폭스타운은 많은 거래처를 잃게 됐습니다.”

사실이다.

이미 폭스타운은 홍성이라는 큰 고객을 놓쳐야 했으니까.

“반면에 CGM은 그래도 폭스타운이라는 유통 판을 무기로 브랜드들을 꾸준히 확보해낼 수 있었고. 물론 그동안 저희 입장에선 CGM 말고는 그 큰 유통 판에 브랜드를 꾸준히 확보, 유지시켜 줄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안이 없었기에 마치 끌려가듯 CGM의 손을 놓지 못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안창 그룹 전체를 놓고 봐도 그렇고, 폭스타운이 소속된 안창 홀딩스만 놓고 봐도 굳이 폭스타운에 집착을 할 이유가 저희에겐 크게 없습니다. 안 된다 싶으면 철수를 하면 그만입니다. 피할 수 없는 손해. 하지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미련하게 계속 끌고 가서 더 커지게 될 손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어떠십니까? 혹시 관심이 있으십니까?”

마크 창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커피 잔을 들었다.

그리고 커피 잔 접시를 한 손으로 받치며, 커피 잔을 입술에 붙여놓고 나와 상무님을 번갈아 쳐다봤다.

오히려 상무님은 침착했다.

의외였다.

마크 창을 의식해서인지, 함께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고, 난 잠시 다리를 꼬아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셨다.

마치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침묵이 이어졌고, 상무님은 아예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김형찬이라는 꼬리를 잘라버린 CGM.

결국 그 CGM도 누군가에 의해 꼬리로 전락해 잘려나갈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

“미스터 창.”

내가 물었다.

“루가노는 이미 죽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CGM이 있던 자리에 우리 홍성이 들어간다고 해서 바뀔 게 있을까요?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지만, 저희는 절대 만토바, 링겐과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저 역시 바라는 부분입니다.”

“…?”

“폭스타운은 유통 판입니다. 그 유통 판을 지난 몇 년간 CGM의 바뀐 경영진에선 유통 판이 아닌 컨트롤 업체, 혹은 다른 나라 유통 판들에게 자기네가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영업하는 창고 정도로만 활용을 해 왔죠.”

그 부분에선 나와 상무님 역시 마크 창의 불편함에 동의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해 폭스타운은 초대형 유통 판이다.

링겐처럼 본사가 직접 지주 회사로 있으면서 아웃렛 운영과 1차 벤더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것도 아니었고, 메칭엔처럼 아웃렛 사업에만 집중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만토바처럼 철저하게 벤더 사업에만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설프게 개인 고객들을 유입시켜 아웃렛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그 사업의 내실은 CGM이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가지고 도매 사업을 하는 용도로 지난 몇 년간 활용을 해오고 있었다.

“폭스타운은 하버시티점 시절부터 줄곧 대형 유통 판 역할에 집중을 해 오던 브랜드입니다. 거기에 루가노점을 CGM 쪽이 관리를 하면서 콘셉트가 무너지게 된 거죠. 저는 다만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루가노점이 원래 폭스타운이 해 왔던 유통 판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루가노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 안창 입장에선 좋은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 향수까지 다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

“홍성에서 만토바 물건들을 대행 사업 비슷하게 여러 나라 컨트롤 기업들에게 유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폭스타운. 위치적으로 그 사업을 하시기에 아주 적절한 창고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럼 저희는 그 대가로 폭스타운 쪽에 뭘 해드려야 하는 겁니까?”

“현재 폭스타운을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힌 브랜드들을 잡아 주시길 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결국 저희는 CGM의 손을 놓을 겁니다. 그럼 그동안 CGM과의 관계로 입점된 브랜드들도 다 같이 나가게 되겠죠.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동안 폭스타운 안에서 CGM이 해오던 역할을 홍성이 대처하게 된다면 그 브랜드들 역시 고민이라는 걸 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CGM 쪽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스터 공. 안창 홀딩스는 투자 회사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그런 분쟁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일인데,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결국 루가노점에서 안창이 CGM 쪽으로 확보해 준 지분 대부분이 커미션 개념의 반납 지분이었습니다. 계약은 이미 언제 깨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CGM이 폭스타운의 이미지를 바닥까지 추락시켜 놓은 상태이고, 실제 CGM의 투자로 형성된 지분 역시 그동안의 마이너스 경영 부분으로 알아서 포기하고 나가게 될 겁니다. 어차피 여기서 저희가 폭스타운 철수를 결정하는 순간 그 지분 역시 그냥 아무것도 아닌 휴짓조각이 될 게 너무나 뻔한데, 그런 게 분쟁의 빌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철수….”

“저희는 현재 홍성 쪽에 제안을 한번 걸어 보고, 홍성에서 큰 관심이 없다고 하신다면 미련 없이 폭스타운을 철수할 계획까지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미스터 공을 한 번 만나 봐야겠다…. 하고 생각을 했던 거죠. 미스터 공이라면… 아니, 홍성이라면 어쩌면 죽은 루가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그동안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상무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하신 제안은 저희 홍성 입장에선 많은 고민을 거쳐야 답을 줄 수 있는 제안인 거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날카로운 지적이 상무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약 저희 홍성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절대 변할 수 없는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홍성은 현재 CGM을 잡을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겁니다.“

“…!”

“전 직원들이 오랫동안 벼려 온 칼입니다. 회사가 그 칼을 제대로 한번 휘둘러 보지도 않고 오로지 새로운 관계 형성만을 위해 그 칼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는다면…. 그건 그동안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칼날을 갈아준 직원들의 기대에 대한 배신 아니겠습니까? 홍성은 직원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상무님의 입장은 그 표정이 대신 말해 주듯 무척이나 단단했다.

“안창 그룹과 CGM의 현 관계… 저희 입장에서도 잇즈 낫 마이 비즈니스죠. 저희는 안창의 사정까지 신경 쓸 만큼 괜찮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CGM이 수차례 끈질기게 해온 무의미한 도발로 인해 회사 전체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피로도를 날려버리기 위해선 눈앞에 있는 CGM을 저희 홍성의 방식으로 깨끗하게 치워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마크 창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폭스타운을 떠나겠다는 브랜드들… 결국 홍성 입장에선 저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데, 그걸 막아드릴 순 없습니다.”

“흐음….”

“말이 안 되는 거죠. 여기 미스터 공이 그걸 해내겠다고 지금껏 공들인 에너지가 얼마며, 시간이 얼마인데… 죄송한 말이지만 당장은 많은 부분을 잃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유지해 온 파트너 관계를 그 이유가 어찌 됐건 이렇게 반대편에 서 있는 저희를 찾아와 고발하고 또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시는 모습 역시 홍성의 스타일은 아닙니다. 다만 저 역시 사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되는 파트너를 계속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안창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본사로 복귀해서 이 부분에 대해 사장님 이하 회사 임원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자리를 끝내고 호텔을 나서며 상무님이 내게 물었다.

“제가 너무 세게 나갔나요?”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것도 진심으로 고개를 저으며….

“아뇨, 멋지셨습니다.”

“그래도 폭스타운인데….”

“폭스타운이 뭐라고요. 큰 의미 없습니다. 한정된 시장. 그 시장 안에 이미 저희는 홍성 타워를 넣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물론 군침이 도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원래 계획에 없던 내용이었고, 홍성은 이미 홍성 타워만으로도 충분히 홍성만의 스타일로 확장을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네. 만약 우리 홍성이 폭스타운과 손을 잡게 되더라도 이끄는 쪽은 홍성이어야지, 절대 우리가 이끌려가는 입장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상무님 말씀대로 지금 저희는 오로지 CGM을 무너뜨리는 데에만 집중을 해야 할 때 아니겠습니까? 혹시 또 모르겠네요, 그 도구로 폭스타운을 이용할 수 있을는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홍성 입장에서 폭스타운은. 잘… 상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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