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너 먼저 가라, 은태야
도대체 이문 전무님은 왜 자기 사무실을 놔두고 항상 내가 사장실에 올 때마다 여기서 저렇게 골프 연습을 하고 계시는 걸까?
툭.
또르르르….
“아까비….”
“거참 진짜! 와서 앉든가 아님 좀 어디 나가 있든가 해.”
결국 사장님은 폭발을 하셨고, 그럼에도 이문 전무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공 하나를 골프채 끝으로 끌고 와 자세를 잡으셨다.
“알았어요, 알았어. 조용히 딱 입 다물고 있을게요. 하던 이야기 마저 하세요.”
“그래서… 하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잡을 수 있겠냐고… 그거 물어보셨잖아요.”
이문 전무님… 확실히 평범한 캐릭터는 절대 아니다.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었다는 말.
그리고 사장님은 이문 전무님이 준 힌트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그래서 진짜 잡을 수 있어?”
“네, 잡을 수 있습니다. 기회가 너무 좋고 또 명분도 다 우리 홍성 쪽으로 몰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홍성이 흐지부지하는 입장을 보여 버리면 CGM은 둘째 치더라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많은 업체들한테 면목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면목, 체면… 그런 게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너무 좋은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어.”
“….”
“남을 망가뜨리는 게 목적이 되어선 절대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CGM을 밟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홍성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CGM을 상대하겠습니다.”
툭.
또르르르….
“정말 현장을 뛰어다니시던 시절의 사장님을 보고 있는 거 같네. 자신감하며, 저 치밀한 계산, 거기다 똑같은 내용을 말 몇 마디 바꿔서 아예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리게 만드는 화술까지…. 진짜 딱 회장님 말씀처럼 포스트 사장님이야, 공 부장은.”
다른 공 하나를 다시 골프채 끝으로 끌고 와서 자리에 세우며 이문 전무님이 말씀하셨다.
“아, 그만하고 와서 좀 앉으라고. 정신 사납다.”
그제야 이문 전무님은 마지막 공을 성의 없이 때려 놓고 소파 쪽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에고고고… 이제는 뭐 나도 다 됐어.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계속 나. 하하하. 그래서 우리 공 부장님, 언제부터 임원 층으로 출근 시작하시려고?”
소파에 앉으시며 이문 전무님께서 물어보셨다.
그리고 그 말에 사장님 또한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언제든 상관은 없는데….”
“뭐가 또 있어?”
사장님은 이젠 좀 지친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셨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난 재빨리 손을 흔들며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뜻을 내비쳐 놓고 말을 이었다.
“임원 연수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을 생략해 달라는 건 아닌데, 좀 뒤로 연기를 해주실 순 없을까… 해서요.”
“임원 연수를 연기해 달라?”
“…네.”
“이유는? 그거 뭐 가서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고 그냥 쉬다가 오는 건데, 그걸 왜 연기를 해달라는 거야?”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아시다시피 집사람이 현재 임신 중입니다.”
“아차차… 맞다.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안 그래도 이번에 출장 다녀오는데, 현관 앞에서 문을 열려고 하니까 갑자기 좀 미안해지더라고요.”
내 말에 자리에 모이신 사장님, 전무님, 박 이사 모두 무슨 심정이었는지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물론 말은 걱정하지 마라,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라… 라고 하면서 제가 일하는 걸 적극적으로 도와주고는 있지만, 평상시도 아니고 배가 이만큼 불러 있는 사람을 며칠씩 집에 혼자 있게 만드는 게… 좀….”
“공 부장 안사람은 친정이 머나?”
“아닙니다. 서울에 있습니다. 저 출장 가 있는 동안도 장모님이 하루 정도는 집에 와서 같이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네.”
“다음 달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세 건물 오픈식만 아니면 임원 연수 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닐 거 같은데, 다음 달도 어쩔 수 없이 며칠 정도 집을 비워야 하고….”
“그땐 뭐 전 상무 보내면 되지, 스위스. 급한 불은 이미 껐잖아, 일단.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아무리 중요한 사업이라도 그 사업이 집안일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는 거야.”
“…!”
“나도 지금 공 부장이 안사람 이야기를 꺼내니까 아차 싶네. 이것저것 챙길 게 많다 보니 내가 깜빡했다, 공 부장 곧 아빠 된다는 걸. 괜히 미안해지네.”
“아닙니다.”
“임원 연수 하지 마. 어차피 그 프로그램이야 말이 연수지 회사 차원에서 임원 승진 대기자들 상대로 일종의 워크숍처럼 휴가를 주는 건데, 그게 뭐 큰일이라고 집안일, 회사 일 양쪽으로 정신없이 바쁜 사람 시간을 잡아먹겠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애 태어나고, 안사람 몸 제대로 다 풀리고 나면 괜히 눈치 본다고 말 못 하고 있지 말고 나한테 이야기를 해.”
“뭘….”
“임원 연수 못 하는 거 회사 경비로 비행기 티켓이랑 호텔 잡아 줄 테니까 가족들 다 같이 어디 괜찮은 데 임원 연수 일정만큼 여행이나 갔다 오라고. 그거 내가 지원해 준다.”
“사, 사장님.”
“꼭 말해, 나한테. 나 또 깜빡하는 수가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회사가 감사하지.”
* * *
며칠 뒤 폴앤크루 본사 대표실.
“그럼 어쩔 수 없이 장 대표님만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저는.”
“아깝네요. 부장님이 사신다고 하는데, 마침 또 공교롭게도 선약이 있어서… 며칠 전부터 잡혀 있던 약속이라 빼지도 못합니다.”
“할 수 없죠, 뭐. 사업이 먼저니까. 그럼 오늘 유통 판 측과 점심 같이하시면서 폴앤크루 단독 매장 자리 확보받으시는 겁니까?”
“이미 유통 판 측에서는 오래전부터 단독 매장 오픈을 제안해 오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만족할 만한 자리에 매장이 안 나와서 문제였지. 이번에 BSF 컬렉션 크게 한번 터지고, 별자리 컬렉션도 반응이 크게 올라오니까 그쪽에서 달아오르는 거죠. 저희가 혹시라도 한쪽하고만 단독 매장을 진행할까 봐, 롯데, 신세계 양쪽 모두한테 지금 러브콜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이야기 잘되시면 지나가는 말로 아이작도 살짝 한번 언급해 봐 주세요.”
“아이고, 부장님. 아이작은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에이, 무슨… 며칠 전에 안 차장 만나서 해외 컨트롤 기업 쪽 접촉 건 이야기 들으셨잖아요.”
“네.”
“아이작도 번들로 다 끼워서 넣을 겁니다. 금방 큽니다, 아이작. 어쩌면 이번에 CGM이 벙커 터뜨려 준 덕에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쪽은 아이작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아직은 먼 이야기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타이밍 봐서 꺼낼 만하면 살짝 흘려는 보겠습니다. 그럼 두 분이서 오붓하게 점심 드세요.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알렌 강이 나가고 나서 거의 곧바로 나와 장 대표도 폴앤크루 본사를 나섰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인 건지, 생전 내가 먼저 먹고 싶어서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내지 않았던 해물찜이 먹고 싶었다.
양 차장, 안 차장한테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해 봤는데, 그 두 인간은 치사하게도 미리 선약이 잡혀 있다고 하고.
만만한 게 장 대표라고 결국 난 장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에 약속이 있느냐고 물어봤고, 마침 아무런 약속이 없다고 하길래 점심시간 땡 하는 순간 바로 폴앤크루로 날아왔던 거다.
“제수씨랑 같이 먹으러 가지.”
“안 그래도 물어봤죠. 집사람 오늘 1시 반에 점심 교대랍니다.”
“여기저기 다 까이고 나한테 연락을 한 거구만.”
“대표님도 뭐 딱히 같이 점심 먹어 줄 사람 없잖아요.”
“뭐라는 거야, 지금?”
“아닌 척해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까 제 전화 받으실 때 점심 이야기 꺼내는 순간 통화 톤이 달라졌어요.”
“내가? 너 어디 아프냐?”
“아, 그래서 제가 산다고 하잖아요. 그나저나 상무님한테 들었습니다.”
“…뭘?”
“저 출장 복귀한 날 상무님이랑 같이 새벽집 가서 점심 먹었습니다.”
“그래?”
장 대표는 여전히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다.
“저 출장 가 있는 동안 상무님이랑 같이 거기서 점심 드시면서 한잔하셨다면서요?”
“뭐 시간 괜찮으면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더라고.”
“결정 잘하셨습니다. 나가서 개인 사업을 하긴 뭘 개인 사업을 합니까?”
결국 상무님은 장 대표까지 잡는 데 성공을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며칠 동안 회사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상무님의 얼굴은 더 이상 아무런 여한이 없다는 듯 가볍고 밝기만 했다.
“집사람이 애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보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아….”
“거기 처제도 있고 하니까 애 입학 가능한 학교만 알아보면 살 집 구하는 거 정도야 처제가 도와줄 수도 있는 부분이고… 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보니까 애도 적응을 좀 쉽게 할 수 있을 거도 같고….”
“그럼…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겁니까?”
“나보다는 애 엄마가 더 많이 알아보고 그렇게 하는 게 애 교육에 더 좋을 거 같으니까 한번 해 보자고 하는 거겠지.”
“그렇군요.”
“사실 집사람 입에서 그 이야기 나오는 순간 차라리 잘됐다 싶더라.”
“….”
“오히려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어차피 돈은 계속 만들어서 보내줘야 하는 거니까. 다행히 상무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셔서 못 이긴 척 그러자고 했어.”
“20년.”
“…?”
“대표님도 이제 얼추 홍성에서 20년 짬밥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젊음을 다 갈아 넣은 곳인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고민 많이 하셨을 거 같습니다. 이제 고작 10년인 저도 영업부 사무실 떠날 생각을 하면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고, 괜히 좀 더 있고 싶고 그런데… 20년 정도 하면 오죽할까요?”
그 말에 장 대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어 보였다.
“오히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여기서 이렇게 20년 세월 내 젊음을 갈아 넣으며 어른이 되는 동안, 아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신 내 아버지는 어느덧 저렇게 늙으셨구나….”
“….”
“과연 당신이 밟아 오신 젊음의 세월을 당신의 아들이 고스란히 똑같이 밟아 내는 모습을 어떤 기분으로 지켜보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왜 예전에 몇 년 전쯤에 그런 CF가 있었잖아?”
“무슨 CF요?”
“나도 정확하게 어디 회사 CF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 왜 직장인들, 그중에서도 결혼을 해서 애가 있는 남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해. 그런데 이제 그 설문 조사가 약간 몰래카메라처럼 진행이 되는 거지. 자기 애들 성장 발달 정도를 체크하는 설문지를 나눠 주고,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애를 안아 봤는지, 또 언제 애한테 사랑한단 말을 해 줬는지…. 그런 것들을 설문지 내용에 넣어놓고 답을 하라고 해.”
“아, 그거….”
“뭔지 알지?”
“알죠.”
“그런데 거기서 뜬금없이 질문의 대상을 바꿔 버리잖아?”
“아버지로.”
“그래. 내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언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안아 드렸는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해 드렸는지….”
“그리고 갑자기 티브이가 켜지면서 아버지들의 영상 편지가 나오죠.”
“아마 군대 훈련소 이후로 처음 울었던 거 같아, 그 영상을 보면서. 시큰거리더라고. 그렇게 부모가 되어 가는구나…. 해 줘도, 해 줘도 부족한 거 같고, 더 못 해 줘서 미안하고….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 애가 하기 싫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애도 해 보고 싶다고 하고, 또 내가 그 정도 여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존심 조금만 굽히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려울까.”
“그게 어째서 대표님이 자존심을 굽히는 겁니까? 그것도 애 때문에… 애 핑계 대지 마세요. 결국 대표님도 홍성에 남고 싶으신 거잖아요.”
“…!”
“제가 왜 대표님을 모르겠습니까. 대표님을 모신 게 벌써 몇 년짼데. 남들이 뭐라 하든 저한테 대표님은 홍성입니다.”
“지랄한다.”
“어? 안 믿네? 진짠데? 대표님만큼 홍성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요. 없어요. 며칠 전에 상무님이랑 같이 점심 먹으면서 상무님이 그 말을 하더라고요. 현재 상무님은 언제라도 대표님만 오케이 해 주시면 다시 본사로 모셔 오고 싶다고.”
“폴앤크루 계약 다 끝나고 나서 말이지. 그런데 내가 미쳤냐? 내일모레 이사 진급하는 네가 본사에 버티고 있는데, 거길 다시 들어가서 너랑 치고받게. 나 이제 내일모레면 오십이다. 그럴 체력 안 된다.”
“왜 치고받습니까, 저랑. 누가 뭐래도 저랑 대표님은 계속 쭈욱 같이 가는 거 아닙니까? 같은 편이지.”
“푸훕… 말이라도 고맙다. 그런데 너도 내 나이 먹어 보면 알겠지만, 막 그렇게 뭔가를 악착같이 하고 싶지는 않아, 이제 더 이상.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고 싶다. 너 먼저 가라, 은태야.”
“….”
“이 형이 예전처럼 앞에서 끌어 주지는 못해도 뒤에서 계속 받쳐는 줄게. 갈 수 있는 데까지 한번 올라가 봐라.”
“우와, 순간 감동. 처음인 거 아십니까?”
“뭐가?”
“대표님이 저한테 대표님을 형이라고 표현하신 거.”
“그래?”
“뭐랄까… 좀… 울컥하네요?”
“너도 이제 슬슬 여성 호르몬이 나오는 모양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울컥한다는 소릴 다 하는 거 보면.”
“하하하… 그런가?”
장 대표와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본사로 복귀를 했을 때였다.
1시 50분.
사무실이 휑했다.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사무실엔 유럽 쪽 내선 전화를 스탠바이하고 있는 센터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점심에서 복귀를 하지 않은 듯 여기저기 불이 꺼져 있는 곳도 많았다.
“다들 아직 복귀 안 했습니까?”
“부장님, 오셨습니까?”
“왜 이렇게 사무실이 휑합니까? 벌써 50분인데….”
“아, 저….”
난처한 표정으로 입맛만 다시고 있던 해외 영업부 최 팀장.
“뭔데?”
“저기… 영업 마케팅부 쪽에서 문제가 좀 생긴 거 같습니다. 양 차장님, 안 차장님 다 영업 마케팅부 사무실에 올라가 계세요.”
“무슨 문제?”
“저도 거기까지는… 조금 전에 김 차장님 호출 받고 두 분 다 뛰어 올라가셨고, 두 분이랑 같이 점심 복귀했던 인원들도 다 같이 올라갔습니다.”
난 곧바로 양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는 가는데 뭘 하느라 전화가 걸려오는지도 모르는지 전화를 안 받는 거였다.
그래서 곧바로 안 차장에게 전화를 걸며 엘리베이터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안 차장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씨… 뭐 하는 거야, 다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난 버릇처럼 잡아버린 엘리베이터와 비상구 계단을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고작 한 층일 뿐인데, 버릇처럼 잡아버린 엘리베이터.
그 엘리베이터 문이 영업 마케팅부 층에서 열리는 순간!
팡!
팡팡!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서프라이즈!”
안 차장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며 다시 한번 폭죽을 터뜨렸는데, 나도 모르게 고함이 튀어나와 버렸다.
“놀래라… 아, 뭐 하는 거예요, 다들 여기 모여서!”
내게 영업 마케팅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던 최 팀장이 비상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게 한 번만 살려달라는 식으로 두 손을 합장해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전 차장님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
그리고 갑자기 영업 마케팅부로 모인 영업부 직원들이 날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사 승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장님!”
“축하드립니다, 대장님!”
김 차장이 직접 케이크를 가지고 등장을 했는데, 그 순간 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득한 뭔가가 내 목울대에 걸려 있는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가 지금 며칠 전부터 이거 준비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다고요. 자, 이쪽으로 와 보세요.”
안 차장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날 마케팅부 사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한참을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안 차장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남색 정장 한 벌과 고급 수제화, 그리고 벨루티 서류 가방이 세팅되어 있는 마네킹을 만났다.
“구두는 미스터 스폰짜가 직접 협찬했습니다. 대장님 이사 진급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인천 창고에서 아무거나 금액 상관없이 대장님한테 어울릴 만한 거로 하나 뽑아서 선물로 대신 전달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 정장이랑 서류 가방은 우리 영업부 전 직원이 조금씩 모아서 대장님 이사 진급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
“뭐지? 설마 지금 울어요?”
“울기는… 크흠, 큼…. 다들… 점심시간 끝났는데, 여기서… 크흠… 뭐 합니까? 다들 자기 자리로 안 돌아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