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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302화 (302/325)

#302

상대가 강하다고 무너지지는 않거든

“잠깐만요, 잠깐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소리가 나길래, 난 반사적으로 문 열림 버튼 쪽으로 손을 뻗었고, 내가 그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이미 문이 열리고 있었다.

“아, 부장님.”

“이 대리….”

이지혜였다.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고도, 이지혜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 내가 타고 있어서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괜찮은데 나 지금 올라가는 길이에요. 이사님 만나러 가는 길인데….”

“저도… 올라갑니다.”

“그럼 타. 뭐 하고 있어요?”

“넵!”

마침 공교롭게도 그 엘리베이터 안엔 이지혜가 문을 잡기 전까지 나 혼자 타고 있었다.

이지혜는 어색한 듯 단발머리를 귀 옆으로 쓸어넘겼고, 그 후로도 들고 있던 서류를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난….

“…!”

이지혜가 서류를 들고 있었는데, 그 서류와 포개어 스마트폰도 함께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 케이스가 내 눈길을 잡아 세웠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이지혜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케이스를 보는 순간 그동안 영업부 안에서 내가 모르고 있던 뭔가가 꿈틀거리며 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모스치노 브랜드의 곰돌이 스마트폰 케이스….

저거 스위스에서 민규가 산 거다.

확실했다.

출장 일정 마지막 날 취리히 공항에서 수하물을 붙일 때였다.

만약 내가 티켓팅을 끝내기 전에 민규의 수하물이 무게를 초과할 줄 알았음 어차피 난 비즈니스 클래스기 때문에 수하물 초과 여유가 많아서 그냥 내 편으로 그 짐을 부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게 또 비즈니스 클래스와 이코노미의 티켓팅 수속 속도가 다르다 보니 내가 먼저 티켓팅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박기태와 민규가 수속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데, 뭘 그렇게 많이 샀는지 민규의 슈트 케이스 무게가 초과를 해 버린 거다.

결국 그 자리에서 박기태와 민규는 각자의 슈트 케이스를 열었고, 민규는 자신의 슈트 케이스에 꽉꽉 채워 넣은 물건들을 박기태의 슈트 케이스로 조금씩 옮겨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답답하게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던 난 남자가 쓰기엔 너무 러블리한 저 모스치노 곰돌이 스마트폰 케이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자기가 할 건 아닌 거 같았고,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산 거 같은데… 혹시 여자친구가 있나? 뭐 이런 생각까지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그 곰돌이 스마트폰 케이스를 이지혜가 사용하고 있었다.

“….”

“왜….”

난 그 곰돌이 스마트폰 케이스에서 점점 시선을 돌려 이지혜를 바라봤고, 그 순간 손을 꼼지락거리며 날 쳐다보는 이지혜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마터면 내가 뭔가를 눈치챘다는 걸 들킬 뻔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거지.

괜히 넘겨짚지 말자.

아닐 수도 있는 거고, 맞다고 한들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

괜히 넘겨짚었다가 그게 맞든 아니든 주책이란 소리를 들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에요?”

난 어떻게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는 걸 물어봤다.

“인사부 가는 길입니다.”

“인사부? 인사부는 내려가야 하잖아요.”

“아, 그 전에 17층 올라가서 캔 음료수 몇 개 뽑아 가려고요.”

“인사부는 왜….”

“아, 저…그게….”

그제야 난 곰돌이 스마트폰 케이스 뒤로 포개어져 있던 서류 쪽으로 눈길이 돌아갔다.

“회사 대출을 좀 신청하려고요.”

“…?”

“저 이번에 살고 있는 원룸, 전세 계약으로 바꾸려고요.”

“오, 잘됐네….”

“다 부장님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아,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그런 소리도 한두 번이라야 안 민망하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부장님이 그때 저 쁘띠토널 쪽으로 파견 근무 보내주셔서… 거기서 제법 돈을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수당도 많이 나왔고, 또 회사에서 집까지 다 제공을 해 주다 보니 따로 돈 들어갈 곳이 없었거든요. 거기다 이렇게 본사 복귀하자마자 바로 대리 승진시켜 주셔서… 처음 제가 목표했던 것보다 더 빨리… 제 꿈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게 어째서 내 덕이야? 다 이 대리가 일을 잘해서 그렇게 된 거지….”

그냥 뭐랄까….

듣기만 해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고 있었다.

저 기분이 뭔지 아니까.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

사실 월급 통장은 잠시 월급이 꽂혔다가 빠져나가는 경로일 뿐, 아무리 아끼며 살아도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좀처럼 돈을 모을 수 없었던 그 시절 내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았기에, 부지런히 살았기에 나 역시 대리를 달고 월세 원룸을 떠나 전세 원룸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비록 전세로 옮기기 위해 대출을 내야만 했지만, 그리고 그 대출 이자가 월세로 빠져나가는 금액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난 사회에 나와 내 손으로 뭔가 절반이지만 전세라는 내 것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에 한동안 취해 있었다.

“부장님 앞에서 이런 걸 꿈이라고 말하니까 좀 부끄럽긴 하네요.”

“꿈이 왜 부끄러워요? 그리고 그 꿈이 뭐든 열심히 노력해서 이뤘는데 어떻게 그 노력과 결과를 부끄럽다고 말할 수가 있지? 이 대리 그거 알아요? 지혜 씨 처음 우리 회사 들어왔을 때, 그때까지도… 아니다, 집사람 만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나도 전세 원룸에 혼자 살았었어요.”

“진짜요?”

“뭘 그렇게 놀라? 사람 사는 거 다들 비슷비슷한 거지. 나 역시 처음 홍성 들어왔을 땐 원룸 월세로 시작했고, 그렇게 차근차근… 남들 눈엔 저렇게 월급쟁이 생활 계속해서 어느 천년에 결혼하고 집 사고… 그렇게 남들처럼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 않나?”

“….”

“이런 걸 굳이 비교한다는 게 우스울지 몰라도, 전세로 갈아탄 속도만 보면 이 대리가 나보다 좀 더 빠른 거 같기도 하고. 하하하….”

“그나저나 사모님은….”

“집사람?”

“네, 아직도 계속 출근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네요. 출산 한 달 전까지 나가겠대요. 못 말려. 절대 못 말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다.

“그럼 일 봐요. 나 먼저 내릴게.”

“네,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수고.”

그렇게 도착한 임원 층.

박 이사를 만나기 위해 그 앞을 지나쳐야만 했던 상무님의 방.

더 이상은 불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난 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그 안이 훤히 다 보이는 통유리 벽에 노크를 했다.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든 상무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난 그런 상무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상무님은 직접 문을 열고 복도까지 나오셨다.

“괜찮아요?”

거진 일주일 만에 처음 본 상무님.

그의 첫 인사말은 괜찮냐는 거였다.

“네, 뭐…”

“경찰서 갔었다며?”

“아, 그거요? 별일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부른 거였는데요, 뭐.”

“아무리 그래도….”

“빅토리녹스 측에서 신경을 많이 써 줬습니다. 그리고 제가 건 클레임 역시 신 사장님께 토스를 해 놓고 넘어왔고요.”

“나는 씨… 박 이사님한테 공 부장 경찰서 갔다는 이야기 듣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에이… 제가 어디 당할 사람입니까?”

“아니, 난 또 공 부장이 거기 누구야? 그… 김 뭐시기 하는 그 인간.”

“…?”

“난 그 인간 공 부장이 한 대 쥐어박아서 경찰서 간 줄 알았지. 하하하….”

“상무님도 참….”

“아무튼 진짜 수고 많았어요, 이번에.”

“아닙니다.”

“어디 박 이사님 만나러 가는 길?”

“네.”

“그럼 나랑은 오늘 같이 점심이나 하는 게 어때요?”

가슴이 간질거렸다.

고구마 같았던 지난 일들이 한순간 기억에서 모두 지워졌음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상무님과의 새로운 이 관계… 결국 노력해서 원상태로 복구가 된 이 관계가 날 간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사 주시는 겁니까?”

“직원 식당에서 먹자고 할랬지.”

“흐음….”

“농담. 새벽집 갑시다. 내가 소고기 사 줄게.”

“오….”

“나 공 부장이 소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거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공 부장 출장 가 있는 동안 장 대표님이랑 같이 거기서 술 한잔 했었거든요. 거기서 장 대표님이 그러더라고. 진작에 알았음 내가 자주 데리고 갔을 건데 말이야…. 아무튼 뭐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이사 달고 이 층으로 사무실 옮겨 오면 나랑 자주 같이 다닙시다.”

“…네, 앞으로는 제가 종종 모시겠습니다.”

상무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무님 앞으로 단단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박 이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공 부장, 이제야 돌아왔네….”

“노래가 나오냐, 이 자식아!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고….”

박 이사는 날 보자마자 웃고 있는 표정과는 다르게 소리를 꽥 하고 질렀다.

그래서 난 더 장난스럽게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공 부장을 다시 한번 불렀다.

“그만 까불고 어서 와서 앉아. 커피?”

“아뇨, 밑에서 마시고 왔습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일을 처리하고 복귀를 했으면 출근하자마자 나부터 찾아와서 보고부터 해야지, 미팅은 무슨 미팅을 한다고 이제서야 기어올라 와?”

“으으으윽….”

난 기지개를 크게 켜며 말했다.

“아우… 또 속에도 없는 잔소리 억지로 만들고 계신다, 또… 저 지금 살 빠진 거 안 보이십니까? 상무님은 저 보자마자 괜찮냐면서 점심에 소고기 사 주겠다고 하시던데, 이사님은 뭐 어떻게 된 게 저 보자마자 잔소리부터 시작하십니까?”

“새끼… 기특해서 그런다, 이 새끼야. 하하하….”

“크크큭….”

나와 박 이사는 한참 동안 현재 홍성 쪽으로 유리하게 짜진 판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김 차장이 현재 우리 홍성이랑 CGM이 겹치게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들 본사 쪽으로 보낼 메일을 만들 겁니다. 인터라켄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최대한 심각한 사건으로 포장을 할 거고, 특히 홍성 타워에 들어가 있는 브랜드들을 CGM 쪽에서 이미테이션 가품일 수도 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문제를 삼으면 될 거 같습니다.”

“그게 포인트지, 어떻게 보면.”

“네, 거기 현지 여행사 쪽은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신 사장이 거기 있으니까 천천히 정리가 될 거 같고, 저희는 딱 브랜드 본사들 상대로 이 부분만 강력하게 어필을 해 주면 될 거 같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하지 싶은데….”

“천천히 하죠. 급한 건 저희가 아니니까요. 스위스 경찰 애들 일 처리하는 거 보니까 말 그대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거 같던데… 괜히 조급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을 거 같습니다. 빅토리녹스 측에서 책임지고 확대 소송 진행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당분간 저희는 구경만 해도 충분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금 전에 안 차장한테 다른 나라 컨트롤 기업들과 접촉을 한번 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지. CGM 같은 1차 벤더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브랜드들이 빠지기 시작할 건데, 컨트롤 기업 입장에선 필요한 브랜드가 없는 벤더 쪽과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거지.”

“그렇죠. 따지고 보면 아무리 계약에 물려 있다고 해도, 벤더 측에서 계약된 브랜드를 공급 못 해 주게 되면 결론은 그 계약도 벤더 측에서 깨는 거나 마찬가지니…”

“CGM… 이번에 외통수 제대로 걸렸네.”

“저는 이번에 김형찬 그 사람이 고맙기까지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쪽 스파이인 줄 알았을 겁니다. 하하하….”

“결국은 그런 거야. 절대 상대가 강하다고 무너지지는 않거든. 어느 기업이든 경쟁사가 너무 막강해서 무너지는 경우는 절대 없어. 무너지는 기업들을 자세히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다들 지금 CGM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처럼 내부를 잘 단속 못 해서… 그래서 엉망이 되는 거야. CGM 창립 멤버들 입장에선 이 얼마나 어이없고 원통할 거야? 우리가 벼룩이란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스위스는 자기네 홈그라운드인데, 그 자기 집에서 벼룩 몇 마리 잡겠다고 집 전체에 불을 지른 꼴이니….”

“그렇죠.”

“누가 진짜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도 제대로 못 하는 인간을 GM으로 앉혀 놨으니… 어쩌면 CGM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수순을 밟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아무튼 조금 있다가 나랑 같이 사장실 가야 돼. 사장님도 지금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으실 거야. 워낙에 큰 건이 되다 보니, 사장님도 이번에 진짜 CGM을 잡나…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시는 눈치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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