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301화 (301/325)

#301

팝콘 좀 사 와

짝, 짝, 짝… 짝짝짝짝….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누가 먼저 시작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영업 기획부 쪽에서 먼저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고, 내 자리로 향하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 해외 영업부 쪽도 하나같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나의 출근을 반겨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곱니다, 진짜!”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나왔고, 특히 안 차장은 파티션 밖에까지 직접 나와서 날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뭐지?

안기라는 뜻인가?

난 그런 안 차장을 무시하며 그냥 지나쳤고, 그럼에도 안 차장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귀찮게 굴었다.

“살살 좀 하지 그러셨습니까? 김형찬이 그 양아치, 완전 내 스타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랍니까?”

“안 울던가요? 울었음 대박인데…. 박 팀장한테 듣기로는 아주 그냥 잘근잘근 씹어버리셨다면서요. 이건 뭐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듣는 것만으로도 가스 활명수를 막 입속에 털어 넣는 느낌이었어요.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 좀 저리 가세요. 뭐 합니까, 아침부터…”

“맨날 아침부터래… 아침이 뭐 죄지었습니까? 이런 경사를 축하도 못 하게…. 아, 좀 그러지 말고 이야기 좀 해 달라고!”

“가방 좀 풀고!”

“아… 가방. 그렇지, 풀어야지. 이리 주세요, 달라니까. 오늘은 제가 대신 풀어 드릴게요.”

그리고 안 차장은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커피, 커피… 설탕 3분의 2만 넣고… 알지?”

“넵!”

아주 그냥 죽이 척척 맞아떨어진다.

안 차장의 신호에 해외 영업부 신입 하나가 내 커피를 내리겠다고 서둘러 탕비실로 향했고, 양 차장까지 어슬렁거리며 내 자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박 팀장이랑 전 대리 통해서 대충 전해 듣긴 했는데, 그래도 또 직접 듣는 거랑은 뭐가 달라도 다를 거니까.”

“끝, 그게 끝이에요. 더 없어요.”

“아, 뭐랍니까? 그 좋은 기회, 명분을 다 잡아 오셔놓고 그게 끝이라니요?”

“거기서 한 건 그게 끝이라고요. 이제 출장 복귀했으니까 본격적으로 CGM 털기 들어가야죠.”

“크흐… 여윽시.”

안 차장은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는 배꼽 부근에서 그 주먹을 몇 차례 신나게 흔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참교육 들어가나요?”

“글쎄요… 우리 입장에선 참교육인데,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안 차장님 말씀대로 기회, 명분 다 잡았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한번 밀어붙여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안 차장의 장단을 조금씩 맞춰 주며 함께 농담을 던졌고, 그 모습에 양 차장은 씩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이사 진급하시기 전에 큰 거 하나 떨어뜨려 주고 가세요. 아마 영업부를 떠나 홍성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실적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양 차장의 말에 난 입술을 단단하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눈빛으로만 대답을 대신했다.

아침부터 모두가 흥분을 해 있는 상태였다.

안 차장의 말처럼 내가 출근을 하기 전 먼저 출근을 했던 박기태, 민규를 통해 다들 인터라켄에서 있었던 일들에 관해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

물론 출장 일정이 연장되면서 대략적인 상황 정도야 나 역시 박 이사에게 먼저 보고를 했고, 또 해당 헤프닝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브랜드 쪽 관계자들에게 고발 비슷한 메일을 보내기 위해 본사의 도움을 얻었지만, 그래도 다들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듣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영업 마케팅부 내선 전화 넣어서 김 차장님이랑 팀장들 다 내려오라고 호출 좀 넣어주세요.”

난 곁에 있던 해외 영업부 최 팀장을 시켜 영업 마케팅부 쪽 사람들도 내려오게 만들었다.

그사이 내가 마실 커피가 도착했고, 난 커피잔 손잡이에 검지를 끼워 놓고 다른 손바닥으로 그 커피잔 밑부분을 받쳤다.

그리고 커피잔을 든 채 그쪽 팔을 파티션 위로 살짝 걸쳐놓았다.

영업 마케팅부 쪽에서 사람들이 다 내려왔을 때였다.

이미 김 차장 역시 대략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 정도는 알고 있는 듯, 기분 좋게 상기가 되어 있었다.

“음….”

육성으로 어디까지 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크게 올릴 수는 없는 노릇.

대충 목을 풀 겸 뜸을 들여놓고 평상시보다 조금 높은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잔소리 비슷한 소릴 하게 돼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좀 들어주세요.”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타이밍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박 이사였다.

“네, 이사님.”

-출근했지?

“네.”

-출장 복귀해서 출근을 했음 먼저 연락을 줘야 할 거 아냐. 잠깐 올라와.

“지금요?”

-왜? 뭐 하고 있는 중이었어?

“네, 저 지금 영업부 전체 미팅 중에 있습니다. 급하신 겁니까?”

-아냐, 아냐… 하는 거 끝내고 올라와.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그러지.

“아, 네… 금방 끝납니다. 최대한 빨리 올라가겠습니다.”

박 이사와의 통화를 끝내놓고 난 곧바로 앞으로 우리 영업부가 뭘 조심하고 또 뭐에 집중해야 하는지, 지난 출장길에서 한국으로 오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정리해 놓은 부분들을 설명해 나갔다.

“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조만간 우리 영업부는 영업 마케팅, 기획 그리고 해외 영업부… 이렇게 정확하게 나뉘게 될 겁니다. 사실 홍성 정도 되는, 영업의 비중이 큰 회사들 대부분이 이 부장, 삼 부장… 심한 경우는 오 부장 체제로 굴러가고 있죠.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회사가 컨트롤 기업치고는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을 했고, 또 그렇게 급하게 덩치가 커졌음에도 조직을 효과적으로 굴릴 관리 체계가 부족해서 일 부장 체제로 오고 있었던 거지, 따지고 보면 이렇게 변화를 주는 게 맞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다시 한번 커피를 홀짝거려 놓고 말을 이어갔다.

“비록 제가 회사를 상대로 삼 부장 체제를 주장하긴 했지만, 그리고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두렵습니다.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지도 대충은 벌써부터 눈에 보이고요. 하지만 부작용이라는 건 때에 따라, 그리고 그 정도에 따라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문제없이 잘만 굴러가는 조직은 어쩔 수 없이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그렇게 가다 보면 작은 문제 앞에서도 허둥지둥… 그렇게 고인 물이 되어 버리는 거겠죠. 물론 두렵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변화까지 두려워해서야 되겠습니까? 여기서 제가,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부작용들을 자체적으로도 얼마든지 정화할 수 있는 수준 정도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건강한 경쟁이 뭔지, 그리고 그 건강한 경쟁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빠르게 캐치를 하고 또 조금 귀찮더라도 꾸준히 시도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

“CGM은 분명 여기서 더 무너질 겁니다.”

나의 확신에 잠시 지루해하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업계 거대 공룡 중 하나였던 CGM이 왜 지금 저 꼴이 났는지를 잘 생각해 보면, 덩치를 더 키우게 될 우리가 앞으로 피해야 할 게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분명 CGM은 우리 홍성과의 불필요한 경쟁만 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만토바 다음으로 업계 유통 쪽으로는 실력자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CGM이 고작 이만한 일로 이렇게까지 흔들린다는 건 사실상 말이 안 되는 거죠. 분명 그동안 우리 홍성뿐 아니라 업계 전체가 CGM의 사업 스타일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지금 이번 인터라켄 홍성 타워 건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거뿐이죠. 우린 곪아가고 있던 시장에 홍성 타워라는 바늘로 고름이 나올 수 있도록 구멍 몇 개를 내준 게 전부입니다. 너무 많이 곪아 있었고, 그 안에 들었던 고름이 너무 독했기 때문에 그 작은 구멍 몇 개 만들어준 게 전부인데 이렇게까지 크게 터져버리는 거죠.”

“….”

“삼 부장 체제… 부서 간 경쟁을 하라고 만들어 준 조직도가 절대 아닙니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무척 긍정적인 단어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안에서 할 경쟁, 밖으로 나가서 다른 상대를 찾아서 하세요. 그리고 그 경쟁은 반드시 깨끗해야 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상대가 먼저 반칙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 쪽에서는 반칙을 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CGM이 지금 저렇게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 다들 제가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긴 하지만, 그걸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힘이 있을 때 겸손하지 못했다…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았습니다. 그걸 CGM만 몰랐던 겁니다. 우리 홍성은 절대 CGM이 밟았던 전철을 따라 밟아선 안 될 겁니다. 자,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상대가 먼저 반칙을 했고, 또 그 반칙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었으니까 이자까지 쳐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겠죠. 우린 그걸 돌려주면서 복기라는 걸 해 봅시다. 왜, 바둑에서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토바를 등에 업은 우리 홍성이 앞으로 업계 실력자로 올라섰을 때 무엇을 조심하고 또 무엇을 신경 써서 챙겨야 할지가 반드시 보일 거라고 전 믿습니다. 김 차장님.”

“네.”

“영업 마케팅부 팀장들과 자체 회의를 한번 해 보시고, 현재 영업 마케팅부가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 본사 쪽으로 인터라켄에서 있었던 홍성 타워와 CGM의 마찰을 잘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뭐 물론 업계가 넓은 것처럼 보여도 워낙에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업계다 보니 이미 어느 정도 소문은 났겠지만, 그걸 우리가 직접 공문처럼 메일을 만들어 공개적으로 CGM을 디스하는 것과 안 하는 건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최대한 CGM 쪽으로 불리하게끔 내용을 요약하세요. 그리고 현재 빅토리녹스 측이 준비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 주시고, 발리와 버버리 쪽에선 이미 CGM의 손을 놓았다는 부분도 강조를 해주세요. 아마… 앞으로 많은 브랜드들이 먼저 CGM의 손을 놓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양 차장님.”

“네.”

“홍성 자체 편집샵 브랜드들… 프랜차이즈 세계화… 준비해 주십시오.”

“…!”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와 그 부분에 대해 아이디어를 주고받아 왔던 양 차장만큼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프로젝트입니다. 국내 시장 좁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국내 시장을 이미 다 먹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홍성 영업부는 더 커졌습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야죠.”

“네,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안 차장님.”

“예썰!”

“음…”

“…?”

“폴앤크루 알렌 강과 만나서… 알렌 강이 확보하고 있는 해외 유통 채널, 그중에서도 우리 홍성과 같은 컨트롤 기업들의 정보들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주세요.”

“네?”

“CGM… 따지고 보면 그저 1차 벤더 유통기업일 뿐 아닙니까.”

“…?”

“그들이 어디 우리처럼 자체 브랜드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결국 많은 브랜드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밖에 더 있냐는 말이죠. 그나마도 이제 하나둘씩… 놓치게 될 거고, 여기서 우리가 있는 힘껏 밀어붙이지 않으면 언젠간 또 잡초처럼 다시 일어날 겁니다.”

“그럼….”

“네. 알렌 강 통해서 다른 나라 컨트롤 업체들 정보 확보하고, 그중에서도 현재 CGM 쪽으로 물건을 공급받고 있는 업체들 문을 집중적으로 두드려 보세요. 만토바 쪽 스폰짜와는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났습니다. 링겐 쪽 역시 아직 이야기를 나눠 보진 못했지만, 분명 스폰짜처럼 두 손을 들고 반길 거고요. 만토바, 링겐 쪽 물건을 지금 받고 있는 물량보다 더 많이 사전 확보해 주고, 그렇게 우리가 확보해 주는 물량만큼 마진 조정을 새로 할 겁니다. 그리고 그 물량들을 우리가 대신… 현재 CGM을 통해 물건을 공급받고 있는 컨트롤 기업들에게 쏴주는 겁니다.”

“그럼 앞으로 홍성이 1차 벤더 역할까지…”

“아니죠. 엄밀히 말해 1차 벤더는 앞으로도 만토바와 링겐이 하게 될 겁니다. 우린 1.5군 정도?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파트너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겁니다. 그 딜의 성립 조건은 CGM의 시장을 우리가 장악한다는 거고, 만토바는 기존에 없던 시장 쪽으로 우리 홍성을 끼고 마진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 밀어내기식으로 물건을 대 준다… 정도가 될 거 같네요.”

“확정입니까?”

“만토바는 확정입니다. 만토바가 오케이 했는데, 링겐이 거절을 할 이유는 없겠죠. 따지고 보면 만토바보다 링겐 쪽이 더 CGM을 불편하게 생각해 오고 있을 텐데, 명분과 기회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따라와야죠.”

“크흐… 예썰! CGM 진짜 조땐네…아, 재밌어. 야, 박 팀장, 얼른 가서 팝콘 좀 사 와.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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