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사실을 시원하게 밝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분주하게 뭔가를 체크하고 한숨을 터뜨리며, 또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거는 민규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박기태가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신 사장도 함께 있었다.
박기태는 매장 직원들과 신 사장을 데리고 다니며 포스 정산 내용을 킵시키고 그걸 한국 쪽에서 확인했다는 걸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 클로즈 버튼을 누르기 전에 센딩 버튼을 먼저 눌러 주시고 마지막으로 클로즈 버튼을 누르셔야 됩니다.”
“아….”
“이거 안 누르고 바로 클로즈 버튼 누르시면 캐시 박스가 튀어나와요, 이렇게.”
돈 통이 튀어나오는 걸 손으로 막으며 박기태가 말했다.
“사실 큰 상관은 없는데, 센딩 버튼을 안 눌러 주시면 한국 본사 쪽에서 정확한 매출 카운팅이 안 돼요. 어차피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매출은 바로바로 한국에서 카운팅이 가능하지만, 여기서 함정은 캔슬 난 빌에 한해선 한국에서도 카운팅이 힘들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계산을 도와줄 때마다 센딩 버튼을 습관처럼 눌러 주시면 본사에서도 캔슬 난 부분까지 바로 카운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월말 정산 때 오차 난 부분을 서로 확인한다고 쓸데없는 시간을 안 써도 된다는 거죠. 정제품은 모르겠지만, 이월 제품들에 경우는 다 컨사인먼트로 받잖아요. 컨사인먼트 물건들은 다 익월 정산이기 때문에 본사는 그 컨사인먼트 물건들에 한해 이 포스 기록대로 인보이스를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본사는 큰 문제가 없지만 사장님은 팔지도 않은 물건에 대한 값까지 미리 치루셔야 하는 겁니다.”
“신경 써야겠네요. 어… 오셨어요?”
그제야 신 사장이 날 발견했다.
난 신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박기태는 그런 날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지금 내 곁으로 오지 못함을 이해해 달라고 손을 들었다.
난 그런 박기태에게 슬며시 미소만 보냈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문제없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박기태는 뭔가 마음처럼 잘 안 되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포스 센딩에 버퍼링이 생깁니다.”
“얼마나?”
“한국 쪽과 1분 정도 버퍼링이 생깁니다.”
“에이, 그 정도야….”
“제가 바로 전에 안 차장님이랑 통화를 하면서 캔슬 빌을 올려 봤거든요. 그런데 1분 정도 시간적 오차가 생기네요.”
“어마운트는요?”
“그냥 말 그대로 버퍼링입니다. 몇 번 테스트를 해 봤는데, 어마운트의 오차는 안 잡힙니다.”
“그럼 된 거지, 뭐. 세팅만 확실하게 해 주면 됩니다. 그럼 여기 매장 직원들이 포스 조작을 손에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방법들을 찾아낼 거예요. 결국 한 몇 달 지나면 여기 이 매장 직원들이 박 팀장보다 더 포스 다루는 부분에선 전문가들이 되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실수가 났을 때 당황하지 않아도 되게끔 세팅만 완벽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인터넷 문제 생겼을 때 포스 문제없이 돌릴 수 있도록 GPS 머신 사용법도 제대로 알려주고.”
“그 교육은 이미 어제 다 끝냈습니다.”
“잘했네. 아참 그건 그렇고… 사장님.”
“네.”
“밑에 보니까 화장실 이용하러 들어온 사람들이 줄을 이만큼 서 있던데….”
“하하하… 전 가이드들 꼴 보기 싫어서 가급적 밑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있습니다.”
“에이… 그러면 됩니까, 사장님 건물인데. 아무튼 화장실 공간이 좀 부족한 거 같은데, 여기 3층하고 4층 화장실도 같이 오픈을 해 주는 게 어떨까요?”
“흐음….”
“지금 화장실을 오픈해 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와서 스타벅스 쪽 화장실까지 다 점령을 해버렸어요.”
“네….”
“그건 우리 쪽에서 스타벅스 측에게 큰 실례를 하는 거죠. 아무리 사장님 건물에 세를 들어와 영업을 한다고 해도 엄연히 스타벅스는 1층, 3, 4층과 분리를 해 줘야 합니다.”
“쓰읍… 하아… 그렇죠.”
“밑에 사이니지 같은 걸 하나 만들어 붙이든, 아님 안내 직원을 따로 한 명 정도 스탠바이시키든 해서 화장실 이용 안내를 해 주는 게 좋은 거 같네요. 2층 스타벅스 쪽 화장실은 가급적 스타벅스 이용객들에 한하게 만들고, 자리가 부족하면 3층과 4층에도 넓은 공간의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좀 귀찮더라도 올라가서 빈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에스컬레이터는 없지만, 화장실로 사람들을 유인해서 3, 4층의 샵을 노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리고 난 지금 당장 오픈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가 된 4층 내부를 한번 스윽 훑어보며 혼잣말을 했다.
“잘해 놨네….”
혼잣말을 흘린 다음 최 실장에게 물었다.
“사다리 하나만 갖다주시겠습니까?”
“사다리요? 사다리는 왜….”
“다 괜찮은데… 조명이 마음에 안 드네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기태는 내가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거라 오해를 했던지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박기태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던 거 빨리 끝내고 박 팀장은 나 좀 도와주세요.”
“…네.”
난 최 실장이 가져다준 A자 사다리를 직접 들고 윈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 사장과 매장 직원들에게 포스 교육을 다 끝내 놓고 박기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뭐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라도….”
“이거 좀 잡아 봐요.”
난 사다리를 펼쳐서 그 밑부분을 단단하게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박기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냥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했다.
“으으음… 내가 직접 하는 거 보여주고 하라고 해야지, 하는 방법도 안 가르쳐주고 무턱대고 하라고만 할 수 있나.”
“….”
난 정장 재킷을 벗어 한쪽에 아무렇게나 걸어 놓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천장에 한 손을 갖다 대고 내 몸을 고정시킨 다음, 단수 조명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특히 윈도 쪽은 조명을 잘 쏴야 돼요. 이거 자칫 잘못 쏘면 조명 빛 때문에 밖에서 내부가 안 보일 수가 있어. 거울처럼 미러링이 되어 버린단 말이죠.”
“아….”
“윈도 쪽 조명은 이렇게 유리를 때리는 게 아니라 제품을 때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조명 열 때문에 제품에 대미지가 나지 않습니까?”
“뭐시 중헌디.”
“…?”
“허허허… 대미지 좀 나면 어때요? 박 팀장이 봤을 때 이 홍성 타워 로케이션이 어디 보통 로케이션이에요? 이 로케이션은 정말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로케이션이에요. 이런 로케이션에 4층. 날이 좀 어두워지면 밖에선 가장 화려하게 빛이 날 위치인데, 고작 제품 대미지 로스트 때문에 그게 겁이 나나?”
“….”
“대미지 로스트 나는 거야, 그냥 백시키면 되는 거고, 일단 건물을 살려야지. 건물이 살아야 밤에도 사람들이 들어올 거고, 그래야 매출이 올라가지. 그렇게 올라간 매출이면 대미지 로스트 커버를 치고도 주리가 남겠다.”
“주리….”
“거스름돈.”
“아….”
“3층까지는 괜찮아. 해놓은 거 그대로 놔두고, 여기 4층 윈도 쪽만 조명 다시 손 좀 보세요. 제품 대미지 나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바로 쏴. 내가 봤을 때 대미지 날 것도 없다. 대미지가 나려면 그래도 최소 2주 이상 계속 디피가 되어 있어야 되는데, 여긴… 디피 제품들도 2주 이상 못 간다. 물건… 없어서 못 팔 거 같아요.”
난 사다리에서 내려와 박수를 치며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날 쳐다보고 있던 신 사장에게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내일부터 호에벡 거리의 판도가 달라질 겁니다.”
“…!”
준비는 완벽했다.
박기태를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이 정도면 완벽이라고 평가해도 될 정도로 따로 손 볼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오프닝 준비였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10시였다.
빅토리녹스 측과 짐멀리, 그리고 발리 팩토리 측에서 홍성 타워 그랜드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사실 단순 홍성 타워의 오픈이라고 해서 그 바쁜 사람들이 직접 스위스의 촌동네 인터라켄으로 모여든 건 아니었을 거다.
아마도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세 건물 오픈도 함께 걸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홍성을 대표해서 스위스까지 날아온 나의 성의에 화답하기 위해 모인 거겠지.
오전 10시에 간단하게 오프닝 행사를 진행하고, 곧바로 홍성 타워 자체 쇼핑백을 깔아 정식 오픈을 했다.
그리고 나와 신 사장은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각 브랜드 대표들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달짝지근한 식전주와 함께 곁들인 송아지 스테이크.
비록 비즈니스 이야기가 메인 코스인 식사 자리였지만, 우린 1시간가량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고, 다시 호에벡 거리로 나왔을 땐 홍성 타워 자체 쇼핑백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벌써 반응이 오기 시작하네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마 융프라우 열차 티켓을 못 구한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오는 거 같네요.”
신 사장의 말을 들으며 우리 일행은 홍성 타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과 마주쳤다.
“환불해 달라고요!”
딱 봐도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40대 중반의 여성 고객이었는데, 영어가 제법 유창한 편이었다.
그녀는 홍성 타워 1층 로비에서 안내 직원을 붙잡고 뭔가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환불을 요구하고 있었다.
서둘러 박기태가 뛰어 내려왔다.
빅토리녹스 측 대표는 자기네 매장 직원에게 고객이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는지 물었고, 다행히 영어로 대화를 해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가이드가 거짓말을 한 거 같습니다.”
“거짓말이라면….”
“홍성 타워에서 물건을 사면 면세를 못 받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면세를 못 받는다니….”
빅토리녹스 측 대표는 매장 직원에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냐는 투로 재차 물었다.
“아마 홍성 타워는 가이드 커미션을 안 주다 보니, 가이드가 그렇게 고객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고객은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우롱할 수 있느냐며, 지금 바로 환불을 안 해 주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까지 말을 하는 중이었다.
“면세는 이미 받으셨지 않습니까? 스위스는 샵에서 자체 면세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결제하신 금액은 면세 할인이 들어간 금액입니다.”
“내 신용카드로 면세 예치금을 걸었잖아요. 그거 내가 국경 통과하는 순간 차지를 할 거잖아요.”
“무슨 그런….”
“다 필요 없고, 환불해 주세요.”
난 박기태를 뒤로 물리며 그녀가 흔들고 있는 면세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 면세 서류를 찢어버렸다.
“…!”
“이사님….”
박기태가 당황한 얼굴로 날 불렀다.
하지만 난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그 고객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저희는 고객님의 카드에서 절대 예치금을 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아마 고객님을 인솔하는 투어 가이드가 커미션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저희 홍성 타워를 고객분들께 거짓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거 같네요. 면세 8퍼센트…. 그거 저희가 포기하겠습니다. 그냥 고객님께 8퍼센트 할인을 드린 거로 하죠. 어차피 가이드 커미션은 10퍼센거든요. 그리고 미스터 박.”
난 영어로 박기태를 불렀다.
“네, 대표님.”
“폴앤크루 들어가서 BSF 컬렉션 이 고객님 사이즈에 맞을 만한 거로 하나 가져오세요. 선물로 드리게.”
“…!”
“가이드의 거짓말에 고객님의 여행이 망쳐지게 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팩트를 설명해 드리려고 하는데, 잠시만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괜찮으시다면, 고객님께 저희 홍성 타워는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타워 측이 면세를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로 고객들을 우롱했다고 말한 고객님의 가이드를 이곳으로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제가 그 가이드가 있는 앞에서 고객님께 저희 홍성 타워는 절대 고객들을 우롱한 일이 없다는 것과, 또 반대로 고객님의 인솔 가이드가 가이드 커미션 때문에 저희를 사기꾼 집단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시원하게 밝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티셔츠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저희 쪽 이용으로 인해 고객님의 소중한 여행 시간에 잠시라도 불쾌함이 드셨을 것을 고려해서… 오픈 행사 기념차 선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