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늦었지만 사과하고 싶어요
며칠 뒤 쇼핑백 재질 샘플 실물과 임의로 뽑아 본 패턴이 담긴 아이패드를 들고 문 차장이 홍성 본사를 찾아왔다.
거의 출근과 동시에 홍성 본사를 방문해서 직접 나의 의견을 듣고 싶다던 문 차장의 전화를 받았고, 난 오전엔 특별한 스케줄이 없다는 말로 그녀와의 약속을 잡았다.
폴앤크루가 완벽한 분리경영을 시작하기 전, 알렌 강의 총괄하에 폴앤크루 셋업 맴버들은 홍성 본사에 간이 사무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팀을 꾸리기 시작했었다.
외부 계열사로 트랜스퍼가 되었던 문 차장 역시 그 당시 폴앤크루 셋업 맴버로 다시 홍성 본사에 합류를 했었고, 그렇게 나와 문 차장은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 지붕 아래에서 업무를 쳐내야만 했었다.
그때에도 문 차장은 어떻게든 자신이 한때 몸을 담았던 영업부 쪽으로는 발길을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직접 자기 발로 홍성 본사 영업부 사무실을 찾아온 문 차장.
그녀의 등장에, 그녀가 외부 계열사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있는 영업부 직원들은 숨을 죽이기 시작했고, 또 어느 누군가는 그녀의 트랜스퍼 스토리를 모르는 신입들에게 눈치껏 귓속말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문 차장의 발길은 가벼웠다.
의도된 연출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쪽 입꼬리는 경쾌하게 올라가 있었고, 시선은 오로지 정면만을 향해 있었으며, 걸음걸이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오히려 그녀의 등장에 불편한 건 내 쪽이었다.
난 그녀가 엘리베이터 복도를 나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그녀의 등장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를 맞이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그녀는 성큼 내 자리까지 도착해 있었고, 내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척 연기를 하는 동안 파티션을 가볍게 노크하며 자신의 등장을 알려왔다.
“부장님.”
“오, 문 차장님. 일찍 왔네요?”
“오전 중에 쇼핑백 디자인 컨펌까지 받아내고 출장 계획서 만들어야 해서요.”
난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또 출장입니까?”
“또 출장이냐는 말을 최근 가장 출장을 많이 다니시는 부장님께 들으려니까 어딘가 모르게 미안하네요.”
“하하하… 그런가?”
사원 카드만 대충 챙겨서 그녀를 다시 엘리베이터 복도 쪽으로 안내했다.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다.
당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우린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폈고, 눈치를 살피는 그 행위를 서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잘 하지도 못하는 연기로 최대한 이 공기가 불편하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미리 잡아 놓은 소형 회의실로 그녀를 안내했고, 그 입구에서 지원부 신입사원에게 부장 사원 카드를 맡기며 회의실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메일로 보내지 뭐 하러 바쁜데 직접 본사까지 찾아왔어요?”
난 문 차장 앞으로 자판기에서 뽑아 온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고, 그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맞은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내 몫의 커피 한 모금을 홀짝였다.
“패턴이야 메일로 보내면 된다지만, 재질은 직접 만져 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기본형 있잖아요, 현재 H.I 편집샵에서 쓰고 있는 거. 그걸로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래도 미세한 차이지만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요. 어차피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세 매장에서도 같이 사용할 거 아닌가요?”
“그렇죠. 어차피 오픈 시기는 달라도 결국 거기도 내년 오픈이고, 제작 단가 고려해서 한 번에 대량으로 찍어내는 게 유리하긴 하죠.”
“그럼 사이즈별로 기본 3만 장 이상씩은 제작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한번 할 때 꼼꼼하게 체크를 해놓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문 차장은 자기 역시 바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함인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뜻을 아이패드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우선 부장님께서 저희 쪽 대표님께 의뢰하셨던 폴앤크루 1차 컬렉션들로 뽑아 본 패턴입니다.”
패턴 선정엔 크게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다.
1차적으로 폴앤크루 디자인팀 쪽에서 많은 고민을 거쳐 내놓은 패턴일 것이고, 여기서 초이스한다고 해서 그게 최종 패턴이 되는 건 아니니까.
여기서 또 직접 실물에 패턴을 입혀 보는 작업을 거쳐야 하고, 그런 다음 사이즈에 맞는 패턴 조정이 새로 들어가야 한다.
“이게 괜찮네요. 화사해. 폴앤크루 이미지랑도 어울리고, 무엇보다 타 브랜드 쇼핑백과 비교해서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명품 쪽은 다들 자기네 브랜드를 우아하고 고상하게 포장하기 위해 무거운 느낌을 선호하는데,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저도 부장님이랑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디자인팀에서 패턴 샘플 뽑아서 보냈을 때, 유독 이게 눈에 띄더라고요. 대표님께 직접 듣기로 부장님이 원하시는 콘셉트가 눈에 확 띄는 패턴, 그럼에도 너무 날리거나 저렴해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퀄리티는 지켜내길 원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참… 이게 제가 요청을 해놓고도 참 애매한 요구를 한 거 같더라고. 마치 머리 자르러 가서 귀밑머리는 놔두고, 앞머리도 최대한 살려 주면서 스포티하게, 하지만 숱은 많아 보이게 잘라달란 요구랑 뭐가 다르겠어요? 하하하….”
“그래도 진짜 실력이 있는 영업 사원은 그 요구의 디테일에만 집중하지 않고 고객이 궁극적으로 뭘 원하는지를 먼저 떠올려 보겠죠?”
“….”
문 차장이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 난 잠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님이 저한테 해주셨던 말인데, 혹시 기억 안 나세요?”
문 차장에게 뭔가 변화가 온 거 같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로지 일만 놓고 날 상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점점 그녀와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편안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문 차장은 아이패드를 챙겨서 아래로 내려놓고 마치 홈 인터리어 샵에서나 볼 법한 쇼핑백 원단 샘플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철제 고리에 한 다발로 묶여 있는 수십 장의 원단 샘플.
비록 다 같은 무색이었지만, 하나하나 비슷한 듯 각양각색의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를 선택해 주셔야 합니다.”
“본사 편집샵들 쇼핑백 제작할 때랑 비교해서 너무 전문적으로 변한 거 아니에요? 하하하… 내가 뭐 만져 본다고 아나. 내 눈엔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이는데… 문 차장이 가성비 괜찮게 뽑을 수 있을 만한 걸로 몇 개 추려서 추천 좀 해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 차장은 고리를 풀어서 원단 샘플 몇 개를 추렸고, 나머지는 고리에 그대로 묶은 채 치워버렸다.
“이 안에서 선택을 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우와… 난 이렇게 추려 줘도 뭐가 어떻게 다른지 헷갈리는데….”
“그럼 쉽게 이렇게 다시 나눠 드릴게요. 이쪽은 마뜨(무광 재질), 이쪽은 유광입니다. 아무래도 마뜨 쪽은 마분지 두께 자체가 유광보다 두꺼워야 하기 때문에 코스트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요, 유광은 아시다시피….”
“패턴을 넣으면 싼 티가 확 나죠.”
“네. 그런 단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마뜨로 가야죠. 한두 푼 하는 제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괜히 쇼핑백 코스트 좀 낮추겠다고 했다가 브랜드 이미지까지 함께 낮춰 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부장님.”
문 차장이 나눠 준 마뜨 분류에서 샘플 몇 장을 내 앞으로 옮겨와 만져 보고 있을 때였다.
“이건 살짝 번외의 제안인데….”
“말씀하세요.”
“저 역시 저희 쪽 대표님 통해서 부장님이 홍성 타워 노출을 쇼핑백을 통해서 해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
“보통 해외여행을 나갈 때 사람들은 누구라도 쇼핑을 조금씩은 합니다. 특히 유럽 쪽 여행을 갈 때엔.”
“그렇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처음 출발했을 때에 비해 돌아올 때의 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요?”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 짐을 싸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공간이 부족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짐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포장지를 뜯고, 그 포장 케이스를 버린다든지…. 쇼핑백 역시 비슷합니다. 제품 가격에 포함이 되는 품목이기에 우린 코스트까지 다 따져 가며 제작을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내용물이 중요하지 짐을 욱여넣을 공간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에 쇼핑백도 포함이 될 수밖에 없죠. 물론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쇼핑백 자체만으로도 과시의 도구가 되는 브랜드들이 많죠. 그런 브랜드의 쇼핑백들은 접어서라도 슈트케이스에 넣어서 가지고 오려고 합니다.”
“흐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접어서 가지고 돌아왔을 때 다시 펼치면 주름이 보기 싫게 난다는 거죠.”
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섬세한 지적이었다.
국내 쇼핑 쪽만 집중을 해왔던 나로서는 미처 신경을 못 썼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드는 생각이 재질을 페이퍼나 플라스틱으로 할 게 아니라 페브릭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페브릭이라면?”
“왜 대형 마트 같은 데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고 코팅된 페브릭 재질의 쇼핑백을 천 원, 이천 원에 팔지 않습니까.”
“뭔지 알아요. 내 차 트렁크에도 있어요. 마트 갈 때마다 꼭 챙겨서 가거든요.”
“네, 그런 재질을 선택한다면 명품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은 조금 감소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행지에서 구매를 하게 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사소한 부분이겠지만, 만족감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아이디어에 나도 모르게 무릎이 쳐졌다.
“단독 브랜드가 아니라 홍성 타워라는 브랜드의 쇼핑백이지 않습니까?”
“…!”
“짐을 쌀 때에도 그런 페브릭 재질이면 아무렇게나 접어서 넣을 수 있고, 페이퍼나 플라스틱 재질에 비해 월등히 튼튼하니까 짐이 많은 사람들은 그 쇼핑백에 짐을 덜어서 담고 이동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재질이 코스트가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아니오, 의외로 반대입니다.”
“반대라면….”
“얇은 일반 페이퍼 백, 플라스틱 백에 비하면 당연히 코스트가 높죠. 하지만 명품 브랜드가 선택하는 마분지 재질의 페이퍼 백 단가에 비하면 오히려 단가가 적게 듭니다. 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그런 페브릭 재질의 쇼핑백을 저희가 돈 주고 살 때 이천 원 정도 하죠. 그런데 루이뷔통 마판지 페이퍼 백 단가는 삼천 원을 넘어갑니다. 대형 사이즈는 오천 원까지 한다고 들은 거 같고요.”
“그렇네….”
“실은 부장님 아이디어를 듣고 폴앤크루의 쇼핑백을 그런 페브릭 재질로 바꿔 보자고 제안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건.”
“폴앤크루가 따지고 보면 제품력이나 브랜드 역사로 승부를 보는 브랜드는 아니지 않습니까. 작가 컬렉션이라는 아이디어로 여기까지 올라온 브랜드인데, 여기서 뭔가 브랜드 콘셉트를 추가시켜야 할 거 같다는 위기의식 같은 걸 대표님이 항상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거든요.”
“…네.”
“약간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폴앤크루에 입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래서 착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기존 이미지에서 추가로 덧입혀 보는 것도, 지금껏 폴앤크루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해 가며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코스트만 지켜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페블릭 재질을 이용해 아까 제가 초이스한 패턴을 잘 살릴 수만 있다면 저희 입장에선 한 번 정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아니나 다를까 문 차장은 그 페블릭 샘플까지 다 챙겨 온 상태였다.
그녀와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모두 다 지워내고 일로만 마주 보고 앉아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난 그녀가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을 적극 수용해 주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란 사람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해 내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이쪽으론 아주 전문가가 다 됐네.”
“영업은 돈만 된다면 똥도 갖다 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해외 영업부에서 팀장으로 부장님 밑에서 일할 당시, 부장님이 저를 포함해 팀장들을 모아 놓고 해주셨던 말이었죠.”
“…그랬나요? 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럴 리가요. 프로젝트 엎어질 때마다 직접 큰소리는 못 내시고, 그런 잔소리들로 사람 피를 얼마나 말리셨다고요. 차라리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시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부장님은 그게 오히려 젠틀하다고 생각하셨던지, 화를 꾹 참는 얼굴로 잔소리만 하셨죠. 그게 얼마나 불편했었다고요.”
“제가요?”
“그럼 제가 지금 부장님 앞에 모시고 다른 부장님 이야기를 하겠어요?”
“….”
“그 이야기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방시를 컨트롤한다고 해서 우리가 명품 지방시 레벨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리고 우리가 부도난 브랜드를 띄워서 중국 법인에 넘기는 업무를 시작했다고 해서 우리가 한 번 부도가 났던 브랜드나 취급하는 레벨이라고 주눅 들지도 말고, 상대를 부도난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도 마라….”
“….”
“제가 현재 품고 있는 몇 가지 철칙들입니다. 그리고 제 후배들, 제가 데리고 있는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난 이미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문 차장에게 말했다.
“마음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문 차장은 침묵했다.
“문 차장 그렇게 보내고 나서.”
그리고 그녀는 그 침묵 속에서 얕은 미소를 얼굴에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엔 문 차장 볼 때마다 일은 할 만하냐는 말도 못 건넵니다. 그때 식당에서처럼 내 진심은 그런 게 아닌데, 내가 그런 걸 물으면 문 차장이 또 내가 문 차장을 놀리는 거라 오해를 할까 봐.”
“아뇨, 비록 부장님 밑에서 일한 기간을 짧았지만, 제가 왜 부장님을 모르겠습니까? 그런 염장을 고의로 지를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 식당에선 저 역시 여전히 부장님에 대한 날이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늦었지만, 그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은… 사과드립니다.”
“미안합니다.”
“….”
“그때 제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제 선택을… 늦었지만 사과하고 싶어요.”
“아닙니다. 이렇게 영업 쪽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차장 타이틀을 달고 보니, 그때 부장님께서 그런 결정을 하실 수밖에 없었겠다는 걸 이제 알 거 같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하는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참 많이 던져 봤습니다.”
“….”
“그런데 그 결정에 문 차장한테 미안한 마음은 큰데, 후회까지 할 수는 없더라고요.”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 잘못이 맞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때 식당에서 부장님을 마주치니까 피해자 코스프레 비슷한 걸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장님.”
문 차장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난 그런 문 차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 순간, 난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문 차장이 짐을 챙겨 회의실을 나가고 난 후, 난 여전히 혼자 회의실에 남아 간질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지개를 크게 켰다.
아주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를 간신히 덜어낸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옐로 폭스, 아니, CGM과 펼칠 전면전의 준비가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홍성 타워가 오픈하고, 본격적인 유럽 여행 시즌이 걸리기 전까지, 소리 없이 진행됐던 전쟁 준비.
난 그 준비의 쐐기를 박기 위해 다시 스위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