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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87화 (287/325)

#287

그땐 다 죽는 겁니다

-그렇네요.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목표로 한 매출만 달성을 하면 되는 거죠. 이거 참…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CGM 본사에서 직접 움직였단 소리에 저도 모르게 크게 당황을 한 모양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거고요. 제가 사장님이었어도 아직 홍성 타워는 오픈도 하지 않았는데, CGM 같은 대기업이 표적 견제를 시작한다면 겁이 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장님 혼자 계시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 홍성이 사장님 뒤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은 오늘 하신 것처럼 꾸준히 그쪽 움직임을 지켜보시다가 조금이라도 예상외의 작전을 쓴다 싶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상대가 어떤 작전을 펼치든 그 작전을 무효화시킬 만한 무기가 저희 쪽엔 넘쳐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신 사장과 통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내 자리 파티션까지 다가온 양 차장은 내가 통화 중인 걸 보고는 말 대신 숟가락질을 하는 듯한 손동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 양 차장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놓고 난 신 사장과 통화를 이어가면서 재킷을 챙겼다.

-공 부장님하고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입니다.

“별말씀을요.”

난 통화를 이어가며 자리를 벗어나 엘리베이터 복도로 향했고, 오늘은 안 차장도 함께 가는 모양인지 양 차장의 뒤를 따라 안 차장도 합류를 했다.

신 사장과의 통화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조금은 늦은 점심.

스위스는 현지 시각으로 이제 막 아침을 시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사장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신 사장의 아침을 서두르게 만든 모양이다.

그런 신 사장의 조급함을 알 것 같았기에 그와의 통화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써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여행사, 가이드 커미션으로 어느 정도를 측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10퍼센트일 겁니다. 10퍼센트는 이쪽 계열 관례입니다.

“관례라면….”

-시계로 먹고사는 나라 아닙니까, 스위스는.

“그렇죠.”

-워치숍에서 투어 가이드들에게 주는 커미션이 10퍼센트거든요. 그런데 꼭 스위스만 그런 게 아니라 관광객 상대로 쇼핑이 발달한 유럽권 대부분의 나라가 여행사 측과 커미션 10퍼센트를 암묵적 약속으로 잡고 고객들을 받습니다.

“미련하네요.”

-네?

“시계 쪽은 모르겠지만, 의류 관련은 여행사 측에 10퍼센트나 떼어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계 쪽보다 여유가 있지 않을까요? 시계 쪽은 마진이 아무리 좋아도 50퍼센트를 넘기지 못합니다.

“시계는 재고가 없잖아요.”

-아….

“패션 의류처럼 시즌별 신상이 계속 쏟아지는 종목이 아니라 올해 못 팔아도 내년에 계속 같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게 바로 시계나 주얼리 파트 아닙니까. 꼭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모델들이 그렇잖아요.”

-그건 또 그렇네요.

“스스로 무너지겠네요. 이러면 재미없는데….”

-스스로 무너진다면….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패션 의류 쪽에서도 여행사 커미션을 주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은 대부분 브랜드 직영 단독 매장이거나, 아님 라파예트 같은 대형 쇼핑몰일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플렉스 샵 개념의 편집샵에서 그런 마진 깎아 먹는 마케팅을 펼치기엔 마진상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음… 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당시를 생각해 봐도 브랜드 단독 매장, 그중에서도 B급 브랜드들이나 가이드 커미션을 따로 챙겨줬지, 그 외에는 그런 마케팅을 쓰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저도 긴장을 하고 있긴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면 이렇게 바로 상대의 수가 허수라는 게 보일 텐데, 그걸 못 하고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행사, 가이드 커미션 10퍼센트… 최종 구매 가격에 한한 퍼센티지일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우와… 그러면 그거 마진상 손해 장난 아닐 텐데…. 이게 판매 가격의 10퍼센트라면 브랜드 본사로부터 넘겨받는 물건 마진의 최소 25퍼센트 이상을 여행사, 가이드 커미션으로 할애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네.

“미련하네요, 진짜. 그런데 상대가 또 그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면 상대는 그만큼 힘이 빠지겠죠?”

-그게 무슨….

“상대가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대는 애초에 저희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려고 했던 상대입니다. 사장님의 선택은 어떤 겁니까? 벼랑 끝에 서 있는 상대를 그쪽에서 하려고 했던 것처럼 등을 밀어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건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만 보시겠습니까?”

-….

“제가 사장님이라면 밀어버립니다.

-…!

“지금 안 밀면 이 상대는 언제든 기회가 생기는 즉시 사장님을 벼랑 아래로 밀어버릴 거거든요.”

-그렇겠죠? 공사 허가 건 공작한 것만 봐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죠.

“인터라켄은 스위스입니다. 관광객들의 나라가 아니죠.”

-그건 또 무슨….

“아무리 관광객들에 의한 구매가 절대적이라고 하나, 스위스 로컬 고객들에 의한 매출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거란 말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인터라켄은 어디까지나 스위스인데, 어째서 관광객들에게만 할인 혜택을 주려고 하는 걸까요, CGM은?”

-…!

“그게 CGM의 한계라는 겁니다. 뭐가 중요한지를 몰라요.”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문이 열렸고, 난 통화를 계속 이어가며 양 차장과 안 차장을 따라 걸었다.

“관광객들은 어차피 면세 할인까지 받는데, 거기에 여행사를 통해 할인 쿠폰까지 줘 버리면 아무런 혜택도 못 받는 스위스 로컬 고객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스위스 로컬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만약 사장님이라면 어차피 넘쳐나는 관광객들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하지 않고, 구매 후, 재방문의 가능성이 있는 로컬 고객들을 위한 혜택도 함께 고민해 볼 거 같습니다.”

-아!

“그 부분은 저희 쪽에서 로컬 고객에 한한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혜택은 안 그래도 취리히에 홍성 타워가 하나 더 들어갈 거니까 그 두 지점을 합쳐서 포인트 적립 시스템을 도입하고 구매 금액의 대강 2, 3퍼센트 정도라도 포인트를 쌓게 해 주는 거죠. 리테일은 참 예민한 업종입니다. 변수가 많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처럼 관광객이 뚝 하고 끊겨 버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

“그땐 다 죽는 겁니다. 사장님.”

-네, 부장님.

“혹시 홍성 타워 건물 호텔로 사용할 당시에 객실마다 와이파이 다 들어갔었습니까?”

-물론이죠. 고급 호텔들처럼 객실마다 와이파이 번호를 다 넣었던 건 아니고, 광역기로 층마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깔아서 비밀번호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놨었죠.

“그거 지금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일단 지금은 해지를 해 놓은 상태인데, 언제든 신청만 하면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스타벅스가 들어가는 2층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거니까 자기들이 깔게끔 놔두고, 그 외 층들은 무료 와이파이 존으로 돌려 놓으세요. 제가 처음부터 계속 강조해 왔듯이 최고의 인테리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들끓는 것만큼 보기 좋은 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구매를 하든 안 하든 무료 화장실을 오픈해 주고 무료 와이파이 존을 만들어서 한 명이라도 더 사람들을 홍성 타워로 끌고 들어와야 합니다.”

-네.”

“아닌 말로 CGM 측에서 홍성 타워가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린다는 걸 무슨 수로 알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보이는 게 전부 아니겠습니까? 스타벅스나, 무료 화장실, 그리고 무료 와이파이 존으로 일단 홍성 타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되면 우린 매출을 떠나서 건물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아지니 생동감이 생겨나서 좋은 거고, 그만큼 상대는 조급해질 겁니다. 마케팅이라는 건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걸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은 절대 못 따라 하는 걸 집중해서 파고드는 거죠. 스타벅스, 무료 화장실 개방, 무료 와이파이 존… 공간적 제약이 확실한 옐로 폭스, 그리덜, 킹스는 따라 하려 해도 자리가 없어서 못 하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바우처 나눠 주고 가이드 커미션 챙겨 주는 건 홍성 타워 입장에선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죠.”

-대단하십니다, 진짜.

“그리고 하나 더….

-네, 말씀하십시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정신이 없으실 텐데, 제가 부탁을 하나 더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스타벅스와 빅토리녹스, 그리고 발리 팩토리, 짐멀리 쪽이랑 한 번만 더 만나 주십시오.”

-혹시 취리히 반호트슈트라세 건물 건 때문입니까?

“네, 인터라켄과 똑같은 콘셉트로 진행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른 쪽은 다 별문제가 없을 건데, 아무래도 스타벅스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요?”

-그때 보셨잖아요. 한 블록 넘어가면 이미 스타벅스 매장이 있습니다.

“아… 그거 때문이라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

“한국엔 100미터 거리 두고도 같은 스타벅스가 마주 보고 입점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랑은 또 좀 다른 게….

“그때 제가 사장님이랑 같이 가서 그쪽에 제안했던 ENT 매출 확보 건 있잖아요. 그거 들이밀면서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세에서도 똑같이 해 주겠다고 제안하면 무조건 오케이 할 겁니다. 어째서 스타벅스 바로 옆에만 이데아 커피가 들어가는데요? 가격을 떠나서 스타벅스니까. 앉을 자리가 부족하고 커피 한 잔 시키려 해도 줄을 서서 몇십 분씩 기다려야 하니까. 스타벅스가 놓치는 손님들만 잡아도 성공이 확보되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몰리는 포인트에 그것도 최고 명당 자리에 이데아가 아닌 자기들한테 자리를 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할 겁니다.”

신 사장과 통화를 끝내고 보니 어느새 식당 앞이었다.

“뭡니까?”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양 차장을 쳐다봤다.

“뭐가요?”

“왜 또 오늘도 곰탕입니까?”

묻긴 양 차장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안 차장이 했다.

“이 집 완전 잘해요.”

“아, 씨… 나 햄버거 먹고 싶은데!”

“아, 그럼 진작에 말을 하든가!”

“통화 중이었잖아요!”

“아, 몰라, 몰라. 임신은 제수씨가 했는데, 왜 부장님이 음식 투정을 합니까? 그냥 먹어요.”

“아… 진짜 물린다, 물려. 국밥, 곰탕, 해장국… 이거 좀 이제 그만 먹으면 안 되나? 집에서도 곰탕, 회사 나와서도 곰탕… 내가 사골이 되겠어, 지금.”

“거참 애도 아니고 먹는 거 가지고 말 많네, 진짜…. 계산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 주겠다는데 주면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되지. 누구는 괜찮은 집 하나 뚫어서 기껏 신경 써서 데리고 왔구만. 일단 먹어 보고 괜찮은 거 같으면 제수씨 데리고 와서 먹든, 아니면 좀 포장을 해서 사서 가든 하라고 데리고 왔어요. 제수씨 요즘 계속 곰탕 타령만 한다면서요.”

“아, 오늘 안 차장님이 계산하는 날이죠?”

“언제는 제가 안 했습니까?”

공짜라면 뭐… 먹을 만하지.

그렇게 식당에 들어가서 특곰탕을 시켜 식사를 시작할 때였다.

뜬금없이 안 차장이 물었다.

“그런데 부장님.”

“왜요?”

“왜 그렇게 올인을 하십니까?”

“뭐가요?”

“홍성 타워요.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시는 건 아닌가 해서요.”

“…?”

“아니, 그렇잖아요. CGM… 밉상인 건 맞죠. 사업 지저분하게 하기로 유명한 것도 맞고. 그런데 그런 걸 다 떠나서 이번 프로젝트에 너무 집중을 하고 계신단 느낌이 들어서요. 스위스가 저기 제주도 정도 거리만 됐어도 매주 출장을 다닐 기세세요, 지금 하시는 거 보면.”

“그냥 뭐….”

난 대답을 피했다.

대답을 피하자 안 차장은 집요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다시 안 나타났다면 모를까, 다시 나타난 이상, 그리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 이상 정면으로 붙어서 제대로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

“뭐 상대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물고 뜯으려고 하는 게. 하지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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