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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79화 (279/325)

#279

제가 다시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또 그쪽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치사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대응을 한 거라고 봐 줘야 하지 않을까?”

“네,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것보단 뭐라도 작전을 만들어서 펼쳤어야 했겠죠.”

김형찬과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박 이사에게 보고를 했다.

박 이사 역시 사장님과 장시간 마라톤 미팅을 끝내고 돌아온 터라 숨 돌릴 틈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 박 이사에게 꽤 골치가 아픈 뉴스를 전하게 되어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박 이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양쪽 관자놀이 부근을 엄지로 꾹 누르며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여간 그 친구도 난놈은 난놈이야. 아직 거기 그렇게 붙어 있었던 거야? 질기다.”

“그러게요. 저도 그 양반이 거기서 툭 하고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해 봤습니다.”

“그 친구 입장에선 위기가 아니라 기회겠네.”

“완전 기회겠죠. 이번 우리 홍성의 공격을 자기가 선두에 서서 잘만 막아내면 CGM 안에서 자기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수도 있을 거고, 다시 본진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 목숨을 걸 겁니다.”

“그렇겠지. 상대가 딴 곳도 아니고 우리 홍성인데, CGM 입장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위스 시장만큼은 수성을 해내야 할 거야. 거기다 자기들이 앞으로 직접 나올 이유도 없겠네, 김형찬 그 친구가 저렇게 작정하고 손을 쓰고 있다면…. CGM 본진 입장에선 알아서 한번 막아 봐라… 하고 서포팅만 적당히 해주면 되는 거 아냐.”

“네, 제 생각도 이사님 생각과 비슷합니다. 아마 CGM 본진이 직접 앞에 나서는 그림은 가급적 피할 겁니다. 일단 옐로 폭스가 자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거기다 직접 앞에 나와서 붙었다가 저희한테 다시 한번 깨지면 그때 그 뒷감당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국 시장에 진출을 했다가 저희한테 왕창 깨지고 돌아갔을 때야 한국 시장의 특수성이나 시장 조사가 미흡했단 핑계라도 될 수 있었겠지만, 자기 홈그라운드에서까지 깨지게 되면 그때는 자존심은 둘째 치더라도 기업 이미지에까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매장들 간의 경쟁으로 포장해서 진행하면 자기들 입장에선 크게 잃을 것도 없겠지. 기껏 해 봐야 인터라켄 하나 잃는 건데, CGM 입장에선 꼬리 하나 자르고 체면을 지키는 게 더 남는 장사일 수도 있을 거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거 아니었어?”

“물론입니다. 어디 예전의 CGM입니까? 굵직한 브랜드 다 놓치고 아시아 마켓 진출까지 흐지부지된 상태라 지금의 CGM이라면 비록 인터라켄 한 곳뿐이지만 분명 홍성 타워가 부담스러울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김형찬이 자기가 총대를 한번 메 보겠다고 나서니 반갑겠죠.”

“그 친구도 참 어지간해.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2등이라도 시켜줄 건데, 꼭 보면 거기서 만족을 못 하고 1등 한번 해 보겠다고 하다가 다 날리잖아.”

“우리 입장에서야 고마운 거 아닙니까? 전 오히려 이렇게 시작부터 빡빡하게 견제를 해주니까 벌써 살짝 설레기까지 하네요.”

“….”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하하하….”

“왜….”

“순간 공 부장 보는데 장 대표 보는 착각이 들었어.”

“네?”

“공 부장 너 그렇게 웃지 마라. 사이코패스 같다. 하하하….”

“그런가요? 하하하….”

“아무리 상대가 허접이라도 너무 만만하게 보지는 마.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50퍼센트는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 입장에서야 나크리스 버리고 CGM 라인으로 갈아탄 게 얄미워 보이는 거지,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어느 누구도 그걸 비난할 순 없는 거야.”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나크리스에서 CGM으로 갈아탈 정도의 실력과 감각이 있으니까 아직까지 저렇게 살아남은 거 아니겠느냔 말이지, 내 말은. 절대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냐.”

“만만하게 보다니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인간이 제대로 버텨 주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

“우리 홍성 입장에선 그 인간이 버텨 주면 버텨 주는 만큼…. 그만큼의 CGM을 공격할 명분이 단단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실 그동안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뭐랄까… 꼭 시원하게 볼일 다 보고 밑을 못 닦았던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뭐가?”

“자기 멋대로 한국 시장 들어와서 가격 장난으로 시장 개판 만들어 놓고, 아니다 싶으니까 바로 손 털고 튀었잖아요. 물론 그만큼의 자기네들 손해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 덕에 한성은 어떻게 됐습니까? 홍성 입장에선 좋은 경쟁사를 잃은 겁니다.”

내 말에 박 이사는 묵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을 했으면 혼이 나야죠. 근데 저희는 어떻게 했습니까? 한국 시장에서 CGM 철수시킨 것만으로 이겼다는 생각에 자축을 했습니다. 부족하죠. 철수를 시키는 건 당연한 거고, 도망가는 상대를 끝까지 따라가서 두 번 다시는 그런 도발을 못 하게끔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도망가는 상대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이젠 두 번 다시는 한국 시장에 못 들어오겠지?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혹시 말이야.”

“네.”

“인터라켄 진출… 혹시 CGM을 보고 들어가자고 했던 거야?”

“아뇨, 절대 그건 아닙니다. 다만 거기가 CGM 홈그라운드라서 들어가면 재미가 있겠단 생각은 했었습니다.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

“독일은 메칭엔 아웃렛이 너무 막강하고 이탈리아, 프랑스는 저희 파트너들 홈그라운드 아닙니까. 그런데 CGM이 버티고 있는 스위스라면 어렵게 장고를 둘 이유가 없겠다 싶었죠. CGM…. 사실 지금의 홍성이라면 얼마든지 한번 해볼 만한 상대 아닙니까?”

“지금의 홍성이라면 얼마든지 한번 해볼 만한 상대다? CGM이?”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사님 생각은 아니십니까?”

“글세… 게임이 되겠다, 아직은 안 되겠다 하는 건 이것저것 따져 봐야 할 게 많으니까 뭐라 정확하게 말은 못 하겠지만, 그런 거 다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CGM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시도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두근거릴 수 있다는 것만 놓고 봐도 내 입장에선 감회가 새롭네. 자신 있지?”

“그럼요. 스타벅스는 물론이고 홍성 타워 1층에 짐멀리부터 시작해서 발리 팩토리, 빅토리녹스까지…. 이미 상대가 홍성의 스위스 진출을 견제할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포지셔닝시킨 브랜드들입니다.”

순간 박 이사의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상대의 견제 수위를 봐 가며 카드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이쯤 되면 홍성 타워 그랜드 오픈에 맞춰서 동시에 카드를 다 까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해보자, 한번. 만약 우리가 진짜 스위스 시장에서 CGM을 잡을 수만 있으면….”

“업계는 홍성을 두고 개벽이란 단어를 쓰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었다.

사장님의 호출이 걸려 왔다.

사장님과 이문 전무님, 그리고 박 이사가 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장님은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박 이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한번 나의 생각과 자신감을 물으셨다.

“CGM과 전면전을 한번 해보자?”

“음… 전면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거 같고, 일단 상대가 매장 쪽에서 고의적인 제동을 한 번 걸어 왔으니까 우리도 거기에 대한 대응 정도는 확실하게 해 줘야 할 거 같단 생각입니다.”

“그게 전면전이지, 뭐야?”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잡은 뒤엔?”

“…?”

“그걸 생각해 봐야 돼, 공 부장.”

“….”

“그럴 가치가 있는가, 과연 그걸 해서 홍성에 남는 건 무엇인가…. 무작정 시장만 넓히고, 그래서 매출만 올리자고 피를 보는 건 난 반대야. 사업이라는 건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거든. 한성이 사라진 지금의 국내 시장을 잘 생각해 봐. 한성이라는 굵직한 경쟁사가 사라진 지금 홍성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가져가는 파이는 커졌지만, 그 파이를 지켜야 하는 원동력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야.”

“깜냥이 될 만한 경쟁사를 찾아서 앉히는 것 역시 1위 기업이 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

“한성. 안타깝긴 하지만 원래의 색깔을 스스로 포기하고 CGM과 손을 잡았던 순간, 스스로 그 깜냥을 포기한 거였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 경쟁사라면 없느니만 못한 거죠. 현재 홍성은 한성이라는 라이벌이 제 발에 걸려 몰락을 해 버려서 파이를 지켜내야 할 원동력을 잃은 게 아니라 국내 시장이 우리에게 이젠 좁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전 보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이 좁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흐음….”

“부족했던 맨파워를 가지고 힘들게 국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또 부족한 맨파워를 가지고 많은 업체들의 도발을 막아내며 국내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국내 시장 1위 자리를 확실하게 지켜내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맨파워는 충분하다 못해 어디에 누굴 보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차서 넘치게 되어 버렸고, 그러다 보니 그 맨파워들은 회사 안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어떻게든 유지, 보존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정치를 하고 라인을 타고, 또 파워 게임을 하기 시작합니다.”

“….”

“회사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확보한 맨파워를 절대 그런 식으로 소모시켜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뛰어놀 공간이 부족하면 밖으로 나가서라도 어떻게든 그 공간을 확보하고 만들어 줘야죠. 지금의 홍성에게 국내 시장은… 많이 비좁습니다.”

“쥐어 터지고 돌아왔단 소리만 안 듣게 해.”

난 사장님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인 뒤 사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스위스의 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주에 제가 다시 스위스를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네.

“스타벅스 스위스 레기온 담당자, 그리고 빅토리녹스 측과 미팅을 좀 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스위스에 옐로 폭스, 그리덜, 킹스 플렉스 샵 삼 사가 다 들어간 곳이 인터라켄 말고 또 있습니까?”

-음… 네,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취리히 쪽에 반호프슈트라세에 그 삼 사 플렉스 샵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스타벅스 측과 빅토리녹스 측… 미팅 준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난 박기태만 데리고 스위스 출장길에 올랐다.

첫 스위스 출장 때와는 달리 최 실장뿐만 아니라 신 사장까지 공항에 픽업을 함께 나와 있었다.

우린 가볍게 근처 로컬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출장 일정을 다시 조율했고, 곧바로 빅토리녹스 멀티 콘셉트 본사가 있는 샤프하우젠으로 향했다.

맥가이버 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하지만 그 회사가 취급하는 품목은 아웃도어 고어텍스부터 시작해 초콜릿까지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보통 스위스에선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도 맥가이버 칼을 다 판매를 할 만큼 스위스에선 국민 브랜드로 알려진 빅토리녹스.

그 내부를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글로벌한 대기업임을 알 수 있다.

샤프하우젠에 있는 그들의 멀티 콘셉트 본사는 그들이 취급하는 전 품목을 모두 모아 놓고, 하나의 멀티샵을 기획해 주는 산하 업체 정도로 볼 수 있었는데, 인터라켄에 들어설 홍성 타워의 1층에 들어갈 빅토리녹스 매장 역시 이곳과 직계약을 한 상태였다.

난 그들과 만나 그들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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