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정리는 본사에서 직접 다 해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할 수 있지만 그리덜, 킹스, 옐로 폭스…. CGM 산하의 플렉스 샵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작전이 있습니다.”
이틀 뒤 신 사장과 최 실장이 홍성 본사를 찾아왔다.
사장님의 참관하에 중형 사이즈 회의실에서 미팅을 가졌고, 그곳에서 신 사장은 내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걱정 하나를 회의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홍성이 약속한 투자금에 대해선 우선 사장님께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며, 사장님이 비서를 시켜 투자 계약서를 준비하는 동안 조심히 말을 꺼내는 신 사장이었다.
신 사장은 현재 그리덜과 킹스, 그리고 옐로 폭스가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조사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들과 H.I 편집샵, 그리고 SS 편집샵이 겹치게 가지고 있는 브랜드 목록을 만들었고, 이렇게 겹치는 브랜드가 많은데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난 우선 신 사장이 CGM이라는 기업을 얼마나 대단하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홍성과 함께하기로 한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며, 그래서 걱정이 앞서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작전이라면….”
신 사장이 물었고, 사장님 역시 내가 어떤 작전을 무기로 숨기고 있는지 궁금하단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저희는 아웃렛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폭스타운이 직접 인터라켄 안으로 들어온다면 모를까, CGM 산하의 플렉스 샵들은 절대 엄두도 못 낼 거고, 폭스타운이 직접 들어온다고 해도 마땅한 자리가 없습니다.”
신 사장과 최 실장은 내가 한 말의 뜻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고, 사장님의 얼굴엔 미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최대한 신 사장과 최 실장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홍성 인터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겹치는 브랜드가 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무조건 좋은 겁니다. 비교라는 걸 해볼 수가 있으니까요. 꼭 가격 비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컬렉션 비교도 가능하죠. 거기다 브랜드 본사들의 입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선 규제가 불가능합니다. 인터라켄에 자기네 단독 부티크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CGM 산하의 플렉스 샵들이나 홍성 타워 모두 한마디로 멀티샵이죠. 거기서 누구에겐 오케이 사인을 해주고 누구에겐 제재를 가한다? 말이 안 되죠. 그리고 만약 그런 제재가 들어간다고 해도 홍성이 아닌 CGM 산하의 플렉스 샵 쪽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건 어째서….”
“그때 최 실장님이 스위스에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잖아요.”
“…?”
“스위스. 전체 땅덩어리 면적 대한민국의 3분의 1 수준. 인구수 대한민국의 6분의 1, 7분의 1 수준. 자, 한국과 스위스… 단순하게 이 두 나라의 시장 규모만 놓고 비교를 해봐도 일단 비교 자체가 안 되죠. 그런데 홍성은 한국 시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CGM이 뚫지 못한 중국 시장도 함께 가지고 있죠. CGM이 아무리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독보적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홍성은? 만토바 물건들과 링겐 물건들을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센딩하고 그렇게 센딩된 물건들이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2차, 3차 벤더들에게 들어가고 있죠. 최소한 아시아 시장에서만큼은 독보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명품 시장의 규모에서 아시아는 유럽을 이미 10년도 더 전에 크게 따돌렸습니다. 그럼 브랜드 본사들 입장에선 누구에게 잘 보여야 되는 걸까요? 아니, 잘 보여야 한다는 표현이 조금 강압적이라면 만약 홍성과 CGM이 인터라켄에서 붙었을 때 브랜드 본사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요?”
“하지만 그래도…”
신 사장이 가지고 있는 걱정을 내 기준에서만 판단하고 무조건 다 잘될 거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진 걱정을 제대로 해소시켜 줄 책임이 내게는 있었다.
“만약 CGM 산하의 플렉스 샵들이 홍성 타워가 오픈된 이후 홍성 타워를 겨냥해서 지나친 할인이나 게릴라성 프로모션과 같은 작전으로 영업에 방해를 한다면 상대하지 말고 체크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 쪽으로 자료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
“그럼 저희 본사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인 브랜드들에 한해 이월 상품들을 공격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월 상품으로 60퍼센트 70퍼센트씩 할인을 때려버리는 거죠. 딱 상대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 브랜드들 위주로.”
“하지만 그렇게 가격 경쟁을 서로 하게 되면 결국에 제 살 발라 먹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죠. 경쟁이 안 되는 거죠, 홍성 타워랑은. 그리덜과 킹스, 그리고 옐로 폭스. 결국엔 그들 역시 프랜차이즈 플렉스 샵 아닙니까. 할인을 하려면 전 매장 모두 동일하게 들어가야죠. 인터라켄에 있는 매장에 한해서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인터라켄 매장들에 한해서만 특별 할인을 실시한다고 칩시다. 그럼 다른 지점의 점주들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 그들이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인터라켄 해당 지점의 점주들은요? 똑같은 마진으로 물건을 받아서 판매하는 건데, 홍성 타워 때문에 더 많은 할인을 줘서 물건을 팔아야 한다? 손해죠.”
“흐음….”
“겹치는 브랜드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CGM. 저희 경쟁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업하는 스타일 자체가 상당히 공격적이죠. 바꿔 말해 약간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으로 경쟁사들을 압박하고 또 시장을 장악하려고 하는 기업입니다. 유명하죠. 거기다 저희는 말로만 들은 게 아니라 몇 차례 직접 붙어 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스타일을. 저희가 상대를 잘 아는 만큼, 상대 역시 자기들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더 거세게 몰아붙이는 게 홍성의 스타일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 홍성은 상대를 봐가며 작전을 펼칩니다. 상대가 젠틀하게 나와 주면 함께 젠틀해 주지만, 상대가 지저분하게 나오면 그 부분에서도 저희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사장님. 저희 믿으셔도 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CGM과의 경쟁이 아닙니다. 사장님의 사업 확장과 홍성의 브랜드 노출이죠. 필요하시다면 이월 제품들을 컨사인먼트로 원하시는 만큼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
“그것들만 매장에 다 깔아 보십시오. 길게 갈 것도 없습니다. 딱 한 달만 그렇게 홍성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의 이월 제품들로 일시 아웃렛 장사를 해버리면 호에벡 거리의 플렉스 샵들은 곡소리가 날 겁니다. 저는 아직도 명품을 살 때엔 신상보다는 아웃렛 같은 곳에서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걸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겠습니까? 그리고 명품 신상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왜 바로 옆 파리, 밀라노를 놔두고 인터라켄에서 쇼핑을 하겠습니까? 거긴 사실… 아웃렛이 딱인 자리입니다. 하지만 위치가 너무 좋아서 아웃렛을 하기도 좀 아까운 자리죠. 일단 한번 진행해 보시죠, 처음 계획대로. 그렇게 진행을 해보시고, 만약 CGM 쪽에서 인상 찌푸려지는 작전을 펼치면 그때 가서 저한테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정리는 본사에서 직접 다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투자 계약서가 도착을 했고, 사장님은 갑의 위치에 사인을, 신 사장은 을의 위치에 사인을 넣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미셨다.
“우리 공 부장 말대로 본사에서도 최대한 신경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이었다.
안 차장을 따라서 신 사장의 한국 의전을 담당한 박기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장님, 이제 막 신 사장님 모시고 인천 창고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많이 늦었네요.”
-이것저것 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라고요. 여긴 이제 대충 다 끝난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장 대표님한테 연락해 보셨어요?”
-네, 장 대표님도 준비 다 끝났다고 바로 약속 장소로 모시고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한 시간 반? 차가 조금 막힐 거 같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장 대표님 만나고 있을 테니까… 아니다. 안 차장님 옆에 있으면 좀 바꿔 줘 보세요.”
-지금 차장님 우리 창고에서 쓰고 있는 인벤토리 머신 보여준다고 신 사장님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저한테 대신 부장님께 보고를 드려 달라고 하셔서요.”
“아… 오케이, 오케이. 무슨 그림인지 대충 알겠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급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럼 제가 먼저 장 대표님 만나서 시간 보내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안 차장님 나오시면 신 사장님 모시고 천천히 약속 장소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가 많이 막혔던지 박기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더 시간이 걸렸다.
예약한 식당에서 장 대표와 알렌 강, 그리고 손 부장과 함께 회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 사장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알렌 강이 다시 또 애매한 이야기를 꺼냈다.
“본사 상무님이 말씀하신 건물… 그거 진행되기 전에 제가 일본을 몇 차례 왔다 갔다 했잖아요.”
“네.”
“저는 이토 쪽에 폴앤크루를 한번 입점시켜 볼까 했었거든요. 이전 회사에 있을 때부터 이토 쪽과는 거래가 많았고, 다행히 그쪽에서도 폴앤크루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상무님이 갑자기 건물을 매입해서 거기에 입점시켜서 로드샵으로 가자고 하시니까….”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당연히 쇼핑몰 입점보다는 브랜드 노출이라는 점에선 훨씬 더 유리하죠. 거기다 매장 임대료도 없고….”
“이토 쪽에서 무슨 말이 나온 겁니까?”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부탁을 하나 하더라고요.”
“…무슨 부탁이요?”
“이토도 현재 중국 이우에서 홍성 센젠 법인이 컨트롤하고 있는 만토바 물건 받아서 자체 편집샵을 론칭시켰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멀티샵이 로드샵으로까지 진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이고…”
“사업 사이즈가 제법 큽니다. 그래서 저한테 하는 말이 이우 쪽에서 물건을 받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인천 창고에서 물건을 좀 받을 수 없겠냐고… 다리를 좀 놓아줄 수 있으면 부탁을 한다고 하네요. 저희 입장에서도 이토는 잡고 갈 수 있으면 잡고 가는 게 유리합니다. 일본 1호 매장은 상무님이 매입하실 건물에 로드샵으로 론칭을 시키더라도 이토를 하나 잡고 가면 2호 매장, 3호 매장… 계속 오픈이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중국 센젠 법인을 통하지 않고 홍성 본사와 다이렉트로 딜을 쳐서 마진을 깎아 보겠다?”
“손 부장님이 하시는 말로는 센젠에서 컨트롤되는 만토바 물건들 중 이토 쪽으로 풀리는 물량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손 부장이 끼어들어서 말했다.
“그 부분은 센젠 법인 쪽에 공 부장님이 직접 전화 한 통만 넣어 주면 깔끔하게 정리가 될 거 같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