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66화 (266/325)

#266

스타벅스가 없더라고요

“앗, 뜨거!”

“…!”

홍성 본사 박 이사의 사무실.

박 이사는 내가 스위스에서 가지고 온 출장 결과를 듣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턱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커피를 입에 대는 순간 급기야 그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괜찮아. 계속해 봐. 그래서 그 쇼핑 스트리트 입구에다가 우리 홍성을 입점시킨다?”

“네, 그게… 전부입니다. 일정을 워낙에 급하게 잡고 다녀온 출장이라 디테일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 그쪽과 연락하면서 조율해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박 이사는 커피를 급하게 마시다 살짝 데인 입술을 매만지며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누가 봐도 흥분해 있었다.

“그래서 신 사장이라는 사람은 뭐래? 이게 지금 공 부장 말대로 하자면 물건값을 떠나서 호텔 건물 내부를 싹 다 뜯어내고 쇼핑이 가능한 구조로 변경을 해야 된다는 말인데, 이거 공사비가 만만치 않을 거야.”

“…네.”

“한국처럼 업자 섭외해서 뚝딱 하고 끝내버릴 수 있는 수준의 공사가 아니란 말이지, 내 말은. 유럽 쪽은 오래된 건물일수록 특히 이런 대규모 리모델링 같은 경우는 허가받는 게 상당히 까다로워.”

“그건 우리가 걱정할 부분은 아닌 거 같고요.”

“흐음….”

“자신이 있으니까 한번 해 보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신 사장이 그 말을 하더라고요. 이건 아무리 진행이 빠르게 된다고 해도 내년 봄까지는 무리라고. 오히려 신 사장이 걱정하는 건 허가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그 리모델링에 들어갈 비용이더라고요. 8밀리언에 매입을 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시세가 많이 올랐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 정도 규모가 나오는 건물을…. 그것도 부분 리모델링이 아니라 아예 다른 용도로 전체 리모델링을 하려면 그 나라 기본 인건비를 고려해 봤을 때 그 건물을 처음 매입할 당시 들어갔던 비용만큼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다는 게 신 사장의 예상이었습니다.”

“비용이야 뭐 그만한 위치에 홍성을 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가 투자를 해줄 수도 있는 부분이고.”

“네, 그래서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본사 복귀해서 회사 측과 투자 관련 이야기를 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슬쩍 이야기를 흘려봤습니다.”

“프로젝트만 확실하다면야 회사가 그 정도 투자 안 쏴줄까… 그나저나 진짜 거기 오픈만 시키면 다 쓸어 담을 수 있는 건 확실해?”

박 이사의 물음에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사장님 프레젠테이션 준비해라.”

“감사합니다.”

난 그제야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고 있는 박 이사를 향해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다.

“그런데 이사님. 제가 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뭐?”

“저 처음 팀장 달았을 때 말입니다.”

난 박 이사에게 보고할 때 사용했던 아이패드의 커버를 정리해서 한 곳으로 눕혀놓고 커피잔을 들며 물었다.

“그때 왜 저한테 나크리스를 맡게 하셨습니까?”

“…?”

박 이사는 내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짜 초보 팀장 아니었습니까, 그때 당시 저는… 물론 힘든 브랜드였던 건 맞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 팀장도 아직은 퇴사를 하기 전이었고…그때 제 팀장 포지션은 누가 봐도 짬 처리 전담이었는데, 그런 저한테 나크리스를 맡기셨던 이유가 뭐였을까… 당시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저도 이제 부장쯤 달고 부장의 입장에서 당시 이사님의 선택을 고민해 보니까 이해가 잘 안 가서요. 나크리스를 홍성에 직접 영업했던 김형찬, 그 사람하고도 개인적인 친분이 어느 정도 있으셨던 상황 아닙니까. 결국은 따지고 보면 그 친분 때문에 나크리스를 받아주셨을 건데, 혹시나 제가 브랜드를 받아서 실수를 할까 걱정 같은 건 안 하셨습니까?”

“아니, 전혀.”

박 이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무조건 네가 띄울 줄 알았어.”

“어째… 서요?”

“네 첫 브랜드였잖아. 팀장 달고 기획부터 매장에 깔고, 턴 오버까지 다 책임져야 하는 네 첫 브랜드.”

“…?”

“첫 브랜드를 못 띄우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아무리 내가 영업에 물이 오르고, 그래서 툭툭 아무렇게나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에 겁이 없어진 상황이긴 해도, 아직은 박 이사에게 못 미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용병술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박 이사에게 배우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경험에 의한 그의 용병술.

난 여기서 더 확대될 영업부의 조직도를 준비해야 했다.

알 듯 말 듯 한 박 이사의 대답.

난 아무런 리액션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릴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시 생초보 팀장이었던 내게 나크리스를 던져줬던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혹시 첫 브랜드라 절실함이 강해서 그런 겁니까?”

“절실? 푸하하하… 절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짜 절실한 놈들은 팀장까지 가지도 못해. 중간에 딴 맘 먹거나 아님 중간에 스스로 지쳐서 안 해도 될 실수들을 만들어내거든.”

“그럼….”

“공 부장, 너 혹시 볼링 칠 줄 아나?”

“그냥 뭐…조금 칩니다.”

“볼링이 그렇잖아. 희한하게 처음 치는 사람이 몇 번 경험이 있는 사람보다 더 잘 쳐. 혹시 뭐 볼링 처음 치는 사람 데리고 가서 같이 쳐 본 적 있어?”

“네, 많죠. 거의 대부분 치러 갈 때마다 꼭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럼 잘 알겠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 치는 사람들이 왜 몇 번 경험이 있는 사람들보다 더 스코어가 잘 나오는 줄 알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몇 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미 기본 에버리지가 만들어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냐. 그냥 몇 번 쳐 봤다 뿐이지, 그런 사람들도 생초보고.”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예 처음 쳐보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거든. 딱 배운 대로만 한단 말이야. 요령이라는 걸 아예 모르니까. 거기다 처음이니까 모르면 물어보기도 하고… 물어보는 게 부끄러울 때가 아니잖아, 그땐….”

“…!”

“그런데 몇 번 어설프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처음 쳐봤을 때보다 잘 못 쳐. 왜? 처음 쳐봤을 때 의외로 스트라이크도 쳐보고 하니까 별로 어려운 게 아니라고 착각을 하게 되거든. 그러다 겉멋이 생기는 거고, 아직 절대 그럴 때가 아닌데 벌써 요령부터 찾거든. 야, 공 부장.”

“네, 이사님.”

“내가 설마 나크리스 너한테 주라고 했을 때 공 부장 네 실력을 믿었겠냐?”

이건 또 무슨 소릴까….

“공 부장 네 사수가 장 대표였으니까.”

“…!”

“장 대표라면 대충대충… 설렁설렁 가르치지는 않았을 거니까. 이제 여기서 약간의 조미료 역할을 해주는 게 아까 공 부장 네가 말한 그 절실함이라는 거겠지. 절실함… 딱히 중요한 게 아냐. 없는 놈보단 있는 놈이 유리하긴 하겠지만, 그게 너무 강해버리면 안 해도 될 실수가 나온다. 그게 영업이야. 그런데 갑자기 몇 년도 더 지난 그때의 일을 지금에 와서 왜 물어?”

“고민 중입니다.”

“무슨 고민?”

“이 프로젝트… 인터라켄 관련 프로젝트를 과연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박 이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건 공 부장 네가 직접 안 하더라도 최소 차장급이 차고 나가야 돼. 팀장급에선 무리야.”

“전체 인차지는 차장급에게 주더라도 디테일을 살려줄 팀장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

“아무튼 알겠습니다. 사장님 프레젠테이션… 최대한 신경 써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폴앤크루 본사.

오후 3시였다.

장 대표와 점심을 같이하려고 했었는데, 이미 장 대표가 알렌 강과 함께 폴앤크루 생산 공장 쪽 사장님과 선약이 잡혀 있어서 점심을 포기하고 오후 근무 시간 중에 폴앤크루를 찾았다.

난 스위스에서 사 온 스타벅스 머그컵을 들고 장 대표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곧 알렌 강이 뒤따라 들어왔고, 어떻게 신 사장이 건물을 통째 홍성에게 내어주도록 만들었냐고 물었다.

“저희한테 주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신 사장이 직접 운영을 하게 될 거고, 저희는 거기에 저희가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와 홍성의 이름만 넣는 겁니다.”

“그러니까요. 도대체 뭐 어떤 약을 어떻게 치셨길래, 고작 1층의 한 섹션 임대도 고민하던 양반을 그렇게 구워삶으셨어요?”

“강 대표님.”

난 씩 하고 웃는 얼굴로 알렌 강에게 농담을 던졌다.

“남의 식당 주방장한테 맨입으로 레시피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에이…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준비해 온 스타벅스 머그컵.

난 장 대표와 알렌 강에게 두 개가 한 세트로 묶여 있는 기본형 크기의 머그컵을 출장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각각 전달했다.

처음 두 사람은 내가 건넨 머그컵을 대충 살펴보기만 했다.

“강 대표님. 혹시 그거 아십니까?”

“뭘요?”

“저는 상상도 못 했는데… 참 이게….”

내가 여전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피식거리자 장 대표와 강 대표는 서로 눈빛만 주고받다가 다시 내가 전달한 머그컵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두 개가 한 세트인 머그컵.

똑같은 세트를 두 개 구입해서 하나씩 나눠준 거였다.

한 세트의 구성은 하나는 스위스의 십자가 국기가 프린팅된 머그컵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라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거 북벽과 뫼니, 그리고 융프라우 세 산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머그컵이었다.

장 대표와 강 대표는 다시 그 머그컵 세트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인터라켄엔 스타벅스가 없더라고요.”

“…!”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런 세계적인 관광지에 유입 인구가 몇 명인데, 스타벅스 하나가 없더라고요.”

“그럼 이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아이거, 뫼니, 융프라우…. 이건 누가 봐도 인터라켄 컬렉션인데….”

“그러니까요. 못 구하나 싶었는데 이게 또 웃기게도 취리히 공항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취리히 컬렉션뿐만 아니라 스위스 대표 지역 컬렉션들을 다 모아놓고 팔더라고요.”

“…?”

장 대표의 얼굴에 고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렌 강 역시 전혀 생각을 못 해 본 부분을 내가 건드리자 살짝 당황을 한 눈치였다.

“근데 또 재밌는 게 뭔지 아십니까? 인터라켄 오스트역 쪽으로 가보니까 쿱(coop)이라는 대형 마트가 하나 있어요. 같은 브랜드로 대형 마트도 운영하고 편의점도 운영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

“유명한 스위스 로컬 브랜드죠.”

“근데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스타벅스 테이크어웨이 컵을 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전 당연히 인터라켄에 스타벅스가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럼 그 종이컵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 마트 안에 스타벅스 자판기가 있어요.”

“허, 허허허….”

“안 싸요. 오히려 인터라켄의 일반 커피숍에 들어가서 마시는 거보다 더 비싸더라고요. 일반 커피숍에서 마시면 한 잔에 한국 돈 4천 원이면 되는데, 그 자판기로 뽑아서 마시면 아메리카노 한 잔에 한국 돈 6천 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관광객들이겠죠? 아무튼 사람들이 줄을, 줄을… 우와… 자판기 기계는 한 대뿐인데, 그 뒤로 줄을 선 사람은 최소 6, 70명씩은 됩니다.”

“….”

“저도 그 줄이 궁금해서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나… 하고 같이 줄을 서서 한 잔 뽑아 먹어 봤어요. 맛도 뭐 그냥저냥… 아무리 자판기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어디 직접 그 자리에서 내려주는 커피 맛을 따라갈 수야 있겠습니까?”

내 말에 장 대표와 알렌 강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폴앤크루 단독 매장… 각 나라별로 하나 정도만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머지는 스타벅스 자판기처럼 컬렉션 구성은 조금 빈약하겠지만,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편집샵에게 물건을 다이렉트로 대 주는 방식… 그것 역시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폴앤크루가 가진 자본력이 부족하니까요. 사람도 부족하고….”

“….”

“물론 강 대표님이 한 2, 3년 정도 더 해주신다면 굳이 그런 방법을 선택할 이유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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