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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62화 (262/325)

#262

정말 제 말은 전혀 안 들으시네요?

신우철.

알렌 강을 통해 전해 듣기로 신 사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삶 자체가 대학 졸업하고 한 회사에 취직을 해서 줄곧 근태를 하고 있는 나와 비교해 무척이나 다이나믹했다.

알렌 강 역시 신 사장을 직접 만나 본 건 최근 폴앤크루 입점 건으로 두 차례 만난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사장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알렌 강은 어쩔 수 없이 신 사장의 지난 세월을 마치 옆에서 다 지켜본 것처럼 훤히 다 알게 됐다고 말했다.

딱 그 정도 정보만으로도 대충 어떤 스타일일지 짐작이 갔다.

알렌 강의 말에 의하면 신 사장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 처음 유럽 여행 패키지 상품을 만들었던 유럽 여행 1세대라고 한다.

근데 또 나이는 40대 후반이라고 했다.

도대체 몇 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단 말일까.

그리고 결혼을 얼마나 빨리 했단 말일까?

아무튼 신 사장은 애초에 패션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여행업 종사자였다는 말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여행업으로 뭔가 큰 뜻을 이뤄 보고자 가족들을 다 데리고 유럽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넘어간 유럽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생계를 위해 여행업뿐만 아니라 한식당 운영, 숙박업 대리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스위스에 자리를 잡았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첫 유럽 정착은 스위스가 아니라 이탈리아 로마였다.

그곳에서 인바운드 로컬 여행사를 운영하며 몇 차례나 여행사 상호를 바꿔야 했을 정도로 사업 실패도 많이 했고, 한국 배낭 여행객들을 상대로 한인 민박 장사를 하며 로컬 가이드를 직접 뛸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그가 제대로 된 때를 만난 건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고 한다.

본거지를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옮겨 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유럽 여행의 붐이 일기 시작했고, 아직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비교해 업계 경쟁자들이 많지 않았던 스위스에서 신 사장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여행업 관련해서 많은 노하우가 있었던 신 사장.

하지만 몇 차례 사업 실패로 가진 건 빚뿐이었고, 그럼에도 한국에서 밀려오는 패키지 그룹은 넘쳐났다.

그때 신 사장은 자신이 혼자서만 뛰어야 했기에 대형 그룹을 받지는 못하고 단가가 센 허니문 그룹만 집중적으로 공략을 했다고 한다.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형 그룹보다 소수 정예 허니문 그룹이 마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스위스 베른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구해서 와이프에게 오퍼레이션 업무를 맡기고 자신이 직접 가이드를 뛰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지게 된 신 사장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봐도 잘 모르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 정도가 되면 새는 돈을 보는 눈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까.

딱 그때 신 사장에게 그런 돈이 너무나 잘 보였던 모양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여행객들은 몰려드는데, 스위스엔 숙박 시설이 무척 부족했고, 그래서 성수기가 되면 여행사별로 호텔을 섭외하는 게 전쟁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신 사장이 머리를 조금 잘 굴려서 3성급 작은 호텔들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그 호텔들을 상대로 전 객실 1년짜리 장기 계약을 해 나가기 시작한다.

호텔 입장에서도 객실 장사라는 게 그날 못 팔면 사라지는 상품이기도 했거니와, 성수기 때 요금을 올려 받아 본들 한 철 장사라고, 겨울이 되면 객실 예약률이 말도 안 되게 떨어져 버리니 그냥 안전하게 전 객실을 한 여행사에게 장기 대여를 하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스위스의 주요 관광지에 있는 3성급 작은 호텔들의 객실을 계속해서 쓸어 담기 시작한 신 사장은 한국의 아웃 바운드 여행사들을 상대로 객실 장사를 시작했고, 저가 패키지 상품이 끝물일 때까지 꽤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큰돈을 벌게 된 신 사장은 자신이 오랫동안 장기 임대를 해서 장사를 했던 한 3성급 호텔을 직접 인수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여행업에서 눈을 돌려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중국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호황을 만나게 됐다.

당시 여행업을 정리했던 신 사장은 자기 명의의 호텔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 이것만 해도 충분히 성공한 삶이라며 스스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수의 중국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신 사장의 터전이었던 인터라켄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켰다.

호에벡 거리.

오래전부터 워치 스트리트로 유명한 거리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소비력은 시계인들의 입장에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했고,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많은 시계 브랜드들이 모여 있었던 그 호에벡 거리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워치샵을 오픈하면서 몇 년간 제대로 호황을 누렸다.

그때 신 사장에게 한 시계 브랜드 업체가 찾아와서 신 사장의 호텔 1층을 렌트해 줄 수 없겠느냐고 제안했다.

조건이 어마무시했던 모양이다.

총 매출의 2퍼센트를 월세로 내겠다는 상식 밖의 제안.

그도 그럴 것이 시계 업계에서도 이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지금은 월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최적의 로케이션에 자리를 잡고 들어가 그물을 쳐놓고 쏟아져 나오는 중국 관광객들을 다 쓸어 담는 게 정답이라고 하나같이 생각을 할 때였다.

당시 신 사장은 시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시계 브랜드 업체에게 호텔 1층을 내어 주었는데, 당시 그 매장에서 하루 매출로 1억이 올라오면 장사가 안 됐다고 표현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는 법.

비정상적이었던 중국 관광객들의 구매 파워는 해가 거듭될수록 크게 줄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 년 전에 신 사장의 호텔 1층 매장을 사용해 왔던 시계 브랜드가 매출 감소를 이유로 철수를 하게 됐다.

스위스의 시계 사업은 점점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워치 스트리트로 유명했던 그 호에벡 거리엔 유명 시계 브랜드샵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진 워치샵 자리엔 현재 그나마 생명력이 긴 명품 의류 브랜드들이 교체되어 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이 트렌드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신 사장은 이탈리아에서 로컬 가이드를 할 때부터 명품 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함께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본인이 직접 명품 브랜드들을 받아서 유통 사업을 해 보고 싶었는데, 스위스가 한국도 아니고, 개인업자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명품 브랜드를 다이렉트로 따낸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

하물며 아시아 페이스인 신 사장이었기에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신 사장은 자기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버렸다.

* * *

부장쯤 달고 가는 출장인데, 출장 계획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출장의 성격이 성격인지라 난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기식의 출장 계획서를 만들어 박 이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

그런데 박 이사의 사무실엔 박 이사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상무님도 함께 있었다.

통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나와 눈이 마주친 박 이사.

그는 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걸 눈치챈 듯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중요한 이야기 중이시면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어쩐 일이야?”

“아, 저… 급하게 출장을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아서요.”

“출장? 어디?”

“…스위스요.”

“스위스?”

박 이사는 우리가 스위스에 뭐 볼일이 있어서 출장을 가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대략의 사유가 담긴 출장 계획서를 박 이사에게 전달했고, 박 이사는 스윽 훑어본 뒤 테이블 위로 그 출장 보고서를 올려놨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한번 알아볼 수 있는지 물어는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상무님이 박 이사와의 용건은 다 끝이 났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상무님은 내가 가져온 출장 보고서를 쳐다본 후 다시 날 쳐다봤다.

“공 부장님은… 정말 제 말은 전혀 안 들으시네요?”

이건 또 뭔가 싶었다.

화해라고 할 거까지야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서로의 오해를 푼 게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렇게 느닷없이 뜬금포를 날리는 걸까?

“네?”

“제가 그때 링겐 출장 같이 다녀오면서 앞으로 출장 가실 땐 무조건 비즈니스 클래스 이용하라고 말씀을 한 번 드렸던 거 같은데….”

“아, 저 그게… 이번 출장이 사실은….”

“비즈니스 클래스 이용하시라고요.”

“….”

“무슨 일로 스위스 가시는 건지 강 대표 통해서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회사 일 보러 가시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출장이 잦은 팀장, 차장도 아니고 한 번씩 그렇게 나가시는 출장길인데, 왜 회사가 제공을 하겠다고 해도 받지를 않으십니까? 부장이 자연스럽게 혜택으로 받아들이고 사용을 해야, 그게 부러워서라도 다들 부장을 달아 보려고 하지 않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예약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상무님은 양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박 이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상무님이 나가신 후 박 이사가 혼잣말을 하듯 낮게 욕을 내뱉었다.

“씨발… 내 부장 땐 비즈니스 클래스 끊어도 되냐고 물어보면 눈치부터 받았었는데….”

“푸훕….”

“근데 이건 상무님 말씀이 맞다. 당연히 누려야 되는 건데, 왜 그걸 안 누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입니까?”

“뭐가?”

“방금 전에 상무님이 뭐 부탁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아… 일본에 건물 하나 매입해 보자고 하시네.”

“건물요? 무슨….”

“아, 회사 차원에서 매입을 하시겠다는 건 아니고, 상무님 개인적으로 매입을 해보고 싶으신 모양이야.”

“…?”

“강 대표가 일본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마땅한 로드샵 자리를 못 찾은 모양이야. 근데 또 욕심은 나는 부분이고. 그래서 그냥 상무님이 자기가 직접 투자하는 형식으로 쇼핑지구에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자기 돈으로 매입해서 폴앤크루에 세를 놓는 게 어떨 거 같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여유만 된다고 하면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럼 좀 알아봐 줄 수 없겠냐고… 우리 처제가 일본인이랑 결혼을 해서 현재 히라주쿠에 살고 있잖아. 혹시라도 관심이 있으면 어느 정도 수수료를 챙겨 줄 테니까 괜찮은 매물 나오면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흐음….”

“근데 뭐야? 스위스 아이작? 이건 뭐 하는 브랜드인데? 그리고 나도 모르는 공 부장 출장을 강 대표가 어떻게 미리 알고, 상무님한테 귀띔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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