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61화 (261/325)

#261

당했다….

이걸 뭐 내가 사진으로 본다고 아나, 어디….

알렌 강도 참….

똑똑한 거 같으면서도 이럴 때 보면 어디 나사가 한 군데 빠진 사람 같다.

로케이션 설명이야 진작에 다 해 주지 않았나.

자기가 봤을 때 명당인 거 같으면 명당이 맞겠지.

근데 한참을 걸쳐 로케이션의 완벽함을 다 설명해 놓고, 아이패드로 보여주겠다는 사진이라는 게 또 건물 외관과 그 건물에서 보이는 그 지역의 메인 스트리트인 호에벡 거리의 풍경이었다.

나한테 그건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지.

폴앤크루 해외 입점이야 어디까지나 장 대표와 알렌 강의 권한이고 또 알아서 해야 하는 업무인 것이고, 나에게 부탁할 게 그 건물 주인이 론칭한 브랜드의 한국 시장 컨트롤이라면 건물 외관을 보여줄 게 아니라 그 브랜드의 제품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닌가.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신나게 아이패드를 터치해 가며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는 알렌 강에게 더는 못 참고 해당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신생 브랜드입니까?”

“아뇨, 3년 차 접어드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3년 차씩이나 되는 브랜드가 아직 브랜드 홈페이지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요즘 뭐 사람들이 어디 홈페이지 찾아 들어가나요.”

“전 꼭 찾아보는 편인데요.”

“그야 공 부장님이 이쪽 업계에 계시니까….”

“제 와이프도 마찬가지고요.”

“….”

“아니, 상식적으로 모르는 브랜드가 시장에 나왔다. 그런데 마음에 든다. 그래서 가격을 봤다. 어? 생각보다 제법 가격대가 있네? 뭐지?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 그러면 당연히 돈이 돈 같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검색이라는 걸 해볼 거 아닙니까.”

“흐음….”

난 미간을 좁히며 알렌 강에게 물었다.

“혹시 뭐 그런 브랜드 아닙니까? 완전 로컬 브랜드. 자체 디자인이 없어서 팩토리에서 철 지난 디자인 카피해다가 자기네 브랜드만 박아서 찍어내는….”

“일단 제품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단부터 시작해서 제품 생산에 돈을 아끼는 브랜드는 아니더라고요.”

웃으면 안 되는데, 알렌 강의 수가 너무나 눈에 빤히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난 몇 차례 웃음을 들킨 뒤, 그 웃음을 억지로 갈무리한 다음 다시 물었다.

“아니, 왜 묻는 질문에 대답은 안 해주시고, 말을 돌리십니까?”

“자, 자….”

결국 장 대표가 상황을 정리하려고 입을 뗐다.

“우리 쉽게 생각하자. 어차피 강 대표가 거기… 신 사장이라고 했나요?”

“네, 신우철이라고 닉네임 없이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음. 어차피 강 대표가 거기 신 사장 상대로 일차 딜을 걸어놓은 상태야. 그리고 그 신 사장이라는 분은 언제든 한국에 와서 공 부장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고.”

“아, 대표님… 왜 이렇게 또 몰아가십니까…. 본사 떠나셨다고 이제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닙니까, 진짜? 아니, 브랜드도 전혀 모르고, 그렇다고 제품 상태도 전혀 파악을 못 한 상태에서 제가 어떻게 그쪽이랑 미팅을 합니까?”

“꼭 공 부장 때문에 오겠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겸사겸사 오겠다는 거지. 아니, 미팅 한번 해주는 데 큰돈 드나? 일단 강 대표 얼굴 봐서 미팅이라도 한번 잡아 줘 봐. 혹시 또 알아? 딱 직접 봤는데, 제법 괜찮은 브랜드일지.”

“대표님. 홍성입니다, 홍성. 우리 홍성입니다. 이류 브랜드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홍성 아이덴티티가 있지, 어떻게 생짜 로컬 브랜드를 받으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따지면 쁘띠토널은?”

“하아….”

장 대표의 그답지 않은 억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폴앤크루도 정확하게 말하면 말도 안 되는 브랜드였어, 시작 단계에서만 보면.”

“그래도 쁘띠토널이나 폴앤크루는 홍성 브랜드 아닙니까.”

“공 부장이 지금 한 말을 또 바꿔 생각하면 불가능한 브랜드는 없다는 거 아냐, 어느 정도 제품 퀄리티만 따라와 주면.”

“우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강요 안 할게.”

장 대표는 반정색을 하며 자기가 양보하는 부분은 분명 하나도 없는데, 많은 부분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강단 있게 말했다.

“일단 한번 만나만 봐. 공 부장이 직접 만나 본 이후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랑 강 대표는 그 결정에 아무런 토도 안 단다. 약속한다.”

“허, 허허허허… 미치겠네, 진짜. 제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거 아시죠?”

“강 대표도 약속하죠?”

“아, 그럼요. 이게 뭐 동네 구멍가게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고 되는 문제입니까?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래선 안 되죠.”

나는 그저 넋을 놓고 두 사람이 펼치는 저질 쇼를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쳐다볼 뿐이었다.

씨바… 당했다.

* * *

장 대표, 알렌 강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복귀한 영업부 사무실.

오랜만에 영업부 사무실에서 깔깔깔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난 영업부 사무실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소리는 더 커졌다.

“아, 부장님 오셨습니까? 다들 그만….”

날 발견한 양 차장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정색을 하며 안 차장에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안 차장은 하나도 안 무섭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큰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에 사무실 직원 모두가 웃음을 참느라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뭡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 뭔데요? 같이 좀 웃읍시다.”

“그건 그렇고 가신 일은 잘 해결하셨습니까?”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 돌리는 사람이 많지? 아, 뭔데요?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하다가 딱 제가 오는 순간 멈춥니까? 혹시 뭐 제 뒷담화라도 까고 있었던 겁니까?”

안 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때, 우리 양 차장님은….”

“그만. 내가 분명히 그만하라고 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아니 이렇게 카리스마 만빵인 분이 어떻게 여자 앞에선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십니까?”

“아, 다들 일 안 해?”

양 차장은 안 차장의 입을 막는 건 불가능하겠다고 생각을 했던지, 애꿎은 직원들에게 짜증을 팍 내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런 양 차장의 위협에 진심으로 긴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시죠, 부장님. 가서 오전에 못 하셨던 결재, 마저 해 주셔야죠.”

“다 해놓고 갔잖아요.”

“…!”

“뭐 다른 결재 서류 있어요?”

“전 없습니다.”

안 차장이 끼어들어 말했다.

“양 차장님은요?”

“저도 뭐….”

“그럼 없네. 근데 무슨 결재 서류?”

“….”

“아, 뭐냐니까, 진짜….”

“점심때 로즈마리 왔다 갔습니다. 아, 로즈마리 여.사.님께서 왔다 가셨습니다.”

“그만하라고, 씨이….”

내가 봐도 안 차장의 모습은 정말 얄미웠다.

“저도 처음 봤잖아요, 오늘. 진짜 말 그대로 여자 앞에서 완전 석고상. 그냥 뭐 바로 얼어버리더만. 나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하겠다.”

“뭘! 뭘!”

자신을 놀리고 있는 안 차장을 향해 양 차장이 소리쳤다.

“회사에 뭐 놀러 왔어? 일하러 왔음 일을 해야지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얼긴 뭐, 뭐, 뭘 어, 얼었다는 거야? 어?”

그래서 내가 양 차장에게 물었다.

“누가 그럽니까?”

“뭐가요?”

“회사에서 일만 하라고.”

“…?”

“뭐 할 만하면 회사에 와서 연애도 할 수 있는 거고, 또 할 만하면 놀 수도 있는 거지, 언제부터 그렇게 회사 사규 잘 따랐다고 그럽니까? 그렇다고 연애 금지 조항이 사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로즈마리가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데….”

“아, 부장님!”

“아니, 하기 싫음 하지 마세요. 누가 억지로 하라고 등 떠밉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니까 하는 말이지. 여기서 누가 양 차장님 연애하는 데 태클을 걸겠습니까? 태클 걸고 싶은 사람 거수.”

“….”

“거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양 차장님이 하루빨리 연애 시작해서 히스테리 그만 부렸음 좋겠다 하는 사람 거수. 크흐… 봐요, 다 드네.”

예전에 내가 이지혜한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도 답답하니까.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 마음도 없었고, 그런 취미도 없지만, 그만큼 양 차장이 답답하게 구니까 그나마 로즈마리랑 개인적인 접촉이 많은 이지혜에게 물어봤던 거다.

솔직히 난 양 차장도 양 차장이지만, 로즈마리도 이해가 잘 안 됐다.

이제 지금 도대체 얼마나 오래가고 있는 떡밥이란 말인가.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관계 유지가 가능한 건지조차 난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양 차장에 대한 로즈마리의 마음을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지혜가 하는 말이 로즈마리한테 양 차장의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지만, 자신이 이성으로 생각하는 여자가 아니라면 매장 실장들을 상대로 홍성 영업부 접대의 끝판 대장 역할을 할 정도로 거침이 없다고.

그랬더니 로즈마리는 어떤 게 양 차장님의 진짜 모습인 거 같냐고 이지혜에게 물었고, 이지혜는 아무래도 여자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고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보다는 회사에서 자신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 양 차장의 모습이 아니겠냐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로즈마리는 서두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양 차장을 멀리서 지켜봤다고 한다.

양 차장의 진짜 모습을.

그러다 장 대표가 홍성을 나가면서 양 차장에게 로즈마리라는 힌트를 던졌고, 그때부터 로즈마리는 자신의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양 차장의 모습을 답답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귀엽게 보고 있는 중이라고.

아직 두 사람은 아무 관계도 아니다.

다만 로즈마리는 예전처럼 꾸준히 협찬 건으로 홍성 본사를 찾아왔고, 양 차장은 로즈마리가 온다는 소리만 들으면 그때부터 긴장을 한다는 정도?

그 이상의 발전도 퇴보도 없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알렌 강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위스 신 사장님이 한국을 한번 방문하겠다고 하시는데….

“혹시 저 만나러 오시는 겁니까?”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실수를 안 합니다, 강 대표님. 절 만나러 오시는 거라고 하면 진지하게 자리에 임할 것이고, 다른 업무차 오시는 길에 절 만나는 거라면 말 그대로 편하게 자리하도록 할 겁니다.”

-네, 공 부장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럼 오지 말라고 하세요.”

-하아….

“대신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어딜요? 스위스를요?

“네. 최대한의 성의는 보이겠습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거린데, 그쪽에서 오로지 저와의 미팅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거면 당연히 우리 홍성이 그만큼의 부담을 가져야 하는 거겠죠. 하지만 반대로 제가 직접 가면 그만큼의 부담을 덜고 만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폴앤크루가 그곳에 입점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입니다. 무척 기대가 됩니다. 그렇다고 제 책임인 영업부 일을 폴앤크루 때문에 아무렇게나 처리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직접 가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사람보다는 제품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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