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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55화 (255/325)

#255

손님 대접 잘해라

아침부터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 분위기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한국 복귀를 한 손 차장이 첫 본사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말이 본사 첫 출근이지 폴앤크루 파견 건으로 인사부와 직접 만나 처리해야 할 정산 문제 때문에 본사에 오기로 한 거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출근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저 본사에 잠시 들르는 형식이었다.

손 차장은 정확하게 말해서 장 대표와는 달리, 다른 셋업 멤버들처럼 파견의 형식으로 폴앤크루에 넘어가는 거였다.

퇴직금 관련 정산이 아니라, 장기간 중국 주재원 근무를 하고 돌아온 상태라, 폴앤크루로 정식 출근을 하기 전에 주재원 업무 관련으로 정산할 내용이 꽤 있는 거 같았다.

바로 전날, 박 이사는 오랜만에 손 차장이 오는데, 다 같이 점심이라도 먹어야 되지 않겠냐며 내게 자리를 마련하라고 했었다.

손 차장은 누가 뭐래도 박 이사의 직속 라인 아니겠나.

박 이사는 장 대표도 시간이 나면 함께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영업 삼차장을 포함해 박 이사, 장 대표, 손 차장,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회사 앞 생태탕집으로 일곱 명 자리를 예약해 뒀는데, 갑자기 박 이사가 자기는 점심을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사장님이 오신다네.

“아….”

-나도 방금 연락받았다. 급하게 이사회에 참석해야 할 거 같아. 어떻게 하지?

이사회….

다른 회사도 그렇게 분류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홍성은 사외이사가 참석하는 회의와 사내이사들만 참석하는 회의를 이사회와 임원회로 확실하게 구분해놓고 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뭐… 음…. 어차피 예약을 해 놨으니까 제가 장 대표랑 손 차장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장사가 잘돼서 그 인원이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쁜 집인데, 예약을 취소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알렌 강 그 친구도 부르지 그랬어.

“일본에 출장 가 있다고 합니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그래, 그럼 공 부장 네가 좀 챙겨라. 부탁 좀 하자.

“네.”

그런데 박 이사와 통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그동안 사장님이 참 오래 회사에 안 나오셨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장님을 뵌 게 언제였지?

“….”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마지막으로 사장님을 뵌 게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원래 뭐 홍성에서 사장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 같은 일반 사원의 입장에선 자주 볼 기회가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직접 뵌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라도 뵌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만큼 그동안 사장님은 회사에 발길이 뜸하셨다는 거다.

내가 직접 보지를 않더라도 박 이사를 통해 듣는 게 있을 건데, 그동안 사장님 참관하에 하는 임원 회의는 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었다.

우와… 진짜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는 거니까.

그런데 업무 중간에 잠시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17층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본격적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장 대표가 폴앤크루로 넘어가고 난 이후부터 사실 오전 업무 시간의 17층은 거의 나만의 공간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없다.

그런데 이문 이사님과 또 별도로 사장님을 수행하는 분들로 보이는 두 분이 먼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정확하게는 이문 이사님 혼자 담배를 피우고 나머지 분들은 원래 담배를 안 피우는지, 아니면 사장님 수행 시간 때는 담배를 못 피우는 건지 그저 이문 이사님 옆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사장님이 저렇게 사람들을 주렁주렁 달고 회사에 출근을 하시는 스타일은 아닌데… 언제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두셨을까 싶었다.

아님 저분들은 단순 사장님 수행원이 아니라 난 모를 수밖에 없는 사외이사들인 걸까?

“아이고, 이게 누구야. 공 부장….”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이리 와, 이리 와.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습니다.”

“공 부장 소식은 간간이 들었어요. 잘 생각했어요.”

“뭐가…”

“딴 데 가 본들 뭐 다를 게 있겠어요?”

“아….”

나는 이문 이사님 스타일상, 내가 올라오기 전 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들을 내게 소개라도 시켜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문 이사님은 자신과 함께 있던 남자 둘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누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거였고.

“그런데 그동안 왜 이렇게 뜸하셨습니까?”

난 사장님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회사에 나오셨냐는 질문을 이문 이사님이 회사에 뜸하셨다는 거로 대신 물어봤다.

“나야 뭐 원래 사장님 졸졸 따라다니는 게 내 업무 아니요.”

“…사장님도 꽤 오랜만에 회사에 나오신 거 같습니다?”

“뭐….”

이문 이사님은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지으실 뿐, 그 이유에 대해선 자세하게 말해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이문 이사님께 걸려 왔고, 이문 이사님은 내 앞에서 받기가 애매한 전화였던지 내게 피우던 담배 마저 피우고 천천히 내려가란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셨다.

“….”

분명 평소 내가 알고 있는 이문 이사님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이상하게 평소와는 다른 모습 같아 보여서 괜히 내가 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영업 기획부 사무실에 내려왔을 때, 그때 눈치챘다.

엘리베이터 하나가 막혀 있다는 걸.

엘리베이터 하나에 OFF 처리가 되어 있었고, 그 엘리베이터는 유일하게 사장실까지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다.

일반 사원들도 사용을 하는 엘리베이터였지만, 사장님이 출근하셨을 땐 모두가 눈치를 보며 이용을 하는 엘리베이터.

물론 사장님이 오실 때 가끔씩 이렇게 통제실에서 자체 블록을 걸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이 엘리베이터 블록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 * *

오후 1시였다.

그때까지도 인사부로 간 손 차장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언제쯤 끝날 거 같냐는 연락을 하기도 민망한 게, 이미 12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로 물어봤는데, 그때 손 차장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산 과정이 복잡한 거 같다며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후 1시다.

업무 때문에 점심을 늦게 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예약을 한 식당에선 왜 안 오느냐고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다.

결국 욕 좀 얻어먹고, 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팀원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무실 안에 나와 양 차장, 안 차장, 그리고 혼자 영업 마케팅부에 남아 있기가 민망했던 김 차장까지 합세해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홍성의 사원 카드가 없는 장 대표.

그런 장 대표까지 로비에서 혼자 기다리는 게 지루하다고 투정 섞인 카톡을 보내올 정도였다.

“민폐네, 민폐. 민폐 캐릭터였어.”

안 차장이 혀를 차며 손 차장 뒷담화를 시작했다.

“뭐 어쩌겠어. 인사부에서 처리가 늦어지는 건데.”

손 차장의 편을 드는 김 차장 역시 조금은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게 좀 일찍일찍 와서 처리했음 됐잖아요. 와서 아무도 반기는 사람 없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친한 척하느라 시간 다 보내고…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어허….”

김 차장이 적당히 하라는 식으로 눈치를 주자, 안 차장은 콧김을 내뿜으며 입맛을 다셨다.

정산 관련 처리를 다 끝내고 손 차장이 영업 기획부 사무실을 찾았을 땐 이미 1시 20분이었다.

먼저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업무에 복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안한 얼굴로 손 차장이 올라왔다.

“진짜 미안, 차장님 죄송합니다. 아니 사람을 오라고 해놓고 정작 같이 처리하자고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어쩌자는 거야?”

“왜? 인사부장 부재중이었어?”

“오늘 뭐 이사회 있다면서요? 거기 참석했다고 하던데요?”

“인사부장이?”

김 차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쳐다봤다.

“영업부장도 안 가는 자리에 인사부장이 왜 끼어?”

“그야 모르죠, 전. 아무튼 죄송합니다.”

“재무부장도 불렀는데, 부장님만 안 부른 건 아니겠죠?”

김 차장의 의심에 나 역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크게 없을 거 같았다.

“그럴 리가요. 이사회에 부장급이 참석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데….”

“….”

아무렴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죠, 많이 늦었는데.”

난 재킷을 챙겨서 움직이자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장 대표에게 지금 내려간다고 카톡 메시지를 하나 보내줬다.

그렇게 다 같이 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본사 로비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장 본부장과 만났다.

“도대체 지금 몇 시야?”

장 본부장은 손 차장을 보자마자 짜증을 냈고, 그런 장 본부장에게 손 차장은 합장한 두 손 뒤에 얼굴을 숨기며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다.

“아니, 인사부… 아닙니다. 말하면 핑계만 되는 거지.”

“빨리 가자. 나 오후에 미팅 잡아놨는데, 꼴 보니까 내일로 미뤄야겠다.”

투덜대는 장 대표 옆으로 내가 나란히 섰고, 그 뒤로 손 차장과 삼차장이 함께 우리 뒤를 따랐다.

그리고….

“…!”

한 무리의 홍성 거인들이 로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점심시간이라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남은 자유 시간을 즐기던 홍성맨들은 그 거인들의 등장에 일제히 얼음이 되었고, 그들의 앞길에 서 있던 이들은 재빠르게 그들이 갈 길을 열기 위해 양옆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무 군단?

아니, 전무 군단의 맨 앞으로는 사장님이 계셨고, 그런 사장님의 양옆으로 전무님과 상무님이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전무 군단은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숨이 막히는 장면이었다.

사장님이 전무 군단의 가장 선두에 서서 저렇게 걷는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경우다.

그리고 그런 사장님은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지팡이로 한 발 앞을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셨고, 그래서 전무 군단의 행진은 그 속도에 맞추느라 평소처럼 힘찰 수가 없었다.

우린 재빨리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런데 또 공교롭게도 현재 로비에 사장님의 주목을 받을 만한 무리는 우리밖에 없었고.

사장님의 걸음이 잠시 멈췄고, 이내 사장님은 지팡이를 잡은 손 반대 손으로 우릴 향해 손짓하셨다.

나와 장 대표는 재빨리 사장님 앞으로 달려가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차장들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날 뒤따랐다.

“어디 가나?”

“점심… 먹으러… 갑니다.”

사장님이 물으셨고, 난 쭈뼛쭈뼛 전무님과 상무님, 그리고 저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박 이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지금?”

“…네.”

“왜 이렇게 점심이 늦어?”

“그게….”

“장 대표, 오랜만이다.”

내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사장님은 장 대표를 향해 놀고 있는 손을 뻗으셨다.

장 대표 역시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사장님의 손을 잡았다.

“네, 사장님.”

“금방 점심 먹고 오는 길이라 안 그래도 배가 부른데, 너희가 이렇게 다 같이 있는 거 보니까 안 그래도 부른 배가 더 부르다.”

“….”

사장님은 들고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상무님께 잠시 건네놓고 손수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하셨다.

상무님은 사장님의 지팡이를 제법 능숙하게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놓고 사장님을 부축했고.

그리고 난 봤다, 사장님의 야윈 손등에 번져 있는 검버섯들을….

얼마 만에 뵌 건지는 모르겠지만, 못 뵌 사이에 너무 많이 마르셨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시는 손은 너무 크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회사 카드로 계산을 할 거였는데….

사장님은 자신의 개인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나와 장 대표를 번갈아 쳐다보신 후, 그 카드를 내 앞으로 내미셨다.

“손님 대접 잘해라.”

“…!”

“어차피 시간도 늦었는데, 술도 한잔 걸쳐야 되면 걸치고. 대가리들끼리 붙어서 사업 이야기 할 땐 그렇게 해도 된다. 그래도 명색이 거래처에서 대표가 직접 찾아왔는데, 대접이 소홀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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