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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54화 (254/325)

#254

내 차 저기 있잖아

그때부터 장 본부장은 본격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들을 해내기 시작한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것들….

보고 있으면서도 기가 막혀서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장 본부장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그동안 자신의 영업 본능을 전사 운영본부장이라는 타이틀 속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모두 폭발시키듯 상식 밖의 작전들을 펼쳐나갔다.

일주일 뒤.

장 본부장은 자신의 지난 이십, 삼십 대를 모두 바친 홍성 본사를 결국 떠났다.

영원한 안녕이 아니었기에 우린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홀가분한 듯 무거워 보였고, 또 긴장한 듯하면서도 무척이나 들떠 있는 거 같았다.

자신의 사무 집기들을 담은 상자를 품에 안고 영업 기획부 사무실을 찾은 장 본부장.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영업부 전체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거 같았다.

한발 늦었다.

원래라면 시간 맞춰서 내가 전사 운영본부로 올라가 그의 상자를 대신 들고 영업 기획부로 모셔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직 오전 근무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급습을 하듯 떠날 채비를 다 끝내고 우리 사무실을 찾았고, 난 그가 왔는지도 모른 채 업무를 쳐내고 있었다.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급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엘리베이터 복도 쪽에서부터 지난 자신의 홍성 생활을 되짚어보듯, 사무 집기들이 담긴 박스를 가슴에 품고 주위를 찬찬히 두리번거리며 장 본부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 차장이 재빨리 장 본부장으로부터 그 상자를 건네받았다.

장 본부장은 됐다면서 몇 차례 거절을 했지만, 결국 양 차장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고, 양 차장은 장 본부장이 못 이긴 척 자신에게 건넨 그 상자를 나 팀장에게 다시 건네놓고 내 자리로 장 본부장을 직접 안내했다.

“일들 해.”

하지만 장 본부장의 말과 달리 영업 기획부 팀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파티션 밖으로 나왔다.

나와 장 본부장 사이에 영업 기획부, 해외 영업부 팀원들이 도열하며 길을 만들어 주었고, 난 장 본부장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벌써 가십니까?”

“더 있어 봐야 뭐 하겠어, 인수인계 끝냈으면 빨리빨리 자리 치워 주는 게 매너지.”

아마도 안 차장은 김 차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 본부장이 차례대로 해외 영업부, 그리고 영업 기획부 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동안 김 차장을 시작해서 영업 마케팅부 전 팀원이 내려왔다.

정말 길게 늘어섰다.

엘리베이터 복도까지 이어져서 영업 마케팅부 신입들의 모습은 그 뒤로 숨겨질 만큼.

“고민 많이 했다. 가기 전에 영업부 회식이라도 한번 시켜 주고 갈까 했는데… 앞으로 영영 안 볼 사이도 아니고, 마지막을 전사 운영본부에서 했으면서 영업부를 챙긴다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할 거 같아서 말이야.”

장 본부장의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진심만 주고받는 자리였다.

장 본부장의 손이 이지혜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이지혜는 두 손을 뻗어 장 본부장의 손을 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음… 지혜.”

“네, 본부장님.”

“수고 많다.”

“…아닙니다.”

“그래, 기태…. 우리 배트맨, 기태.”

“아, 본부장님!”

기태를 놀리는 장 본부장의 말에 한바탕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왔다 갔다 하나?”

“왔다 갔다 하다니요? 저 그런 적 없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다. 나가는 사람이 이런 말 해서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홍성에서 좀 더 버티면서 배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기태를 상대로 시작한 장난으로, 장 본부장은 우리 영업부 전원에게 뼈에 새길 한마디를 던졌다.

“퇴사.”

“….”

“너무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마. 비록 그 상대가 믿는 동료, 상사, 부하 직원들이라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게 퇴사라는 거다.”

“….”

“다들 각자의 사직서 한 장씩은 가슴에 품고 출근을 하고 있다는 거 잘 안다. 나도 그랬고, 다들 알다시피 너희 부장도 그럴 거며, 여기 있는 차장들, 팀장들 모두 다 그럴 거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는 마. 그러는 순간 사람이라면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어 있어. 원래 진짜 나갈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위에 말 안 해. 꼭 보면 나갈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나가겠단 말 했다가 그 말 때문에 나가게 되더라고.”

“….”

“그래, 홍성 에이스 센터 우리 장 팀장.”

“네, 본부장님.”

“이제 에이스 센터 자리 내려놓고 후임 에이스 센터 키워 줘야지.”

“내려놓은 지가 언젠데요.”

“그랬나?”

“그럼요. 팀장 달고 제가 다 할 수 있나요.”

“뭐 말 안 해도 워낙 똑 부러지는 사람이니까.”

“양 차장아.”

“네, 본부장님.”

“너 나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냐?”

“아마 직접 사 드시는 게 훨씬 더 빠를 거 같습니다.”

“만나는 여자 있다며?”

“네? 제가요?”

“그때 그러지 않았어?”

참 이럴 땐 더럽게 눈치 없는 장 본부장.

그 순간에 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며 묻는 걸까.

난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못 들으신 거 같습니다.”

“잘못 듣긴. 로즈마리가 계속 들이댄다고 했잖아.”

“아놔, 참 진짜….”

“밀어줄 거면 확실하게 밀어주라고. 자기 말하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벙찐 표정 짓는 거 보면 아직도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을 못 하고 있는 거 같네. 아니 일할 땐 그렇게 멀쩡한 친구가 어떻게 이러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로즈마리….”

“아, 몰라, 나도. 나중에 너네 부장한테 직접 물어봐.”

“거기서 왜 절 걸고넘어지십니까? 제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영업부 팀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주고받다가 가장 마지막에 김 차장 앞으로 선 장 본부장.

“선배님.”

“어색하네. 장 본이 날 선배님이라고 부르니까.”

“저도 참 오랜만이네요, 선배님을 선배님이라고 불러보는 게….”

“그러니까.”

“그….”

“따로 하지.”

“….”

“뭐 영영 가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면 전사 운영본부에 있었을 때보다 앞으로 더 자주 만날 사이인데, 굳이 작별 인사 같은 거 할 이유 없잖아. 따로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애들 다 보는 앞에서 하지 말고.”

“넘어가서 정리 끝내는 대로 선배님껜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되는 거지, 뭐….”

김 차장은 다른 영업부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에 남았다.

나와 양 차장, 안 차장만 장 본부장과 함께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갔다.

“다들 어디 가?”

지하주차장에서 우리 일행과 반대쪽으로 몸을 틀며 장 본부장이 말했다.

“본부장님 차 저기에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임원 주차 공간을 눈짓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 차 저기 있잖아.”

“…!”

그 순간 난 장 본부장이 정말로 홍성과 이별을 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장 본부장이 오랫동안 타고 다녔던 그의 검은 승용차가 직원 주차 공간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회사 차는 어제 반납했다고.”

기분이 참 묘했다.

나와 양 차장, 그리고 안 차장은 장 본부장의 진짜 차 뒷좌석에 그의 사무 집기가 든 상자를 넣어주고 그를 배웅했다.

“고맙다, 여기까지 같이 내려와 줘서. 전사 운영본부 애들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이상하게 너네 배웅을 받고 싶더라.”

“너무나 당연한 거죠.”

“들어가라. 나도 간다.”

장 본부장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동안, 우리 셋은 그의 차가 나갈 수 있는 한쪽으로 나란히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차창도 열어주지 않고 미련 없이 우리 앞을 지나치는 순간, 동시에 허리를 숙여 그의 마지막 홍성 퇴근길을 배웅했다.

“하아… 참 별거 없네요.”

“….”

“뭔가 대단한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별거 없네요.”

“근데 부장님.”

“네.”

양 차장이 물었다.

“아까 그거 무슨 소립니까?”

“뭐가요?”

“로즈마리….”

그래서 나와 안 차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걸었다.

“아니, 잠깐만요. 부장님, 부장님? 야, 안 차장.”

“….”

“안 차장!”

그렇게 홍성을 떠난 장 본부장은 전사 운영본부장이라는 홍성의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폴앤크루의 공동 대표가 됐다.

물론 공식적인 폴앤크루의 대표이사는 알렌 강이다.

하지만 알렌 강과의 합의하에 폴앤크루의 전권을 위임받은 장 대표는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업적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세계적인 육상 선수, 수영 선수들이 매 경기마다 자신이 세워놓은 세계 신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우듯 장 대표는 그동안 전사 운영본부에서 참아왔던 갈증을 폴앤크루에서 해소해 나가기 시작했다.

BSF 컬렉션.

쉽게 말해서 여름과 가을 사이에 끼어 있는 시즌을 말한다.

보통 의류는 크게 FW(가을, 겨울) 시즌 컬렉션과 SS(봄, 여름) 시즌 컬렉션으로 나뉜다.

그렇게 크게 두 가지로 대분류를 해놓고, 매 시즌마다 그 계절에 맞는 집중 아이템들을 쏟아내는 거다.

그런데 몽클레어나 캐나다 구스처럼(그들의 주요 아이템은 누가 뭐래도 겨울을 겨냥한 패딩이니까) 특정 계절에 특성화된 브랜드들은 BSF 컬렉션이라고 해서 약간의 틈새시장을 노리기도 한다.

말 그대로 틈새시장이다.

계절에 특성화된 브랜드들은 브랜드의 콘셉트상 주력하고 있는 계절이 있기 때문에 그 콘셉트를 버리게 되면 브랜드 가치가 함께 떨어질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사계절 매 시즌마다 새로운 아이템들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런데 아까운 거지.

특정 계절에 특성화되어 있기에 해당 계절에는 독보적인 매출을 기록할 수 있지만, 바꿔 말해서 한 철 장사로 일 년 살림을 꾸리기 위해선 어지간히 인지도가 쌓인 브랜드가 아니면 유지가 힘들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몽클레어나 캐나다 구스처럼 FW 시즌에 집중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BSF 시즌 컬렉션이다.

그런 브랜드들은 이미 충분한 브랜드 인지도나 구매 충성도가 있기 때문에 겨울 패딩 브랜드로 알려졌더라도 여름 상품들이 나오면 어느 정도의 수요는 보장이 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컬렉션을 뽑아버리면 브랜드의 콘셉트가 애매모호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절을 할 수밖에 없는 거고.

두꺼운 맨투맨과 후드티로 FW 시즌만 겨냥했던 폴앤크루에서 BSF 컬렉션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치고 이마를 때렸다.

장 대표다운 전략이다 싶었다.

컬렉션을 많이 뽑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작가 컬렉션으로 분류를 해서 한정판으로 뽑지도 않았고.

자멜리 존슨이라는 흑인 여자아이의 그림을 비롯해 해외의 무명 아티스트들의 그림으로 반팔 티셔츠를 기획했는데,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한정판은 아니었지만, 한 해, 해당 연도에만 생산을 하는 BSF 컬렉션이라는 콘셉트 때문에 이상하게 한정판이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기도 했거니와, 여름 상품이 없는 폴앤크루였기에 마니아층들을 흥분시키기엔 충분했던 거 같다.

더군다나 우리 영업부 입장에서도 매출을 떠나 가만히 놀려야 했던 SS 편집샵의 폴앤크루 섹션에 여름 상품을 깔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던 뉴스였다.

장 대표가 짧은 기간 안에 그런 기획을 하고 또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엔 알렌 강이 있었다.

알렌 강이 섭외했던 디자인팀.

그 팀이 제법 막강한 팀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서히 알렌 강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알렌 강.

그는 폴앤크루의 총지휘권을 장 대표에게 넘기고 해외 시장 개척에만 집중했다.

분명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일 거라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내가 마지막 카드로 꺼내 들었던 스타벅스 벤치마킹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고, 장 대표는 BSF 컬렉션으로 만들어낸 폴앤크루 자체 총알로 알렌 강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했다.

컨트롤 기업을 통하지 않고, 폴앤크루가 직접 해외 매장을 오픈, 본사 직영 관리 시스템으로 운영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알렌 강이라는 변수의 능력치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기 위해 장 대표가 얼마나 머리를 싸맸을지도 눈에 보였고.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 센젠 법인에서 손 차장이 주재원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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