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제 지분이 더 많습니다
“신경 쓸 브랜드도 많은 사람이 아까 그런 미팅까지 직접 들어가고… 같이 좀 먹고살자.”
우리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대화였다고 난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우리 둘만의 은근한 신경전.
장 본부장이 날 이렇게까지 인정해 준다는 부분에 묘한 희열이 올라올 정도로 난 기분이 좋았다.
장 본부장은 장난기 어린 말투 속에 오히려 내가 좀 더 진심으로 폴앤크루를 상대해 주길 바라는 도발을 담고 있었다.
“에이…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폴앤크루… 본부장님 지분보다 제 지분이 더 많습니다. 당연히 응원해야죠. 당연히 응원하고 또 앞으로 더 많은 영업 순이익을 만들어 내시길 빌어야죠.”
내 말에 장 본부장은 억지로 웃음을 참듯 광대가 볼록 올라간 얼굴로 날 한 번 씨익 하고 쳐다봤다.
그 미소 속에 담긴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선수들 기만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선수들?”
“저희 영업부 팀원들요. 제 입장에선 또 어쩔 수 없이 저희 영업부 전체 사기도 함께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아무도 진지하게 예상을 못 하고 있겠지만, 장 본부장이 폴앤크루로 넘어가는 순간, 그리고 폴앤크루의 국내 영업권을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홍성의 이전 에이스와 현재 에이스의 진검승부는 피할 수 없게 되는 거다.
물론 조금 관대해질 수도 있다.
폴앤크루로 가시는데, 국내 영업권도 함께 가지고 가십시오…. 하며 예우 차원에서 내가 먼저 양보를 할 수도 있는 문제고.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 본부장과 제대로 붙어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난 속으로 말했다.
당신이 없는 홍성에서 1등이 되어 본들, 남들이야 인정을 해주겠지만 내가 못 하는 인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그날, 폴앤크루 지분 분할 계약서를 받았던 날 곱창집에서 당신이 제게 했던 질문처럼, 굳이… 굳이 돈보다 더 나은 가치를 말하라고 한다면 난 그냥… 한 번쯤은 당신이랑 제대로 붙어서 제가 확실하게 당신을 뛰어넘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고 싶네요.
그걸 못 해봤습니다, 서로의 활약 시기가 달라서.
물론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절 실력으로 제압해 주는 것도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감정이.
어쩌면 너무 맥없이 제가 당신을 꺾어 버릴까 살짝 겁이 난다고 할까요?
그럼 힘이 풀릴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다가와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워낙에 자존감이 강해서 극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제압했다는 식의 전설을 남기는 게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전 조금 다릅니다.
당신을 떨쳐 내지 못한다면 제가 진짜 홍성의 에이스라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을 거 같거든요.
이상하게 제겐… 그 부분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당신이라면 제가 좀 더 유리한 조건에 있더라도, 그래서 당신 입장에선 그게 불공평일지라도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인프라를 다 동원해서 당신을 상대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냥 당신을 참 좋아하고, 때론 존경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의 그림자를 한 번 정도는 떨쳐 내고 싶습니다.
당신은 제게 넘지 못할 벽 같은 존재라는… 그런 수식어를 제 손으로 좀 떼 주고 싶어졌습니다.
그게 이제 좀 먹고살 만해진 저한테는…. 중요해진 일입니다. 설레거든요.
“본부장님이 폴앤크루로 넘어가시자마자 영업부가 폴앤크루를 놓치면 결국 회사는 팝콘과 콜라를 준비하겠지만, 저희 영업부는 가만히 있다가 의문의 1패를 당하는 거죠.”
“넘어가자마자는 뭐가 또 넘어가자마자야? 그럴 정신 없다. 브랜드 본사 일은 나도 처음 해 보는 거 아냐. 여기서 영업부 시절에 했던 것처럼 앞뒤 안 재고 공격만 하기엔 신경 써야 할 게 많다고. 손 차장 오기 전까지야 어쩔 수 없이 내가 지휘를 해야겠지만, 손 차장 오고 나면 국내 영업 관련해선 손 차장한테 다 믿고 맡겨야지.”
홍성 본사와 폴앤크루.
체급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는 장 본부장이었다.
그 말은 즉 처음부터 공평한 입장은 아니라는 말이었고, 그래서 자신이 두어 수 정도 미리 접히고 들어가는 게임이라는 걸 정확히 해두고자 하는 것 같았다.
“손 차장님이 오시니까 저는 더 불안한 거죠.”
“손 차장이 왜?”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또 누구보다 먼저 그 부분이 승부처임을 간파했을 장 본부장.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중국 법인에서 오시는 분이니까요. 만약 폴앤크루가 다른 일반 브랜드처럼 홍성 영업부에게 중국 시장이라는 인질이 잡혀 있는 상태라면 저도 여유를 부리겠죠. 우리랑 안 해? 그럼 중국 시장도 없어… 하면서.”
“하하하….”
“하지만 손 차장님이 합류하는 순간 폴앤크루 역시 저희 영업부가 가지고 있는 중국 시장 채널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내 시장 뚫는 거야 뭐 본부장님이 직접 안 하시더라도 손 차장님만 오시면 일도 아닐 거고, 현재 유일하게 나가 있는 해외 시장인 중국 역시 손 차장님만 합류하면 깨끗하게 정리가 되는 건데, 현재 계약을 유지하실 이유가 없겠죠. 아닌 말로 현재 저희 영업부가 받고 있는 마진이면 그 마진대로 중국 법인에게 다이렉트로 준다고 했을 때, 중국 법인 입장에선 폴앤크루와 다이렉트로 하겠다고 하지 한 다리 걸쳐서 홍성 영업부와 하겠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중국 법인 입장에서도 얼마나 명분이 좋습니까? 결국 같은 홍성 가족들인데, 누구한테 물건을 받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어차피 본사 자본으로 출발한 기획 브랜드인데, 이참에 우리가 힘 좀 실어주기로 했다… 그 한마디면 끝나는 걸.”
애초에 체급이 달라서 자신이 나에게 두어 수 정도 접히고 들어가는 판이라는 걸 말하려는 장 본부장에게 난 반대로 이 판은 당신에게 유리하게 짜져 있는 판임을 확실하게 말해 줬다.
체급이 다를 때 쫓기는 쪽은 누가 뭐래도 체급이 큰 쪽이다.
물론 이길 확률이야 높겠지만, 비겨도 본전이고 지면 제대로 쪽을 파는 건데, 이게 어떻게 나에게 유리한 게임이겠나.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 본부장인데.
그리고 그 장 본부장은 자기 입으로 앞으로의 홍성 생활 3년을 시한부 3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본부장님이 생각하시는 3년 뒤의 제 가치는 얼마나 됩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우리 딱 3년만 더 남 밑에서 일하고 3년 뒤엔 우리 사업 하자고. 저랑 동업을 하자는 말은 아니었을 거 아닙니까.”
“아… 그거?”
“저도 뭐 아무것도 안 따지고 그냥 의리로만 갈 수가 있나요, 어디. 물론 본부장님 엉덩이 옆이 제겐 제일 안전하고 또 따뜻하다는 걸 알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건 또 다르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보여주세요. 제가 3년 뒤에 아무런 미련 없이 본부장님으로 갈아타도 된다는 걸. 홍성? 지금처럼 쭉 하면 뭐 최소 이사 진급까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데 크게 미련 없습니다. 박 이사님 대우받는 거 보니까 딱히 영업부장 타이틀보다 나아 보이지도 않고. 상무님 통해서 그때 본부장님이 먼저 사직서를 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힘이 빠지더라고요. 앞으로 회사 생활 재미가 없을 거 같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본부장님. 3년 뒤를 보고 지금부터 절… 납득시켜 주세요. 제가 왜 이 든든한 홍성을 떠나서 본부장님한테 가야 하는지. 그때 저한테 하셨던 제안에 대한 대답입니다.”
* * *
“이번엔 청두 쪽으로 생각 중이라고요?”
“네, 인타이라고, 홍콩 계열 쇼핑몰입니다. 작년 모리엘츠 전시 때 거기 사장 아들이 직접 먼 길 와서 컬렉션 몇 벌 구입해서 매출을 올려준 일도 있고, 그 후로도 꾸준히 올해 전시 건으로 연락을 해 오더라고요. 청두…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하이나 베이징 쪽보다 워크인 매출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근데….”
난 안 차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부분은 예민한 부분이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 매출 올리자고 계속 안 차장님이 직접 며칠씩 중국에 넘어갈 이유가 있습니까?”
“당장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중국어 안 되는 장 팀장을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최 팀장을 보내기엔… 솔직히….”
“아니, 제 말은 우리 본사에서 직접 중국까지 컨트롤해야 할 만큼의 매출 메리트가 있느냐는 거죠.”
“없죠.”
안 차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 그거 올해까지만 안 차장님이 컨트롤하고 내년부터는 중국 법인한테 줘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안 차장님이 매년 그 건으로 넘어가셔야 할 만큼의 매출 메리트가 없다고 하시니까 하는 말입니다.”
“뭔데요?”
“…네?”
“아, 뭔데 그렇게 돌아가십니까. 센젠 법인 상대로 모리엘츠 넘기고 딜 칠 거 있습니까?”
“…네.”
난 겸연쩍은 마음에 안 차장의 눈을 피하며 슬쩍 미안한 미소를 흘렸다.
그런 내게 안 차장이 말했다.
“아, 그럼 저한테 소고기 한번 사시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빙빙 돌아가십니까? 메인 프로젝트도 아니고, 곁가지로 마지못해 떠안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폴앤크루 건으로….”
“폴앤크루건 뭐건 부장님이 필요하시다면 저한테 그런 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고, 전 다만 새벽집이냐, 울산 식육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푸훕… 고맙습니다.”
“저는 진짜 완전 새벽집 스타일. 나름 입이 고급입니다.”
“목요일 저녁 어떠십니까?”
“언제든 콜이죠.”
“그럼 이번에 민규 씨 데리고 모리엘츠 행사 치러 청두 들어가는 길에 일정 하루 정도만 더 빼서 센젠 법인 한번 들러 주세요.”
“그래야죠. 작년처럼 헬퍼 멤버도 받아야 하고.”
“그러고 넌지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 보세요. 관심이 있느냐고.”
“있겠죠. 당연히 있겠죠. 없어도 있어야죠, 상대가 모리엘츠인데.”
“준다는 말은 하지 마시고요.”
“….”
“그냥 관심이 있는지만 살짝 떠보고 오세요.”
“큰 딜입니까? 폴앤크루를 가지고 그 정도로 물밑 작업이 들어갈 게 뭐가 있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큰 딜입니다. 꼭 이기고 싶은 싸움이라….”
“싸움이요?”
“음… 경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인 부분이 많이 담겨 있는 거라서, 굳이 표현을 하자면 싸움이라는 거죠.”
“상대가 누군데요?”
안 차장을 믿었다.
눈치 하나는 기똥차게 빠른 사람이 아닌가.
난 안 차장에게 손 차장이 센젠 법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손 차장으로 인해 폴앤크루 국내 영업권을 폴앤크루 쪽에 눈 뜨고 빼앗길 것에 대한 우려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에이… 그러면 안 되죠.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홍성 본사인데,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걸 빼앗길 수야 있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되죠. 그건 부장님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저 안낙현입니다.”
“믿습니다, 안 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