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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52화 (252/325)

#252

그거 무섭습니다, 사이코패스

김 차장의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내가 던진 주문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듯, 한참 동안 미간을 좁히고 있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장 본부장과 정면으로 붙어서 회사를 상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으신 겁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면 뭐 어떻습니까?”

내 말에 김 차장의 미간 사이 주름은 조금 더 깊게 패기 시작했다.

“본사 영업부와 폴앤크루가 서로 협력해서 시너지를 만들어 내든, 아님 제대로 치고받아서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든 회사 입장에선 매출만 잘 올라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협력…. 사실 할 수만 있음 우리 영업부 입장에선 하면 좋죠. 하지만 본부장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할까요?”

그제야 김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젠 폴앤크루를 홍성 산하 브랜드가 아닌 독립적인 브랜드로 봐야 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긴… 장 본부장이 직접 가는데 폴앤크루 입장에선 더 이상 국내 시장에선 컨트롤 업체가 필요 없긴 하겠네요.”

“당연하죠. 거기다 어디 뭐 본부장님만 있습니까? 곧 손 차장님도 넘어옵니다.”

“…!”

“두 분 모두 팀장이었을 시절 딱 두 분이서 홍성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70퍼센트 이상을 컨트롤했습니다. 폴앤크루 하나? 가지고 놀겠죠. 그 두 분한테 폴앤크루는 나눠 먹기도 부족할 만큼 작은 파이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어느 누구보다 컨트롤 기업의 생리, 구조, 채널을 잘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만하게 상대해 왔던 브랜드 본사들과는 차원이 다를 거란 말입니다.”

“흐음….”

“제가 만약 본부장님이라면 컨트롤 대행 명목으로 우리 본사 영업부에게 떼 줘야 하는 수수료가 가장 아까울 겁니다. 직접 해도 되는데, 아니 직접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뭐 한다고 아까운 수수료 떼 주면서 우리 영업부에게 위탁을 맡기겠습니까?”

“그래도 계약 기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 안에 어떻게 할 수는 없겠죠.”

“그게 국내 시장 독점 계약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네, 그야 뭐… 그 부분에 대한 강조 조항은 없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김 차장의 실수가 아니다.

폴앤크루.

아직은 홍성 본사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브랜드라고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홍성 영업부가 폴앤크루 유통을 컨트롤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였고, 거기에 독점 계약에 관한 내용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였으니까.

주먹구구식은 아니었지만, 우린 효율적인 계약을 진행했었다.

폴앤크루는 홍성 영업부에게 우리가 제시하는 만큼의 마진으로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었고, 그에 홍성 영업부는 SS 편집샵의 메인 섹션에 폴앤크루를 깔아서 집중 판매를 약속, 아니 보장했었다.

“그래도 아직은 여러모로 단독 매장을 차고 나가기엔 시기상조입니다. 한 매장을 폴앤크루 단독으로 채우기엔 컬렉션도 많이 부족하고 메인으로 나가고 있는 게 현재 작가 컬렉션인데, 한 컬렉션당 999벌. 거기에 전국에 깔린 SS 편집샵에서 보장한 미니멈 개런티 오더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미니멈 개런티 오더.

우리 영업부 입장에선 현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무기가 되는 계약 조건이었다.

원래 이 미니멈 개런티 오더는 컨트롤 기업이 아니라 브랜드 본사 측에서 선호하는 조건이다.

물량이 빠지든 안 빠지든 이 미니멈 개런티 오더를 잡아놓고 계약을 해야 브랜드 측에서는 최소한의 영업 매출을 보장받을 수가 있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미니멈 개런티 오더 같은 경우는 브랜드 측과 컨트롤 기업, 혹은 1차 벤더와의 계약 시 마진 협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미니멈 개런티 오더 액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진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미니멈 개런티 오더가 낮거나 아예 없는 경우엔 마진은 올라가게 된다.

대형 브랜드.

즉 브랜드 자체의 힘만으로 알아서 팔리는 브랜드 같은 경우는 대체로 이 미니멈 개런티 오더라는 게 없다.

하지만 강 대표가 영입이 되고 폴앤크루가 분리 경영이 되는 그 상황에서는 홍성 영업부의 유통 채널이 폴앤크루 입장에선 유일했고, 또 국내 시장에 관해선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오로지 해외 채널을 뚫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강 대표였기에 이 부분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결국 김 차장은 한정판으로 생산되는 작가 컬렉션에까지 미니멈 개런티를 집어넣는 것에 성공(사실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상대는 이 부분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고, 또 무지했다)했고, 그 결과 꽤 재밌는 판이 만들어지게 됐다.

“답답하십니다. 아직도 본부장님을 모르십니까?”

“…?”

“그 계약… 마진부터 시작해서 미니멈 개런티 오더까지 다 포함된 그 계약 조건…. 본부장님이 대표로 가면 폴앤크루 쪽에서 위약금 좀 물리고 깰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왜 못 하십니까?”

“…!”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짜고 치는 고스톱….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다고. 하지만 본부장님이 대표로 가게 될 폴앤크루 입장에선 그럴 이유가 없죠, 더 이상. 정상적인 마진이 아니잖아요, 지금. 위약금 좀 물리는 게 현재 마진으로 홍성 영업부에 물건 대주는 거보다 더 이익이라고 판단이 서면 뒤도 안 돌아보고 계약을 깰 겁니다.”

지금부터 장 본부장은 폴앤크루를 자기 개인 사업으로 생각하고 자기 능력과 인맥, 모든 인프라를 폴앤크루에 몰빵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게 무서운 거다.

비록 월급쟁이 대표이지만, 그럴만한 명분의 지분이 장 본부장에게 주어졌고, 또 3년 뒤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폴앤크루 대표직을 자기 사업을 직접 시작하기 전 미리 해보는 포지션 정도라고 생각할 거다.

그렇다면 장 본부장 입장에서 못 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난 판단했다.

“에이, 그래도 설마 계약을 깨기야 하겠습니까. 계약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재계약까지 2년 남았습니다. 아무리 장 본부장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잘한다고 해도 그건 너무 무리수입니다. 그렇게 무리해서 같은 식구들끼리 빈정 상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설마한테 찍히는 발등이 제일 아픕니다, 차장님. 상대의 수가 대충 눈에 보이는데, 보이는 걸 미리 예방하지 않고 당했으면서 거기에 빈정이 상하면…. 그건 좀 우스운 거 아닐까요?”

“….”

“그리고 무리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 아니겠습니까? 부자다, 가난하다…. 거기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있습니까? 무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는데요, 전. 본부장님 입장에서 그게 과연 무리일까요? 전 오히려 그게 너무나 본부장님스럽고 또 당연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흐음….”

“그 정도 리스크…. 본부장님 입장에선 리스크도 아닐 겁니다. 그저 본부장님이 직접 핸들링을 시작하기 전 국내 시장에 대해 무지했던 강 대표가 싸놓은 똥을 직접 치워 준다 정도로 생각할 거 같은데요. 그리고 본부장님은… 차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뭔가를 이뤄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분이라는 걸. 그래서 우리가 다들 뒤에서 본부장님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잖아요.”

“푸훕….”

“비슷한 실력의 상대도 이상하게 한 수 정도 접어 주고 시작하는 걸 즐기시는 분입니다, 본부장님은… 따라잡는 쾌감 때문에…. 그거 무섭습니다, 사이코패스.”

“…!”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흔드세요. 지금 안 흔들면, 나중에 본부장님이 폴앤크루 대표로 간 이후엔 꿈쩍도 안 할 겁니다.”

그날 저녁.

난 퇴근길에 영업 마케팅부 회식 자리에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

차를 끌고 온 상태라서 술은 받아만 놓고 소주 대신 사이다를 마시며 영업 마케팅부 팀원들과 회식을 함께 즐겼다.

그렇게 30분 정도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영업 마케팅부만의 팀워크가 아닌 영업부 전체의 팀워크를 당부했고, 가장 마지막 테이블, 폴앤크루를 담당하고 있는 팀원들이 모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루이뷔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난 그들에게 폴앤크루를 루이뷔통이라고 생각하고 폴앤크루 쪽에 국내 컨트롤 라이선스를 뺏기지 않도록 집중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거 한번 빼앗기면 다시 못 찾아옵니다.”

“…네.”

“물론 언젠가는 뺏길 겁니다. 뺏기는 게 아니라 재계약 자체를 안 하겠다고 하겠죠. 하지만 계약 기간 안에 상대가 계약을 깨겠다는 말은 안 나오게 만들어 주세요.”

“그런데 부장님.”

“네, 팀장님. 말씀하세요.”

“솔직히… 저도 낮에 차장님한테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폴앤크루가 계약을 깨자고 나오면 저희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볼 건 없지 않습니까? 위약금 장사만 해도 꽤 재밌을 거 같은데요.”

“그 위약금이 팀장님 이하, 팀원들한테 한 푼이라도 돌아가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저희가 신경 써야 할 브랜드가 폴앤크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매달릴 만큼 중요한 브랜드도 아니지 않습니까. 회사 차원에서야 홍성의 첫 기획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으니 그런 거지만, 실질적인 매출만 보면… 글쎄요.”

“지금도 작가 컬렉션은 출시되는 대로 품절이 나고 있지만, 조만간 그 외 일반 컬렉션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거기다 SS 편집샵 매출과도 어느 정도 직결이 되는 부분이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쉽지 않습니까?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SS 편집샵에서 다 컨트롤을 해주고, 거기에 대한 매장 운영비 정도만 셰어해 주면 되는 거니까.”

“그거야 그렇죠. 그런 것들 다 따져 봤을 때도 위약금 장사가 조금은 더 유리하지 않나 싶어서 드렸던 말인데, SS 편집샵 매출을 생각하면 뭐… 알겠습니다. 부장님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잡아 보겠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알렌 강이 폴앤크루 마케팅 비용 신청 건으로 홍성 본사를 찾아왔다.

알렌 강이 직접 온다는 말에 살짝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싸한 기분 때문에 난 마케팅 비용 신청 건의 미팅 자리에 함께 들어갔고, 아니나 다를까 김 차장이 마케팅 비용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장 본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알렌 강이라면 더 이상 미련하게 혼자 결정을 하지 않고, 영업부가 요청한 마케팅 비용 건에 대해 왜 본사 영업부가 이제 와 이걸 요청하는지 장 본부장에게 물어봤을 거란 생각을 나도 하고 있었다.

“강 대표님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난 내 옆자리 상석을 직접 빼서 장 본부장에게 권한 다음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영업 마케팅부에서 준비해 온 마케팅 비용 요청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장 본부장.

그는 말없이 요청서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눈알만 굴려 나와 알렌 강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떠십니까?”

알렌 강이 물었다.

알렌 강의 물음에 장 본부장은 양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려놓고 내 수를 파악했다는 듯 날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장단점이 있겠네요, 지금 이 시점의 폴앤크루 입장에선.”

“….”

“강 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음… 필요하시다니 고려를 해보긴 해봐야 하겠지만….”

“주세요.”

난 미간을 좁히며 장 본부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제가 만약 강 대표님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외에 더 필요한 게 뭐가 있을지를 물어볼 거 같습니다. 브랜드 본사와 컨트롤 기업 간의 소통은 자주 하면 자주 할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계약이 된 상태에서 소통이 아닌 딜을 계속 하게 되면 결국 브랜드 입장에선 손해죠.”

장 본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들어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17층.

먼저 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장 본부장이 바깥세상을 마주 보고 서서 내게 말했다.

“살살 좀 하자, 살살. 왜 이렇게 몰아붙이냐?”

그의 옆으로 나란히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가 말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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