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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45화 (245/325)

#245

상무님이… 실수를 하셨네요

“이게…”

“분량만 많습니다. 파워포인트 형식이라 금방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폴앤크루 대표실.

난 챙겨온 서류 봉투를 알렌 강에게 전달한 후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알렌 강은 서류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혹시 뭐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렌 강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와 내가 준비해 온 서류를 몇 번이나 번갈아 쳐다봤다.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내용이었습니까, 아님 인수인계 과정에서 누락시킨 내용인 겁니까?”

“후자라고 봐야겠죠.”

알렌 강.

난 더 이상 그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또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뭔가 제안을 하겠다고 내가 직접 찾아온 자리.

날카롭게 굴 이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상무님에게 직접 퇴사 의향을 밝힌 뒤라 그런지 알렌 강 앞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 부모 죽인 원수들도 아니고 고작 회사로부터 월급 받아 가며 그 월급만큼의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 하며 피 터지게 물어뜯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따지고 보면 알렌 강 역시 날 엿 먹이기 위해, 홍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상무님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온 사람은 아니지 않나.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다름 때문에 마찰이 있었던 거뿐이고.

그 다름마저 의미가 없어진 지금에 와서, 그것도 내가 직접 제안할 게 있어서 찾아와 놓고 날을 세운다는 건… 너무 유치할 거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 원래의 나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참 뒤 알렌 강이 다시 내가 전달한 내용물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변명은 붙여 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후자가 맞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시킨 내용이었다.

아까웠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양 차장과 함께 만든 이 프로젝트 시나리오를 어디서 뚝 하고 떨어진 낙하산 인사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친다는 게 너무나 아깝고 또 피가 거꾸로 솟을 것처럼 분했으니까.

“정말 공교롭게도… 제가 그걸 전무님 이하 임원분들을 모셔놓고 예산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해보려고 하는 찰나에 강 대표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설마 그렇게 빨리 오겠어? 하는 생각으로 일단 한 템포 늦췄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급하게 강 대표님 영입이 진행되니까 그때부턴 오기로… 그 뒤엔 이렇게 급하게 진행된 인사, 과연 얼마나 버티겠어? 하는 약간의 기대 때문에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계속 제가 가지고 있었네요. 사람 일은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푸흡.”

모든 걸 내려놓으니까 편했다.

그 앞에서 의미 없는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고, 그를 꼭 이겨 먹어야겠다는 부담감도 사라지니 내가 생각해도 내 말투나 행동 모든 곳에 여유가 자연스럽게 붙어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제 전화 통화로 본사 상무님께 대충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장 본부장님과 공 부장님이 함께 나가시면….”

상무님을 그냥 상무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본사 상무님이라고 확실하게 구분 지어 부르는 알렌 강의 모습에 살짝 낯설었다.

하지만 또 그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맞으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겠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저기 공 부장님.”

“네.”

“이거 제가 체크 좀 해도 됩니까?”

알렌 강은 이미 볼펜으로 서류에 뭔가 표시를 해놓고 아차 싶었던지, 뒤늦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요. 하세요. 강 대표님 쉽게 보시라고 그냥 프린트를 해 온 겁니다. 그 봉투 안에 유에스비도 같이 들었습니다. 프린트물에 안 들어가 있는 사이드 내용들도 유에스비 안에 다 들어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걸로 이젠 진짜 백 퍼센트 저희 본사 영업부 손을 떠났습니다.”

“….”

알렌 강은 폴앤크루에 관한 모든 건 그 서류 봉투 안에 다 넣었다는 나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하더니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난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런 날 미간을 좁히며 쳐다보던 알렌 강은 일단은 확인하던 내용은 마저 다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식으로 다시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류에만 집중하던 알렌 강은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도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 자신이 미리 체크해 뒀던 내용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모습을 내게 보였다.

그리고 그 서류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한참 동안 내용물 표지를 쳐다보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흘렸다.

“굉장… 하네요.”

다행이었다.

그간의 감정을 모두 뒤로한 채 오로지 프로젝트의 가치에만 집중을 해주는 모습에 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굉장합니다. 이걸… 아니, 이것도 공 부장님 아이디어겠죠?”

“아이디어 만들어내는 게 어디 일입니까. 생각만 하면 되는 건데… 그걸 실행시킬 수 있는 게 진짜 능력인 거죠.”

“제 눈엔 투자만 뒷받침된다면 무조건 되는 프로젝트 같은데요? 그렇다고 큰 투자가 필요한 내용도 아닌 거 같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하려면 투자를 떠나서 지금까지 강 대표님이 폴앤크루를 끌고 가려고 했던 방향을 전체적으로 다시 수정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

알렌 강은 말이 없었고, 난 그런 알렌 강에게 내가 가진 모든 패를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패를 오픈시키기에 앞서 한 가지 물어봤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다른 의도가 있어서 물어보는 건 아닙니다. 본사에서 매일같이 얼굴 마주 보고 앉아 있어야 할 때나 분위기나 그 외 모든 환경이 서로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이젠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폴앤크루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솔직히 저는 강 대표님이 폴앤크루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과연 상무님이 자신의 첫 프로젝트였던 폴앤크루를 얼마나 이해하고 계시며, 또 그걸 어떻게 강 대표님에게 설명해서 스카우트하신 건지가 더 궁금합니다.”

“미련… 같은 겁니까?”

“일종의 그런 거라고 봐도 되겠네요. 분명 이제 와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으면서도… 그냥 궁금합니다. 과연 상무님은 어떻게 자신의 브랜드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건지 납득이 잘 안 가거든요, 아직.”

“망가뜨린다라….”

“제 기준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하긴, 가져오신 내용들을 보니까 공 부장님 입장에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한 거 같습니다.”

“….”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냥 본사 상무님은 제게 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하셨고, 또 제 입장에선 그 조건들이 앞으로의 제 커리어에 반드시 한 번쯤은 찍고 가야 하는 과정이라 판단이 되어서 홍성 배로 갈아탔다… 정도로만 설명드려도 되겠습니까?”

“깔끔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저도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뭐가… 요?”

“폴앤크루에 왜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시는 건지… 물론 홍성의 첫 자체 브랜드이고, 그 프로젝트를 총괄하셨기에 그만큼 애정이 쌓여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상무님께 직접적으로 퇴사 의향까지 밝히셔놓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게… 제 입장에서는 뭐랄까… 조금 의아해서요.”

나는 폴앤크루를 장 본부장과 함께 진행하면서 명분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떠올렸던 거 같다.

특히 상무님 컬렉션에서 작가 컬렉션으로 컬렉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에서.

“혹시 대표님은 누군가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분이십니까?”

“네?”

“전 아니었습니다. 전 그렇게 호인이 못 되거든요. 그런데 폴앤크루를 진행하면서 그런 감사의 인사를 참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니 따뜻해지더라고요. 퍽퍽했던 제 감정에 가끔씩 예기치 못한 곳에서 울컥울컥하는 순간들이 참 자주 찾아왔습니다.”

“….”

“분명 전 호인이 아니고, 어쩌면 일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냉정하고 또 계산적인… 계산적인 걸 떠나, 때론 이기적인 모습도 참 많이 보여왔던 사람인데, 그랬던 제가 폴앤크루를 총괄하면서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아마도 그 따뜻함을 계속 지키고 싶었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강 대표님께 손톱을 세웠던 건 아니었나 모르겠네요.”

“흐음….”

“그림 한 점을 백오십만 원씩에 샀습니다. 무명작가들한테요. 미안했죠. 솔직히 양심이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저지만, 그래서 그들의 그림이 좋다, 안 좋다 판단할 눈조차 없는 저지만 그림이 좋건 안 좋건 어쨌든 그들의 지난 세월이 만들어낸 결과물들 아니겠습니까. 그 그림들을 한 점당 백오십만 원씩 값을 쳐주고 구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그 가격밖에 제시를 못 해서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저한테 작가들이 고맙다고 합니다.”

“…!”

“고맙단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심스럽더라고요. 그리고 곧… 그럼 진짜 고맙단 소리를 들어도 충분할 만한 일을 해보자….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 생각의 결정체가 아마도 조금 전 대표님이 보셨던 프로젝트 시나리오고. 제가 너무 감성적인가요?”

“사업에도 분명 적당한 이모션은 필요한 거니까요.”

“폴앤크루… 분명 스타벅스를 벤치마킹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해당 국가, 도시만의 상징이 들어가 있는 머그컵, 텀블러를 제작 판매하는 것처럼 폴앤크루도 국내 작가들의 작품에만 한정하지 말고 각 나라별 작가들의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제작, 해당 국가에서만 판매하도록 해보자?”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스타벅스에 들러서 그 도시의 상징이 프린팅되어 있는 머그컵을 하나씩 사서 수집하는 상사가 한 분 계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지인이 있으면 염치 불고하고 그곳의 머그컵도 수집하고 싶은 마음에 부탁까지 한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러는 마음이 이해는 가더라고요. 자기만족이죠.”

“제 엑스 와이프도 그런 편이었죠.”

“…!”

“어디 갈 때마다 꼭 그렇게 하나씩 사서 모으더라고요. 분명 제 눈엔 그냥 머그컵일 뿐인데, 자기가 그 도시를 다녀왔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 하나씩 산다나 뭐라나….”

난 강 대표가 아직 싱글인 줄만 알았지 돌싱인 줄은 몰랐다.

“만약 폴앤크루의 마니아층이 단단하게 형성만 된다면 이 프로젝트로 인해 폴앤크루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매장, 반가운 브랜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전 세계 무명작가들에겐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거고, 그와 더불어 더 많은 폴앤크루의 컬렉션들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흐음….”

“단가를 낮추겠다고 생산량을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해외 채널 한 군데 더 뚫어보겠다고 마진을 낮춰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한두 곳에서만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나라별로 많은 매장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요 도시 한두 군데에 제대로 된 독립 매장만 넣어 주면 되는 거죠. 박리다매로 가져갈 브랜드가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콘셉트도 아니었고. 그 한두 곳 역시 폴앤크루의 마진을 낮추지 않고 홍성 본사의 투자로 폴앤크루가 직접 매장을 열어도 되는 거고요. 한두 곳에서만 성공을 해내면 그 이후부턴 각국의 대표 컨트롤 기업들이 서로 접촉을 해올 겁니다. 그럼 그때 가서 폴앤크루는 폴앤크루를 가장 폴앤크루답게 운영해줄 능력이 되는 컨트롤 기업을 나라별로 하나씩 초이스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폴앤크루의 가치… 폴앤크루와 콜라보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치를 그렇게 떨어뜨리려고 하십니까?”

“…”

“후우….”

“상무님이… 실수를 하셨네요.”

“…?”

“절 영입하신 건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악수… 군요. 홍성의 입장에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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