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상무님의 프로젝트입니다
“팀을 따로 꾸리고 계셨다는 건, 미리 생각해 둔 분이 계신단 말인가요?”
손 차장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줄곧 해외에서만 직장 생활을 해 왔던 사람이 무슨 수로 팀을 따로 꾸리고 있었다는 말을 하는 건지 그걸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정도 인맥은 있으니까요.”
얼버무리는 대답.
굳이 공격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 얼버무리는 대답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럼 본사로부터의 별도 인원 차출은 필요가 없단 말씀이신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기본 부서의 헤드 정도는 미리 생각을 해 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죠.”
“손 차장 같은 경우는 중국 법인에서 폴앤크루의 턴 오버를 잡아 주신 분입니다. 분리경영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지 몰랐던 당시의 제가 폴앤크루 재고를 중국 법인에 넘기는 과정에서 구두로 했던 일종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이해가… 하하… 잘 안 되는데요?”
알렌 강은 상무님과 장 본부장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통역이 필요하단 투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홍성 본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던 폴앤크루의 재고를 중국 법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물량을 받아주면 나중에 한국으로 복귀할 때 폴앤크루의 영업부장 자리를 주겠다… 하는 식의 모종의 딜이 있었단 말인가요?”
“네.”
난 짧게 대답했고, 내가 한 대답에 알렌 강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번엔 얼굴에 웃음기를 싹 빼고 상무님을 쳐다봤다.
상무님이 딴청을 부리자 다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중국 법인은 이미 본사와 분리가 된 상태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럼 엄밀히 말해 거래처를 상대로 그런 딜을 넣었단 건가요?”
“네, 맞습니다.”
“알… 겠습니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 알렌 강.
“그런데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가요?”
“아니요. 아주 특수한 경우였습니다. 만약 폴앤크루가 처음부터 본사와 분리가 된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진행이 된 브랜드였다면 절대 이런 딜이 오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분리경영을 진행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또 본사 영업부에서 폴앤크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오해 없이 인사 진행을 하기 위해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은 겁니다.”
“충분히 오해를 하실 만한 상황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행을 한 일이지만 절대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그게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면 제가 성급한 결정을 내렸던 건 아니었나… 하는 후회도 들고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때 난 당시 내가 손 차장을 상대로 그런 딜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렌 강이 아닌 상무님에게 설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 법인이 본사로부터 분리가 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상당히 혼란스러웠죠. 위에선 결정만 내리면 되지만, 실무자들은 그 결정 하나를 제대로 수행해 내기 위해 수십, 수백의 과정을 거쳐 내야만 합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선 무척 간단하게 해결될 거 같은 일도 복잡하게 꼬일 수가 있는 거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뚫리기도 하는 법이죠. 이제 곧 폴앤크루 역시 분리가 되면서 인사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혼돈이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종의 그런 혼돈 중 하나였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아닌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약속이라 지켜지길 바랄 뿐이고요. 물론 강 대표님께서 따로 염두에 두고 계신 분이 있다고 하시면….”
난 상무님과 장 본부장을 차례대로 쳐다본 뒤 말했다.
“강 대표님의 소신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천일 뿐, 폴앤크루의 인사 결정권은 지금부터 강 대표님의 소관입니다.”
“그 부분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장 본부장이 상무님의 시선을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사장님께까지 보고가 올라간 내용입니다. 물론 공 부장 말처럼 앞으로 폴앤크루의 인사권을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강 대표님의 소관이지만, 지나간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다 인수인계 내용에 포함을 시키려고 하시면 1년이 지나도 다 못 끝냅니다.”
“저는 그냥…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라… 알겠습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공 부장님,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저의 경험 미숙으로 보고 체계의 누락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폴앤크루를 총괄하는 과정에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역시나 상무님 방이었고, 상무님, 장 본부장, 알렌 강,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모여 사업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제가 어떻게 납득을 해야 하는 걸까요?”
이번에도 알렌 강이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짚으며 내게 물었다.
“현재 폴앤크루의 유일 유통 채널은 단독 매장이 아니라 SS 편집샵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폴앤크루 컬렉션이 갖춰지기 전까지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서 편집샵으로 풀었던 거 아니었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SS 편집샵을 왜 이렇게 확장을 시키는 겁니까? 폴앤크루가 들어갈 지점이 처음 시작보다 67군데 매장이 더 늘어났네요?”
“그 부분은 영업부 소관입니다.”
“아니죠. 이 매장 확보의 중심에는 폴앤크루가 있는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영업부 소관입니까? 만약 폴앤크루가 단독 매장 콘셉트로 바꾸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바꾸실 겁니까?”
“준비해야죠.”
“바로 바꾸실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국내 유통 판 매장 계약은 1년 단위로 진행이 됩니다. SS 편집샵은 폴앤크루를 무기로 좀 더 많은 매장을 확보해 보려고 하는 거고요.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강 대표님.”
“네, 공 부장님.”
“분리는 좋습니다. 기대도 됩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너무 따로 가겠단 생각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째서죠?”
“폴앤크루를 위해서요. 저희 영업부가 아닌 폴앤크루를 위해서. 방금 강 대표님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현재 폴앤크루의 유일 유통 채널은 SS 편집샵이지 않느냐고.”
“네.”
“SS 편집샵에서 폴앤크루를 취급하고 안 하고는 영업부의 소관입니다.”
“…!”
“폴앤크루 없이도 안정적으로 성장을 해 나가던 편집샵 브랜드였습니다. 그렇다고 한정된 컬렉션의 폴앤크루가 지금의 SS 편집샵 토탈 매출에 절대적인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처음부터 강 대표님과 꾸준히 분리된 이후 어떻게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강 대표님은 홍성 영업부가 당연히 폴앤크루의 국내 영업을 책임져야 하는 거로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
“어느 브랜드 본사가 컨트롤 기업을 상대로 이렇게 모든 걸 당당하게 요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구는 브랜드 본사가 아니라 컨트롤 기업 영업부가 하는 겁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며 장 본부장이 말했다.
“강 대표님.”
“네, 본부장님.”
“그때부터 느꼈던 건데… 사업 인수인계를 하는 자리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전 그때부터 계속 영업부가 취조를 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취조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제 오해겠죠?”
“….”
순간 울컥했다.
몇 날 며칠을 시달렸다.
물론 들이받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꾹꾹 참고 있었고.
그런데 그 순간 장 본부장이 내 편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설움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공 부장이 상무님 앞이라 많이 양보하고 있는 겁니다, 강 대표님.”
“무슨 양보요? 장 본부장님. 전 지금 공식적인 업무에 들어가기까지 일주일 이상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시간 할애해 가며 정식 업무 시작하기 전에 인수인계를 끝내려고 하는 겁니다.”
“공 부장은 영업부에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몇 날 며칠을 출근과 동시에 퇴근까지 이곳에 있는 거겠습니까?”
“….”
“공 부장.”
“네, 본부장님.”
“왜 공 부장답지 않게 이렇게 끌려다니나? 인수인계… 얼마든지 공 부장이 주도해서 진행할 수 있잖아.”
답답해하는 그의 표정에서 그동안의 진심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인수인계…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임하는 중입니다.”
“…!”
“저는 그냥 제가 총괄을 하고 있을 당시에 있었던 디테일들을 강 대표님이 물어보시는 대로 알려 주고 있는 중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사업 인수인계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상무님이 직접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상무님이 흔들리는 눈을 하며 날 쳐다봤다.
“폴앤크루는 상무님의 프로젝트입니다. 전 그냥 총괄이라는 이름으로 도왔을 뿐이고요. 한 번 실수를 하고 나니까 두 번 다시는 선을 넘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사실 그 선이라는 게 애초에 어디까지였는지도 잘 모르겠고.”
“…!”
“폴앤크루의 브랜드 콘셉트, 방향, 목적… 전 그냥 제안만 해왔을 뿐입니다. 그걸 결정해 주신 건 어디까지나 상무님이셨습니다.”
상무님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무님께서 외부 인사가 필요하시다고 결정을 내리셨으니까… 그래서 전 그냥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제가 총괄을 하던 당시의 디테일만 강 대표님께 전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습니까?”
화가 치밀어 올라서 딱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참고, 또 참으며 어떻게든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게 과연 지금껏 상무님의 꿈을 실현하게 만들어 준 폴앤크루의 진짜 콘셉튼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겁니다. 과연 폴앤크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홍성이 만든 브랜드였나…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 만든 브랜드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이 발전되어서 무명 아티스트들에게 좀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 그런 취지들을 우리 홍성의 힘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
“강 대표님. 내일도 회사에 나오실 거면 편한 복장으로 해서 영업부로 오십시오. 정장까지 차려입고 나오셔 놓고 원래 출근을 하는 날이 맞았니, 아니니 하는 소리를 하는 거… 그거 좀 우습지 않습니까? 제가 챙겨야 할 업무가 상당히 많이 밀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폴앤크루를 담당했던 팀장을 붙여드릴 테니까, 정 정식 출근 전에 인수인계를 끝내고 싶으시면 편한 복장으로 영업부에 오셔서 담당 팀장 통해서 전달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