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상무님이 뭐가 아쉬워서…
밖에 나온 김에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내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동안 양 차장이 내 옆을 지켜 주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 난 대놓고 이해를 못 하겠단 표정을 짓고 있는 양 차장보다 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을 해봐도 조금 전 차에 오르기 전 상무님이 남긴 말엔 뭔가 뼈가 있는 거 같았으니까.
“….”
기분이 나쁜 걸 떠나서 궁금했다.
분명 뭔가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상무님을 불편하게 만들 만한 행동을 한 게 없다.
그리고 평소 날 대하는 상무님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너무 급작스런 변화였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전사적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고 또 회사에서 해주는 투자 대비, 기대 대비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날 상대로 지금 뭘 하자고 하는 거지?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한번 틀어지니까 불만이 거기까지 번져나가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들어간 회식 자리.
회식 분위기도 콕 집어 어떻게 변했다고 말하긴 힘들었지만, 확실히 상무님이 다녀가시기 전과 비교해 엉망으로 무거워져 있었다.
양 차장이 다시 분위기를 띄워 보기 위해 농담들을 만들어 냈지만, 그 농담을 받아내는 공기 역시 이전과는 달리 억지스러웠다.
그렇게 1차 회식 자리에서만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난 상무님이 놓고 가신 카드를 양 차장에게 전달한 후 대리기사님을 불러 먼저 회식 자리를 떴다.
차 뒷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
장 본부장에게 연락을 한번 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상무님의 상태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장 본부장도 장 본부장만의 개인 시간이라는 게 필요할 건데,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이때에 급한 일도 아니고 그저 나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연락을 한다는 게 우스웠고, 또 그렇게까지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걸 장 본부장에게 들키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하지?
난 상무님이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보다, 그런 상무님의 태도에 집착을 하는 나 자신이 더 싫었다.
로또에 당첨된 이후 지금껏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감 있게 해왔던 직장 생활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일만 하면 된다고… 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어 왔던 나의 신념이 이렇게 흔들리는 건 정말 싫었다.
애써 스스로를 다그쳤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냐고.
네가 해온 직장 생활에 부끄러움이 있느냐고.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고.
그런 다그침으로 인해 난 간신히 회식 자리에서 보였던 상무님의 태도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와 상무님이 서로 다른 입장 차이, 그리고 홍성을 바라봐야 하는 각자의 다른 위치 때문에 둘 사이에 조금씩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출근과 동시에 장 본부장을 통해 상무님의 호출을 받았다.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평소처럼 힘 있는 모습으로 상무님의 방을 찾았다.
날 대하는 상무님의 모습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와 같은 상무님의 모습에서 뭔가를 캐치해 내려는 나의 모습이 더 변해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을 모두 숨기고 평소처럼 회의에 임했다.
“하하하… 그럼 세 번째 광고 영상이 어쩌면 진짜 메인 광고 영상이 되겠네요.”
“처음 기획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진행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나쁘지 않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기대되네요. 그럼 세 번째 광고 영상은 언제쯤 확인을 해볼 수 있을까요?”
“확인은 다음 주 내로 가능하실 겁니다. 다만 편성이 조금 문제입니다. 저나 홍보팀장도 이렇게 광고를 시리즈로 기획해 본 건 처음이라 편성 조정할 때 미리 다른 분량 편성을 킵해 놔야 하는 건지 몰랐습니다. 프로덕션 쪽에서도 저희가 이렇게 빠르게 콘티들을 쏟아낼지 예상을 못 했다고 하고.”
“그럴 수도 있죠.”
“대신 인터넷 쪽으로는 좀 더 일찍 풀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포털 쪽에서 먼저 제의가 들어왔다고 하네요.”
“아직 포털 쪽에 깔린 건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포털 쪽 배너 광고 위치 선점을 하는 과정에서 홍보팀장이 딜을 아주 잘 받았다고 합니다. 저희 쪽 광고 영상 콘티를 살짝 흘렸는데, 그럼 오른쪽 상단 실검 순위 바로 아래에 제이드 광고 영상란을 따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비싸지 않나요? 보통 클릭 한 번에 우리가 얼마씩 줘야 하는… 그런 시스템 아닌가요? 난 그런 거로 아는데…”
“아닙니다. 제이드 인지도를 쉐어하는 거죠.”
“…?”
“일종의 광고 미리 보기를 하자는 겁니다. 해당 포털 사이트에 티브이 광고보다 먼저 제이드 티저 광고 영상을 풀어주는 조건입니다. 아무래도 모델이 제이드다 보니, 그 광고 때문에 해외에서 유입될 유저들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아…”
“포털 쪽 애들도 보통 애들이 아니다 보니… 보통은 상무님 말씀처럼 영상 광고 같은 경우는 계약 종류에 따라 클릭당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건 포털 쪽에서 먼저 제안한 겁니다. 제이드 관련 검색어를 유튜버나 다른 쪽으로 연동시켜 놓고, 자연스럽게 자기네 포털 쪽으로 유입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결국 저희 쪽 광고 영상으로 자기네 포털 광고도 되는 거니까요.”
상무님은 홍보팀이 포털 사이트 쪽과 진행 중인 딜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 자체는 괜찮은 거죠?”
난 재빨리 아이패드를 펼쳐 해당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고, 실검 순위 바로 아래 공간에서 진행 중인 갤럭시 스마트폰 광고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깁니다. 메인 배너보다 사실상 노출 효과는 더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 메인 배너 같은 경우는 동시에 여러 광고를 받아서 접속을 할 때마다 광고가 바뀌는데, 이건 고정이거든요. PC 버전이라서 이렇게 뜨는 거지, 앱 버전에선 이 자리가 더 위로 올라갑니다.”
상무님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해당 포털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고,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위치를 확인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난 전날 내가 했던 걱정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었고, 그래서 그 회의가 더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오케이. 이건 이대로 진행을 하면 될 거 같고…. 저는 오늘 사장님 모시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거 같은데… 본부장님.”
“네, 상무님.”
“저는 오늘 사장님 모시고 점심 먹으러 나가서 그 길로 바로 퇴근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특이사항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장 본부장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장 본부장에게 전해 들었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내가 가진 폴앤크루에 대한 의욕이 자꾸만 상무님을 난처한 입장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내 입장도 참 그래.”
“….”
“영업부를 떠난 마당에 내가 무슨 자격으로 공 부장한테 영업부 내부 계산을 다 보고해 달라고 하겠어?”
“조금만 더 쉽게 말씀을 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래서 손 차장이 뭐 어쨌다는 겁니까?”
“아니 어제….”
장 본부장은 자신도 난감하다며 새끼손가락으로 눈썹 끝을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제는 진짜 상황이 좀 그랬어. 마치 박 이사님이 사장님, 전무님 계신 앞에서 상무님을 한 방 멕이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어 버렸다고.”
“박 이사님이 뭐 때문에요?”
“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말하는 거 아냐. 어제는 상황이 좀 그랬다고. 박 이사님도 말 꺼내놓고 상무님 표정을 보는 순간 아차 싶으셨던 거지. 박 이사님은 당연히 공 부장이 상무님 오케이 사인을 받고 진행했던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야.”
“오케이 하셨잖아요.”
“출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손 차장한테 폴앤크루 영업부장 자리 제시한 부분을 말하는 거야.”
“…!”
“박 이사님한테 그 이야기 전해 듣고 사장님과 전무님은 공 부장의 협상 능력을 칭찬하셨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상무님 입장에선 바보가 되는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아니,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고 하기보다는… 섭섭하지 않으셨을까?”
“아니 그건….”
“알아. 이미 박 이사님한테 보고가 들어갔고, 또 폴앤크루가 아닌 영업부 내부 인사 관련된 그런 디테일까지 상무님께 보고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던 거겠지. 그지? 하지만 공 부장.”
“…네.”
“공 부장도 잘 알잖아, 상무님이 공 부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상무님이라도 섭섭했겠다. 어제 상황이 진짜 좀 그랬어. 상무님은 사장님, 전무님 앞에서 공 부장이 쳐내고 있는 프로젝트 성과를 자랑하듯 설명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박 이사님이 그 칭찬에 힘을 더해주기 위해 공 부장이 1박 2일로 중국 법인 출장 가서 직접 폴앤크루로 턴 오버를 만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하시잖아. 근데 거기서 끝났음 딱 좋았는데, 나나 상무님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손 차장 이야기까지 꺼내시며 폴앤크루 영업부장 관련 이야기를 해버리시니 벙찔 수밖에.”
“하아….”
“공 부장 신경 써야 할 거 많아서 정신없는 거 알지만 나도 조금 아쉽긴 하더라고. 공 부장이 조금만 그 부분에 있어서 상무님 입장도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물론 공 부장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냐. 오늘 봐. 금방 풀리시잖아. 아닌 말로 상무님이 뭐가 아쉬워서 공 부장을 시기하겠어? 사장님 닮아서 한 번씩 생뚱맞은 상황에서 욱하는 모습을 보이시긴 해도 절대 그렇게 옹졸한 분은 아니셔.”
“제가 언제 상무님이 절 시기한다고 했습니까, 본부장님도 참… 모르는 사람이 들었음 저 개념 없단 소리 하겠습니다.”
장 본부장은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의미 없는 웃음을 흘려놓고 날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진짜 공 부장이 오해를 하면 안 돼. 강경준 그 친구는 진짜 그때 내가 한번 말했던 것처럼 상무님이 오래전부터 탐을 내어 오던 친구야.”
“제가 오해하고 자시고 할 부분도 아니죠. 폴앤크루 분리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였고, 또 그건 어디까지나 상무님 권한인데 제가 거기에 무슨 불만을 가지겠습니까?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본부장님.”
“응.”
“제가 폴앤크루에 욕심을 부리고 프로젝트 영업부에 넘겨 달라고 했을 때 본부장님 기분은 어떠셨습니까?”
“기특했어.”
“그렇죠?”
“…?”
“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 진심을 알고 계실 거라 믿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었음 충분히 오해할 만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서로 알지 않습니까. 전사 운영본부의 시스템만으로는 버거운 프로젝트였다는 걸. 이건 실적을 가로채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프로젝트 본연의 가치와 회사의 이익만 보고 제가 떠안았던 겁니다. 손 차장 건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걸 상무님도 잘 알고 계시니까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리셨던 거 아닐까? 안 그래도 어제 회식 자리 가는 동안 상무님이 물어보시더라. 손 차장 건으로 자기가 무시를 받은 거 같아서 기분이 많이 안 좋은데, 자기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거지 않겠냐고. 이런 말씀도 하셨어. 자기는 무능한 선조가 되고 싶지 않다고.”
“…!”
“그런데 이상하게 공 부장이 이순신 같고, 상무님 본인은 무능한 선조가 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오해라고 말씀을 드렸어.”
“….”
“사실 어제 그 회식 자리에선 좀 유치하시긴 했는데…. 난 상무님이 이해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