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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29화 (229/325)

#229

그럼 내일 회사에서 봐요

내가 그 자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상대는 아직 타 브랜드 본사 소속의 사람이었다는 부분 때문이다.

물론 폴앤크루를 맡기기 위해 상무님이 직접 나서서 물밑 작업 중이라는 건 알겠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거기까진 이해를 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계약 조건이 오간 것도 아닌 거 같았고, 그저 이야기만 진행 중인 거 같았는데, 거기서 내게 폴앤크루의 향후 마케팅 방향을 상대에게 설명해 주라는 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상무님의 무리한 요구 같았다.

강경준.

상무님의 대학 선배라고 한다.

함께 유학을 했고, 지금은 파리의 유명 브랜드 본사에서 디자인 전략 오퍼레이션 부서의 수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마케팅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의 디자인 전략 오퍼레이션 부서 수장 정도면 패션 컨트롤 기업의 영업부장 이상급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가 디자인 관련해서 대단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다.

악수를 할 때 전해 받은 그의 에너지와 눈빛만으로도 난 그가 어느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폴앤크루를 브랜드답게 발전을 시키기 위해선 강경준 같은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분에도 백 퍼센트 동의를 하고.

하지만 마케팅이라는 건 전략이고 또 어떻게 보면 기밀인데, 그걸 아직 홍성과 계약도 하지 않은 상대에게 알려줄 정도로 홍성이 급하게 잡아야만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은 솔직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의심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살짝 불쾌해지려고 했고.

그런데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 참 어렵게 산다.’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다.

상무가 하라고 하면 그냥 하면 될 건데, 내가 뭐라고 거기에 의심을 하고 또 조심을 한단 말인가.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나.

그를 잡기 위해선 폴앤크루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겠지….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성적으로 상무님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써 봤지만, 그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꼭 애를 써야만 이해가 될 정도로 난 상무님의 지시가 성급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표정 관리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한 것 같았다.

내가 폴앤크루의 향후 마케팅에 대해 큰 줄기를 설명하는 동안 상대는 집중을 했으니까.

하지만 난 위험하단 생각을 지우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상무님과 장 부장에게 아직 전달하지 않았던 추가 아이디어들은 생략을 해버렸다.

“흐음… 재밌네요. 신선해. 아주 기발합니다.”

상대는 내가 상무님께 보고를 드렸던 내용들만으로도 이미 폴앤크루에 충분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난 더 본능적으로 뭔가를 숨기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 말해 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 정도로 회사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적당한 처세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상무님의 대학 선배이든 뭐든 간에 그건 내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고, 만약 그가 상무님의 기대대로 앞으로 폴앤크루를 맡아 나갈 인물이 된다면 나 더 양 차장과 함께 고민하고 준비한 내용들을 아껴야만 했다.

영업부의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니까.

그렇게 강경준과의 첫 만남을 끝내고 상무님의 방을 나왔을 땐 기분이 완전히 상해 있었다.

실망이라는 감정을 내 안에서 계속 키우고 있었던 거 같다.

따지고 보면 실망이 아니라 서운함이었는데….

모르겠다.

내가 왜 서운해하고 있는 건지.

그냥 최소한 나한테 미리 언급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섭섭함이 컸다.

분명 난 본사 영업부 부장이다.

폴앤크루는 회사가 강요하기 전에 내가 영업부 매출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자발적으로 맡은 프로젝트이고.

그리고 지금은 회사 사정상 주먹구구식으로 임시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서 진행을 하고 있지만, 이 정도 사이즈의 프로젝트라면 엄연히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

어쩌면 내가 영업부를 돌리면서 폴앤크루를 함께 쳐나가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서 어떻게든 폴앤크루의 총책을 빨리 찾아내려는 상무님의 배려일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난 그 배려 덕분에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거 같다.

살짝 헷갈렸다.

내가 지금 폴앤크루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을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런 나의 집착을 회사가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그저 즐거워서 하고 있는 거뿐인데….

갖춰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소스들만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며, 또 그 사람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그 모든 작업이 즐거워서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는 거뿐인데, 그런 나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회사는 내게 딱 여기까지만 요구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회사가 선수 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선을 그어주고 있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회사는 내게 그냥 업계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실력 좋은 영업부장으로서의 역할만 기대하고 있는 것일 수도….

내가 여기서 더 나가버리면 날 컨트롤하기 위해서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나도 몰랐던 내용이야.”

마치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다 알고 있다는 투로 영업부를 찾아온 장 본부장이 날 위로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날 위로하는 거지?

위로를 받을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욕을 얻어먹은 것도 아니고, 징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위로를 받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폴앤크루가 브랜드 네이밍이 되기도 전에 말이야. 처음 내가 상무님 댁에서 상무님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이걸로 브랜드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바람을 넣었을 때. 그때 이미 강경준 그 사람을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야. 쁘띠토널 때에도 본사에서 사람을 보내지 말고 그 사람을 쓰자고 사장님께 추천을 했었는데, 그땐 또 가격이 안 맞았고. 이젠 그 사람이 얼마를 부르더라도 그 사람 실력에 맞게 가격을 맞춰 줄 수 있으니까 한번 해 보자는 거지.”

“오늘 그 자리는 그러면 일종의 면접 같은 거였습니까?”

“으으음… 그냥 편하게 찾아온 거야. 마침 또 휴가받아서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한번 찾아와 달라… 하고 제안을 했던 거지. 아무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제가 기분 나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도 폴앤크루가 하루라도 빨리 분리되어 나가면 편하죠. 안 그래도 요즘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제 몸을 둘로 나누고 싶은 심정이라고요. 하하하….”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꼬아서 생각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서운한 기분이 들었던 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었을 뿐.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고, 또 회사는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그에 합당한 대우와 함께 내가 뛰어다닐 수 있는 판을 제대로 깔아주고 있다.

그렇게 다시 또 며칠이 지나 폴앤크루의 2차 광고 영상이 나왔을 때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폴앤크루의 무리 없는 진행 상황에 만족을 하며 미팅을 가졌고, 퇴근 후에 홍보팀, 웹디자인팀 그리고 기획 1팀 직원들과 다 같이 회식 자리를 가졌다.

모두가 우리들의 힘만으로 홍성에서는 처음 진행해 보는 자체 브랜드 진행을 매끄럽게 쳐내고 있다는 부분에 큰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자부심과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형성된 부서 간의 유대는 때론 회사로부터 받는 인정과 부수적인 성과급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모두가 기분 좋게 취했고, 또 술기운을 빌어 그동안 부서 간 서운했던 부분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회식 자리가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였다.

“어? 상무님.”

“…!”

상무님과 장 본부장이 말도 없이 회식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앉아요, 앉아….”

“이모님, 여기 두 자리만 새로 세팅해 주세요!”

“그냥 지나가는 길에 오늘 회식한단 이야기를 들어서 몰래 와서 계산만 해주고 갈까 했는데, 밖에서 들어 보니까 너무 재밌게 이야기들을 나누고 계셔서 잠시 들어와 봤어요.”

난 내가 앉아 있던 상석을 상무님께 양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무님은 손을 들어 내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한 다음, 양 차장이 앉아 있던 내 맞은편 자리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지 팀장은 눈치껏 자신의 자리를 장 본부장에게 양보했다.

“2차 홍보 영상 예술이던데? 홍보팀장님.”

“네, 상무님.”

“난 솔직히 우리 본사 홍보팀 실력이 이 정도로 뛰어난지 모르고 있었어요.”

“아닙니다. 프로덕션 쪽에서도 콘티 아이디어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영업부가 만들어낸 홍보 콘셉트 자체가 워낙 좋았습니다.”

뭐 때문일까.

내게 보여주는 상무님의 미소는 분명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상무님이 보내주시는 미소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포털 사이트에 올릴 추가 광고 이미지도 훌륭하고. 디자인 팀장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난 당연히 홍보팀장, 웹디자인 팀장 다음으로 영업부 차 팀장에 대한 칭찬도 뒤따라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상무님이 양 차장이 제조해 준 소맥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하셨다.

“조만간 파리에서 폴앤크루 프로젝트를 총지휘할 인물이 올 겁니다.”

“…!”

모두가 얼음이 되는 순간이었다.

장 본부장 역시 애써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몰래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상무님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모르고 계셨어요? 공 부장님 아직 그 이야기는 전달 안 하셨어요?”

“네, 뭐 아직… 확실하게 전해 들은 내용이 없어서….”

“오늘 이야기 다 끝내놓고 갔습니다. 아마 빠르면 내년 2월부터 본사로 출근을 하고, 본사에서 몸을 풀면서 차근차근 폴앤크루 독립을 준비하게 될 거 같습니다.”

“….”

모두들 어떤 반응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서로의 반응만 살피고 있었다.

“뭐 워낙에 실력이 좋은 사람이니까, 다음 시즌 컬렉션 준비하면서 독립 준비까지 함께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맨파워 짜는 데 협조들 잘 해주시고, 혹시라도 폴앤크루로 옮겨서 근무를 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본사 눈치 보지 말고 경험 삼아 자유롭게 지원해 보세요. 본사 복귀는 언제든 원하면 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을 테니까. 파리 현지 메이저 판에서 쌓은 이력이 대단한 분이라 틀림없이 배울 게 많을 겁니다. ”

“자, 자… 건배, 건배!”

어색해진 분위기를 장 본부장이 바로잡으며 술잔을 높게 들었다.

하지만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잔을 따라 드는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그리 밝지가 못했다.

나와 양 차장이 다른 직원들을 대표해서 식당 앞까지 함께 나갔다.

상무님의 차가 식당 앞으로 다가와 섰고, 장 본부장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상무님이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아 참, 공 부장님.”

“네, 상무님.”

상무님은 그 의미를 모를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말없이 날 쳐다보기만 했다.

순간 난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하는 생각에 혹시 내가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 만한 행동을 한 게 뭐가 있을지 되새겨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무님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내게 말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사장님, 전무님 두 분 모두 폴앤크루 광고 영상을 보시고는 너무나 흡족해하셨어요.”

“…?”

“정말 대단해. 보면 볼수록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럼 내일 회사에서 봐요.”

상무님이 자리에 오르자 장 본부장이 문을 닫았고, 나와 살짝 눈만 마주친 뒤 상무님이 앉은 자리 바로 앞자리 조수석에 올랐다.

그리고 양 차장이 멀어지는 그 차 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게 물었다.

“방금 그 말… 비꼬는 거 아니겠죠?”

“…설마요.”

“그렇죠? 아니겠죠?”

“….”

“근데 이상하게 한번 비꼬고 가는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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