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도둑놈 새끼들아!
“방탄소년단이요?”
며칠 뒤 본사 소회의실.
전사 운영본부 쪽과 함께 상무님, 박 이사가 참석한 폴앤크루 마케팅 관련 전사적 회의가 열렸다.
영업부에선 나와 양 차장이 참석을 했고, 전사 운영본부에선 장 본부장과 이훈성 차장이 참석을 했다.
홍성의 엘리트 핵심 부서 전사 운영본부.
그 전사 운영본부 안에서도 이훈성 차장은 단연 최고의 엘리트였다.
이훈성 차장은 자기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투로 재차 물었고, 양 차장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다시 말했다.
“꼭 방탄소년단이라고 한 게 아니라 최소 지드래곤이나 방탄소년단 정도 급이 되는 모델을 써달라는 겁니다.”
이 차장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한두 푼 하는 애들도 아니고 예산이 이렇게 줄어든 상황에서 그런 애들을 쓸 돈이 있습니까? 그런 모델이 필요할 정도로 폴앤크루의 컬렉션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요구를 하셔야죠.”
“그럼 지금 전사 운영본부가 영업부에게 하고 있는 건 현실적인 요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양 차장의 싸움닭 기질이 슬슬 올라오는 타이밍이었다.
“아무런 투자도 안 해주시면서 무턱대고 매출만 올려 달라고 하시면 저희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기… 양 차장.”
“그나마 이제 막 론칭한 브랜드로 지금 이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봐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기적을 지금 누가 만들었고, 유지하고 있습니까? 유튜버 로즈마리를 통해서 브랜드 노출시키고 또 그사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린 건 저희 영업부 아닙니까? 근데 폴앤크루는 엄밀히 말하면 영업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전사 운영본부의 프로젝트입니다. 영업부에게 마케팅을 요구할 게 아니라, 영업부가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홍성 영업부 실정에 맞는 마케팅을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그게 프로젝트를 기획한 쪽에서 해주셔야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넓게 보면 당연히 홍성 인터의 첫 자체 브랜드 론칭 프로젝트이죠. 그래서 공동의 목표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부 입장에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폴앤크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폴앤크루 마케팅 자체를 완전 저희 쪽으로 다 밀어버리시면 곤란하죠.”
“그 밀었다는 표현은 정말 좀 그렇네….”
나나 양 차장보다 입사 기수가 훨씬 더 빠른 이 차장.
그는 회의가 시작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결국 양 차장에게 말을 놓았다.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고 모인 자린데, 그렇게까지 공격적으로 회의에 임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 다 좋은데, 그 까칠한 말투 좀 어떻게 해 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상무님, 이사님도 계신데 조금 살살 하자.”
하지만 양 차장은 침착했다.
이 차장이 하는 하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까칠하게 굳힌 채 입을 열었다.
“제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니까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다만 전사 운영본부가 다시 예전의 그 전사 운영본부의 스타일로 돌아가고 있는 거 같아서 경계를 하고 있는 거뿐입니다.”
양 차장의 말에 장 본부장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상무님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시며 회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으셨다.
다리를 꼬며 상무님이 물으셨다.
“예전의 그 전사 운영본부의 스타일이요?”
상무님의 질문에 양 차장은 화를 살짝 누르며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폴앤크루로 집중될 예산이 창고 부지 매입 건으로 크게 줄었다는 건 저희 영업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업부는 영업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 부서입니다.”
“그럼 우린? 우린 뭐 브랜드 론칭을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 부서야? 우리도 처음이야. 다 같이 처음이니까 힘을 합쳐 보자는 거 아니냐고.”
이 차장이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받아쳤고, 옆에서 장 본부장이 이 차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뻗어 그를 저지했다.
“그런데 왜 저희가 제시하는 방법에 대해선 무조건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내용이니 안 된다고만 하시는 겁니까? 이건 뭐 아예 회의 시작 전부터 전사 운영본부가 듣고 싶으신 답을 미리 정해놓고 저희가 어떻게든 시장을 뚫어보겠다는 대답을 유도하고 계시는 게 아니냐는 말이죠.”
“….”
“이게 무슨 회의입니까? 예전 전사 운영본부 스타일의 아무런 결론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말 그대로 회의를 위한 회의일 뿐인 거지. 안 그렇습니까, 본부장님.”
장 본부장은 잠시 침묵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박 이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의 전사 운영본부의 유관 부서 합동 업무 스타일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게 바로 접니다. 그건 이사님도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업부의 고충을 제가 모를 거 같습니까?”
박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 본부장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오랫동안 홍성 영업부의 에이스로 뛰었던 사람이 바로 장 본부장이니까.
“폴앤크루는 전사 운영본부만의 프로젝트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자체 브랜드 론칭은 엄밀히 말해 홍성의 미래 사업이죠.”
“그럼….”
양 차장이 허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미래 사업부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산상 지금 당장 폴앤크루를 분리경영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말이죠.”
“일을 위한 일을 하지 말자… 그게 조금 전 양 차장이 예전의 전사 운영본부까지 들먹이며 하고 싶었던 말 아닌가?”
장 본부장의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왔다.
“그런 부서를 새로 만드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새로운 부서는 그냥 만들자는 말만 떨어지면 뚝딱 하고 알아서 만들어지나? 결국은 전사 운영본부하고 영업부 쪽에서 맨파워가 차출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까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겁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하시면 결국은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죠, 지금.”
양 차장이 토스를 아주 예쁘게 해주었다.
난 그냥 살짝 날아서 비어 있는 자리에 적당한 파워로 스매싱을 하기만 하면 됐다.
손을 들어서 양 차장을 진정시켜놓고 내가 말했다.
“폴앤크루 매출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투자 대비 매출이 잘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우리끼리 문제를 만드려고 하십니까? 이 차장님.”
“네, 부장님.”
난 장 본부장의 시선을 피해 이 차장에게 질문했다.
“모델 홍보가 아직은 무리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좀 더 솔직하게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솔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예산이 없습니다, 예산이.”
“그럼 조금 전에 갖춰진 컬렉션이 많이 없다는 말씀은 폴앤크루가 모델 홍보를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뭐. 2차 컬렉션도 곧 나올 거고, 계절상 1차 컬렉션이 이월로 빠져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예산만 커버가 되면 해주실 수 있단 말씀이시죠?”
“그야 당연하죠. 예산이 문제지 그것만 커버가 된다면 못 해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장 본부장이 이 차장을 향해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보다 내 입이 조금 더 빨랐다.
“그럼 이사님.”
내가 박 이사를 불렀고, 상무님과 박 이사가 날 쳐다보는 순간 장 본부장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박 이사가 편하게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영업부 예산으로 진행하시죠.”
이 차장은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장 본부장은 그런 이 차장을 향해 답답하다는 듯한 한숨과 눈빛을 보냈다.
“예산 문제라고 하시면 영업부 예산으로 모델 광고를 진행하겠습니다.”
상무님 역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리고 계셨다.
그리고 그제야 박 이사는 내가 지금 전사 운영본부를 상대로 뭘 요구하려고 하는 건지 눈치를 챈 듯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중에 폴앤크루가 분리경영이 되면 저희 영업부 입장에서는 지금과는 다르게 폴앤크루를 사입해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다른 브랜드들처럼 말이죠. 그렇게 하자고 분리경영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그걸 조금 앞당겨 주시죠. 영업부 운영 예산으로 모델 광고 진행하겠습니다. 그 비용만큼 마진으로 차감시켜 주십시오.”
“…!”
“85퍼센트. 홍성 영업부가 폴앤크루 측에 제안하는 폴앤크루의 마진입니다. 제작에 들어가는 마진율보다는 높게 측정해 드렸습니다.”
“하아… 공 부장. 진짜 이건 좀 아니다.”
장 본부장이 입맛을 다시며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시켜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국내 시장만 보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홍성의 미래 사업입니다. 본사 영업부가 책임지고 국내 시장에서 제대로 띄워드리겠습니다. 국내에서 먼저 떠야 해외 시장 개척이 용이한 거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더 크게 봐주시죠.”
전사 운영본부와의 전사적 회의(엄밀히 말해 폴앤크루의 마진 협상)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소회의실을 나서며 나와 양 차장은 다른 사람들 몰래 소심한 하이파이브를 했다.
“야, 공 부장! 양 차장!”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장 본부장이 씩씩거리며 영업 기획부 사무실을 찾았다.
난 책상에 앉은 상태에서 재빨리 자세를 숙여 몸을 숨겼다.
다행히 양 차장이 먼저 걸렸다.
“일루 와. 숨어 있지 말고 일루 와.”
파티션 뒤에 숨어 있던 양 차장을 발견한 장 본부장.
그는 숨을 한번 길게 내어 빼며 파티션 뒤에 숨어 있던 양 차장을 향해 들고 온 서류철을 자기 쪽으로 흔들었다.
사람들 눈치를 살피다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양 차장.
“너네 진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공 부장 너도 거기 그렇게 숨어 있지 말고 이리 와!”
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장 본부장을 향해 최대한 해맑은 미소를 보냈다.
“본부장님이 여긴 어쩐 일로….”
“웃지 마라.”
“하하하… 본부장님도 참….”
“너네 이 자식들아… 진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가 나한테 이럴 줄은 몰랐다.”
“사랑합니다, 본부장님.”
양 차장이 재빨리 장 본부장의 허리를 감 싸안았다.
“놔, 이 새끼야.”
“사랑합니다, 본부장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양 차장이 장 본부장을 옴짝달싹 못 하게 꽉 껴안고 있는 틈에 내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가 장 본부장이 들고 온 서류철을 낚아챘다.
“여윽시….”
“두고 보자, 이 새끼들아.”
장 본부장은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그 씩씩거림 뒤에 숨겨진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이 대리.”
“네, 부장님.”
“아, 뭐 하고 있어요?”
“네?”
“간만에 본부장님 내려오셨는데… 얼른 가서 커피라도 한 잔 가져오세요.”
“아… 네, 넵!”
“안 마셔, 이 도둑놈 새끼들아!”
“라테. 우리 본부장님은 영업부에 계실 때부터 줄곧 라테 아니면 안 마시셨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제대로 한 잔 내려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