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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13화 (213/325)

# 213

집이 좀 산대?

안 차장 이야기를 상무님과 장 본부장 앞에서 괜히 꺼냈나 싶기도 했다.

뒷담화를 할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취미에 안 맞는 일이니까.

“왜 그때 안 차장이 모리엘츠 건으로 베이징에 넘어가 있었을 때, 저는 휴가 쓰고 있었잖습니까.”

“그랬지.”

“하루 한두 번 정도 메일로 상황을 보고받았었거든요. 저야 아직 중국 시장에 대해서 제대로 잘 모르니까 모리엘츠 판매가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라온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안 차장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해서 원래 그런 건가 하고 말았죠. 휴가 나가 있는 상태에서 디테일을 뽑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더라고요.”

“나랑 상무님도 그랬지. 확실히 중국 시장이 크긴 크다… 인구수가 많으니까 그만큼 돈 많은 사람들도 많고, 그런 만큼 또 그 정도 가격 되는 물건이 쉽게 잘 빠지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

난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내가 지은 미소에 장 본부장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더라고요.”

“…그럼? 아까 말한 그 배경이라는 게 혹시… 아, 그래 맞다!”

장 본부장은 뭔가 기억나는 게 있다는 투로 손가락을 튕겼다.

“예전에 안 차장이 상하이에 자기 명의의 집이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뭐랬더라… 그래서 자기는 중국 법인 갈 때 비자 신청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면서.”

장 본부장의 말에 상무님은 입술을 동글게 말아놓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하긴 상하이에 집이 있을 정도면 보통 빵빵한 집안은 아니겠네. 집이 좀 산대?”

“그렇게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 상하이에… 그것도 와이탄이라고 했던가요? 제가 듣기론 그 동네가 상하이 안에서도 땅값이 제일 비싸다고 하던데, 그런 동네에 자기 명의의 아파트가 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안 차장 걔는 뭐 회사에 놀러 나오는 건가? 그냥 취미 생활 비슷하게.”

장 본부장의 농담에 상무님이 피식하고 웃으셨다.

“그럼 모리엘츠 베이징 전시 때 올린 매출에 안 차장 부모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단 뜻이야?”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난 두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렇게 안 차장을 오해하지 말란 뜻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안 차장 본인 사업도 아니고 회사 일에 부모님 도움을 받겠습니까. 그리고 안 차장 성격상 부모님이 도와주겠다 하셨어도 절대 부모님 도움 같은 건 안 받았을 겁니다.”

“그럼 아까 안 차장 배경 이야기는 도대체 뭐야?”

“캄보디아에서 보낸 휴가 마지막 날에 중국 법인에 있는 손 차장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더라고요.”

“손 차장이?”

“네. 도대체 안 차장의 진짜 정체가 뭐냐면서요.”

“…?”

상무님과 장 본부장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내 입술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나도 캄보디아에서 손 차장의 국제 전화를 받고 무척이나 의아했었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리조트 호텔 안 야외 수영장에서 강혜선과 함께 호캉스를 즐기고 있다가 받은 전화였다.

선베드에 누워 야외 수영장 바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샴페인을 들고 강혜선이 수영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한 통의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 번호만 보고 중국이길래 난 안 차장의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 차장이 아닌 손 차장의 전화였고, 손 차장은 무척 재밌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날 떠보기 시작했다.

-점심 먹었어?

“저 지금 휴가 나와 있습니다.”

-아, 진짜? 쏘리, 쏘리.

“괜찮습니다.”

-지금 어딘데?

“와이프랑 캄보디아에 와 있습니다.”

-좋은 데 갔네… 진짜 미안. 휴간 줄 몰랐어.

“괜찮다니까요. 근데 뭐 때문에….

-아니, 안 차장 말이야. 도대체 안낙현이 그놈 진짜 정체가 뭐야?

“네?”

-안 차장이 우리 법인 현지 직원 두 명 헬퍼로 데려간 건 알고 있지?

“…네.”

당시 안 차장에게는 현지 직원이 필요했었다.

그냥 어설프게 중국말이 가능한 직원 말고 중국 현지 직원.

안 차장 역시 중국어는 거의 네이티브에 가깝게 할 수 있었기에 애당초 통역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센젠에 있는 중국 법인을 통해 그곳 현지 직원 두 명을 헬퍼로 빌렸었고, 그 현지 직원 두 명을 컨트롤할 해외 영업부 직원 두 명과 함께 모리엘츠 베이징 전시를 진행했었다.

-거기 갔다 온 우리 쪽 현지 직원들이 그러더라고. 안 차장 꽌시가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

“…그래요?”

-첫날이랑 둘째 날은 전시 행사를 연 백화점 사장이 자기 가족들 데리고 와서 왕창 매출을 올려줬고, 또 청두에 있는 인타이 사장 아들이 와서 또 어느 정도 매출을 올려줬는데, 그다음부터는 시들시들했던 모양이야.

나보다 당시 상황을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손 차장이었다.

-그러다 워크인으로는 도저히 추가 매출을 못 올릴 거 같다고 판단을 했던지, 그때부터 베이징에 있는 자기 꽌시들한테 연락을 돌렸나 봐.

“에이… 한두 푼 하는 브랜드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모리엘츤데 아무리 인맥이 많아도 그런 걸 무슨 수로 선뜻 사줍니까? 기본 컬렉션도 하나 잡았다 하면 기본 몇천인데.”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게 궁금해서 전화를 건 거잖아.

“….”

-우리 쪽 현지 직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런 꽌시를 갖고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도 그냥 웃으면서 대답을 안 해주더래.

“…그래요?”

-안 차장 꽌시들이 장난 아니게 많이 사 갔대.

“확실한 겁니까? 제가 들은 거랑은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요?”

-내가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게 그냥 일반 워크인에 의한 매출이 아니라 안 차장 인맥에 의한 매출이었다고요?”

-직접 한번 물어봐.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궁금해 미치겠다고. 그리고….

“네.”

-나도 여기 와서 알게 된 건데 말이야. 지금 센젠 법인이 뚫어놓은 유통 채널 있잖아.

“…네.”

-여기서 안 차장이랑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는 현지 직원들 말로는 현재 센젠 법인이 뚫어놓은 유통 판 채널들 중에 베이징, 상하이 쪽에 있는 네임드 유통 판들은 거의 대부분 안 차장 꽌시로 잡았던 거라네?

“…!”

-앞뒤 상황을 다 따져 보니까 조금씩 이해가 가는 거야, 나도. 당시 안 차장이 중국 법인을 비리 건으로 고발해서 초토화시킬 수밖에 없었겠어. 정작 중요한 일은 고작 대리를 달고 있었던 안 차장이 다 한 거나 다름이 없는데, 위에 사람들이 그걸 자기 실적으로 돌리면서 인간 같지도 않게 일을 하니까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겠어?

“….”

-보기하고는 다르게 곰이야, 곰. 난 안 차장이 하도 까불랑까불랑해서 뺀질이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겉보기하고는 다르게 법인 생활 하는 지난 4년 동안 거의 곰처럼 참고만 있었더라고. 중국 쪽에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안 차장이 가진 꽌시가 너무 다양하니까 안 차장을 자기들 입맛대로 이용해 먹고 정작 그 실적은 자기들이 다 가로채고… 그때만 해도 안 차장이 어렸잖아. 경험도 많이 없었을 거고… 계속 참으니까 끝까지 참을 거라고 착각들을 했던 거지. 그러다 안 차장이 자기가 가진 꽌시 연결해서 한국의 유아 아동복 브랜드를 중국으로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다 진행시켜 놨는데, 그걸 못 하게 하니까 결국 빡이 친 거지.

“아….”

-중국 생활 오래 했잖아, 안 차장.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와서 현지인들이랑 직접 부대껴 살아 보면 알겠지만, 얼굴 깎이는 짓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 여기 사람들이. 체면이 전부거든. 특히 가진 것 좀 있고 배웠다 싶은 사람들은 체면에 목숨까지 걸어. 그런데 안 차장 입장에선 회사 일로 자기가 가진 꽌시 다 사용하고 한국에서 유아 아동복 브랜드를 가져오겠다고 중국에 있는 자기 지인에게 밑밥을 다 깔아놨는데, 거기다 안 차장 지인은 준비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자기 꽌시한테 실수를 한 거잖아, 안 차장 입장에선 말이야.

“그렇죠.”

-그런데 그게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자기들 뒷돈 생길 거리가 아니니까 못 하게 막아버린 거여서 더 빡이 쳤던 거지. 안 차장이 한 고발로 초토화되기 전까지 여기 센젠 법인은 그냥 말 그대로 비리 천국이었어. 중국 현지 직원들한테 그동안 우리 주재원들이 어떻게 일해 왔었는지 듣는데, 듣는 내가 다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더라고.

반은 알고 있었고 다른 반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센젠 법인이 뚫어놓은 베이징, 상하이 쪽 메인 유통 판이 안 차장의 꽌시를 통해 뚫린 채널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숨길 일이 아닌데, 왜 그런 걸 숨겼을까?

오히려 중국 법인이 초토화됐던 초기에 이런 진실을 밝혔더라면, 그래서 그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렸더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원래부터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손 차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뒤부터는 더 안 차장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다음 안 차장에게 슬쩍 물어봤다.

나도 궁금했으니까.

“그… 이번에 베이징 전시에서 올라온 매출 중 많은 부분이 안 차장님 지인들에 의한 매출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건 또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저도 그 정도 안테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안 차장은 싱긋이 웃기만 하며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궁금한데… 저렇게 뭔가를 숨기는 모습을 보이니까 오기로라도 더 알아내고 싶긴 했는데, 그래선 안 될 거 같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비록 자신의 개인적인 꽌시를 회사 일에 갖다 붙였지만, 해사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준 행동이었다.

책임을 묻는다는 건 말도 안 될뿐더러, 본인이 밝히기 불편한 부분이라면 굳이 꼬치꼬치 캐물어서도 안 되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베이징에서 올라온 매출이 워크인이 아니라 안 차장님 지인들에 의한 매출이라면… 내년에는 올해만큼의 매출은 기대하기 힘들겠네요.”

“음… 지켜보겠습니다. 모르죠, 또. 올해보다 더 올릴 수도 있을지.”

“…?”

“제가 제 중국 친구들한테 이런 일로 부탁이란 걸 잘 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예전에 법인 생활 하면서 제 인맥을 너무 가치 없이 써버렸다가 크게 후회를 한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가급적….”

“흐음….”

“그런데 이번에도 또 어쩔 수 없이 부탁이란 걸 했고, 또 마침 친구들이 다들 평소 모리엘츠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인지라. 제가 중국 쪽 전시를 담당하게 됐다고 하니까 하나같이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 친구분들이 하나같이 다 모리엘츠를 안다?”

이미 난 그 사실만으로도 놀랐다.

내 친구들 중에는 모리엘츠를 아는 놈이 없을 거다.

아니 없다.

“중국 전시 잡히면 바로 일정을 알려달라고 하네요. 앞으로는 직접 파리까지 갈 이유가 없겠다면서… 이번엔 좀 급하게 제가 연락을 해서 오지 못한 친구들도 많습니다. 특히 다른 성에 사는 친구들한테는 일부러 연락을 안 했죠. 근데 이 친구들끼리 한국으로 따지면 단톡방 같은 중국 웨이신 단체 채팅창을 만들어서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거기다 모리엘츠를 구입했던 친구가 제 이야기를 해버렸어요.”

“친구분들이 다들… 재력이 상당하신 분들인가 봅니다?”

“어쩌다 보니 그런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제 주변에.”

“….”

묻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는지.

어쩌면 그때 내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건 그런 강력한 꽌시가 있음에도 왜 홍성에서 나 같은 놈에게 장난 섞인 무시나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가 아니었을까.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냥 들은 대로 상상하기로는, 안 차장은 정말 어마어마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모리엘츠를 친구 연락 한 번 받았다고 바로 달려와서 사 주는 친구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그런 친구가 여럿 된다는 건… 안 차장 역시 그 정도 레벨은 된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긴.

그만큼 모리엘츠가 만만했으니 그 본점 앞에서 햄버거를 뜯으며 매장 안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겠지.

“알겠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궁금하세요?”

“뭐가요?”

“부장님 표정 보아 하니까 딱 그런 거 같은데?”

“아, 또 뭐요?”

“제가 가진 꽌시에 대해서….”

“그닥….”

“그닥?”

“뭐 궁금하다고 물어보면 대답해주실 겁니까?”

“크흐… 드디어 저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됐습니다.”

“에이… 궁금하신 거 맞는데?”

“아니라니까요? 진짜 괜찮아요. 가서 일 보세요.”

“좋습니다. 그럼 저녁에 마치고 간만에 소고기 한번 쏘세요. 그럼 제가….”

“괜찮다니까요? 안 차장님의 개인사 아닙니까. 그냥 이번에 베이징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겠습니다.”

“진짜 요즘 좀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장가를 가셨다고 해도 제가 중국에서 이 정도 실적을 올려왔음 선수 기 살려 주는 차원에서라도 먼저 술 한잔 하자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진짜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 고과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좋습니다. 곱창. 곱창으로 합의 봅시다. 그 밑으로는 저도 좀 힘듭니다.”

“가서 일 보시라니까요?”

“하아… 너무하네, 진짜. 좋습니다, 좋아요. 삼겹살. 삼겹살 됐습니까? 진짜 싸게 치는 거예요.”

“안 차장님. 제가 이번에 와이프랑 캄보디아 다녀와서 결심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 와이프한테 애를 하나 선물해 줘야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노력을 해야지. 제가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게 맨정신으로 하는 노력보다 술이 한잔 살짝 들어간 상태에서 하는 게 좀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전 맨정신으로도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살게요. 응원하는 차원에서.”

“죄송합니다.”

“소고기.”

“….”

“제가 삽니다, 소고기. 됐습니까?”

“한웁니까?”

“하아… 진짜, 씨… 진짜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이 아닌데….”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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