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12화 (212/325)

# 212

마이웨이 하는 건 넘사벽이에요

-죄송합니다. 계속 이랬다저랬다 해서…

“아닙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 학교 문제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재 월세를 돌리고 있는 아파트의 세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이미 두 달 전쯤에 재계약 문제로 내가 먼저 연락을 했었다.

내 입장에선 세입자가 재계약을 할 건지, 말 건지를 알아야 다음 세입자를 받을 준비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그때까지도 상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난 약간의 손해가 나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 주겠으니 천천히 고민을 해보라고 말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애 학교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 집에 월세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어디 돈이 없어 집을 못 구하겠나.

그 동네에 월세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동네에 자가 주택을 한 채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애들 학교 문제 때문에 그 동네로 유입된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렇다고 보면 된다.

-저희가 2년 더 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네.”

-상황 보고 애 학교가 지금 준비 중인 학교로 배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조율하면 되죠. 월세 빼는 게 어려운 단지도 아니고, 최소 석 달 전에만 미리 말씀해주시면 부동산 통해서 새 세입자 받으면 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는 사람은 드문데….

“별말씀을요. 혹시 뭐 사시는 데 불편한 점 같은 거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사람 보내서 새로 수리할 건 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거보다… 월세를….

“그냥 지금 주시는 대로 주세요.”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시세가 많이 올랐는데….

“괜찮습니다.”

지난 2년간 가격이 제법 많이 올랐다.

내 일상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언제부턴가 난 더 이상 내 명의의 아파트를 처음 매입했을 때처럼 수시로 부동산 시세를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씩 회사 일에 치이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스마트폰 어플로 부동산 시세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잡아 왔었다.

아무리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집값 때려잡기에 나섰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상품들은 하나같이 그런 정부 퍼포먼스를 비웃을 수 있는 상품들이었다.

연금처럼 생각하고 사 뒀던 강남의 아파트는 지난 2년 사이 3억 조금 넘게 올라 있었다.

물론 부동산이라는 게 팔려야 돈이기에 시세만 놓고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시세대로 평가를 하자면 지난 2년 동안 난 매달 꼬박꼬박 받아 오던 월세까지 다 포함해서 강남 아파트 한 채 만으로 3억 8천만 원에 가까운 재미를 봤다.

내 삶의 방향이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 아파트다.

그리고 내가 겸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파트고, 또 누구 앞에서든 당당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파트다.

그 정도의 의미이면 충분했다.

시세가 올라서 월세 가격도 덩달아 조금 오른 걸로 알고 있다.

그래 봤자 월에 20만 원 정도 더 받을 수 있을 텐데, 난 그 20만 원보다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조금이라도 더 길게 살아서 집에 손 바뀜 현상이 덜 일어나게 만들고 싶었다.

살고 있는 사람이 나가고, 그래서 새 세입자를 받으려면 최소한 도배 정도는 새로 해줘야 하는데, 거기에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월세 밀린 적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주말이나 국가 공휴일에 월세 넣는 날이 걸리면 하루 이틀 정도 미리 입금을 해주는 무척 편한 세입자였다.

그런 세입자를 상대로 월 20만 원 정도라면 월세 밀릴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안심에 대한 금액이라 생각하고 얼마든지 양보를 할 수 있었다.

* * *

“그럼 폴앤크루 2차 컬렉션은 이 샘플대로 뽑겠습니다.”

장 본부장과 함께 오전 내내 상무님 방에서 폴앤크루 2차 컬렉션 건으로 미팅을 가졌다.

그 미팅 자리에서 장 본부장은 2차 컬렉션뿐 아니라 폴앤크루 자체 쇼핑백 제작에 대해 상무님의 승인을 받아냈고, 그 쇼핑백 제작은 현재 장 본부장이 눈여겨보고 있는 업체에 맡기기로 됐다.

쇼핑백만을 전문적으로 제작 업체는 아니고 대형 행사의 무대 설치 디자인까지 하는 종합 디자인 외주 업체인데, 장 본부장은 쇼핑백 제작부터 시작해 몇 차례 그들의 실력을 검증해 보고 그 업체를 통째 매입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아직은 폴앤크루 단독 매장 오픈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벌써부터 자체 쇼핑백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의미 없는 투자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돈 들어갈 구멍은 최대한 막아놓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게 맞는 거다.

하지만 폴앤크루의 디자인팀 섭외를 위한 투자라는 부분에서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겨 보는 것 역시 크게 나쁘지는 않겠다는 게 상무님의 판단이었다.

업체 선정이라는 게 외주를 주는 거래처 업체라면 모르겠지만, 그 업체를 매입할 의도라면 말이 달라진다.

꼼꼼하게 장기적으로 그들의 실력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었다.

폴앤크루 건으로 인해 난 영업이라는 한정된 포지션에서 사업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장 본부장의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고 있는 거긴 하지만, 신사업에 어떻게 예산이 측정되는지, 재무 리스크팀으로 하여금 사업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이월 보류는 어떻게 시키는지, 그리고 측정된 예산이 어떻게 집행되며,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예산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등을 장 본부장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배워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또 재밌게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상무님이 나와 장 본부장보다 훨씬 더 나았다.

어쩔 수 없이 아직은 나와 장 본부장에 비해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지지만, 확실히 상무님은 홍성의 전체 틀을 우리보다 더 디테일하게 보고 계셨고, 경험은 부족하지만, 그 디테일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는 배짱이 있었다.

배짱…

이걸 배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는 사실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계산이 확실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좋아 보이는 걸 수도 있고, 아님 홍성의 미래 사업으로 사장님께서 전격 지원을 해주시기 때문에 그 응원에 떠밀려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건 상무님은 더 이상 예전처럼 뭔가를 결정할 때에 망설이거나 우리의 생각에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다.

예전 같았으면 몇 번이나 귀찮게 물었을 거다.

‘이거 확실해요?’, ‘이렇게 해도 진짜 괜찮겠죠?’, ‘보통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다른 회사들도 이렇게 하나요?’ 등등…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도 뭔가를 결정할 때엔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두려워했고, 또 불안해했었다.

하지만 상무님의 모습에서 더 이상 그런 불확실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안 돼도 내가 다 책임을 지겠다는 듯한 확고한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난 그런 상무님의 변화 뒤에 장 본부장의 뒷받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정리하는 거로 합시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잠깐만, 공 부장님.”

“네, 상무님.”

난 미팅에 썼던 아이패드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상무님의 부름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부터 출근시켰다고요?”

“네, 본인이 그러고 싶다고 해서…”

“어때요?”

상무님은 다리를 꼬아 앉으며 물었다.

그의 얼굴엔 여유가 있었다.

“잘할 거 같아요?”

“잘할 겁니다.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승부욕이 강한 거 같습니다.”

“운동을 해서 그래요. 수영을 꽤 오래 했어요.”

“아….”

“근데 이 수영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개인전이잖아. 팀워크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죠.”

“다른 직원들이 불편해하지는 않던가요?”

당연한 걱정이었다.

“나는 그 불편함이 참 싫었거든.”

“….”

“내가 처음 홍성에 들어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날 혼내주는 사람이 전무님 말고는 없었다는 거였어요.”

“흐음….”

“분명 실수도 많이 저지르고 또 그 실수로 인해 팀 전체가 야근을 해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걸 내색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 난 그런 분위기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실수니까요. 말 그대로 실수….”

내 말에 상무님은 미간을 좁히셨고, 장 본부장님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상대가 상무님이셨기 때문에 당시 팀원들이 조심했던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상무님도 사람이고 또 신입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큰 내색을 못 했을 거고요.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팀 전원이 야근을 하게 되면 어느 누구보다 그 실수를 만들어낸 당사자 마음이 가장 불편할 거란 걸… 그들도 각자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걸까요?”

“그럼요. 상무님이 하고 계신 걱정…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무님이 생각하고 계신 것보다 홍성 직원들은 훨씬 더 세련되고 또 당당합니다.”

“…!”

“다들 본인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리고 그게 또 사장님께서 직원들에게 주문하시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죠. 어떻게 직원들이 다른 신입처럼 민규 씨를 똑같이 편하게 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규 씨라면… 현명하게 잘 극복해 나갈 겁니다.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도 있고 또 욕심도 많아 보였습니다.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겠죠. 알아서 잘할 겁니다.”

상무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웃으셨다.

“어디로 배정했어?”

장 본부장이 물었다.

“해외 영업부로요.”

“영업 마케팅부에서 먼저 일을 가르쳐 보지 그랬어? 그래도 영업 마케팅부가 하고 있는 브랜드 컨트롤이 따지고 보면 홍성의 오리지날인데.”

“처음부터 거기에 넣어놓으면 머리 아픈 정치가 시작될 겁니다.”

“아… 김 차장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김 차장님 입장에서는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겠어.”

“회사에 와서 해야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부터 제대로 가르쳐놓고, 그런 마인드가 어느 정도 몸에 배면 그때 영업 마케팅부 쪽 업무를 가르쳐보겠습니다.”

“그렇게 김 차장님이 쓸데없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무님께서 꼭 김 차장님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실 거 같습니다. 하하하.”

상무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으셨다.

“왜요? 김 차장님이 약간 그런 스타일입니까?”

“틈만 안 보여주면 됩니다. 제대로 압박만 해놓으면 자기 몫은 확실하게 해주는 사람이죠.”

“그런 건 또 몰랐네.”

“모르셔도 되는 부분입니다, 상무님. 하하하… 김 차장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런 스타일이 필요할 때도 있고.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해외 영업부면… 안 차장님 계신 곳 아닙니까.”

“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던 장 본부장.

이내 씨익하고 웃으며 날 바라봤다.

“안 차장이라… 아무리 바닥부터 제대로 가르친다고 해도 너무 잔인한 거 아냐? 붙여도 왜 꼭 그런 돌아이를 붙였어?”

“돌아이요? 왜 안 차장님이 돌아입니까?”

“정상은 아니죠. 중국 법인을 초토화시켰던 놈 아닙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모리엘츠가 뭔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세계 최정상급 하이엔드라는 걸 뻔히 잘 알면서도 그 본점 앞에서 햄버거를 먹었던 놈입니다. 그것도 매장 구경하겠다고 기다리면서. 절대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죠. 겁이 없기로는 안 차장한테 공 부장은 명함도 못 내밀 겁니다.”

“근데 어째 사고 친 것들이 하나같이 다 결과론적으로는 우리 홍성에 도움이 된 것들뿐이네요?”

상무님의 말에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겁 없는 걸 어떻게 안 차장한테 갖다 댑니까, 본부장님도 참… 안 차장 마이웨이 하는 건 넘사벽이에요. 아무도 못 이깁니다. 그걸 어떻게 이깁니까? 중국에서 모리엘츠 매출 올린 거 보세요. 그거 아무나 못 합니다.”

“그래, 맞다. 그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마케팅 예산을 많이 잡아 줬어도 그렇지… 중국 진출 첫해에 그런 매출을 올렸다는 건 사실 너무 예상 밖이었잖아. 모리엘츠 측에서도 몇 번이나 지저스를 외쳤고.”

“내년에는 아마 더 많은 매출이 찍힐 겁니다.”

“왜? 그 누구야… 로즈마린가 하는 그 유튜버 때문에?”

“아뇨. 유튜브로 마케팅 때릴 만한 브랜드는 아니죠, 모리엘츠가.”

“그럼, 어떻게?”

“저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안 차장 배경… 장난 아닙니다. 안 차장이 그 배경 활용 안 했음 절대 그 매출 못 찍었습니다.”

“배경? 무슨… 배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