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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11화 (211/325)

# 211

탐하지 마라

확실히 사장님 아들이었다.

그것도 자기 형보다 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생긴 것부터 시작해서 가지고 있는 기질들까지.

민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자기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라도 그런 민규의 표정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자신의 형과 장 본부장뿐이었다.

상무님은 수시로 민규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사장님과 전무님에게 똑똑한 놈이니 분명 알아서 잘할 거라는 말을 했고, 장 본부장은 내게 장난을 그만 치라며 민규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난 개인적으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민규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난 틈틈이 민규의 표정을 살폈고, 민규는 시종일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는 사실에 분한 모습이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맹탕보다는 강단이 있는 놈이 데리고 일하기가 편하다.

개념이야 천천히 순차적으로 탑재시켜 주면 되는 거고.

그리고 내 경험상 나이에 맞지 않게 능글거리는 놈들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줄 아는 놈들이 발전 가능성이 높다.

능글거리는 놈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잘 살피기 때문에 정치는 잘할지 몰라도 그런 정치질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민규 같은 놈들은 초반에 선을 명확하게 정해주고 정신교육만 제대로 해 놓으면 알아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만들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난 자리가 끝날 때까지 일부러 민규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사실상 공적으로 보더라도 사장님과 전무님을 비롯해 회사 중역들이 모인 자리다.

사장 아들로서 참석을 한 게 아니라 앞으로 홍성맨이 되기 위해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라면 민규는 거기에 낄 입장이 못 되는 게 사실이었고, 그랬기에 난 내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장님은 내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대하는 태도에 무척 만족을 하시는 모습이셨다.

그게 아니라도 무슨 큰 상관이 있을까.

난 회사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같은 놈이니 최대한 안 다치게 부드럽게 살펴달라고 하셨으면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어떻게 보면 그렇게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게 부장 입장에선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닥부터 차근차근 가르쳐보라고 하시지 않았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복잡한 건 거래처와 사업을 함께 논할 때만 하고 싶다.

현재 홍성에서 나란 사람이 가진 이미지에, 또 매출 공헌도를 더한다면 난 홍성의 매출을 위해 내 모든 에너지만 쏟으면 되는 사람이다.

회사 역시 그러길 원할 것이고.

그런 내가 뭐 하러 굳이 세상천지를 모르는 애송이와 의미 없는 파워 게임을 하겠나.

그게 비록 사장님 아들일지라도 내겐 관심 밖의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저런 애송이의 환심이나 사자고 부장 딱지를 달고 그 딱지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그런 거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면 지난 세월 홍성에 쏟아부은 나의 열정이 너무 서글퍼질 거 같았다.

난 사장 아들 육아나 하려고 홍성에 올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름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진 뒤부터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더 성실히 출근을 하며 내 안의 가치를 정립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만한 일에 흔들릴 수도 없을 뿐더러 흔들리고 싶지도 않았다.

사장 아들 육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회사에 널리고 널렸을 거다.

그 라인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하지만 난 아니다.

라인을 타려면 전무님 라인이나 사장님 다이렉트 라인을 타고 싶지, 아직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는 애송이 라인을 타서 나에게 남는 게 뭐가 있겠나.

거기다 나랑 게임이 되는 상대라면 흥미라도 돌겠지.

본인이 정정당당하게 입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난 정말 정정당당한 게 뭔지를 알려줬을 뿐이다.

꼭 정정당당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정정당당하게 입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내 마음 한쪽엔 나도 모르는 사이 묘한 도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제대로 한번 키워 보고 싶다는 도전심.

그때까지도 난 민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냥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분하고 불쾌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눈빛.

마치 날 향해 ‘좋아,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알았어. 그래, 한번 해보자.’ 하는 듯한 자신의 속마음을 그 눈빛에 모두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경솔해선 안 되는 자신의 입장에 애써 인내하고 있는 모습에 개인적으로는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물론 난 그 한 달 동안 민규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롤러코스터를 타는 폴앤크루의 매출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고, 회사는 전사적 차원에서 예산을 잡아 줄 테니 폴앤크루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강행해줄 것을 은근히 종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직은 컬렉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현재로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로 그 책임을 교묘하게 전사 운영본부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장 본부장은 상무님의 지시로 폴앤크루를 홍성 본사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새로운 컬렉션을 뽑아내는 작업보다 이게 더 우선이었다.

제대로 된 디자인팀을 만들고 오로지 폴앤크루에만 올인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그걸 본사로부터 분리시켜야만 했다.

만약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홍성의 색깔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었다.

홍성 인터내셔널은 어디까지나 컨트롤 기업.

그 컨트롤 기업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선 폴앤크루는 반드시 분리 경영이 이뤄져야만 했다.

분명 겉에서만 보면 사업에 큰 진척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 본부장의 전사 운영본부와 홍성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영업부는 홍성의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무님으로부터 아주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먹자는 호출이 걸려 왔다.

당연히 장 본부장도 함께한 식사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상무님은 마치 부모가 자기 자식 자랑을 하듯 민규가 정말로 한성의 하반기 공채에 지원서를 넣었고, 보름 만에 정식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말을 나와 장 본부장에게 전달하는 상무님의 얼굴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난 부산에 있는 내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나도 날… 이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겠지?

“합격했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어요.”

“그걸 또 진짜 했네요.”

난 머쓱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정말 한성 공채에 지원서를 넣을 거란 생각은 나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냥 흘린 말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약간의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진짜로 해냈다고 하니 나 역시 기특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독을 가득 품고 있겠는데 하는 마음에 웃음도 나왔다.

“내일 회사로 오라고 했습니다. 공 부장님이 데리고 가르칠 거니까, 내일 공 부장님이 제대로 면접 한번 봐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민규는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상무님 방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상무님이 내게 “자리를 비켜줄까요?” 하고 물으시길래, 난 “그냥 제가 인사부로 데리고 내려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인사부장과 함께 정식으로 면접을 봤다.

인사부로 데리고 내려간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회사의 체계와 시스템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인사부장의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이 끝난 다음 본격적으로 내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꼭 영업부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홍성의 전부라고 들었습니다. 영업부에서는 어디로든 트랜스퍼를 할 수 있지만, 다른 부서에서는 영업부로 트랜스퍼 되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운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다른 부서에서 트랜스퍼되어서 현재 일 잘하고 있는 직원들도 많이 있고.”

“가능하다면 영업부에서 출발해 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어떤 사업부에서 시작해 보고 싶으십니까?”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진짜 상관이 없어서 없다고 하시는 겁니까, 아님 현재 홍성 영업부에 어떤 사업부들이 있는지 잘 몰라서 그냥 어디든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겁니까?”

“영업 마케팅부, 영업 기획부, 해외 영업부. 이렇게 세 사업부로 나뉘어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각 사업부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그냥 대표 프로젝트들만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그게…”

“한성에선 면접 볼 때 그런 거 안 물어보던가요?”

“….”

“혹시 홍성은 무조건 합격을 할 테니까 한성 면접에만 집중을 하고 공부를 했던 겁니까?”

“….”

“아니… 형님도 있고 아버지도 계신데, 본인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부서의 정보 정도는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부분 아닌가요?”

“저는 그냥 제 힘으로….”

“그런 건 필요 없죠, 상사맨들에게. 혼자 힘으로 해냈다, 다른 사람 힘을 빌려서 해냈다…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진짜 의미가 있는 건 그래서 해냈다, 못 해냈다죠.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만족인 거고. 우린 민규 씨가 어떻게 홍성에 입사를 했는지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영업부는 지금 당장 매장에 나가서 실력으로 매장 실장들 휘어잡고 그 실장들로 하여금 홍성이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 매출을 1원이라도 더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겁니다.”

“….”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럼 부서는 제가 알아서 배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십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네.”

“그럼 내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세요. 지금 바로 인사부장님과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하시고, 저는 민규 씨 담당 팀장 내려보낼게요. 사원 카드 발급받으시고 팀장이 하는 말 잘 숙지해서 내일부터 출근하는 거로 합시다.”

다음 날 아침.

난 출근과 동시에 해외 영업부 사무실 안에서 민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소한 출근 시간으로 트집잡힐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벌써 자기 자리를 배정받고 또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될 동료들과 인사까지 다 나눈 것 같았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인사를 건네자, 민규 역시 어정쩡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난 그런 민규와 눈을 마주쳐 주며 미소를 보냈다.

“첫 출근이네요.”

“네.”

“열심히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민규가 돌발 행동을 한다.

자기는 자기가 한 행동이 돌발 행동인지도 몰랐을 거다.

내가 내 자리에 짐을 풀고 컴퓨터 모니터를 켰을 때였다.

“저기, 부장님….”

민규가 갑자기 날 찾아왔다.

다른 직원들의 싸한 표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네, 무슨 일로….”

“앞으로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자기 딴에는 용기를 낸 행동이겠지.

비록 내가 자기에게 표면적으로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자기가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오해를 한 걸 수도 있고.

이걸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잠시 헷갈릴 정도로 민규의 행동은 돌발적이었다.

“제가 왜 그렇게 해야 되죠?”

“그냥… 다른 직원 대하듯이… 똑같이 대해 주셔도 됩니다.”

“….”

“아니, 그렇게 대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민규 씨를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대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부장님.”

“아….”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규 옆으로 서서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민규 씨.”

“네, 부장님.”

“지금 민규 씨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 주는 거예요.”

“…네.”

“나는 원래 반말을 안 해요.”

“…!”

“민규 씨한테만 이렇게 존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다른 직원들한테도 다 가급적이면 존댓말을 써요. 가끔가다가 나도 모르게 존댓말, 반말이 섞일 때도 있지만 최대한 모두에게 다 존댓말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아… 네….”

“그리고 민규 씨, 부장 자리는 팀장급 이상만 찾아오는 자립니다.”

“…!”

“특별히 제가 부르지 않는 다음에는 팀장급만 결재 건으로 찾아오는 자리죠. 이렇게 막 아무렇게나 불쑥불쑥 찾아오면 안 됩니다.”

“….”

“저는 민규 씨가 편할 수밖에 없죠? 왜? 내 부하 직원이니까. 그런데 민규 씨는 제가 어려워야겠죠? 왜? 민규 씨는 신입 사원이고 난 부장이니까. 그런데 지금 민규 씨는 내가 앉아 있는 이 부장 자리를 아주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네?”

“….”

바로 그때였다.

“낙하산 어디 갔어? 이 새끼 이거는 잠깐 커피 받아 오는 사이 바로 자리를 비우네? 어딨어, 이거?”

안 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네가 왜 거기에 있어?”

안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자리로 왔다.

“부장님이 부르신 겁니까?”

“아뇨?”

“근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

“야, 낙하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낙하산 아니고…”

“너 낙하산에 담배빵 나고 싶어?”

“….”

“내가 아까 분명히 말했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넌 내 아바타라고. 화장실 갈 때도 내 허락 맡고 가라고 했어, 안 했어?”

“하, 하셨습니다.”

“그 말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개기냐? 너 내가 우습냐?”

“아, 아닙니다.”

“뒈질래?”

“아닙니다.”

“너 여기 왜 왔냐? 여기가 어디라고 오늘 첫 출근 한 놈이 겁도 없이….”

“…”

“얼른 니 자리 안 가!”

“네, 넵!”

“출근 첫날부터 빠져 가지고… 부장님은 내 꺼야. 부장님 사랑 탐하지 마라. 탐하다 진짜 걸리면 뒈지는 수가 있다. 야, 최 팀장!”

“네, 차장님.”

“낙하산 일 똑바로 안 가르치지? 오늘 간만에 한따까리할까? 엉?”

“죄송합니다! 어이, 거기 민규 씨.”

“…네.”

“뭐 해, 거기서? 얼른 민규 씨 자리로 안 돌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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