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09화 (209/325)

# 209

팔로워 80만. 이거 실화야?

“누구… 아는 사람이에요?”

상무님의 동생이 내게 고개 인사를 건네고 다시 몸을 돌렸을 때였다.

안 차장이 내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안 차장님이 모르시는 것도 다 있네요.”

“그러니까요. 누구지?”

“상무님 동생분이실 거예요.”

내 예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김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많이 컸네. 하긴 이제 나이가 있을 거니까…”

“차장님은 보신 적이 있으세요?”

“몇 년 전에요. 아니구나. 몇 년 전이 아니네요. 그것도 벌써 10년 가까이 됐네요. 본사를 구관에서 신관으로 옮겼던 해에 본사 창립일 행사를 아주 크게 열었죠. 전 직원이 다 참석을 했던 자리였는데, 그때 상무님은 외국에서 공부 중이셔서 모습을 안 보이셨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 둘째 아들이 잠시 참석을 하셨죠. 얼굴은 그대로네요. 딱 봐도 사장님 얼굴 나오잖아요.”

그러고 보니 외모만 놓고 보면 상무님보다 그의 동생이 사장님을 더 많이 닮은 거 같았다.

“가시죠.”

난 걸음을 옮겼고, 안 차장은 뭔가 아주 흥미 있는 뉴스거리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날 따라 걸으면서도 수차례나 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오후 늦게 17층에서 장 본부장으로부터 상무님의 동생이 하반기 공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늦은 점심을 끝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장 본부장.

그는 내게 따로 할 말이 있다면서 17층에서 담배나 같이 피우자고 했다.

“학기가 다 끝난 모양이야. 며칠 뒤에 다시 돌아가서 졸업식에만 참석을 하면 되는 모양이더라고.”

“공채요? 무슨 그런 의미 없는 짓을…”

“그러게 말이야. 자기들은 그렇게 하는 게 공평하다고 오해를 하는 모양이야.”

난 피식하고 웃으며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장 본부장 앞이다.

아무리 장 본부장과 개인적으로 친하고 또 그를 믿어도 장 본부장은 어디까지나 상무님의 사람.

해도 될 말, 해선 안 될 말 정도는 가려 가면서 해야 했다.

하지만 장 본부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역시 상무님의 동생이 공개 채용을 통해 홍성에 입사하는 부분을 이해 못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면접관들도 다 사장님 아들이란 걸 알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지, 내 말은.”

“….”

“배경 상관없이 본인의 힘으로 입사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참 기특한데, 그건 말 그대로 자기들 만족이고 또 자기들 욕심인 거지. 그렇게 공개 채용에 사장 아들이 지원서를 넣으면 그로 인해서 누구 한 명은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네요.”

“아무튼 뭐… 그렇게 됐다.”

“저하고는 큰 상관이 없는 거 아닙니까?”

“아까 식사 자리에서도 잠시 말이 나왔는데… 상무님 생각은 영업부에서 일을 배워 보게 만들어 보고 싶으신 모양이야.”

“…!”

“상무님도 이제 아시는 거지. 홍성은 영업이 전부라는 걸. 본인은 지원팀에서 출발을 하셨지만, 동생은 홍성의 기본인 영업부에서 제대로 일을 배워서 차근차근 올라오게 만들고 싶으시다네.”

“동생 생각은요?”

“착해. 애가 참 착해. 바르기도 바르고. 형 말이라면 그냥 그게 뭐가 됐든 별 의심 없이 따르는 눈치였어.”

“…그렇군요. 근데 상무님은 그냥 입사하지 않았어요? 공채 그런 거 아니고.”

“일종의 겁을 주시는 거지. 대충대충 할 생각하지 말라는 식으로…”

“푸흡…”

“그건 그렇고 로즈마리는 오늘 왜 회사에 왔던 거야?”

난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빤 다음 연기를 흘리며 대답했다.

“붙잡아 두려고요.”

“…?”

“필요한 것들 먼저 좀 쥐여 주면 어떻게든 받은 만큼은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같아요. 같이 일하기가 참 편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좀 그런 거 같아요. 아직 폴앤크루 리뷰 영상도 안 올라왔고, 또 채널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다 보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미리 약 좀 쳐놨습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장 본부장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은 분명 여러모로 활용 가치가 높은 소스였다.

한 영상당 최소 3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채널이다.

최소 30만 조회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노출판이다.

거기다 로즈마리는 자신의 채널을 수준 있는 영상들로 채우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흥미만 잡아끄는 영상이 아닌, 진짜 수준 있는 영상들을 찍고 싶어 했다.

그녀의 목적은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돈이 목적인 영상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영상을 뽑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고, 또 그렇게 채널을 유지해야 자신이 그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이라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그녀가 자신의 채널을 어떤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참 감명 깊게 들었다.

이미 로즈마리는 처음 유튜브 채널을 준비하며 세웠던 그녀의 목표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정확한 액수까지는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벌고 있는 건 확실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채널이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고, 그래서 유튜브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지자 처음엔 많은 유혹에 흔들려야 했었다고 말했다.

“사실 아직도 그런 유혹들로부터 백 퍼센트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근데… 돈만 좇아가다 보면 결국 이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게 되어버릴 거 같더라고요.”

로즈마리가 가지고 있는 일과 돈에 관한 철학에 비록 그게 개똥철학일지라도 난 개인적으로 많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로또로 인해 내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그 덕에 예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기에 그녀가 돈이 아닌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더 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돈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돈보다 더 큰 가치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 사람.

더 큰 가치가 뭔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일단 지금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는 사람.

그래서 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로즈마리였다.

그런 로즈마리를 보며 난 그녀의 방향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너무 많은 부분이 비슷했으니까.

13억이라는 큰돈.

그 큰돈도 내 인생 방향을 한 번에 크게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저 내 스스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자신감을 제공해주었을 뿐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건 본인의 용기지 절대 돈이 아닐 거라는 그녀의 생각에 난 진심으로 공감을 했다.

“돈이라는 건 참 여러모로 중요하고 또 편리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에 저의 오늘이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 역시도 따지고 보면 수입이 제가 만족할 만큼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크게 성장하고 있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로즈마리에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

충분히 벌 만큼 벌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

로즈마리는 그런 자신의 현재 컨디션을 만들어준 유튜브라는 도구에 크게 감사하고 또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다시 한번 로즈마리에 대해 확신을 했다.

저런 사람은 실수를 할 수가 없다.

저렇게 만족이라는 걸 잘 알고, 또 자신이 가진 만족에 대한 포만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저런 사람이라면 절대 무리하게 자기 채널을 운영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섰다.

그래서 난 홍성 영업부장의 입장에서 로즈마리가 그녀의 채널을 좀 더 유익하고 가치 있게 키울 수 있도록 많은 소스를 먼저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홍성의 소스로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을 지금보다 더 수준 있게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그때 가서 홍성이 제공한 소스의 대가를 돌려받으면 되는 거니까.

홍성이 가지고 있는 소스들은 개인이 구하려고 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소스들이지만, 홍성의 입장에선 돈이 드는 소스들이 아니다.

결국은 다 커넥션 싸움 아니겠나.

명품 브랜드 본사들이 제공하는 트레이닝.

그 모든 비용은 브랜드 본사에서 제공을 한다.

명품 브랜드 본사들이 제공하는 연말 VIP 파티.

그 모든 비용 역시 홍성이 아닌 브랜드 본사에서 제공을 한다.

홍성은 그런 브랜드 본사들과 로즈마리의 중간에서 그저 다리 역할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에 폴앤크루 리뷰 영상이 올라왔다.

물론 리뷰 영상이다 보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모리엘츠 리뷰 영상이나 파리 여행 브이로그에서 수차례 노출이 된 상태였기에 폴앤크루 리뷰 영상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전국의 SS 편집샵으로부터 추가 주문이 쇄도했다.

“리뷰 영상 하나 때문에 매출이 이렇게까지 올라간다고? 참… 대단하긴 대단하네.”

양 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였다.

그 옆에 있던 이지혜가 꼭 그 때문만이 아니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양 차장에게 보여주었다.

“파리에 있을 때부터 자기 인스타그램에 폴앤크루를 입고 찍은 일상 여행 사진들을 계속 업데이트해 주더라고요.”

“…!”

“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부탁을 했던 거였는데, 흔쾌히 해줬어요, 진짜 성격 짱 좋아. 거기다 바젤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동영상이 제법 재밌게 빠졌어요. 이미 파리에 있을 때부터 로즈마리 인스타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폴앤크루에 대해 브랜드가 뭐냐, 어디에서 살 수 있냐와 같은 질문들을 댓글로 달더라고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80만… 이거 실화야? 실제로 이런 숫자가 가능한 거야? 이 정도면 어지간한 유명 연예인들보다 더 유명한 거 아냐?”

“아무래도 로즈마리가 패션 유튜버가 되다 보니까 인스타도 외국인들이 많이 팔로우를 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댓글들 보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다양하게 달려요.”

“헐… 이거 진짜 대박이네.”

로즈마리로 인해 뜬 건 폴앤크루뿐만이 아니었다.

폴앤크루를 현재 유통하고 있는 매장이 SS 편집샵뿐이다 보니 전국에 있는 SS 편집샵 매출도 덩달아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SS 편집샵 역시 이제 막 론칭을 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컬렉션조차 갖추지 못한 폴앤크루로 인해 SS 편집샵 매출이 올라가고 있는 거였다.

로즈마리 채널에 폴앤크루가 리뷰되고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말도 안 되는 최소의 투자 비용으로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성과를 올려버린 폴앤크루와 그 폴앤크루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영업부.

사장님의 호출은 너무나 당연한 거였고, 그런 사장님의 호출에 가장 신이 난 건 단연 박 이사였다.

상무님과 박 이사, 그리고 장 본부장과 난 전무님을 통해 사장님 방으로 올라오라는 호출을 받게 됐다.

그리고 난 그렇게 호출을 받아 올라간 사장님 방에서 그의 둘째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