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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06화 (206/325)

# 206

이걸 또 여기서 끊네

로즈마리가 새로 업데이트한 유튜브 영상 속 파리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개선문을 등지고 서 있는 로즈마리는 내 예상과는 반대로 폴앤크루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그녀가 어떤 영상을 만들었을지가 더 기대되었다.

“안녕하세요.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의 로즈마리입니다. 짜잔! 보시는 대로 저는 지금 세계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 와 있습니다. 언제 파리에 도착을 했고, 또 무슨 일로 파리에 와서 이런 영상을 찍고 있는지는 곧바로 브이로그 영상을 통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로즈마리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양 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장님. 로즈마리 영상 새로 올라왔습니다.”

난 영상을 잠시 일시 정지시켜 놓고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이며 지금 안 그래도 그걸 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난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아마도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촬영한 영상 같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야외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항상 제 스튜디오 안에서만 촬영을 하다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영상을 찍으려니까 상당히 민망하네요. 그동안 다른 분들이 야외 촬영으로 올린 영상들을 그냥 재밌게 보기만 했는데, 이게 이렇게 민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뭐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런 거겠죠?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죠, 뭐. 지난 며칠간 이전 영상에서 제가 올린 모리엘츠 리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품을 가지고 와서 거짓 영상을 만든 게 아니냐며 해명 영상을 올리라고 요청하셨어요. 근데 그거 요청이었나요, 아님 협박이었나요? 하하하. 전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요청이었다고 믿을게요. 하하하….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해명 영상이 늦게 올라온다며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억측을 만들어내며 저의 도덕성을 매도하시더라고요. 하! 지! 만!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파리에 와 있습니다. 그 영상을 업데이트시켜 놓고 바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죠.”

그러면서 인천에서 파리로 출발한 정확한 날짜가 찍힌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편집으로 화면에 띄웠다.

“그 영상을 올려놓고 파리에 도착을 해서 삼 일 동안 정말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 내야만 했습니다. 해명 영상을 올리는 게 무서워서 잠수를 탔던 건 절대 아니고요,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올려서 우리 로즈마리 가족들이 덜 걱정하게끔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일정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로즈마리가 왜 파리에 왔으며, 지난 며칠간 파리에 와서 뭘 했는지 같이 한번 살펴보시죠. 고고고! 참고로 전 따로 해명 영상을 찍어 올릴 생각이 없어요. 지금부터 제 영상을 직접 보시고 알아서들 판단해 주세요. 그럼 진짜로 고고고!”

그렇게 영상 속 시간은 다시 며칠을 거슬러 올라갔다.

인천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

그 영상 속 로즈마리는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 안의 풍경을 소개하고 있었다.

무료로 서비스되는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또 식사 내용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인 맛 평가를 하며 1분 남짓한 영상을 뽑았다.

그리고 체크인 수속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유럽발 대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의 식사 수준.

그리고 제공되는 영화와 드라마 종류 등 딱히 중요한 내용들이 아님에도 뭐에 홀린 듯 계속 보고 있을 수밖에 없도록 아주 아기자기하게 영상 편집을 잘 해놓았다.

가끔씩 이지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건 우리 홍성맨들만 아는 내용.

다 알고 보는 영상이었지만, 그래서인지 그 영상에서 이지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살짝 신기하기도 했다.

기나긴 12시간 45분의 비행시간을 짧은 1, 2분에 요약해서 정리했고, 파리 드골 공항에서 호텔까지 호텔 리무진으로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나크리스 측에서 제공하고 있는 방돔 광장 근처의 5성급 호텔 객실 리뷰까지 알뜰하게 하고 있었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크리스 본사로 명품 브랜드 본사 견학 겸 트레이닝을 받으러 가야 합니다. 삼 일 일정인데, 과연 제가 잘 소화를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응? 갑자기 뭔 트레이닝? 하시는 분들 많죠?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을 운영하면서 몇 가지 크게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채널은 계속 커지고 있고, 더불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계속 제품 리뷰 영상, 업계 생리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제가 생각을 해봐도 채널이 지루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좀 더 활동적인 영상들을 찍어 보고 싶은 욕심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앞으로는 그런 영상들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만들어드릴 수 있게 될 거 같아요. 사실 저도 지금 무척 떨리고 또 기대가 됩니다. 브랜드 본사 방문은 저도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일단 전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바로 취침 모드로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전 자러 갑니다. 뿅!”

영상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편집이 되어 있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곧바로 다음 날 아침으로 넘어가 호텔 조식 레스토랑의 내부 모습이 비쳐졌으며, 로즈마리는 그 조식 레스토랑에서 갖추고 있는 음식들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영상에 담아냈다.

그리고 호텔을 나와 천천히 산책하듯 나크리스 본사가 있는 방돔 광장까지 걸어가는 로즈마리의 뒷모습을 이지혜가 카메라로 담고 있었다.

그 뒤부터 나크리스 본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브랜드 트레이닝을 받는 영상이 진행되었는데, 영상에 부분적으로 로즈마리의 목소리가 덧입혀져 있었다.

아무래도 영어 실력이 부족한 로즈마리가 만들어낸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영어로 진행이 되는 트레이닝.

트레이닝이 진행되는 과정을 영상 속에 담아놓고, 그 영상에 덧입혀진 로즈마리의 목소리가 해당 영상에 대한 설명을 나레이션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크리스가 들어가 있는 국가들에서 1년에 4차례 정도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나크리스 본사로 모여듭니다. 물론 저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분들은 나크리스와 관계가 있는 업계 관계자분들이시고요. 1년에 4차례가 전부는 아니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소규모 트레이닝을 기획하기도 한다네요.”

그 영상을 보면서 편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3일짜리 트레이닝 일정을 단 5분 만에 압축해서 영상에 담았는데, 내가 그 트레이닝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그럼에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트레이닝에 관한 영상이 모두 끝이 난 후 이번 영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순서가 시작됐다.

한때 이지혜가 직접 관리했던 나크리스.

이지혜는 자신의 입김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일전에 CGM으로 무책임하게 옮기며 나크리스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김형찬.

그 때문에 직접 홍성 본사를 방문했던 나크리스 고위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따낸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업계 사람들이 보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이 업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 혹은 이 업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유익하고 또 흥미가 도는 내용들이었을 거고.

“진짜 대박인데요?”

영상 속에 취해 있던 내 곁으로 다가오며 안 차장이 말했다.

“벌써 다 보셨어요?”

안 차장은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로즈마리를 선택하고 밀어붙이신 건 부장님의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아요.”

“저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영상 속 로즈마리는 폴앤크루 컬렉션을 입고 퐁네프 다리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더니 유람선을 타기 시작했고 시테 섬에 내려 노트르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최고급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푸아그라로 시작되는 코스 메뉴를 맛깔스럽게 리뷰했고 에펠탑 앞에서는 흑인 노점상에게 팔찌와 에펠탑 미니어처 몇 개를 기념 삼아 사기도 했다.

정신없이 영상에 빠져 있다가 평소 그녀가 찍어 올리는 영상에 비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상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5분이나 더 남아 있었다.

평소 그녀가 만들던 10분 내외 영상보다 15분이나 더 긴 25분짜리 영상이었다.

물론 약간 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20분이나 여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는 걸 눈치를 못 챘을 정도로 영상은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상의 구성이 참 신선했다.

처음 개선문 앞에서 찍었던 인트로 영상.

그 영상에서 며칠을 거슬러 올라가서 진행이 되다가 다시 인트로 영상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다시 개선문 앞에 선 로즈마리.

그녀는 자신의 지난 삼 일간의 파리 브이로그를 재밌게 봤냐며 카메라를 쳐다보며 물었고, 난 나도 모르게 그 물음에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지난 며칠간 그렇게나 궁금해하시고 또 해명 영상을 올려달라고 요청을 하셨던 문제의 모리엘츠 매장을 직접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여유 앞에 난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진행 매끄럽게 잘하죠?”

“확실히 싸울 줄 아네요. 사람들을 가지고 노네요, 가지고 놀아.”

안 차장의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며 난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 속 로즈마리가 말했다.

“미리 팁을 하나 드리자면, 혹시나 나중에 파리에 오실 일이 있어서 모리엘츠 매장을 방문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당일 방문은 안 된다는 점 꼭 숙지하셔야 합니다. 모리엘츠 매장은 일반 매장들과는 달리 반드시 사전에 방문을 하겠다는 예약을 해야 됩니다. 루이뷔통 매장처럼 당일 매장 앞에서 웨이팅을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예약을 해야지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물론 기존 고객들 같은 경우는 전화로도 얼마든지 예약이 가능하겠죠? 가능한가? 가능해요?”

“네, 가능합니다.”

이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가능하다고 하네요. 저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방문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출입문 앞에서 제 이름과 간단한 정보를 알려준 뒤 바로 입장을 하면 된다고 하네요. 자, 그럼 저랑 같이 억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가격대의 드레스들이 모여 있는 모리엘츠 본점으로 출발해 보시죠. 고고고! 아 참! 참고로 매장 안에서의 촬영은 불가능합니다. 하! 지! 만! 저는 미리 양해를 구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히는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촬영은 가능할 거예요. 뭐라고요? 허언증 환자 말을 어떻게 믿겠냐고요? 하긴. 그건 또 그래. 하하하….”

모리엘츠 본사 건물 앞에 선 로즈마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로즈마리는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시큐리티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고 출입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펼쳐지는 모리엘츠 본점 안의 모습.

“참고로 저는 지금 이곳에 매장 홍보를 위해 온 것도 아니고, 또 매장 안을 촬영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닙니다. 이곳 마케팅 디렉터인 미스터…. 미스터…. 뭐였죠?”

“총게. 타미 총게.”

“몇 번을 들어도 헷갈리는 이름이네요. 계속 타미 힐피거랑 헷갈려. 아무튼 타미 머시기 하는 분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건데요. 그래서 매장 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다 카메라에 담는 건 실례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여기까지만 보여드리고 전 바로 위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마케팅 디렉터는 한국으로 따지면 브랜드 부사장 정도 된다고 하네요. 자, 따라오시죠.”

타미 총게의 집무실 문이 보였다.

그런데 영상은 이제 몇 초 남지 않은 상황.

똑. 똑. 똑.

로즈마리가 그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타미 총게의 목소리.

“컴 인.”

그런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영상은 로즈마리가 그 집무실 문을 열고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진 타미 총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에서 끝이 나 버렸다.

무슨 이런 악마의 편집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분명 난 그 뒤에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만약 그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영상을 봤다면 욕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우와…. 이걸 또 여기서 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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