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17층으로 올라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내려온 뒤 곧바로 장향은을 내 자리로 불렀다.
“다음 모리엘츠 전시가 어디에서 잡혀있습니까?”
“다음이라면….”
“지금은 어디에서 하고 있나요?”
“현재 유럽 투어 중일 겁니다. 자세한 건 모리엘츠 본사에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도 보통 아랍권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이템 점검도 할 겸 본사로 들어가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유럽 투어를 시작하는데, 항상 유럽 투어 첫 타는 독일 뮌헨이라고 하더라고요.”
“자세하게 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잠시 뒤 모리엘츠 유럽 투어 일정을 확인하고 장향은이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 뮌헨에서 하고 있는 게 맞다고 합니다.”
“언제까지랍니까?”
“곧 끝난답니다. 일요일에 철수를 한다고 하네요.”
“일요일까지… 그럼 다음은요?”
“바젤로 옮긴답니다.”
“바젤, 바젤이라… 스위스네요? 바젤 거기에 뭐 유명한 백화점이 있나?”
“보통 스위스, 프랑스를 하나로 묶어서 바젤에서 한 번에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일반 백화점이 아니라 아트페어 전시장에서요.”
“그럼 그건 말 그대로 일반 전시가 아니라 입장료가 필요한 유료 전시겠네요?”
“유럽은 아시겠지만 실질적인 판매 매출이 전혀 안 일어나는 지역이니까요.”
“그래도 입장권 매출은 올라오는 모양이에요?”
“패션 업계 종사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죠. 이런 기회에 모리엘츠를 경험해 보지, 언제 해 볼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건 또 그렇네.”
난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그런 바젤 페어에서 하는 전시 같은 경우는 VIP 전용 인비테이션 레터도 따로 보내는 건가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한번 알아봐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그리고 만약 홍성이 필요하다고 하면 VIP 인비테이션 레터 한두 장 정도를 구할 수 있는지도 같이 좀 물어봐 주세요.”
“그 정도야 보내주겠죠. 그게 뭐라고….”
“그래도요. 정확하게.”
“네, 알겠습니다.”
우선 모리엘츠에 관한 부분은 장향은을 통해 대충 정리를 한 뒤 필요한 부분을 주문해 놓고 다시 난 스마트폰으로 로즈마리의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그리고 로즈마리 채널의 초창기 영상들 위주로 분석을 시작했다.
“….”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채널이란 생각이 들었다.
채널의 콘셉트, 편집 스타일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로즈마리라는 진행자가 가진 타고난 매력이 정말 대단했다.
분명 젊은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명품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고급스러움.
그럼에도 무겁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웃을 때 보이는 반달 모양의 편안한 눈 모양은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명품이 가진 특유의 편견을 깨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로즈마리의 초창기 영상들을 보면 가장 첫 영상부터 스무 편 가까이는 모두 명품 리뷰에 관한 영상이었다.
명품을 소개할 때 선택하는 단어를 보면 확실히 명품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고, 또 가방이나 구두를 만지는 손길에는 전문가적 애정까지 묻어나왔다.
그러다 처음으로 200만 뷰짜리 영상이 하나 터지고 본격적으로 채널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뒤부터는 명품 리뷰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명품 순위나, 정품과 가품의 구별법 등 꼭 명품에 깊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재미 삼아 볼 수 있을 법한 영상들 위주로 업데이트가 되어 오고 있었다.
물론 리뷰 영상을 줄이고 흥미 위주의 섬네일을 사용한 번외 영상 제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건 더 명품에 큰 관심이 없는 구독자들까지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겠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그렇게 채널의 방향을 살짝 틀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내가 로즈마리에게 직접 메일을 보낸 건 퇴근 시간 무렵이었고, 로즈마리로부터 온 답장을 확인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 10시까지 로즈마리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그녀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고,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확인한 그녀의 답장에서 전날 늦게까지 영상 촬영을 하느라 메일을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는 적당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출근길이었다.
난 강혜선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회사로 향하는 동안 로즈마리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메일 보냈던 홍성 인터내셔널의 공은태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너무 일찍 전화를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제 제가 답장을 너무 늦게 보냈죠?
“저도 아침에 확인했습니다.”
내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이어가며 운전을 하는 동안 강혜선은 이제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익숙한 듯 자기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어제 메일로 말씀드렸고, 그 부분에 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늘쯤 직접 만나 뵙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너무 일찍만 아니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그럼 점심시간 이후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때쯤이 편할 거 같아요.
“어디에서 만나는 게 편하실까요?”
-어디가 편하세요?
로즈마리와 약속을 잡고 통화를 끝냈다.
그제야 옆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던 강혜선이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어제 말했던 그 유튜버?”
“응.”
“약속 잡았네, 그래도? 어제 잠들기 전까지 계속 메일 확인하더니.”
“그러니까 말이야. 어지간히 비싸게 나오네.”
“얼마나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런 이야기는 안 나눠 봤어.”
“그래도 대충 생각하고 있는 마케팅 비용이 있을 거 아냐.”
“글쎄… 애매해.”
“애매해?”
“이게 돈으로 값을 따지기가… 조금 애매해.”
“…?”
그렇게 출근한 회사.
난 출근과 동시에 기획 1팀부터 들렀다.
“차 팀장님.”
“네, 부장님.”
“오늘 이 대리 오후에 나랑 외근 좀 나가도 되나요?”
“이 대리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이지혜가 고개만 살짝 돌려 날 쳐다봤다.
“딱히 다른 스케줄은 없습니다.”
차 팀장에게 물은 질문에 이지혜가 대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차 팀장은 이지혜가 저렇게 대답을 했다는 걸 눈빛으로 대신 전달했다.
“그럼 이 대리 점심 먹고 나랑 같이 로즈마리 만나러 갑시다.”
내 말에 차 팀장과 이지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로즈마리랑 연락이 되셨어요?”
“오는 길에 통화했어요.”
“전화번호를 주던가요?”
“뭘 그렇게 놀라요? 로즈마리가 무슨 전지현도 아니고. 3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길어 봤자 한두 시간이면 미팅 끝나지 않겠어요? 나 거기 이 대리랑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기획 1팀 일이잖아요. 난 거기서 바로 퇴근하려고. 나머지는 지혜 씨가 회사 복귀해서 정리하는 거로.”
난 가벼운 미소만 흘려놓고 내 자리로 갔다.
그리고 서류 가방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고 김 차장에게 내선으로 전화를 걸었다.
“차장님, 현재 영업 마케팅부가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들 중 본사 트레이닝 일정 나와 있는 거 빠른 순서대로 리스트 뽑아서 제 메신저로 좀 보내주세요.”
-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난 곧바로 장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본부장님. 우리 그때 사장님이 모리엘츠 하이엔드 컬렉션, 자리에서 바로 구입하셨잖아요.”
-그러셨지.
“그거… 제가 잠시만 좀 쓸 수 있습니까?”
-그게 왜 필요한데?
“쓸데가 있어서요.”
-글쎄… 모리엘츠는 안 차장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안 차장도 그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거 사장님이 가지고 가셨나?
“설마요. 그거 그때 회삿돈으로 결제했던 거 아닙니까?”
-그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거 좀 상무님한테 대신 물어봐 주시면 안 됩니까?”
-이야… 이젠 공 부장 네가 나한테 일을 다 시키는구나.
“일을 시키다니요. 전 본부장님한테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거뿐입니다.”
-나한테 배운 대로?
“제가 본부장님 안 통하고 바로 상무님한테 다이렉트로 물어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핑계 좋네… 바빠?
“조금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았다. 일 보고 있어. 확인해 보고 바로 연락 줄게.
오후 2시 10분.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이지혜와 함께 로즈마리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지혜가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전화번호를 따셨어요?”
“모르셨어요? 저 원래 여자들 전화번호 따는 거 도삽니다.”
“푸흡….”
이지혜는 웃음을 터뜨렸고, 난 연기로 정색을 하며 날 무시하는 거냐며 물었다.
“이거 녹음해서 사모님한테 들려드렸어야 하는 건데.”
“어색하네.”
“네? 뭐가요?”
“우리 집사람한테 사모님이라고 하니까 어딘지 모르게 내가 나이가 든 거 같아서 어색하네요.”
“뭐 딱히 다르게 부를 만한 호칭이 없잖아요.”
“그건 또 그렇다.”
“어떻게 번호를 따셨냐고요.”
“메일을 보냈죠.”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메일을 보내셨길래… 저는 두 번이나 메일을 보내도 거절을 당했다고요.”
난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열어 전날 내가 로즈마리에게 보냈던 메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이지혜는 뭔가 한 방을 크게 얻어맞은 표정으로 내가 로즈마리에게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잠시 뒤 이지혜가 멍한 눈으로 내게 스마트폰을 다시 돌려주었고, 난 그 스마트폰을 컵 홀더에 아무렇게나 넣은 다음 말했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팔고 싶은 물건만 푸시를 하면 안 돼요. 아니, 오히려 팔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우선 그걸 숨겨야 돼. 진짜 고수들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푸시하면서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끼워 파는 거예요. 그게 진짜 영업이야.”
“…네.”
“일반 팀원일 땐 영업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공부를 하는 시기. 더 정확하게는 영업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공부를 하는 시기. 그리고 이젠 대리를 달았으니까 지금부터 지혜 씨는 본격적으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홍성이 하는 영업이 뭔지 직접 부딪쳐서 터득하고 그걸 지혜 씨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할 거야, 지혜 씨는.”
“감사합니다. 항상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는 무슨. 결국 지혜 씨가 제대로 성장해서 어느 수준까지 올라와 주기만 하면 편한 건 나예요.”
“….”
“누가 그러더라고. 차별을 하라고.”
“…?”
“처음 부장 달고 맨파워 관리가 내 마음대로 잘 안 이뤄질 때… 그때 누군가가 내게 그러더라고. 차별을 하라고. 근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차별을 해야 돼. 모두에게 공평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모두에게 공평하면 그 공평이 또 누군가에겐 불공평이 될 수도 있는 거더라고. 그래서 차별을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난 잠시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이지혜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차별이 못된 차별이 되면 안 되는 거잖아. 못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차별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 기꺼이 날 위해 일해 주는 사람이 더 잘하게끔 이익을 줄 수 있는 차별을 해주려고요.”
“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또 뜻이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잘 못 되게 만들어 본들, 그런다고 나한테 남는 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럴 에너지로 한 명이라도 더 내 사람 만들고, 내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게 만드는 게 현명한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의 스튜디오가 있다는 주상 복합 건물의 2층 커피숍에서 로즈마리를 처음 만났다.
말이 스튜디오지 내가 예상하기로 그 스튜디오가 곧 로즈마리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가 먼저 도착하고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체구가 무척 왜소한 여자 한 명이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있었다.
로즈마리인 건 확실한데, 왜일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 그 웃음을 겉으로 보일 수는 없었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유명 연예인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더 눈에 띄는데, 어쩌면 그런 걸 노리고 저렇게 하고 나온 건가 싶기도 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긴 했지만, 누가 봐도 로즈마리였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며 로즈마리 역시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해 좀 해주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이라….”
“…?”
“오다가다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절 알아봐 주시는 분들을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제 개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예 밖에 나갈 땐 모르겠는데, 이 건물 안에서 움직일 땐 이렇게 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그럼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하든지….
아, 이런 게 일종의 연예인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뭐 마실 거라도….”
이지혜가 로즈마리의 마실 것을 주문해서 다시 돌아왔고, 우린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홍성 인터내셔널의 공은태입니다.”
“이지혜입니다.”
“아… 지혜 씨는….”
“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었죠.”
로즈마리는 민망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 앞에 이지혜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함께 미소를 지었다.
“올리신 영상들 하나도 안 빠뜨리고 모두 즐겁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살짝 적셔놓고 로즈마리를 쳐다봤다.
“어떻게 어제 제가 메일로 말씀드렸던 내용은 한번 고민을 해보셨습니까?”
“과연 제가 그걸… 물론 할 수만 있으면 제 채널에도 참 많은 도움이 될 거 같긴 한데… 과연 제가 그 브랜드를 핸들링할 수 있는 유튜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로즈마리 채널의 가능성만 봤습니다. 현재 로즈마리 채널이 가지고 있는 구독자 수, 그리고 매 영상마다 찍혀나오는 조회수는 채널의 가능성을 예상해 보는 지표로만 사용을 했고요. 지난 며칠간 로즈마리 채널을 비롯해서 여러 명품 리뷰 채널들을 살펴봤습니다. 보다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명품 리뷰 채널이라는 게 개인이 혼자서 다 진행을 하기엔 한계점이 너무 뚜렷하더라고요.”
“명품 리뷰 채널뿐 아니라 모든 채널이 다 비슷하죠. 시작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에 푹 빠져 채널을 키우는데, 어느 정도 채널이 크고 또 가지고 있는 소스를 다 풀어내고 나면 그때부턴 매 영상마다 소재를 쥐어짜 내는 게 일이에요.”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다른 리뷰 채널들도 마찬가지지만, 로즈마리 채널도 점점 소재가 고갈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내 말에 로즈마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고, 이지혜는 눈알만 굴려서 나와 로즈마리의 눈치를 살폈다.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세상에 명품은 많지만, 그 많은 명품들을 개인 방송 채널 운영자가 일일이 다 직접 구매를 해서 리뷰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죠. 한두 푼 하는 것들도 아니고… 또 리뷰 영상에 올라온 것들을 보니까 기본 퀄리티 이상씩은 하는 브랜드들이던데, 이건 아무리 명품을 좋아해도 재벌이 아닌 다음에는 이 콘셉트를 계속 유지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일 거 같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일반인들에 비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많아서 이것들만 하나씩 다 리뷰를 해줘도 영상을 최소 100개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영상을 찍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리뷰할 옷을 입고 다른 영상을 찍고, 또 다음에 리뷰할 구두를 신고 또 다른 영상을 찍고… 처음엔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 100개 정도 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 수입으로 다른 아이템들을 확보해 나가면서 영상 수를 늘려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제 계산대로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 보였습니다. 혹시 일부는 명품 대여샵을 통해 준비해서 영상을 찍지 않으셨습니까?”
“…!”
“발렌시아가 컨솔비 컬렉션 리뷰 영상을 보면서 그 영상에 입고 나오셨던 드레스는 어쩌면 명품 대여샵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니쉬 홀드 이브닝드레스. 저희 홍성이 취급했던 브랜드였습니다. 6전 전쯤에. 큰 인기를 끌었던 컬렉션은 아니었죠. 물론 추가 에디션이 나왔던 컬렉션도 아니었고. 그걸 입고 계시길래, 저건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옷인데 어디에서 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확하시네요. 물론 전 그 컬렉션이 6년이나 지난 컬렉션이었다는 건 모르고 대여를 했었어요.”
“어제 제가 메일에서 말씀을 드렸다시피… 홍성의 서포팅이 들어가면 채널에 소개되는 아이템이나 혹은 영상의 내용이 좀 더 업그레이드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로즈마리는 마스크를 벗고 커피잔을 들었다.
“그런데 정말… 모리엘츠를 제가 리뷰해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원하신다면요.”
난 폴앤크루를 가지고 로즈마리에게 연락을 했던 게 아니었다.
로즈마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만한 브랜드.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만 리뷰를 한다는 고집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브랜드.
패션 피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브랜드, 모리엘츠를 가지고 로즈마리에게 연락을 했던 거였다.
만약 원한다면 무료로 대여를 해주겠다고 말이다.
사실 모리엘츠로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별도의 비용을 줄 이유는 없는 거 아닐까.
모리엘츠. 그것도 홍성이 가지고 있는 컬렉션이면 (물론 대여를 하지는 않지만, 대여를 한다고 쳤을 때) 하루 대여비만 최소 5백만 원 이상은 받아야 되는 거다.
“물론 홍성도 딱 한 벌 가지고 있습니다. 가격은 사억 정도 됩니다.”
“사, 사, 사억이요?”
“그 드레스에 세팅되어 있는 다이아몬드 서티피케이션도 다 보내드리겠습니다. 영상에서 활용하시면 그 영상을 보는 모든 구독자들의 반응이 지금 로즈마리 님께서 보여주신 반응과 똑같은 거라고 장담합니다. 모리엘츠 안에서도 하이엔드로 분류되는 올해 신상 컬렉션을 한 벌 가지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지 않을까요? 4억짜리 옷을 리뷰하는 채널은 로즈마리가 유일할 겁니다. 그쪽으로는 전문가이시니 모리엘츠로 하는 해당 리뷰 영상을 크게 띄우는 건 일도 아니실 거라 생각합니다.”
“….”
“원하신다고 하면… 무료로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폴앤크루 맨투맨 티를 입고 영상을 만들어 주세요.”
로즈마리는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게요.”
“그럼, 그건 그렇게 진행하시는 거로 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지금부터요?”
이지혜가 놀란 눈으로 혼잣말을 하듯 낮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