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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00화 (200/325)

# 200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라는 여자 유튜버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사실 내가 패션 업계에 종사하고 있긴 하지만, 패션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건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패션 컨트롤 기업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영업직이 그럴 거라고 본다.

우린 브랜드와 그 브랜드의 히스토리, 시장 장악력, 브랜드 파워… 그리고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가격과 마진에 대해서만 숙지하고 또 분석할 뿐이다.

그것도 영업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일같이 명품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패션 감각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긴 하지만, 그리고 또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가격에 그 명품, 혹은 명품에 준하는 고가의 의류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눈높이가 높아져서 평균 이상의 패션 감각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디자이너들처럼 타고나길 감각 있게 타고난 사람들은 아니지 않겠나.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어릴 때엔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는 출근할 때 필요한 정장과 구두를 제외하고는 그냥 있는 옷으로 대충 돌려가며 입어 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 꾸미는 것에 소홀해진 편이다.

그래서 난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선 유튜브가 아무리 정보의 바다라지만, 이렇게 전문적인 패션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고, 그녀가 패션 업계 종사자가 아닌 그냥 일반인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으며, 그녀가 가진 패션 업계 정보 디테일에 세 번 놀랐고, 또 그녀의 패션 감각, 미모에 또 한 번 놀랐으며, 마지막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말솜씨에 놀랐다.

정말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반 영상이야 물론 편집의 힘이 어느 정도는 가미가 된 거겠지만, 편집이 끼어들 틈이 없는 라이브 방송만 봐도 어지간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MC들은 그냥 찜 쪄 먹을 정도의 재치와 순발력을 가졌고, 그럼에도 고급스러운 어휘를 시종일관 구사하는 모습에 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매력(채널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유튜브 채널 콘셉트 자체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주제였기에 더 깊게 빨려들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뭐 보고 있는 거예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였다.

기획 1팀의 차 팀장과 이지혜가 아직 점심시간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자리로 가는 동안 그들의 모니터에 뜬 화면을 살짝 훔쳐봤는데, 둘 다 회사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그것도 같은 채널의 다른 영상을 보고 있는 거였다.

“식사하셨습니까?”

“난 먹었죠. 두 사람은 점심은 먹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네, 저희도 먹었습니다.”

“이거 뭐… 그때 말했던 유튜버 서칭 중이에요?”

“네.”

“우리가 원하는 콘셉트랑 맞아떨어지는 유튜버는 있어요?”

“몇 명 추려놓긴 했는데… 동시에 여러 유튜브 채널을 뚫는 거보다, 하나씩, 하나씩 진행을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야 당연하죠.”

차 팀장의 모니터.

화장발인지 아님 조명발인지, 그것도 아님 카메라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저런 얼굴로 연예인 안 하고 뭐 하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 하나가 소파에 자연스럽게 앉아 똑같이 생긴 루이뷔통 가방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육안으로는 쉽게 구별이 안 가요. 이건 전문가가 와서 봐도 자세히 안 들여다보면 절대 구별을 못 해요. 그! 래! 서! 저 로즈마리가 정품 루이뷔통과 이미테이션 루이뷔통의 차이점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짜잔!”

그냥 딱 봐도 흥미가 돋는 주제였다.

난 차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면을 축소시켜서 해당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해 봤다.

302만 조회수라는 말도 안 되는 조회수가 찍혀있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이 유튜버의 채널 구독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였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상당히 많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한 영상으로 300만 조회수가 찍혀 있는 거에 비해선 구독자 수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42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버였다.

해당 영상만 썸네일 어그로를 잘 끌어서 구독자 수 대비 비정상적으로 조회수가 잘 나온 건가 싶어 내 스마트 폰으로 그녀의 채널을 찾아 들어가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영상이 100만 조회수를 넘기고 있었고, <명품 등급>이라는 썸네일이 찍힌 영상은 자그마치 조회수가 60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뭐 보고 계세요? 어? 얘….”

어디서 왔는지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 안 차장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아, 깜짝이야! 쫌, 쫌…. 오면 온다, 가면 간다 인기척이라도 좀 내고 다니세요.”

“부장님이 얘한테 너무 정신 팔려 있었단 생각은 안 드세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긴… 방금 나랑 다들 눈인사까지 했구만.”

“진짜예요?”

난 차 팀장과 이지혜에게 물었고, 그 둘은 대답하긴 곤란하지만 안 차장이 말이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크흠….”

“스타일 괜찮죠? 인물도 준수하고….”

“어쩐 일이에요? 천하의 안 차장님 입에서 여자 외모에 관한 칭찬이 다 나오고.”

“괜찮은 건 괜찮다고 합니다, 저도.”

“안 차장도 이 사람 아세요?”

“잘 알죠?”

“진짜? 어떻게?”

“저도 이 채널을 구독 중이니까요.”

“에이… 난 또 개인적으로 안다는 줄 알았잖아요. 아니 근데 안 차장님도 이런 채널 즐겨 봅니까? 나는 이런 채널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아뇨, 저는 이런 거 잘 안 보는데, 예전에 모리엘츠 건으로 베이징에 갔을 때 거기 중국 현지 직원이 알려주더라고요.”

“현지 직원이라면…”

“중국인 직원요.”

“…중국에서도 유튜브가 됩니까?”

“안 되죠.”

“근데 중국인 직원이 이 채널을 어떻게 압니까?”

“중국 애들이 어디 보통 애들입니까? 안 되는 게 없습니다, 거기는. 이렇게 유튜브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며 떠다니는 영상들 중에서, 특히 한국 채널 중에는 게임 채널이나 뷰티 채널, 패션 채널 같은 걸 웨이보우라는 곳으로 많이들 옮겨서 퍼뜨려요. 자기들끼리 막 말도 안 되는 자막들 넣어 가면서. 아예 개인 방송으로 중국 시장을 노리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번역을 달아서 풀기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현지 직원이 요즘 중국에서 핫한 한국 채널 중 하나라면서 저한테 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처음 봤어요.”

이 채널이 중국 쪽에서도 현재 핫하다고 하니까 더 구미가 당기는 거 같았다.

그리고 정품과 가품의 구별법을 정말 디테일하게 콕 집어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화술과 살짝 자극적인 거 같으면서도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내용을 몇 문장 안에 요약해서 만들어 놓은 썸네일 등은 타고나길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어그로를 잘 끌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 같았다.

“이렇게 조금만 자세히 보시면 박음질에서부터 차이가 나요. 어떤 게 정품이고 또 어떤 게 가품일까요? 1번. 박음질이 일렬로 가지런하게 들어가 있다. 2번. 박음질이 일정한 간격으로 사선으로 들어가 있다. 자, 두 제품 중에 과연 루이뷔통 정품은 어떤 걸까요? 두구두구두구… 네! 2번. 2번이 정품입니다. 루이뷔통 정품의 경우는 제품의 박음질이 모두 이렇게 사선으로 들어가 있어요. 거기다 육안으로는 잘 안 보이시겠지만, 박음질된 실의 굵기도 조금 차이가 납니다. 정품의 경우엔 굵은 실 세 가닥을 하나로 엮어서 사용하지만, 가품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디테일할 수가 없죠. 일반적으로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기본 실, 네 가닥이 하나로 엮여 있는 실을 사용하죠.”

내가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라는 여자 유튜브 채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내 자리로 돌아가서 유튜브 시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분석이라는 걸 좀 해봤다.

우선 다른 인기 높은 패션 채널들에 비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채널이었다.

그 말인즉 앞으로 얼마든지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채널이란 뜻이었고, 또 바꿔 말해 대부분의 채널들이 구독자 수에 비해 영상 하나당 평균 조회수가 낮은 반면 이 채널은 영상 조회수가 구독자 수를 최소 2배 이상은 그냥 훌쩍 뛰어넘고 있다는 점에서 썸네일 짓는 센스가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에 달리는 댓글들도 아주 호의적이었다.

물론 간혹 이유 없이 별 트집 같지도 않은 트집으로 채널 흠집 내기를 시도하는 댓글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순 없는 거고, 이 정도면 다른 채널에 비해 댓글 창도 상당히 깨끗하다고 할 만했다.

거기다 댓글을 다는 대부분의 구독자들이 로즈마리가 소개하는 상품과 또 영상에 입고 나온 옷, 시계, 액세서리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차 팀장이 패션 가이드 로즈마리 채널 말고도 다른 채널 몇 개를 더 소개해 줬는데, 첫눈에 꽂힌 채널이 로즈마리 채널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채널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어떤 채널은 연예인들의 패션을 지적하는 게 주된 채널이었고, 또 어떤 채널은 말 그대로 신상 명품을 들고나와서 ‘나 이번엔 이거 샀어.’ 하는 식으로 자랑을 하는 채널이었으며 또 어떤 채널은 로즈마리보다 유튜브 활동을 먼저 한 걸로 보이는데, 채널 콘셉트는 비슷한 데 반해 영상들이 하나같이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다.

부장을 단 이후 내가 가급적이면 팀장들한테 업무 관련해서 일대일 사내 메신저를 잘 안 보내는 편인데, 이번엔 차 팀장한테 메신저를 보냈다.

-혹시 누구로 할 거예요?

-로즈마리한테 먼저 접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나도 걔가 제일 나아 보여요.

-이 대리가 보낸다고 했으니까 답장 오면 양 차장님 통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었다.

홍성 정도 되는 기업에서 자기 채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먼저 러브콜을 보내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오산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로즈마리는 자기 채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한 유튜버였다.

출근과 동시에 내 자리로 가기 전 기획 1팀을 찾아가서 로즈마리 섭외 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차 팀장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왜요? 아예 답장이 없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자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만 리뷰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게 끝?”

“이 대리가 다시 메일을 하나 보내 놨는데…”

“어젯밤에 답장받고 바로 메일을 다시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습니다.”

이지혜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메일을 뭐라고 보냈는데? 그쪽으로 보낸 메일 나한테 좀 다시 보내봐요. 아니다. 답장이 왔다며?”

“네. 처음 보낸 메일에만요.

“답장 메일을 보내줘 봐요. 그거면 처음 이 대리가 프러포즈한 메일까지 같이 볼 수 있잖아.”

“네.”

이지혜가 보낸 메일은 상당히 정중했고, 또 격식이 갖춰진 메일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답장 역시 무척 정중했으며 또 자신이 왜 폴앤크루의 리뷰를 해주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아주 솔직하게 잘 전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자기는 영상 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그 영상 활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자기가 채널을 처음 만들 당시 세웠던 철칙을 꼭 지켜야 한다는 거였다.

꼭 명품 리뷰 영상만 올리는 건 아니지만, 한 번씩 올리는 명품 리뷰 영상을 만들 때엔 꼭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 그래서 자기가 직접 구입을 했거나 혹은 선물을 받아서 착용, 혹은 사용을 해본 제품만 한다는 철칙이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없는 단순 광고 영상은 찍고 싶지 않다는 뜻 같았다.

유튜브 채널이 갑자기 커지면서 여러 패션 브랜드들로부터 리뷰 영상 제작에 관한 제의를 상당히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런 제의로 인해 제작된 영상은 단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았다며 제의에 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하아… 아깝네, 딱이었는데….”

난 혼잣말을 하며 이지혜가 보내준 메일을 닫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더 찔러보고 단념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만큼 가성비 높은 홍보가 어디에 있겠나.

영상 하나당 최소 10분인데, 그 10분짜리 영상에 폴앤크루를 입히기만 하면 그 10분 동안 오로지 폴앤크루의 홍보가 되는 거다.

물론 다른 패션 유튜버들도 많이 있지만, 이상하게 로즈마리 채널이 끌렸다.

난 담배를 챙겨 사무실을 나서며 기획 1팀 파티션 앞에 서서 양 차장에게 말했다.

“그… 로즈마리 말인데요.”

“네, 부장님.”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제가 직접 접촉해 볼게요.”

“부장님이 직접요? 에이 그냥 놔두세요. 이 대리가 할 겁니다.”

“아니요. 제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영상도 그렇지만 이 대리한테 답장 보낸 거 보니까… 내공이 보통이 아닌 여자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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