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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96화 (196/325)

# 196

회사다운 회사를 다니고 싶습니다

실물 샘플 제작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 홍성과 거래를 하고 있는 업체 역시도 실물 샘플은 원단에 패턴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물량을 뽑아줘야 하고, 또 엠보싱 처리 같은 경우는 제품 하나하나에 스탬프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대신 3D 디자인 제작 정도는 무료로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뭐예요?”

“말 그대로 실물을 뽑기 전에 전체적인 느낌을 최종 확인하는 단계라고 하네요. 그건 디자이너만 있으면 되는 작업이라서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기존 맨투맨 라인에 패턴만 입히는 작업이라서…”

“그러면 그거라도 좀 해달라고 부탁해 봐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3D 디자인이 도착하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난 그 3D 디자인이라는 게 꼭 실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실물 느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뽑혀서 놀랐고.

그래, 아무리 급해도 이 정도 준비는 해놓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아무리 국내 유통을 다 잡고 있다고 해도 사진관에서 뽑아 온 티셔츠 몇 장을 가지고 세상 까탈스러운 전무님의 컨펌을 받아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난 최 팀장에게 받은 디자인을 장 본부장에게 보내기 전 잠시 멈춰야 했다.

“….”

그리고 내선 전화로 영업 마케팅부 김 차장을 호출했다.

“차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럼 저랑 간단하게 미팅 한번 하시죠.”

-지금 내려가?

“회의실 하나 잡으시겠습니까?”

회의실을 잡으라는 말에 수화기 너머로는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개별 미팅을 하자는 이유를 추리하고 있는 중이겠지.

아직 난 양 차장의 유아 아동복 관련 사업을 김 차장에게 넘기겠단 확답을 주지 않은 상태였다.

넘기더라도 최소한 분기는 끝내고 넘겨야 한다.

분기 중간에 넘기게 되면 정확한 성과급 계산도 안 될 뿐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하다.

정확히 새 분기가 시작될 때 넘겨줘야 분기별 매출을 통해 양 차장이 맡아 나갈 때보다 매출이 올랐다, 떨어졌다 하는 걸 정확하게 확인해 볼 수가 있는 거니까.

5월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잠시 뒤 김 차장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30분 뒤에 소형 회의실이 비니까 거기에서 보자고 했다.

그런 말을 전하는 김 차장의 음성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난 그동안 기획 1팀이 진행하고 있었던 유아 아동복 관련 사업 정보를 노트북과 함께 챙겨서 회의실로 내려갔다.

먼저 회의실에 내려와서 자리를 잡고 날 기다리고 있던 김 차장.

난 우선 안쪽 자리로 들어가 노트북과 기획 1팀에서 챙겨온 자료들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김 차장의 두 눈은 기대와 만족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훅하고 치고 들어오셨어요.”

회의 테이블 위로는 기획 1팀의 유아 아동복 사업 관련 정보를 끼워놓은 파일철을 올려져 있었다.

난 그 파일철 위로 피아노를 치듯 여러 차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손동작을 쳐다보며 김 차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해 좀 해줘.”

“이해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뭐 사실 저야 큰 상관이 없죠. 이걸 양보하겠다고 결심한 양 차장만 속이 쓰린 거지.”

“흐흐흐…”

“그런데 김 차장님. 저는 걱정이 되네요.”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재 매출 유지는 물론이고 성장시킬 테니까.”

“그 부분은 믿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주셔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매출 부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과연 이 다음엔 뭘 요구하실까… 하는 걱정이 된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차장님은 직접 프로젝트를 만드는 건 못 하시지 않습니까. 항상 여기저기 남이 만들어 띄워놓은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고만 있지 않습니까.”

“…!”

“아, 저도 김 차장님 입장을 이해하니까 김 차장님도 제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같이 이해해 주십시오.”

여기선 양해를 구할 이유가 없는 거다.

“2년 본다고 하셨죠?”

“뭘?”

“그때 김 차장님이 김 차장님 입으로 직접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앞으로 길면 2년 보신다고.”

“…!”

“그거 진심으로 하셨던 말씀이십니까?”

“그, 그거야….”

“저는 좀 집요합니다, 김 차장님.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그냥 한 번 듣고 흘리지 않습니다. 그때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답 잘하셔야 합니다.”

“….”

“저는 지금 부장으로서 차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 차장님도 제 입장을 좀 이해해 주시고, 이 부분에 대해 대답을 좀 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2년의 정확한 뜻이 뭐였습니까?”

김 차장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잖아. 그때도 한번 말했다시피 양 차장, 안 차장 둘 다 지금 날개 달고 훨훨 날고 있는 중이고, 손 차장도 중국 법인에서 돌아오면 내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을 거 아냐.”

“그 말인즉 부장 승진은 다른 차장들에게 먼저 양보를 하겠다… 뭐 그런 뜻입니까?”

“…!”

“저는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김 차장은 말이 없었다.

“저는 차장님이 최소한 저를 상대로는 정치를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에이, 그게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정치 그거… 하라면 저도 하겠는데, 저는 그냥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일에만 집중하는 게 더 제 스타일인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또 안 하면 안 했지, 한번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제가 사내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 피 볼 사람 여럿 생깁니다. 그러니까….”

“….”

“저를 상대로 정치를 하시지 말고 저를 위해서 정치를 해주시면 참 좋을 거 같습니다.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드신 그 리더십. 그런 리더십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걸 어째 절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절 상대로 사용하셨습니까, 그동안.”

“…!”

“차장님이 그렇게 절 대하셨는데, 저는 과연 차장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양 차장, 안 차장 둘 다 저를 위해 리더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 차장, 안 차장을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고요. 이런 선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업 기획부나 해외 영업부는 승승장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혀를 살짝 빼내 자신의 마른 입술을 적시기 시작하는 김 차장.

“정말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을 위해 이 유아 아동복 사업이 필요하신 겁니까?”

“맹세해. 내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왜 욕심이 없으십니까, 차장님. 욕심을 가지셔야죠. 말은 계속 별 욕심이 없다고 하시지만, 결국 양 차장으로부터 이 사업권을 빼앗아 오신 거 아닙니까. 앞으로는 쉽게만 가려고 하지 마시고 정정당당한 욕심을 가지시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계속 만들어내세요. 그게 차장님이 팀장들 시켜서 해주셔야 하는 역할 아닙니까.”

“좀 더 신경 쓸게.”

“정말 이거면 되겠습니까?”

김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 차장 앞으로 난 들고 있던 파일철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김 차장이 그 파일철을 집으려고 할 때 손가락으로 그 파일철을 꾸욱 하고 힘을 줘 눌렀다.

그가 날 쳐다보는 순간 난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욕심이 없으십니까?”

“….”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김 차장 앞으로 이번에 장 본부장이 밀고 있는 홍성 자체 브랜드 건을 보여주었다.

노트북 화면을 그의 앞으로 돌렸고, 장 본부장이 밀고 있지만, 결론은 상무님의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말했다.

“당장 올라오는 매출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만약 이걸 영업 마케팅부가 제대로 띄우기만 하면… 차장님은 상무님 라인을 바로 탈 수도 있는 겁니다. 못 띄우더라도 상무님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다는 거 자체가 큰 의미 아니겠습니다. 뭐 물론 유아 아동복에 비해 리스크는 좀 있겠지만, 그 리스크 정도야…”

“…!”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통과만 하면 전사적인 투자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사장님도 오래전부터 홍성 자체 브랜드에 목말라 하고 계셨고, 국내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기에 최적기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

“다시 한번, 아니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진짜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만을 위해 이 유아 아동복 사업이 필요하신 겁니까?”

김 차장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길어도 2년을 보고 계시는 겁니까? 정말 더는 욕심이 없으신 겁니까?”

“….”

“앞으로 최소한 저를 상대로는 정치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난 파일철과 노트북을 둘 다 김 차장 앞으로 밀어놓고 말했다.

“예상을 못 해서 당한 거였지, 그래서 다른 차장들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웃고 있었을 뿐이지 사실 기분 상당히 안 좋습니다. 다른 차장들 다 있는 앞에서 절 너무 바보로 만들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에 대한 저의 불신만 더 키워놓으셨고요.”

“그럴 의도는 없었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제가 기분 나쁜 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저는 좀 회사다운 회사를 다니고 싶습니다. 김 차장님은 어떠십니까?”

“….”

“이따위 체계, 시스템을 가지고도 망하지 않고 굴러가고 있는 게 신기한… 그런 회사를 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 회사를 좀 회사답게 만들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야 뭐…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절 좀 존중해주십시오. 단둘만 있을 때까지도 존대를 해달란 말은 안 하겠습니다. 그저 팀장급 미팅 자리에서처럼 다른 차장들 있는 앞에서도 존대를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

“차장님께 존대를 받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고요, 도저히 이대로는 회사가 아닌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 불편하고 또 죄송하지만 이게 맞는 거 같습니다.”

“네, 제가 먼저 신경 써서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가져가세요. 남는 건 양 차장한테 줄 거니까. 뭘 선택하시든 그건 김 차장님의 자유이고, 전 김 차장님을 돕겠습니다.”

난 두 손을 벌려 파일철과 노트북에 각각 손을 올렸다.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하아…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제야 조금은 솔직해진 김 차장을 볼 수 있었다.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 팔아먹는 걸 인정한단 꼴인데….”

“뭐 어떻습니까, 다들 그렇게 직장 생활하는 거죠. 저는 차장님께 깨끗하라고 주문을 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저를 상대로는 정치를 하지 말라고 주문을 한 거지. 절 위한 정치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부장님이라면 여기서 뭘 선택하실 거 같으십니까?”

“저야 당연히 상무님 프로젝트를 선택하죠.”

“그럼 제가 뭘 선택하길 속으로 바라고 계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차장님이 상무님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어떻게든 한번 띄워보겠다고 말씀해 주셨음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양 차장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난 말없이 김 차장을 쳐다봤다.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저보다는 양 차장이 더 나을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이건 부장님을 위한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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