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94화 (194/325)

# 194

총대는 내가 메지

장향은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정말 공교롭게도 장향은의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링겐과의 계약 건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물론 무조건 성사가 될 수밖에 없는 계약 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박기태 혼자 보낼 수는 없는 출장.

어쩔 수 없이 장향은을 대신해서 안 차장이 박기태를 데리고 링겐으로 출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을 못 하게 된 안 차장과 박기태를 대신해서 양 차장이 축의금을 전달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양 차장과 함께 축의금을 내고 식권을 받고 있을 때였다.

영업 마케팅부 팀원들이 나와 양 차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난 그들을 향해 회사에서와는 달리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함께 인사를 건넸고, 축의금을 전달하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런데 김 차장님은 오셨어요?”

“지금 막 주차장에 도착하셨답니다.”

“알았어요.”

예식장 홀은 양가 하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어느 한쪽으로 하객 수가 기울지는 않을 거 같았다.

“아이고… 애기들을 데리고 오셨구나….”

“네?”

“저기 김 차장님 오시네요.”

양 차장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렸고, 딱 봐도 진짜 말 안 듣게 생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하나씩을 전담 마크하듯 데리고 들어오는 김 차장 내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선 영업 마케팅부 팀장 한 명이 김 차장의 막내가 들어가 자고 있는 유모차를 조심히 끌며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난 서둘러 양 차장과 함께 걸어갔다.

“네가 규성이구나. 네가 유희고.”

“안녕하세요… 해야지.”

“안녕하세요.”

나 역시 김 차장이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쩔 수 없었던 거 같다.

애들 보는 걸 도와주시던 김 차장의 장모님이 요 며칠 독감에 걸려 그걸 옮길까 겁이 나서 아예 애들 곁엔 오지를 못하신다고.

그렇다고 애 셋을 와이프한테만 다 맡기고 혼자 올 수도 없어서 온 가족이 모두 움직였다고 말했다.

진짜 전쟁이 따로 없었다.

보고만 있어도 진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남자아이는 김 차장이 조금만 방심을 해도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 나갔고, 그런 오빠가 하는 모든 걸 다 따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둘째. 그리고 유모차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막내가 잠에서 깨는 순간 이게 바로 육아지옥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김 차장 내외는 아이들 때문에 본식이 시작되는 와중에도 식장 안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그저 식장 밖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가 본식이 다 끝이 나고 지인들 기념 촬영을 할 때에 김 차장만 재빨리 뛰어 들어와서 사진을 찍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식이 다 끝난 후에도 가장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애들 밥을 먹여야 했다.

“천천히들 먹고 와.”

“벌써 가시게요?”

아직 결혼식 주인공들은 폐백을 진행하고 있어서 식당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아들을 품에 안고 김 차장이 다가와 자신은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하고 있던 식사를 잠시 멈추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콧구멍에 바람 한번 넣어줬으니까 이제 이놈들 데리고 가서 재워야지.”

“….”

원래 계획에는 없던 지출이었지만,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라고 아이들에게 5만 원권 한 장씩을 줬다.

“하지마. 에헤이… 뭐 하러 그래. 됐어.”

김 차장은 내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냥 내 마음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 양 차장은 뷔페식당에서 김 차장 가족과 인사를 했고, 영업 마케팅부 팀장들은 식장 밖까지 그 가족을 배웅하고 다시 돌아왔다.

“갑자기 좀 궁금해지네요.”

식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해외 영업부 최 팀장이 말했다.

나와 양 차장, 그리고 최 팀장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뭐가?”

양 차장이 물었고, 최 팀장은 이제 막 김 차장을 배웅하고 다시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온 영업 마케팅부 팀장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과연 오늘 축의금으로 얼마나 내셨을까요?”

“….”

딱 거기서 그만했어야 했다.

자기 딴에는 별생각 없이 재미 삼아 꺼낸 주제였겠지만, 나나 양 차장은 그런 대화 주제를 딱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최 팀장은 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렇게 가족들 다 데리고 와서 뷔페 먹고 가면… 설마 딸랑 10만 원만 넣지는 않았겠죠? 김 차장님이라고 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 거 같긴 한데….”

“그런 게 중요해?”

“그냥 궁금해서요.”

“그게 왜 궁금한데?”

양 차장이 정색을 하는 순간 그제야 최 팀장은 자신이 쓸데없는 소릴 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출근을 하는 날도 아니고, 다들 쉬는 날 시간을 내어 참석한 동료 결혼식인데, 꼭 이렇게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소리를 해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양 차장을 말리지 않고 그냥 모르는 척 음식을 먹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우리 중엔 가장 경험이 많으신 분이야. 그래서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최대한 영업부 직원들 경조사는 다 챙기려고 애쓰시는 분이고.”

“….”

“최 팀장은 그때 중국 주재원 가 있을 때라 잘 모르겠지만, 손 차장님 모친상 당하셨을 때도 회사 상조팀 꾸릴 때 김 차장님이 제일 많이 수고해 주셨어. 오늘도 봐라. 김 차장님이 직접 안 오셨음 영업 마케팅부에서 아까처럼 지인들 사진 촬영할 때 다 몰려갔겠어? 다들 이리저리 눈치만 보기 바빴겠지.”

“제가 말실수했습니다.”

양 차장도 더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최 팀장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지나가는 말 비슷하게 장난처럼 말했다.

“제 결혼식 땐 혼자 오셔서 20만 원 넣어주셨더라고요.”

“…!”

“일할 때 양심 없는 거랑, 회사 밖에서 하는 모습은 또 조금씩 달라. 첫째 때 말고는 돌잔치도 안 하셨어. 초대하기도 민망하다고.”

“…그렇군요.”

“우리 양 차장님 성격에 유아 아동복을 군말 없이 빼앗기게 생겼는데도 별말 못 하고 있는 거 봐요. 딴 사람 같았음 입에 게거품 물고 싸웠을걸? 안 그렇습니까?”

“또 그 이야기는 왜 꺼내십니까? 사람 속 쓰리게.”

“크크큭….”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장 본부장이 말도 없이 영업부를 찾아왔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점심은?”

“가야죠.”

“약속 있어?”

“아뇨. 없는데요?”

“그럼 나랑 같이 갈까?”

“저야 좋죠. 상무님은요?”

“이문 본부장이랑 같이 사장님 모시고 나가셨어.”

“아….”

회사 앞 순두부 정식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 앞으로 내미는 장 본부장이었다.

“이거 한번 봐. 옆으로 밀어 가면서… 그림이 많아.”

“뭡니까, 이게?”

“그냥 묻지 말고 공 부장 느낌을 좀 말해줘.”

“잘 그렸네요.”

실제 인물을 살짝 마블 만화처럼 변형시켜서 그린 그림.

이런 걸 팝아트라고 하나?

그림 관련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는 나였지만, 그런 내 눈에도 제법 느낌이 있는 그림이라는 건 보였다.

주로 개나 고양이, 자동차, 아파트, 꽃, 그리고 컨버스 운동화 등을 팝아트 느낌으로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색감 배열이나 포인트를 짚어내는 실력이 무척 수준급이었다.

“요즘 뭐 그림에 취미 붙이셨습니까?”

“으으음….”

장 본부장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이거 누가 그린 줄 알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제가 그림만 보고 화가 이름 맞힐 수 있는 건 고흐밖에 없습니다.”

“이거 상무님 작품이야.”

“…네?”

순간 상무님의 원래 전공은 경영이 아니라 미술이었다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문 본부장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다시 좀 봐도 됩니까?”

일반 작가들의 그림이었다고 하면 그냥 아, 잘 그렸네… 하고 말았겠지만, 그게 상무님의 작품이라고 하니까 다시 보고 싶었다.

내가 스마트폰 액정을 옆으로 밀어가며 그림 하나하나를 다시 꼼꼼히 보기 시작하자, 장 본부장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어떤 거 같냐고 재차 물어왔다.

“우와…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나도 깜짝 놀랐어.”

“이거 본부장님이 직접 찍으신 거예요?”

“어제 갑자기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시더니 날 집으로 초대해 주시는 거야. 집 안에 작업실이 있더라고. 그리고 구경을 시켜 주시던데… 보고 깜짝 놀랐다. 취미 삼아 그리고 있다고 하시는데, 이게 어떻게 취미야?”

“그렇네요. 그림을 전혀 모르는 제가 봐도 이건 그냥 취미 삼아 그리는 실력은 절대 아니네요.”

“이거 괜찮지 않냐?”

“…뭐가요?”

난 그때까지만 해도 장 본부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그림이 많아.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많아. 방 하나에 다 못 넣어서 따로 창고에 보관할 정도로 많아.”

“…?”

“그냥 뭐 시간 날 때마다 그리시는 모양이야. 취미 생활 비슷하게 그림 그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뭐 그러시는 모양이더라고. 전시 같은 걸 한번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건 또 창피해서 싫다고 하셔.”

“에이… 홍성 황태자가 뭐가 아쉬워서 전시 같은 걸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건 그런데… 근데 난 이게 좀 많이 아깝다.”

“아까부터 뭐가 계속 아깝단 말씀이십니까?”

“어쩌면 이걸로… 홍성의 세대교체가 가능해질 수도 있을 거 같단 기분이 들어.”

“…?”

“우리 홍성 브랜드 하나 만들어보자, 이 콘셉트로.”

“…!”

“아, 물론 전사 운영본부에서 다 진행할 거야. 만약 하게 되면. 뭘 그렇게 놀라. 설마하니 내가 영업부 출신인데 예전처럼 이런 프로젝트를 영업부에 밀겠어? 하게 되면 전사 운영본부에서 진행을 할 건데… 상무님 설득을 해야 될 거 아냐. 자기 눈엔 자기가 그린 그림이 부끄러운 모양이야. 근데 내 눈엔 아니거든. 개성이 확실하단 말이야.”

“이런 그림 몇 점 가지고 무슨 브랜드를 만들겠단 말씀이세요?”

“몇 점이 아니라니까? 진짜 많아. 공 부장이 거기 작업실 직접 들어가 보면 진짜 깜짝 놀란다. 그리고 이런 그림들이… 페인팅으로도 괜찮지만, 여러 작품을 엇붙여서 개성 있는 패턴 만들기엔 완전 딱이야.”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브랜드 론칭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부장님. 한두 푼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요. 잘 아시면서….”

물론 장 본부장의 실력을 못 믿어서 의심을 했던 건 아니다.

브랜드 론칭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홍성이었기에, 생산 라인, 하다못해 제대로 된 디자이너 한 명 없는 홍성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브랜드를 론칭시키겠다는 건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었다.

“나는 공 부장이 무조건 된다고만 말해줬음 좋겠어. 그럼 내가 우리 홍성 영업부의 영업력을 믿고 한번 총대를 메 볼까 해.”

“…!”

“사실 전사 운영본부가 상무님 따까리나 하는 부서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신사업 아이템들을 계속 개발해내고 구체화시키는 게 전사 운영본부의 진짜 역할이긴 한데….”

“그동안 그걸 제대로 해낸 적이 거의 없지.”

“그래도 브랜드 론칭은 리스크가 좀 크지 않습니까?”

“홍성이 확보하고 있는 유통 채널이면, 거기에만 다 깔 수 있어도 절대 마이너스는 안 본다. 그게 내 계산이야. 쁘띠토널 한국에서 뜨는 거 봐라. 그게 어디 쁘띠토널 제품력이 우수해서 띄울 수 있었던 거야? 결국은 유통이야. 그걸 잡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

“된다고 해줘. 그래야 내가 상무님한테 말이라도 꺼내 볼 거 아냐.”

“아직 상무님은 모르고 계세요?”

“나도 이 그림들 어제 처음 봤어. 그리고 밤새 생각하다가 공 부장 찾아온 거고. 공 부장이 자신 있다고 합니다! 영업부에서 무조건 띄워 보겠다고 합니다! 라는 한마디면 무조건 한번 해보라고 하실걸?”

싱긋이 웃는 장 본부장을 향해 내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총대 메신다면서요?”

“총대는 내가 메지. 사업에 대한 총대는 내가 메는데, 상무님이 자기 그림들에 대한 확신이 없으시니 설득을 해야 될 거 아냐. 상무님한테는 공 부장 약발이 제일 잘 먹히더라고.”

“아, 씨… 안 그래도 할 거 많은데… 이거 또 괜히 돈 안 되는 프로젝트에 발목 잡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공 부장아. 이건 성과급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야.”

“흐음….”

“어차피 상무님이 차고 나가실 회사야. 비록 그림으로써 자신의 꿈을 펼치지는 못하셨지만, 이렇게 자신의 작품으로 제품이 생산되고 그걸 누군가가 좋아서 구입해 입고 다닌다면… 결국 나랑 공 부장이 상무님의 한을 풀어주는 거 아닐까? 상무님의 기분이 얼마나 좋으실까?”

“….”

“왜? 전사 운영본부로 간 뒤부터 상무님 똥구멍만 핥을 궁리를 하고 있다는 눈빛이네?”

“무슨 또 그런 말씀을…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영업부의 채널 유통망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 이거 진짜 되는 거야. 첫째. 그림에 대한 라이센스 비용이 안 들어. 패턴을 무료로 뽑을 수가 있다고. 상무님만 오케이를 해주시면.”

“흐음….”

“제작? 일단 국내 샘플 공장한테 맡겨서 기본 디자인에 프린팅하고 패턴만 입혀서 샘플을 뽑아 보면 될 거 아냐. 그리고 진짜 제작 공장은 만토바 쪽 라인 통해서 이탈리아 공장을 섭외하든, 아님 쁘띠토널 통해서 프랑스 쪽 공장을 섭외하든 하면 되는 거고. 일단 샘플만 한번 뽑아 보자. 상무님이 그린 그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내 눈엔 이 그림들이 다 느낌이 있어. 그냥 창고에 묵히기가 아깝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