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그동안 누가 센터를 보고 있었어요?
속수무책.
당시의 상황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성인 남자 셋이서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차 팀장 하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기만 한 게 이삼 분째.
대처를 하거나 응급조치를 하더라도 무슨 경험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처음엔 정말 차 팀장이 잘못되는 줄만 알았다.
회의 중간에 갑자기 “어? 아…” 하며 상황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신음을 내더니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극도로 초조해 보였고, 어떻게든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볼 틈이 없었다.
나와 양 차장, 나 팀장은 거의 동시에 차 팀장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런 우리의 시선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어 버렸다.
회의 테이블 위로 올려진 차 팀장의 두 손.
주먹을 꼬옥 말아 쥔 그의 두 손은 회의 테이블 위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뭔가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 동공이 눈에 띄게 수축되어 있었다.
“차, 차 팀장. 차 팀장!”
“…괘, 괜찮습니다. 부장님. 자, 잠시만요….”
차 팀장이 간신히 말했다.
그리고 나 팀장은 서둘러 생수를 가져오기 위해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나와 양 차장은 당황한 마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하기 위해 최대한 차분하게 차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선 절대 안 괜찮았다.
“진짜… 괜찮아요?”
“허억… 후우…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이게 그거야? 공황발작인가 하는….”
양 차장은 앉아 있는 차 팀장의 뒤로 자리를 잡고 서서 천천히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차장님. 잠시만 그냥 가만히 내버려….”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양 차장은 차 팀장의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서둘러 회수하며 한 발짝 뒤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 팀장이 생수 한 통을 들고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을 땐 다행히 어느 정도 차 팀장이 진정이 된 상태였다.
“괜찮아?”
“…고마워.”
입사 동기인 차 팀장과 나 팀장.
나 팀장이 생수 뚜껑을 열어 차 팀장에게 건넸고, 이제 뭔가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는지 차 팀장은 그 생수통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후… 죽겠네, 진짜… 제발 일할 때는 오지 말라고 그렇게 속으로 신신당부를 했는데….”
“온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조금 전처럼 발작을 하기 전에는 꼭 그 특유의 전조 증상이 먼저 나타나거든요. 꼭 지금 당장 어떻게 될 것만 같다는 공포심이….”
“완치는 안 되는 건가? 방금 그거 공황… 그거 맞지?”
양 차장의 물음에 차 팀장은 물을 한 모금 입안에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죄송합니다. 저도 전혀 예상을 못 하고 있다가 갑자기….”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놀랐어, 난. 진짜 차 팀장 잘못되는 줄 알고 십년감수했네. 아직도 심장 벌렁거린다.”
“저기….”
차 팀장이 아랫입술을 잘게 씹으며 뭔가 말을 하려고 했고, 그런 차 팀장 앞으로 고개를 흔들며 양 차장이 말을 잘랐다.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봤어. 부장님 뭐 보셨습니까?”
“뭘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나 팀장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요?”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 팀장에게 물었다.
“이건 치료를 받아도 완치가 안 되는 건가?”
“된다는 사람도 있고,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약물치료가 상당히 효과적인 건 맞습니다. 아까처럼 예기 증상이 느껴질 때 약을 먹으면 효과는 바로 나옵니다. 근데 최근에 좀 괜찮아지는 거 같아서 약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또….”
“그래도 약을 먹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근데 회사에서 이러는 건 저도 오늘이 처음인데… 괜히 불안하네요. 이러다가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을 거라는 말조차 해줄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
이게 그냥 사무실에서 자기 개인 업무를 보다가 훅하고 올라오는 거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을 거 같은데, 거래처 사람들이나 브랜드 업체들과의 중요한 미팅에서 조금 전과 같이 그렇게 되어버리면 분명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하다못해 그 흔해 빠진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환절기 때마다 고생하는 나도 비염이 시작되면 덜컥 겁부터 나는데, 조금 전 차 팀장이 보인 공황발작은 비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옆에 있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유튜브로 공황장애, 공황발작을 검색해 봤다.
많이 심각한 거면 휴가를 쓰게 만들어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나는 그 짧은 몇 분 동안 상당히 당황했고, 또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그렇게 며칠 정도가 지난 후 화장실에서 차 팀장과 마주쳤다.
난 볼일을 보고 세면대 앞으로 서서 손을 씻고 있었고, 용변을 보고 나온 차 팀장도 내 옆으로 나란히 서서 손을 씻었다.
거울로 화장실 안에 우리 둘만 있는 걸 확인한 후 조심히 차 팀장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나 진짜 그날 많이 놀랐어요.”
차 팀장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인터넷으로 좀 알아봤는데 관리만 좀 잘해주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더만.”
“네, 병원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불안한 거죠. 회사에서까지 올라오기 시작하니까.”
“그 후로 또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랬던 적 있어요?”
“아뇨, 아직….”
페이퍼 타월 두 장을 뜯어서 한 장은 차 팀장에게 주고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날 미팅에서 나왔던 새 편집샵 브랜드 론칭 건… 양 차장님한테 이야기 들었죠?”
“네, 이지혜 씨 본사 복귀하기 전까지는 잠시 스톱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해요. 다시 생각해 보니까 신입들만 데리고 차 팀장 혼자 진행하기엔 버거운 감이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아직 실감이 안 나겠지만, 팀장 딱 달고 자기 맘에 쏙 드는 대리 하나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 거예요. 이지혜 씨… 같이 일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진짜 괜찮아. 내 장담하는데 대리급에선 최고 에이스예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나는….”
“네, 부장님.”
“애가 잘 안 생기네?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해보고 했는데…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돼.”
“…!”
“자랑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밀로 할 건 더더욱 아닌 거 같아요.”
“…”
“내가 그 말을 이사님부터 시작해서 양 차장님, 안 차장님한테까지 솔직하게 다 털어놨더니 재밌게도 그 후부터는 아무도 나한테 같이 술 마시러 가자는 말을 안 하네. 담배 피우러 올라가도 끊으라고 잔소리를 해주고…”
“…네.”
“전염병 아니잖아. 내가 조금 알아보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는 거 같더만.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네.”
“그냥 내 경우는 그렇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하니까 다들 도와줘, 주위에서. 그 정도 협조도 안 해주면 그게 어떻게 동료야. 적이지. 안 그래요?”
“네.”
“우린 의사가 아니니까 완치라는 표현 대신 극복하자는 표현을 씁시다.”
“…!”
“극복합시다.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래요?”
“네.”
“이 치열한 직장 생활도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인 거 같아요.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주위 사람들이 바뀌어.”
“네.”
그리고 일주일 뒤….
드디어 내가 일 년을 아껴서 묵혀두고 있었던 이지혜가 1년간의 프랑스 파견근무를 끝내고 본사로 복귀했다.
또각또각…
무척 익숙한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또각또각…
사무실 바닥을 건드리는 하이힐 굽 소리.
1년 만에 하는 본사 첫 출근이라 의상에 꽤 신경을 쓴 모양이다.
발목까지 떨어지는 회색의 스트라이프 정장 바지.
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블라우스 밖으로 아이비 컬러의 투 버튼 재킷을 맞춰 입었다.
거기에 나크리스 헤어홀스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이지혜가 등장했다.
여기서 날 깜짝 놀라게 만든 건 그동안의 이미지를 한 번에 깨뜨리는 그녀의 파격적인 숏커트 헤어스타일.
이지혜가 본사를 떠나 있는 동안 입사한 신입들은 넋 나간 사람처럼 자신감 넘치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지혜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고, 이지혜를 알아본 직원들도 시원하게 잘려나간 머리 길이 만큼이나 시원하게 이미지를 변화시킨 이지혜의 모습에 쉽게 먼저 말을 못 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아니, 차장님. 차장 승진 축하드립니다.”
“우와… 이게 누구야? 파리 물이 좋긴 좋아?”
“지혜 씨야? 아 놔, 난 또 어디서 모델이 걸어오나 했네. 머린 언제 잘랐어? 지난 연말에 파리에서 봤을 땐 안 이랬잖아.”
“안 차장님 깜짝 놀래켜 드리려고 서프라이즈 한번 해 봤어요. 차장님도 승진 축하드립니다. 어머, 팀장님!”
장향은을 발견한 이지혜는 방방 뛰며 그녀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팀장님.”
“이제 진짜 자세 나오네.”
“결혼하신다면서요.”
“차차 이야기하고 얼른 부장님한테 가 봐.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셨어.”
난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션에 기대어 서서 이지혜를 맞이했다.
가르마 결대로 머리를 반대쪽으로 쓸어넘긴 후 내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고개를 숙이는 이지혜.
“뭡니까? 출근 첫날부터 빠져 가지고 부장보다 늦게 출근하기 있습니까?”
“완전 일찍 왔어요. 본사 출근 다시 한다는 생각에 설레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요. 근데 사원증이 막혀서 로비에서 들어오지를 못했어요. 그거 새로 만드느라 30분 넘게 잡혀 있었단 말이에요.”
“머리 완전 잘 어울리네.”
이지혜는 부끄러운 듯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미소를 참았다.
“진짜 자세 나온다. 가서 차 팀장님이랑 인사 나누고, 자리 비워놨을 테니까 짐 풀어요.”
“넵!”
나한테 해주는 거 하나 없는데 그냥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사람.
이젠 내가 따로 가이드라인을 잡아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난 1년 사이 부쩍 성장을 한 게 풍기는 에너지만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난 여전히 파티션에 몸을 기댄 채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자신의 새로운 팀장과 부하 직원들과 본사 복귀 후 첫인사를 나누는 이지혜의 모습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봤다.
“그럼 그동안 누가 센터를 보고 있었어요?”
“네,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 대리님.”
“그럼 내가 부탁 하나만 할게요.”
“네,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힘든 부탁은 아니고… 바로 우리 팀 업무 시작할 수 있도록 브랜드별 마진 베이스랑 커스터머 프라이스, 브랜드별 CS 대처 매뉴얼, 크레딧 노트 관리표, 인보이스 체크 리스트, 당연히 페널티 나고 있는 브랜드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페널티 누적 포인트, 브랜드별 담당자들 직통 번호, 이메일까지 한눈에 다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 좀 해주세요.”
“…!”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점심시간 전까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하, 하, 하하하… 그, 그럼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마진 베이스, 커스터머 프라이스… 그리고…”
“그동안 우리 팀 센터 봤던 거 맞죠?”
“…네.”
“센터는 머리로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기록하는 사람이죠?”
“…!”
고개를 돌려 나와 마주친 이지혜.
그녀는 날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이지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향은 역시 날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다시 자기 업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