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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79화 (179/325)

# 179

얼마나 받았을 거 같아요?

강혜선이 운전대를 잡은 출근길이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운전을 하기가 곤란하거나, 아님 오늘처럼 아예 회식이 잡혀 있는 날은 어차피 강혜선도 퇴근을 해야 하니까 집에서부터 강혜선이 운전대를 잡는다.

강혜선은 우리 회사 앞으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난 서류 가방을 챙기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런 내게 강혜선이 말했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알았어.”

“….”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냐, 아무것도.”

“그럼 나 간다?”

“…그래.”

그냥 느낌이 그랬다.

강혜선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분명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는데, 아침 출근길부터 잔소리를 하기가 싫어서 그냥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럴 땐 그냥 모르는 척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보통 강혜선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 그 표정이 만들어진 이유를 꼬치꼬치 물어서 알게 되는 순간 피곤함은 내 몫이 된다.

난 미꾸라지 도망가듯 싱긋이 웃으며 조수석 문을 닫았고, 강혜선은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조수석 창문을 살짝 열었다.

“술 많이 마시지 마.”

“아, 알았다니까.”

“…쩝. 그래 알았어. 오늘 하루도 고생해요.”

“전화할게.”

난 닫히는 창문 틈 사이로 강혜선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얼른 출발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출근한 사무실.

“응? 이거 뭐예요?”

“아, 그거… 조금 전에 장 대리님이 올려놓고 가시던데요?”

해외 영업부 직원 한 명이 기획 2팀 쪽을 눈짓하며 내게 말했다.

내 책상 위로 노란색 선인장 화분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화분 받침대 아래로 메모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차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냥 딱 봐도 장향은의 글씨였다.

난 파티션 너머로 장향은과 눈이 마주쳤고, 장향은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가 들고 있던 화분의 출처를 인정했다.

하여간 안 팀장 입 싼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난 곧바로 시선을 돌려 안 팀장을 쳐다봤지만, 그는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선인장 화분을 원래 장향은이 놓아놨던 자리로 내려놓고, 책상 위를 대충 정리했다.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를 켜놓고 탕비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장 대리한테 벌써 말했습니까?

안 팀장에게 사내 메신저를 하나 보냈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하트는 보내지 말고요.

-사랑합니다.

-내 책상에 선인장이 올려져 있는 거로 봐선 오늘 출근해서 말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어제 차장님이랑 통화 끝내고 문자로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또 깜짝 서프라이즈 해 줄 기회를 빼앗아 가시네요.

-서프라이즈보단 한시라도 빨리 안심을 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할 말 없게 만드네.

-그럼 일이나 하시죠.

-창고 가기 전에 링겐 관련 디테일 기획안이나 빨리 올리세요.

-메일 열어 보세요. 보내놨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도착한 하트 뿅뿅 이모티콘까지.

난 두 주먹을 말아 쥐어 부들부들 떨며 다시 한번 기획 2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안 팀장은 컴퓨터 모니터에 숨어 있었다.

오전 10시.

캐시미어 코트를 한쪽 팔에 걸어놓고 안 팀장이 내 자리를 찾았다.

이미 기획 2팀은 장향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창고로 떠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그럼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어떻게… 기획 2팀은 거기서 바로 퇴근하나요?”

“창고에서 바로 퇴근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그럼 나중에 회식 장소 정해지면 장 대리 시켜서 카톡만 하나 보내주십시오.”

“날씨 추워요. 창고 안은 더 얼음일 거고. 직원들 손 안 다치게 신경 쓰세요.”

“어디 뭐 장사 원박 투데이 합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연말이라 팀별로 창고 인벤토리를 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팀들에 비해 기획 2팀은 만토바 물건을 컨트롤하다 보니까, 인벤토리가 빡세다.

시즌별로 나눠야 하고 또 만토바 창고 사장들에게 개별로 보내줘야 할 브랜드별로 다시 또 한 번 나눠야 한다.

평상시엔 크게 할 일이 없는데, 인벤토리 시즌만 다가오면 기획 2팀은 죽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에서 창고 인벤토리를 완벽하게 끝내놓고 만토바로 그 결과를 보내준다 해도, 만토바 창고 사장들 성격상 제대로 확인도 안 할 거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린 그 인벤토리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거고.

우리가 직접 라이선스를 가지고 컨트롤을 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보니까, 인벤토리와 같은 예민한 부분에선 무조건 결백해야 한다.

“장 대리, 점심 안 가요?”

12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장향은은 손목 받침대 위로 두 손을 올려놓고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다들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서 조용한 사무실 안이었다.

나 역시 박 이사에게 올릴 안 팀장의 링겐 디테일 기획안을 확인하고, 부분적으로 몇 가지를 수정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전 근무를 쳐낸 상태였고.

장향은은 스마트폰 액정을 터치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가야죠.”

“지금 갈 거면… 같이 갑시다.”

난 코트를 챙겨 입으며 대수롭지 않게 장향은에게 말했고, 장향은은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회사 앞 백반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장향은은 이미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자신의 팀장 승진에 대해 다시금 확인을 하고 싶다는 투로 물어왔다.

“근데 안 팀장님 차장 승진은 확정인 건가요?”

자신의 팀장 승진을 묻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안 팀장은 잘 모르겠고, 장 대리 팀장 승진은 확정이에요.”

난 얼굴에 장난기를 걸어놓고 대답했다.

“진짜 감사합니다, 차장님.”

“이게… 내가 실수를 했어.”

“무슨…”

“어제 안 팀장한테서 퇴근길에 전화가 왔더라고. 안 팀장 스타일을 깜빡한 내 잘못이지. 내가 말하기 전에 장 대리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못 했네.”

“제가 최근에 그 부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걸 안 팀장도 알다 보니까 그랬을 겁니다.”

“그냥… 나는 그래요. 나는 오늘 대리급 위로 승진 예정자들 다 같이 불러놓고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요.”

“….”

“나 처음 팀장 달았을 때, 나는 내 팀장 승진이 장 부장님과 박 이사님의 덕인 줄만 알고 홍성에 있는 동안엔 무조건 장 부장님이랑 박 이사님한테 충성을 해야 한다고 착각을 했었어요. 아닌 말로 최연소 팀장 승진이었잖아요.”

“그러셨죠.”

“나는 내 팀장 승진에 장 부장님과 박 이사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신 줄 알았거든.”

“아닌가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맞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 당시 영업부에선 딱히 나나 양 팀장님 말고는 대안이 없으셨던 거 아닐까?”

장향은은 양 볼에 바람을 불어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팀장을 거쳐 지금 이렇게 차장을 달고 있고, 또 내년 부장 승진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 되다 보니까…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

“뭐가… 요?”

“자기들이 필요하니까 올려준 거라고. 그런데 자기가 필요해서 올려줬단 말은 절대 안 해. 그냥 내가 너 일 열심히 잘하고 또 내 말 잘 들어서 올려준다는 식으로만 말해. 왜? 거기에 고마워해 주길 바라거든. 생색내고 싶어 한단 말이지. 그래야 계속 자기 말을 잘 들으니까. 그러면서 이 말을 꼭 덧붙여. 승진도 했으니까, 앞으로는 타이틀에 맞게 행동하라고.”

“….”

“근데 팀장, 차장을 해보니까… 잘 모르겠어. 대리 때 했던 거에 비해 딱히 뭘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절심함이 더 커지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리고 타이틀에 맞는 행동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 오히려 회사에 대한 책임감은 대리 때가 가장 컸던 거 같아. 그 역시도 이젠 알겠어, 왜 그랬는지. 위에서 그렇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계속 주입을 하다 보니까 안 그러면 애사심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장향은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장 대리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야. 내가 장 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살짝 무리수를 둬 본 거지, 장 대리를 위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결국 나도 내가 어떻게 하면 부장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만 고민을 했던 거야. 누가 필요하고, 또 누구는 알아서 퇴사를 안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 이기적이지만 어쩌겠어, 다들 그렇게 직장 생활 하는 거잖아.”

“어쨌든 감사합니다.”

“내가 고마워해야지, 장 대리한테. 그리고 앞으로도 쭉 내가 장 대리한테 잘 보여야지. 혹시라도 장 대리가 딴 맘 먹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도록.”

“…?”

“몇 번을 새로 그려 봤어요. 영업부 조직도. 이렇게도 그려 보고, 또 저렇게도 그려 보고…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조직도를 그려 봐도… 거기에 장 대리는 무조건 포함이 되더라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장 대리가 없으면 만토바 쪽 센터를 쳐내 줄 사람이 없어. 꼭 만토바가 아니더라도 장 대리는 무조건 꼭 있어야 되는 맨파워야, 나한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몸값 올려 봐요. 내가 봤을 때 장 대리 몸값은… 우리 홍성이 만토바와 갈라서지 않는 이상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어.”

“네.”

“그렇게 장 대리 몸값이 계속 올라가야 내 몸값도 따라 올라가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열심히 하겠다는 건지?”

“푸훕…”

“난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거에서 조금만 러프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하고 싶어요.”

“네?”

“러프하게 한다고 해서 몸값이 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몸값을 계속 올려 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면 상당히 유연하게 일을 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어지간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내더라고. 장 대리도 이제 결혼하면 가정도 함께 챙겨야지. 나는 쉬는 날 우리 집사람한테 회사 사람들이 전화가 오면 그게 그렇게 짜증이 나더라? 쉬는 날 집사람이 회사 사람들한테 전화하는 것도 딱 보기 싫고. 물론 뭐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고, 직장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장 대리가 그런 부분에 밸런스를 잘 맞춰주는 게 내 입장에선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난 점심시간을 함께하며 장향은에게 먼저 했던 말들을 다시 똑같이 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라는 집단은 피라미드 구조일 수밖에 없잖아요.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승진의 기회가 줄어든다… 그런 답답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홍성 영업부 같은 경우는 각 팀의 인센티브 분배가 위로도 같이 올라간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거예요. 내 입장에선 내 인센티브를 더 만들어줄 사람들을 차장, 팀장 자리에 앉힐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막 고마워하고 그럴 이유 전혀 없는 거예요. 오히려 내가 여기 모인 차장, 팀장 승진 예정자분들한테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하는 게 맞는 거죠.”

“혹시 차장님 팀장 시절이랑 현재 받고 계신 성과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여쭤 봐도 됩니까?”

영업맨들이기 때문에 큰 불편함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주제였다.

물론 술도 한잔 안 들어간 상태에서 주고받을 주제는 절대 아니지만, 인센티브나 금일봉과 같은 부분은 모두가 다 궁금해하고, 또 자랑하고 싶어하는 주제이기도 하니까.

특히 이들 입장에서는 작년 한 해 팀장을 하며 내가 받아간 성과급이 무척 궁금할 것이다.

다들 내가 팀장으로 있으면서 어느 정도 성과급을 챙겼을 거란 예상만 할 수 있지, 정확하게 이것저것 다 떼고 얼마를 수령했는지를 모를 거다.

사실 나도 작년 한 해 오로지 성과급만으로 그 정도가 나올지 예상을 못 했으니까.

“에이, 뭘 또 그런 걸 물어봐?”

옆에서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던 차 대리가 질문을 한 최 대리에게 핀잔을 줬다.

“궁금하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장님 팀장 시절 성과급인데. 작년에 나크리스랑 H.I 편집샵이 좀 크게 터졌어? 이거 지금… 나만 궁금한 건가? 저만 궁금한 겁니까?”

그래서 내가 분위기도 띄울 겸, 또 자리에 모인 팀장 예정자들에게 동기 부여도 해줄 겸 장난스레 물어봤다.

“내가 작년에 팀장으로 성과급을 얼마나 받았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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