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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76화 (176/325)

# 176

경사네

안 팀장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그리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기가 민망한 질투심이 올라오고 있었다고 할까?

“지난 주말에 상견례를 했다네요.”

“오, 그래요?”

“네, 아직 날짜가 정확하게 잡힌 건 아닌데, 내년 4월 중에 하게 될 거 같다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경사네. 근데 안 팀장님은요?”

“뭐요?”

“겹경사 한번 만들어봅시다.”

“거기서 왜 또 저를 끌고 들어갑니까?”

“양 팀장님이 없잖아요, 지금.”

“불러드릴까요?”

“하하하… 근데 그때 장 대리 부모님이 남자를 좀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안 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그랬던 거 같은데… 그때 안 팀장님도 같이 듣지 않았어요?”

“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하겠다는데.”

“하긴… 그래도 다행히 부모님을 잘 설득했나 보네.”

“…네.”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찾아왔는데, 그 복합적인 감정들 중에서도 아마 안 팀장 앞에서는 내색하기 힘든 서운한 감정이 가장 컸던 거 같다.

“장 대리도 참 웃긴다.”

“네?”

“아니,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미팅 중에 나한테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놓고 또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말을 얼버무리더니….”

“아… 그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최근에 차장님이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보이는데, 거기에 자기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다고.”

“그게 뭐가 신경 쓸 일이에요? 축하해줄 일이지.”

겉으로는 깨어있는 상사인 척하고 싶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장향은이 하고 있을 걱정과 계산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그것도 홍성과 같은 영업 중심의 상사 기업에서 여직원으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나 프로젝트에 따라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영업부에선 더더욱 그렇고.

나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현실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하겠나.

이건 그냥 회사의 색깔이 그런 거고, 또 패션 상사 영업부의 특성이 그런 거다.

인정하건대, 다른 업계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업계엔 분명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직접 말하기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애매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저도 주말 낀 출장을 떠나있는 상태였고, 또 아직 저한테도 말을 못 했는데 차장님한테 먼저 말하기가 어색했던 모양이죠.”

장향은이 하고 있을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던 거 같다.

나와 장향은은 내가 대리였던 시절 바로 위 상사, 부하 직원 관계를 2년 가까이 했었다.

장향은을 센터로 키운 것 역시 나였고.

손발도 잘 맞았을뿐더러, 나와 장향은 모두 한창 위로부터 깨지면서 일을 할 때라 전우애 비슷한 관계도 단단하게 형성된 사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팀장을 달고 나크리스를 맡게 됐을 때, 처음으로 맨파워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장향은을 영업 5팀으로 영입했던 거였다.

그런데 지난 2, 3년간 나와 장향은 사이에 너무 큰 거리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 팀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그게 서운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서 난 천하의 안 팀장이 평소 그답지 않게 날 따로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이 부분을 전달하는 이유도 함께 캐치를 해내야 했다.

내가 하기 시작한 걱정을 안 팀장 역시 함께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영업 기획부 안에서만 놓고 보면 장향은은 팀장 승진 2순위다.

기획 1팀 차 대리와 해외 영업부 최 대리는 내년 상반기 인사 때 팀장 승진이 확실시된 상태고, 또 해외 영업부 한 대리 역시 중국 주재원 근무를 신청할 것이기에 큰 변수가 없다면 팀장 타이틀을 달고 중국 법인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이 1순위라고 하면 그다음엔 장향은 말고는 없다.

곧바로 장향은의 차례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는 덕에, 그리고 내가 거칠 것 없이 계속 쭉쭉 위로 올라가고 있었기에 현재 영업 기획부는 줄줄이 승진의 기회를 잡게 된 거다.

그런데 여기서 장향은이 결혼을 한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인사부에서도 그 부분을 눈여겨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불편한 부분이지만, 그게 대한민국 패션 상사 영업직의 현실이다.

그리고 난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줄줄이 승진의 기회 속에서 장향은이 빠지는 걸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랬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장향은에게는 홍성 에이스 센터라는 이미지가 이미 붙어있는 상태였고, 센터라는 포지션은 그 포지션 자체만 놓고 봐도 대체가 힘든 포지션이기 때문에.

승진, 승진….

승진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어쩌겠나.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승진과 월급보다 중요한 건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걸.

직장 생활에선 그게 전부인 거지.

그 후로 난 사무실에서 장향은과 마주칠 때마다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그 장난 속엔 그저 축하의 의미만 담았다.

저 밑바닥에서 코찔찔이 신입사원과 하루가 멀다고 쌍욕을 먹어가며 꾸역꾸역 일을 쳐내야 했던 바로 위 선배로 만난 우리였다.

그랬던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사람에 갈리고 조직 문화에 닳아 지금까지 버티며 아직도 홍성에 함께 남아 이제는 영업부의 핵심 멤버로 자리를 잡았다는 게 재밌기도 했고 또 신기하기도 했던 거 같다.

매일같이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같은 사무실을 나누어 쓰며 지냈기에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사실 패션 업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한 회사의 동료로 지낸다는 건 인연이라고 봐야 한다.

언제부턴가 난 나도 모르게 내가 부장을 달고 이끌게 될 영업부의 조직도를 내 마음대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다가, 워낙에 영업부의 규모가 크다 보니 차츰 다이어리에 끄적이듯 영업 마케팅부와 영업 기획부, 그리고 해외 영업부의 전 인원들의 이름을 써보기 시작했고, 각각의 개성이나 능력에 맞게 부서를 재배열해보기도 했다.

꼭 장향은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 법인의 부정으로 인해 급하게 해외 사업부가 해외 영업부로 바뀌면서 영업부에 편입이 되었고, 그러는 과정에 박 이사가 이사 진급을 하면서 기존의 1부장 1차장 체제에서 2차장 체제로 바뀌었다.

물론 당시엔 신경을 써서 이뤄낸 부서 재편이었지만, 지난 1년 동안 모리엘츠 영업이나 Kidshub의 성공적인 론칭, 그리고 CGM 건으로 인해 한성의 대표 브랜드들을 모두 빼앗아 오는 등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지금 이 조직도를 그대로 가지고 가기엔 특정 부서에 업무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차장님. 오늘 점심 약속 있으십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좀 더 디테일한 조직도를 그려볼 생각에 영업 마케팅부 김 차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내 메신저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점심 약속을 잡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영업 마케팅부의 과부하 상태를 확인했다.

CGM이 한국 철수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홍성은 CGM이 단독으로 한국에서 컨트롤하고 있던 브랜드 몇 곳과 한국 시장에 한해서만 라이센스 계약을 하게 됐다.

물론 CGM을 등에 업었던 한성 역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표 브랜드 몇 개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잃은 브랜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홍성으로 흡수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브랜드들의 컨트롤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영업 마케팅부가 해야 한다는 거였다.

영업 마케팅부의 업무 영역은 해외 브랜드 국내 컨트롤이라는 광범위한 범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영업 기획부는 편집샵 사업, 만토바 국내 컨트롤, 쁘띠토널 컨트롤, 모리엘츠 SC, 중국 법인 관련 컨트롤이라는 구체적인 타겟을 가지고 있고.

“그렇죠. 저희 영업 기획부야 사업 카테고리는 다양하지만 세팅만 제대로 해놓으면 그 뒤부터는 크게 손이 갈 게 없는 것들인데, 영업 마케팅부는 세팅은 쉽지만 계속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사업 아니겠습니까.”

“사실 CGM과 한성이 토해낸 브랜드들만 영입이 안 됐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어. 거기 맞춰서 맨파워도 만들어놨었고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브랜드가 늘어나버리니까 팀장들이 버거워하는 거지.”

“당연히 그렇겠죠. 옆에서 지켜보는 저만 해도 과연 저걸 다 쳐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요. 그렇다고 길바닥에 떨어진 브랜드들을 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야 당연하지. 상황 자체가 우리 쪽에 유리했으니 기회가 있었던 거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따내기 어려운 브랜드들이었어.”

“그러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차장님.”

“응.”

“그걸 좀 분산시켜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분산?”

“네. 음…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내가 공 차장을 오해할 게 뭐 있어. 어차피 공 차장이 이끌어 갈 영업부야. 내 눈치 말고 편하게 말해. 나도 그게 훨씬 더 편하니까.”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홍성이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 수. 그리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거기에 중국 법인, 프랑스 법인까지… 이게… 현재 저희가 하고 있는 2차장 체제로는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 차장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럴 수밖에.

난 지금 2차장 체제가 불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그 말은 돌려 말해 김 차장의 양보를 요구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음… 그래서 지금 공 차장이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 정확하게 뭔지 한번 물어봐도 되나?”

“해외 영업부를 영업 기획부에서 분리를 시켜야 할 거 같습니다.”

“…!”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서 생각을 더 발전시키기 전에 차장님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는 게 좋을 거 같더라고요.”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여기서 내 의견에 반대를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는 듯 김 차장이 말했다.

“해외 영업부를 분리시키겠다는 건… 안 팀장을….”

“만토바나 모리엘츠… 이 두 아이템이 따지고 보면 국내 컨트롤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둘 다 중국 시장이 목적인 건데, 이걸 굳이 영업 기획부로 묶어둘 이유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김 차장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난 김 차장의 입장, 그리고 현재 그가 짓고 있는 표정 때문에 스톱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만토바와 모리엘츠 둘 다 해외 영업부로 합치고, 해외 영업부를 해외 영업 1팀, 2팀으로 나눠주는 게 더 효과적일 거 같습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그 안에서 맨파워 이동도 수월해질 거 같고.”

“만약에 지금 공 차장이 말한 대로 해외 영업부를 따로 분리시켜버리면… 글쎄, 난 잘 모르겠네. 해외 영업부의 파워가 너무 커지는 건 아닐까? 그 부분도 공 차장이 고려를 해줘야지. 나도 나지만 양 팀장도 함께 위축이 되지 싶은데?”

“양 팀장한테는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그, 그래? 뭐래? 만약에 그렇게 조직도를 바꾸면 양 팀장이 제일 재미가 없어질 거 같은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개인의 욕심보다는 영업부 전체의 안정이 먼저이지 않겠냐… 라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그 말에 힘을 얻어 오늘 차장님께 조금 성급한 감은 있지만, 함께 점심을 같이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장 부장은…알고 있어?”

“그 전에 차장님의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은 겁니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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