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그러니 명품이지
한 기업이 시장 가격 전체를 통제하고 압박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컨트롤 기업은 그걸 해야만 한다.
그게 컨트롤 기업의 역할이다.
나와 양 팀장, 그리고 안 팀장이 현재 한성이 CGM과 손을 잡고 악수를 두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홍성도 그렇지만 한성 역시 말 그대로 컨트롤 기업이다.
컨트롤 기업은 쉽게 말해 해외 명품 브랜드들을 책임지고 그 브랜드 본사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대신 컨트롤을 해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기업이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브랜드 이미지와 시장 가격이 되는 거다.
컨트롤 기업은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시장이 폭망을 하더라도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책임지고 유지해내야만 하고, 또 그들이 기대하는 시장 가격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에겐 한국 시장이 전부이지만, 브랜드 본사 입장에선 그저 한국 시장일 뿐이다.
그러니 다른 시장을 위해서라도 한국 시장의 가격은 컨트롤 기업에 의해 지켜져야만 하는 거다.
“야이, 모자란 놈아. 장사 좀 안된다고 할인 팍팍 줘 가며 재고를 떨 수는 없잖아. 그럼 그게 어떻게 명품이라고 할 수 있겠어?”
아주 오래전 내가 신입 사원이었을 시절, 당시 내 바로 위에 있던 대리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명품들이 왜 대놓고 세일이라는 걸 안 하는데?”
“왜요?”
“….”
“…?”
“너 설마 나 웃기려고 그러는 거냐?”
“…아뇨, 진짜 몰라서 여쭤본 겁니다.”
“후우… 답 없네, 이거.”
“….”
“너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주말에 잠깐 백화점 한번 가봤는데, 할인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있던데요?”
“야 인마, 그건… 우와… 내가 널 어떻게 해야 되냐?”
“….”
“흐음… 좋다. 뭐 좋아. 그럴 수도 있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모를 수도 있지. 모를 수도 있는데… 너 왜 우리 회사 들어왔냐?”
“….”
“들어오려면 곱게 들어오지, 왜 우리 팀으로 들어온 거야?”
“죄송합니다.”
“잘 들어. 간혹 정기적으로 세일을 하는 브랜드들도 있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간 브랜드들은 세일이라는 거 자체를 안 해. 그리고 그 세일이라는 것도 컨트롤 기업 임의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
“막강한 파워를 가진 브랜드들은 브랜드 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온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특정 어라를 제시하며 세일 기간을 잡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서 진행을 해달라고.”
“어라가 뭡니까?”
“아… 머리야. 후우… 어라. 어라 처음 들어 봐?”
“…죄송합니다.”
“한국이면 한국, 아님 아시아권이면 아시아권. 이렇게 특정 지역을 우리가 어라라고 하는 거야.”
“아, 네.”
“아무튼 여기서 컨트롤 기업이 임의대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긴 있어. 유통 판과 컨트롤 기업이 짜고 하는 특별 행사전 같은 경우가 바로 여기에 속해. 이런 행사전은 제품 자체 세일이 아니라 일종의 유통 판 상품권 지급이나 포인트 적립 쪽으로 이뤄지는 부분이라서 브랜드 본사의 컨펌 없이도 자체적으로 진행을 할 수 있는 부분이야.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명품들은 세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면 돼. 그러니 명품이지.”
“아, 네…”
“심지어 저기 저 위에 있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1년 365일 내내 세일이라는 걸 하지도 않을뿐더러 아웃렛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럼 이월되는 재고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브랜드들은 이월되는 재고도 없을뿐더러 한 해 디자이너를 잘못 섭외해서 주춤하더라도 그 재고들을 폐기를 하면 폐기를 하지, 그걸 알뜰하게 매출로 연결시키려고 아웃렛으로 풀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
“아무리 대형 아웃렛이라도 아웃렛에서 에르메스, 고야드, 벨루띠, 루이뷔통, 샤넬, 디올이 까려 있는 걸 본 적이 있냐?”
“본 적이 있는 것도…”
“없어! 네가 잘못 봤어. 무조건 네가 잘못 봤어! 절대 없어!”
“아, 네. 죄송합니다.”
“걔네들은 컨트롤 기업을 끼지도 않지만, 디올처럼 어느 특정 시장에 한해서만 컨트롤 기업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절대 세일을 하거나 자기네 제품이 아웃렛으로 깔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마디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데…”
“아 됐어. 질문하지 마!”
“….”
“아, 팀장님!”
“왜?”
“은태 이놈 에이스가 아니라 그냥 바본데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아주 오래전 정말 이 시장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을 때의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런데 지금 한성이 CGM 측이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들에 눈이 멀어서 컨트롤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에 반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거다.
자기들은 뭐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되면 시장 가격 붕괴를 앞장서서 유도하고 있는 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혹자는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시장 가격을 통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맞는 말이지.
정확한 지적인데 우리 컨트롤 기업은 그걸 해야만 한다.
그걸 해주겠다는 전제조건하에 브랜드들을 따오는 거니까.
한국처럼 병행 수입이 허용이 되는 나라에 컨트롤 기업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장 가격을 브랜드 본사를 대신해 컨트롤 기업이 통제해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시장이 무분별해진다.
우리가 어떻게 소자본 개인업자들이 만토바나 폭스타운에서 헐값에 물건을 소량 사입해서 시장에 까는 것까지 다 컨트롤을 하겠나.
그건 불가능한 거고, 또 알면서도 그냥 눈을 감아줘야 하는 부분인 거다.
하지만 한성쯤 되는 굵직한 컨트롤 기업이 CGM이라는 막강한 기업을 등에 업고 리테일 가격 제한도 두지 않으면서 대량으로 업자들에게 물건을 넘기는 건 진짜 문제가 있는 거다.
브랜드들의 시장 가격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는 컨트롤 기업이 해당 브랜드들의 시장 가격을 앞장서서 무너뜨리는 거 아니겠나.
이게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브랜드라면 큰 상관이 없다.
왜? 우리한테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니까.
하지만 만토바와 CGM이 겹치게 가지고 있는 브랜드라면?
혹은 만토바를 국내에 끌고 들어오기 전 홍성이 직접 컨트롤하고 있던 브랜드와 겹치는 브랜드라면?
이건 말이 달라지는 거지.
CGM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CGM이 CGM 한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 중간에 한성이 끼어있다는 게 같은 업계 경쟁사 입장에서 많이 안타까웠고, 지금이라도 우리가 덜 피곤할 수 있도록 노선을 갈아타 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쪽 영업부장에게 전화를 넣었던 건데, 또 그쪽에서 하는 말은 자기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하니 내 입장에선 기회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장 부장의 지시로 나와 영업 마케팅부 김 차장은 각 팀장들을 시켜서 각 팀이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들에 한해 매일같이 인터넷 쇼핑 쪽으로 올라오는 브랜드들 가격을 체크했다.
시장 가격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CGM이 만토바에 비빌 수 없다는 것뿐이지, 그래도 명색이 업계에선 공룡 기업이다.
그런 공룡 기업이 작정을 하고 한성에게 물건을 밀어 넣고 있는데 어떻게 시장 가격이 안 무너질 수 있겠나.
걔네들이 잘하는 게 있지 않나.
마진 장난.
홍성은 끝까지 만토바 물건에 한해 업자들을 상대로 마진 베이스를 지켰고, 한성은 그걸 안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한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개인업자들이 시장에 풀게 될 리테일 가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것.
그게 한성이 한 가장 큰 실수였다.
우리는 때만 기다렸다.
한 달쯤 지나니까 만토바 물건을 받아가던 일부 업자들로부터 컴플레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하지만 우린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겐 미안한 말이었지만, 우리들의 작전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걸 우린 원하지 않았다.
업계가 좁다.
우리가 우리의 작전을 업자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는 순간 우리의 작전은 한성과 CGM의 귀에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업자 몇 명 놓치고 말지, 만토바 국내 유통이 홍성의 메인 사업도 아닌데, 업자 몇 명 놓치는 게 무서워서 조금만 참아달라, 조만간 시장은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하는 식의 설명을 해줄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나.
어차피 그런 설명을 해줘도 한성으로 돌아설 업자들은 돌아서기 마련이고, 꾸준히 홍성을 믿어줄 업자들은 중심을 잡고 기다려주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우린 그동안 한성으로부터 물건을 받은 업자들이 인터넷 쇼핑 쪽에서 시장 가격을 무너뜨린 정황들을 일일이 캡처해서 수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모리엘츠의 타미 총게가 한국 방문 스케줄을 보내왔다.
그리고 안 팀장은 곧바로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만토바로 날아갔고, 거기서 만토바 창고 사장들을 상대로 홍성이 모리엘츠를 잡았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지난 한 달간 CGM을 등에 업은 한성이 어떻게 한국 시장 인터넷 쇼핑 쪽 명품 가격을 무너뜨렸는지, 그 증거를 수집한 내용들을 보여줬다.
만토바 창고 사장들 입장에선 아직까지 아무런 타격이 없는 거다.
하지만 CGM이 이런 식으로 한성을 끼고 중국 시장으로 들어가서까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만토바 창고 사장들 입장에서도 거슬리는 거고.
안 팀장은 만토바 창고 사장들을 모리엘츠 타미 총게의 한국 방문 일정에 맞춰서 한국으로 초대하는 일에 성공을 했고, 또 그렇게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타미 총게와 만토바 창고 사장들이 홍성 본사를 방문하게 된다.
홍성 본사 로비 입구.
검은색 벤츠 비토 승합차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색 승합차의 옆구리엔 -HONGSUNG- 이라는 흰색 스티커의 영문 로고가 붙어있었고.
오래전 상무보를 모시고 링겐 출장을 갔을 때, 링겐 쪽에서 보내준 승합차에 오르며 상무보가 지나가는 말로 그의 비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홍성도 해외 파트너들이 한국 방문을 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런 승합차 몇 대 정도는 구비하고 있어야 할 거 같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이렇게 홍성 네이밍이 들어간 스티커까지 붙인 차량을 섭외해버리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상무보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판단력은 흐리지만 실행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거 같다던 장 부장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장 부장과 함께 상무보가 로비 입구로 나왔다.
“저희가 먼저 출발하면 되죠?”
“네.”
“그래도 다행이다. 들어오는 시간이 달라서. 동시에 입국을 하면 입장이 난처해질 뻔했어요.”
다행히 타미 총게가 1시간 먼저 입국을 하고, 그 뒤에 만토바 사장단이 들어온다.
타미 총게의 공항 픽업은 상무보가 직접 하기로 했다.
그만큼 현재 홍성이 전력을 다해 신경 쓰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모리엘츠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토바 사장단의 픽업은 나와 안 팀장이 나가기로 했다.
장 부장이 비토 승합차 조수석에 올랐고, 그 뒷자리로 상무보가 오르는 걸 확인한 후, 나와 안 팀장은 먼저 출발하는 그 차량을 향해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럼 우리도 한번 출발해 볼까요?”
“네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