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이럴 리가 없는데…
사람이 한번 미워 보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숨 쉬는 모습까지도 꼴 보기가 싫어진다.
하물며 내게 매형이란 존재는 어떻겠나.
같은 공간 안에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날 더 숨 막히게 만들 정도로 싫고,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평생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그런 징글징글한 존재.
그 존재가 바로 내게 매형이다.
추석을 보내기 위해 추석 바로 전날 집사람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우리 집은 설이나 명절 때 차례는 지내지만 상당히 간단하게 지내는 편이다.
기제사는 내 결혼과 거의 동시에 적당한 날짜를 받아서 하나로 합쳤고, 그마저도 어머니는 언제든지 절에 갖다 올릴 생각을 하고 계시는 중이다.
과일과 나물 몇 가지, 그리고 마른오징어와 북어포, 밤, 대추…. 최상품으로 신경 써서 준비하는 건 딱 그 몇 가지뿐이고, 산적이나 튀김, 떡 같은 경우는 그냥 사서 올린다.
탕국 정도나 차례를 지내는 당일 아침에 어머니가 조금 일찍 일어나셔서 생선을 찌면서 같이 만드시지 나머지는 거의 사는 편이다.
내가 결혼을 해서 그렇게 바뀐 건 아니고 예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그래도 명절이니까 그 명절의 분위기는 날 수밖에 없는 거고.
오전 10시 45분 KTX로 부산에 내려왔다.
집에 도착했을 땐 벌써 오후 3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고.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
누나는 추석 당일에도 캐셔 일을 보고 있는 마트가 정상 영업을 하기 때문에 명절 휴일을 하루 먼저 당겨서 받았다.
추석 당일에도 차례상 차리는 것만 대충 도와주고 누나는 일을 하러 가야 하는 거다.
아무리 결혼을 하고 한 이불을 덮고 살아도 아직 함께 산 세월이 그렇게 오래된 게 아니었기에 난 그런 우리 집안 형편, 사정을 강혜선에게 보이는 게 아직은 싫었다.
싫었지만, 계속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도 내색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내색을 해버리면 강혜선이 더 불편해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그런 형편을 보여주지 않고 싶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석 하루 전날 부산에 내려와서 집에 왔는데…. 매형이 안 보이는 거다.
야간 경비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 시간에는 잠을 자고 있더라도 집에 있어야 정상이다.
보통 집에서 오후 5시 정도에나 출근을 하니까.
집에 있어야 정상인데 있어야 할 사람이 안 보이니까 보면 짜증이 나니 잘됐단 마음도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럴 때 집에 있으면서 집 청소라도 돕지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또 울컥한 마음도 들고 그랬다.
매형이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렇게 시시때때로 바뀐다.
떨어져 있으면서 그 존재를 생각할 때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보면 하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고….
“매형은?”
“나갔다.”
그래서 누나한테 물어봤다.
매형은 어디에 있냐고.
그랬더니 두 시간 전쯤에 누구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거다.
정작 나 역시 서울 생활 한다는 이유로 집안일, 부모님 관련된 모든 부분을 누나에게 맡기고 있으면서도, 이런 날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밖에 나가버렸다는 매형이 괘씸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참 우습지.
우리 집안 차례에 매형이 뭔가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 자체도.
부모님 집에 함께 살고 있으니까 당연히 이런 날 집안 대청소 하는 것 정도는 도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라면 내일 아침에나 들어오겠네?”
“아이다. 오늘은 일 안 간다. 대신 내일 아침에 출근한다.”
“야간 경비 근무 아이가?”
“평화시장 거기도 명절 연휴에는 장사 안 한다 아이가. 명절이 바쁘지, 재래시장 경비 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돌아가면서 경비를 서야 하니까.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야간 근무자들 출근하면 집에 올 끼다.”
그냥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이런 날 처가에 가만히 붙어 있는 것도 이리저리 눈치가 보이겠지.
거기다 처가에 있으면서 처가 차례 준비하는 데 끼어서 뭘 하겠나.
난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저녁이 가까워 올 때 즈음 매형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평상시엔 매형이랑 통화라는 걸 거의 안 하니까 스마트폰에 뜬 매형의 번호가 살짝 의외였다.
-잘 내려왔나?
“어디신데요?”
-여기 잠깐 밖에 나와 있다. 언제 왔노?
“한 서너 시간 정도 돼요.”
-저녁은?
“이제 먹어야죠. 안 그래도 누나하고 집사람이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매형도 얼른 오세요.”
근데 사실 여기서 내 솔직한 속마음은 저녁도 먹고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못되게 말은 못 했지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한 모양이다.
무슨 일 때문에 밖에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매형이 없는 집안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저녁까지는 먹고 들어와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늦게 들어오면 난 강혜선을 데리고 호텔로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내일 아침쯤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더라도 그냥 간단하게 인사 정도만 하면 매형은 다시 일을 하러 갈 거니까.
-잠깐 나온나.
그런데 매형이 생전 안 하던 짓을 한다.
나한테 잠시 나오라고 하는 거다.
“지금요?”
-어. 잠깐만 나온나. 내하고 소주 한잔하자.
“저녁 먹어야지요. 지금 뭐 한잔하고 있습니까?”
-어.
“누구랑?”
-혼자 있다.
“하아… 적당히 하고 들어오세요. 오늘 같은 날 혼자 무슨 청승입니까?”
지금부터 짜증이 살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다.
나가기 싫으면 그냥 안 나간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난 그걸 잘 못 한다.
다른 사람한테는 잘하는데, 유독 매형한테는 이런 부분에서 끌려다니게 된다.
아마도 내 무의식중에 매형은 약자라는 생각이 너무 진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겠지.
약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조금 피곤하고 짜증이 나더라도 받아줘야 한다는, 그런 정말 하기 싫은 책임감? 혹은 도리? 그런 것들이 날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할 이야기가 좀 있다.
“집에서 하면 안 됩니까?”
-잠깐만 나온나. 내 여기 연산 로타리다.
“하아…”
-연산 로타리 곱창집 알제? 롯데리아 건너편에 있는. 게임장 몇 개 있는 데 있다 아이가.
“압니다. 근데 목소리 보니까 벌써 좀 취한 거 같은데….”
-아이다. 나도 금방 왔다.
“일단 알았습니다. 지금 나갈게요.”
지하철 타면 금방이다.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까지 다 합쳐도 10분 정도? 길면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매형과 통화를 끝내는 날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누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라는데? 나오라나?”
누나의 얼굴에도 살짝 짜증이 올라와 있었다.
강혜선이 있으니까, 그 자리에 강혜선이 있기 때문에 난 또 참아야만 했다.
여기서 한바탕 시원하게 누나를 자극해서 누나가 매형 욕을 하게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 강혜선에게 그런 모습까지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대충 하고 일찍 데리고 들어온나.”
옆에서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만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강혜선 역시 살짝 싸늘해진 집안 공기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
집안 분위기를 얼릴 수도 없었고, 또 내가 가서 데리고 와야 할 게 아닌가.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또 감정 노동을 시키는 사람이다, 매형이라는 사람이.
외투를 챙겨 집을 나서는데, 정말 이런 상황 자체가 너무 싫어서 딱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매형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그냥 양심적으로만 행동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걸 너무 안 해준다.
그렇게 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며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불을 붙인 상태로 지하철역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매형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는 연산 로타리 곱창 골목으로 향했다.
나름 비싼 집이다.
허름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양곱창을 취급하는 집이고, 양곱창 1인분에 2만 원 이상씩은 한다.
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명절이라 일하는 곳에서 기십만 원이라도 명절 돈을 받은 모양이네.
참 그 돈 아껴서 누나한테 주지, 돈 좀 생겼다고 또 옛날 버릇 못 버리고 살아온 가닥이 있다 보니 술 한 잔을 마셔도 괜찮은 안주가 있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
“왔나.”
“….”
연휴이기도 했고, 또 워낙에 부산 경기가 안 좋다 보니까 예전이었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북적북적해야 할 그 공간이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매형은 그 가게 중간 점포(한 공간 안에 여러 집이 각자의 상호를 달고 옹기종기 모여서 장사를 하는 스타일의 가게다)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빈 병 하나에 다른 병은 벌써 반 정도 사라진 상태였다.
매형의 얼굴 역시 취기가 다분히 올라와 있었고.
“이모님. 여기 곱창 2인분만 더 갖다주세요.”
“아니요, 이모님. 죄송한데 그냥 1인분하고 잔 하나만 더 갖다주세요.”
“와? 아직 저녁 안 먹었다메. 고마 2인분 갖다주세요. 오는 길에 소주도 한 병 더 갖다주고.”
내 입장에서는 표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지.
술값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자신의 현재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매형의 이런 모습이 날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참 오랜만에 단둘이 이런 술자리를 가지게 된 건데, 그런 속마음을 그대로 다 노출하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억지 미소지만 최대한 또 미소를 만들어내며 매형이 주는 술을 받았다.
매형도 나이가 들긴 드는 모양이다.
소주 한 병 반에 벌써 얼굴 군데군데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참 니한테 미안하다.”
난 매형의 잔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가득 채우지는 않았다.
적당히 7부 정도.
이게 뭐 좋은 거라고 가득가득 담아서 사람 골병들게 만들겠나.
이 인간 술병 들어 고생하기 시작하면 정작 죽어나는 건 내 누난데…
“그런 말은… 좀 제발 하지 마세요, 매형.”
그런 말 한다고 바뀌는 건 하나 없는데, 왜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만 했고.
난 불판 위에 미리 구워져 있던, 타서 말라비틀어진 곱창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한숨을 한 번 빼어낸 후 소주잔을 기울였다.
다 비우지는 않았다.
그냥 딱 반 잔 정도 입에 넣고 아쌀한 알코올 향으로 입안을 헹궜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내 앞으로 매형이 뭔가를 내밀었다.
“…!”
“푸후….”
술기운이 제대로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매형은 내 앞으로 비닐 커버에 담긴 통장 하나를 내려놓은 후 말했다.
“오늘…충기 그노마가 연락이 왔드라. 하아…”
“…!”
매형의 두 눈엔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까인 느낌에 멍하니 매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테이블 위로 두 팔꿈치를 올려놓고 깍지를 낀 매형.
그런 매형의 턱끝이 지나치게 떨리고 있었다.
“하아… 후우…”
그리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뜨거운 한숨을 토해내는 매형.
그런 매형의 볼을 타고 물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다, 은태야. 내가 진짜… 내가 진짜 니 볼… 하아… 면목이 없드라, 그동안.”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는데….
하지만 내 앞엔 매형이 내민 통장이 하나 올려져 있었고, 매형은…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니 고생 끝났다. 고생 그만해도 된다.”
“누나는요? 누나는 압니까? 이충기 그 개새끼가 이 돈 들고 매형 찾아온 거 누나는 알고 있습니까?”
매형은 코를 한 번 훌쩍이며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