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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56화 (156/325)

# 156

욕심이 난단 말이지?

아무리 영업 마케팅부 나 대리의 말을 잠시 빌려서 안 팀장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성의 홍길동이라도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다.

진짜 뭐 운이 좋아서 우연히 모리엘츠의 마케팅 디렉터를 만났을 수는 있지.

아니, 봤을 수는 있지. 먼발치에서.

워낙에 활동 범위가 넓은 사람이니까.

나처럼 출장을 가서 딱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호텔에서만 보내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하물며 첫 만토바 출장길에 오른 신입까지 데리고 갔으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을 건 당연했다.

또 그러라는 의미로 신입을 데리고 가라고 한 거였고.

그런데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를 직접 만나서 이렇게 명함까지 받아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렇게 명함 실물이 있는데 헛소리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뭐하고… 참 놀라우면서도 당혹스런 상황이었다.

볼 수만 있음 그때의 상황을 봤음 좋겠다.

“어떻게…”

“그냥 구경 삼아 모리엘츠 부티끄에 들어갔어요.”

“들어가게 해주던가요?”

“제가 그렇게 없어 보입니까?”

“크크큭… 암튼, 근데?”

“그냥 거기에 그 양반이 있던데요?”

“에이… 말이 안 되잖아.”

“있던 걸 저더러 어쩌라고요.”

“아니 제 말은…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을 순 있지. 뭐 모리엘츠 단독 부티크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그거 하나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명함까지 받아왔냐고요.”

“아무래도 정장 차림으로 들어가니까 그냥 일반 손님은 아니라는 걸 그쪽에서도 알았겠죠.”

“…?”

“물어보더라고, 업계 쪽 사람이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죠. 한국에 있는 홍성이라는 컨트롤 기업에서 왔는데, 출장길에 잠시 구경이나 하려고 들렀다, 좀 둘러봐도 괜찮겠냐고 물어봤죠. 뭐 걔네들 스타일 알잖아요. 알았다고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옆에 한 명 붙어서 계속 같이 노가리를 깠고.”

“안 팀장님이 막 경우 없이 이것저것 물어봤던 건 아니고?”

“에이, 뭐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고 그런 거죠.”

“아무튼 그래서요?”

“우리가 조금 오래 있긴 오래 있었어요.”

“얼마나?”

“한 시간 조금 넘게 있었나? 더 됐나? 그냥 막 신어 보래, 입어 보고. 그냥 구경만 하러 왔다는데도 괜찮다면서 편하게 신어 보고 입어 보라는 거예요.”

“퍽이나… 재킷 하나에 이삼천만 원 그냥 넘어가는 그런 것들을 어느 정신 나간 매장 직원이 그냥 막 입어 보라고 했겠어요?”

“에헤이, 참… 이렇게 계속 말 끊으면 제가 말을 못 하죠.”

“알았어요, 미안해, 미안해… 나 지금 흥분해서 그래요.”

장난기를 실어 살짝 거드름을 피우다가 안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냥 좀 궁금하더라고요. 모리엘츠, 모리엘츠… 말만 들었지 실제로 그 부티크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으니까. 사실 제가 그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파리에 출장을 가보겠어요? 간 김에 가본 거지.”

“그런데 웨이팅 시키지 않던가요?”

“아뇨. 그런 거 없던데? 안에 손님이 없더라고요. 매장도 작아. 제품도 얼마 없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부티크라도 웨이팅 없이 들어간다는 건 좀…”

모리엘츠….

이건 번외로 놓고 봐야 하는 브랜드다.

명품 중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 그 하이엔드 브랜드들 중에서도 끝판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가 바로 모리엘츠다.

아무래도 명품을 취급하다 보니, 명품의 급을 나눌 수밖에 없고 또 그 급을 나누기 위해선 쉽게 이해를 돕기 위해 명품 자동차나 명품 보석, 시계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가령 우리가 흔히들 시계쪽 끝판 대장을 파텍 필립이라고 알고 있지만, 핸들링되는 가격만 놓고 보면 그 위에 그라프라는 말도 안 되는 브랜드가 있듯이, 모리엘츠가 딱 패션 명품 쪽에선 그런 브랜드다.

에르메스, 벨루티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있는 브랜드.

아니, 가격만 놓고 보면 몇 단계 더 위에 있는 브랜드가 바로 모리엘츠다.

당연히 한국엔 그 매장이 없다.

한국에만 없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저 파리에 단독 부티크 하나가 있는 게 유일한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업계가 점점 변화하고 있고 또 모리엘츠는 워낙에 넘사벽 브랜드라 관심을 아예 안 두고 있어서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이 업계에 처음 들어와서 모리엘츠라는 말도 안 되는 브랜드의 존재를 처음 접했을 당시엔 파리에 있는 단독 부티크가 유일했었다.

이 브랜드가 어떤 느낌이냐면….

남성복도 취급을 하지만 남성복보다는 여성 성인복 주력 브랜드인데,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들 중 유별나게 큐빅과 같은 스톤들이 어지럽게 수놓아진 드레스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이 브랜드의 드레스들은 그냥 반짝이는 스톤으로 다이아몬드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백 퍼센트 진짜 다이아몬드로 수를 놓는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그래도 이해가 잘 안 갔었다.

그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는지, 또 그 브랜드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옷을 사 입는지….

그런데 칸 국제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프랑스 유명 여배우에게 그 드레스를 한번 협찬해 준 사건이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넘사벽 브랜드다.

영화제에 참석하는 유명 배우들에게 드레스 협찬 정도는 흔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이내 아… 하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다.

이 브랜드는 자기네 브랜드를 노출하기 위해 협찬이라는 걸 하는 급의 브랜드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 유명한 배우가 꼭 그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하면 대여 정도는 해줄 수도 있겠지.

그것도 안 해줄 수도 있고.

거기까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브랜드 노출을 위해 협찬이라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풍문에 의하면 당시 그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가 협찬을 해준 해당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봐서 팬심에 회사의 동의를 간신히 구하고 자기가 디자인한 옷을 입혔다고 한다.

해당 배우의 입장에선 칸 영화제의 수상과 더불어 최고의 명예를 거머쥔 셈.

정말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서 그저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브랜드.

그 브랜드의 마케팅 디렉터의 명함을 가지고 온 안 팀장.

이쪽 업계에서 브랜드의 마케팅 디렉터는 최소 부사장이다.

그래서 번외의 브랜드라고 하는 거다.

일반 명품 브랜드들처럼 브랜드 본사와 마진 딜을 쳐서 브랜드를 따내고 유통 판과의 퍼센티지 조율을 통해 매장을 오픈해서 일반 손님들을 상대로 팔 수 없는 브랜드.

한마디로 브랜드급은 넘사벽이지만 홍성과 같은 컨트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절대 돈이 안 되는 브랜드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까지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해당 브랜드를 잡을 수만 있으면 홍성의 인지도 그냥 끝이라고 봐야 한다.

모리엘츠가 있으면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브랜드들을 홍성이 직접 컨택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진다.

‘응, 우리가 모리엘츠 컨트롤하고 있어. 와. 우리 정도면 믿을 만하잖아. 같이 하자. 우리가 컨트롤해 줄게…’

이런 느낌이 되는 거다.

파리 단독 부티크를 제외하고는 다른 매장이 없는 모리엘츠.

그럼 그 모리엘츠는 어떻게 자기네 물건을 판매해서 수익을 올릴까?

이게 또 재밌다.

얘네들은 미술 작품들처럼 자기네 제품을 예술품이라고 이야기하며 전시를 통해서 판매를 한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까지 갤러리아가 그 전시를 담당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모리엘츠 전시회를 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던 거 같다.

유통 판 입장에서도 매출과는 무관하게 자기네 유통 판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꼭 전시 장소를 제공해주고 싶어 한다.

제품도 꼭 미술품들을 센딩하듯 하나하나 다 보험을 들어서 센딩을 한다고 들었다.

물론 세금이나 기타 보험 관련 문제 때문에 모두 컨사인먼트로 물건을 보내고, 판매가 되는 순간, 유통 판 마진과 컨트롤 기업 커미션을 자기네가 직접 나눠주는 형식.

일반 의류와는 달리 거의 모든 제품에 진짜 보석이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마진 역시 무척 별로다.

하지만 모리엘츠 정도 되는 브랜드를 따내는 데 마진이 문제겠나.

여기서 마진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분이다.

“그래, 뭐라고 하면서 이 명함을 주던가요?”

“우리 홍성을 알고 있더라고요?”

“아, 그래요?”

“네, 저도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언제든지 좋으니까 편하게 와서 이야기 나눠 봤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정도면 상대도 그게 뭐가 됐든 어느 정도 마음은 있다는 뜻 아니겠나.

난 안 팀장에게 그래도 혹시 몰라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안 팀장은 자기가 직접 만나 보니까 그렇게 특별한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상당히 오픈된 마인드로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제가 어디 그 사람이 마케팅 디렉터씩이나 되는 인물인 줄 알았겠어요? 그냥 거기 매장 직원한테 카탈로그 하나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들은 그런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야 당연하죠.”

“저는 몰랐죠. 아무리 콧대가 높아도 카탈로그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더라고요.”

“암튼 그래서?”

“그래서 그냥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절 서빙하던 직원을 그 양반이 조용히 부르더라고요? 뭐 누군지 물어봤겠죠. 딱 봐도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은 아니고 업계 사람인 거 같으니까. 그러더니 매장 직원은 다른 일 시키고 자기가 직접 저한테 와서 커피 한잔 같이 하지 않겠냐고 묻잖아요.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걸 단순히 안 팀장의 운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아님 그렇게 부지런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닌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봐야 하는 건지 살짝 헷갈리는 타이밍.

하지만 안 팀장이 아니었음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기회였음은 분명했다.

이건 기회였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난 곧바로 안 팀장에게 받은 명함을 들고 안 팀장과 함께 장 부장을 찾아갔다.

“모, 모리엘츠?”

장 부장의 반응 역시 처음 내가 안 팀장에게 그쪽 마케팅 디렉터의 명함을 건네받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건 무슨 헛소리냐는 식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안 팀장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모리엘츠를 누가 SC(센딩 컨트롤)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살짝 염려가 섞인 표정이었다.

그래서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건 대놓고 CGM한테 한판 붙자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냥 이야기만 나눠 보는 것도 안 됩니까?”

그냥 난 직접 가서 무슨 의도로 우리 쪽 직원에게 자기 명함을 건넸는지 그 의도라도 알아봤으면 좋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뭔가 의도가 있으니까 명함을 줬을 거 아닌가.

“이게… 하아… 가만히 잠자고 있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는 꼴이 될 수도 있어.”

“음… 부장님 생각이 정 그러시다면, 또 불안하시다면 그냥 없던 일로 해도 무관합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안 팀장이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밝혔다.

자신은 애초에 브랜드를 따낼 목적으로 해당 부티크를 찾아갔던 것도 아니었고, 또 그 브랜드를 자기가 직접 컨트롤할 자신이 없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나 역시 안 팀장의 생각과 비슷했다.

분명 좋은 기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정작 위로 보고를 올릴 수 있는 결정권자가 긴가민가하는 상황이라면 괜히 부추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미 우린 현재 떠안고 있는 프로젝트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냥 본능이었던 거 같다.

그 자리에서 명함을 받아온 안 팀장도 그렇고, 그 명함을 보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오른 나도 그렇고.

그냥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모리엘츠라는 브랜드 자체에 흥분을 했던 게 틀림없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네가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장 부장이 물었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사님께 보고드렸겠죠.”

“누가 그걸 물어?”

“음… 분명 돈이 안 되는 브랜드는 확실합니다. 하지만 잘만 엮으면 괜찮은 그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거 같습니다.”

“좋은 기회다?”

그 말을 끝으로 장 부장은 다시 잠시간 침묵했다.

그런 장 부장이 살짝이라도 더 흔들릴 수 있게끔 빌미를 만들어줬다.

“그냥 제가 직접 가서 이야기만 나눠 보는 것도 안 되겠습니까?”

“너 자신은 있냐?”

“….”

자신은 무슨.

상대가 뭘 같이 하자고 명확하게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명함 하나 얻어 왔을 뿐인데.

“그냥 그쪽에서 지나가는 말, 생각 없이 건넨 명함 한 장 때문에 우스운 꼴 날 수도 있어.”

“그런데 부장님.”

“왜?”

“평소 부장님답지 않게 안 된다는 대답이 바로 안 나오시네요?”

“놀리냐?”

“부장님도 해보고 싶으신 거죠?”

“흐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욕심이 난단 말이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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