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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55화 (155/325)

# 155

저 지금 사고 친 거 맞죠?

회의실.

난 자리에 모인 양 팀장과 안 팀장, 그리고 최 대리에게 미리 복사해 놓은 서류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전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 부장에게 받았던 홍성 특별전 제안안이었다.

직접 유통 판에 물건을 깔고 있는 기획 1팀에게만 전달을 하면 되는 서류였지만, 내가 결심한 내용을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이걸 한 장씩 나눠주고 어제 있었던 일들을 그 자리에 모인 세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았다.

“특별전이요?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양 팀장이 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이벤트로 인해 일어날 특수 매출로 벌써부터 들뜬 기분이 걸려 있었고, 유통 판 특별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안 팀장과 중국 법인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국내 사정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 최 대리는 그저 고개만 갸

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런 세 사람에게 지난 이틀 동안 홍성 특별전을 제안해준 유통 판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을 해줬다.

“어제 하루, 저 개인적으로 생각이 참 많은 하루였습니다.”

“음···.”

모두가 내가 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한 아군도 없고, 또 영원한 적군도 없는 게 이쪽 업계 아닙니까. 그래서 아직 그 당연한 사실도 깜빡깜빡하는 제가 과연 여러분들을 잘 리드할 수 있을까란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어제 상당히 헷갈렸던 거 같습니다.”

솔직해지니까 오히려 가벼워졌다.

굳이 상대가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내 입으로 내가 했던 부족한 생각과 행동들을 먼저 말할 이유는 없었지만, 난 그렇게라도 털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기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를 바라고 싶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내년 상반기에 저는 영업 부장으로 또 여기 양 팀장님은 영업 기획부 차장으로 승진을 하게 됩니다. 양 팀장님 역시 꽤 오래 팀장으로 모셨던 김 차장님과 2차장 구도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분에 부담이 적지 않을 걸로 예상합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뭐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눈치 보면서 살살 할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그 부분에선 괜한 걱정을 했네요.”

난 양 팀장의 단호한 입장에 마음이 놓였다.

“사실 저는 애 옷이라도 한 벌 사서 선물로 드리며 같이 소주 한잔 마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

“저희보다 한참 입사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런 김 차장님보다 먼저 부장을 달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요. 그런데 안 하려고요.”

난 양 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영업 5팀 시절 저보다 입사 선배님이셨던 양 팀장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그런 환심이 아니었잖아요.”

“뭘 또 지나간 일을 꺼내고 그러십니까, 사람 무안하게···”

“실력으로 납득시켰던 거 맞죠?”

“···.”

“실력으로 당시 양 팀장님을 납득시켰던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양 팀장은 피식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도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만들어줍시다.”

“···?”

“우리 같은 영업맨들에게 매출 실적보다 더 깔끔하고 뒷말 안 나오게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지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운동선수들은 기록으로 증명하고, 영업맨들은 실적으로 증명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제가··· 아니 앞으로 재편될 영업부의 맨파

워가 실적으로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침묵이 흘렀다.

안 팀장까지도 진지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줄을 잘 서서, 사장님 눈에 들어서 운 좋게 부장이 된 게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 한참 입사 선배인 김 차장님보다 빨리 부장을 달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영업 5팀 시절, 짬 안 되는 막내 팀장이 얼마나 하기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경험해 봤습니다. 비록 짧은 몇 달간이었지만. 저 하나 힘든 건 상관이 없는데, 저 때문에 제 팀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니까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한 번 경험을 해봤기에 두 번은

못 하겠습니다. 제가 부장을 다는 순간 틀림없이 재무부와 인사부, 그 외 어느 정도 파워가 있는 다른 유관부서의 태도가 많이 바뀔 겁니다. 거기다 중국 법인과 프랑스 법인이 지금처럼 우리 본사의 컨트롤을 잘 따라와 줄까 걱정도 되고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상반기 인사 발표 나기 전까지 영업 기획부 전체 매출과 영업 마케팅부 전체 매출 사이의 갭을 더 크게 벌려놓으세요. 그게 양 팀장님이 차장 승진 이후에도 불편한 마음 없이 김 차장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냥 경쟁만 할 수 있는 유일

한 길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제가 덜 미안해해도 되는 거고.”

“네.”

“그런 의미에서 양 팀장님.”

“네, 차장님.”

“H.I 편집샵에 들어가는 브랜드들 업데이트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론칭시킨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아직 업데이트된 브랜드가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접촉 중인 브랜드가 두 개 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보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Kidshub도 신경 써서 브랜드 업데이트 준비하세요.”

“네.”

“그리고 안 팀장님.”

“넵!”

“다음 주에 2팀 막내 데리고 만토바 출장 한번 다녀오세요.”

“막내요?”

“보람이랑 갈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벌써부터 만토바 데리고 다니면 이상한 바람이나 들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럼 장 대리랑 보람이를 대신 보내시든지.”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만토바 출장이 어떤 재민데, 그걸 포기하겠나.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가서 좀 챙기세요.”

“···뭘요?”

“그동안 저희가 너무 염치가 없었습니다. 만토바 덕분에 작년 한 해 얼마나 따뜻하게 보냈습니까? 그리고 CGM 한국 진출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파트너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뭔가 더 요구할 것들, 좀 더 알뜰하게 긁어 쓸 수 있는 소스들만 궁리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어제 하루 많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인사차 직접 찾아가서 저 대신 얼굴 비추고 또 현재 중

국 샌딩 매출 관련해서 프레젠테이션 한번 해주세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도 직접 찾아가서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성의를 보이면 상대는 우리 홍성의 성의에 감동을 할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조금 피곤하더라도 파리 한번 찍고 오세요.”

“파리요?”

“양 팀장님이 직접 가셔야 하는 부분이긴 한데, 현재 뭐 기획 1팀 맨파워상 불가능한 부분이고··· 안 팀장님이 만토바 가는 길에 대신 잠시 들러서 법인장님이랑 인사도 좀 나누고 또 이지혜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도 볼 겸, 겸사겸사 한번 찍고 오세요.”

“넵!”

“그리고 하나 더.”

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을 담아 검지를 세우며 안 팀장에게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시키고 있는 만토바 제품들 중에 대형 유통 판을 상대로 풀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합쳐서 16.8퍼센트입니다.”

“데미지 난 제품들에 한해서 CS 처리는 어떻게 해주고 있습니까?”

“월별로 일괄 처리해 오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라 크레딧 노트로 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로바로 새 제품으로 교체를 해주고 있습니까?”

“크레딧 노트로 해주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조금 바꿔줍시다. 상대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

“사실 개인 업자들한테는 바로바로 새 제품으로 교체를 해주고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조금 귀찮아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줍시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갑질을 해왔어요. 만토바 물건이지, 우리 물건도 아닌데 말이에요. 본격적으로 영업을 한번 해보세요.”

“···!”

순간 안 팀장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동안 너무 거만했던 거 같아요, 우리가. 사실 우리가 그렇게 해도 되는 상대들은 아니잖아요?”

“차장님이 한번 해보라고 하신다면 제 입장에서야 무조건 땡큐죠. 사실 그동안 유통 판과의 사이에 존재한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죌 수 있는 부분도 못 죄고 놓쳐야 했던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어제 마진 협조 공문 보냈던 상대측 담당자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뉘앙스로 제안서 하나 보내주세요. 데미지 난 제품들에 한해 앞으로는 CS 처리를 그렇게 해주겠다고.”

“아마 직접 찾아와서 절이라도 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최 대리.”

“네, 차장님.”

“지금 여기서 있었던 미팅 내용.”

“네.”

“정리해서 차례대로 양 팀장님, 안 팀장님 사인 받고 저한테 가져오세요.”

“···!”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시켜볼 생각이었다.

전날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면서 계속 했던 생각.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앞으로 영업부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내가 과연 지금의 장 부장처럼 별 잡음 없이 영업부를 통솔할 수 있을까란 막연한 두려움···

결국 그런 두려움에 기인한 생각과 고민이 몇 가지 답을 던져주었다.

완벽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해보는 거지.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꾸면 되는 거고.

“그동안 팀장 미팅을 하고 나면 제가 따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부장님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한 번씩 제가 전달했던 내용과 그걸 전달받은 팀장님들 사이에서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때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팀장님들이 제안한 내용들을 제 방식대로 해

석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적도 몇 번 있었던 거로 기억하고. 그걸 또 제 기준에서만 만들어진 보고서를 받은 부장님 입장에선 무조건 제 편에서만 해석을 할 수밖에 없으셨고.”

“음···.”

“그런 미스 나는 부분들만 줄여도 효율성이 많이 올라갈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조금 번거롭더라도 앞으로는 팀장님들이 미팅 내용을 직접 요약해서 다른 팀장님들의 확인 사인까지 받고 저한테 다시 주세요. 그럼 전 그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부장님께 올

릴 테니까. 앞으로 제가 부장을 달더라도 쭉 그렇게 해주셨음 좋겠습니다. 저는 현재 장 부장님처럼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골자만 봐도 한 번에 다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특정 사건에 계속 함몰되어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게 우리들의 숙명 아니겠나.

‘그걸로 끝이야, 땡이라고!’

그날 나와 장 부장, 박 이사와 상무보에게 했던 전무님의 그 한마디는 내게 꽤 큰 파장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현재의 관계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착 때문에 난 얼마든지 내 위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융통성들조차 스스로 죽이고 있었고.

유통 판.

얼마든지 끌어안으며 좋은 관계로 발전을 시킬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고 그냥 항상 우리에게 갑질을 해왔던 상대였으니 넌 나쁜놈, 우린 피해자··· 이런 식으로 정작 갑질은 우리가 하고 있었으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안 팀장이 유통 판을 상대로 데미지 관련 CS 처리 방식을 바꾸겠다고 메일을 보낸 다음 날 난 상대측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선 날 여전히 부장으로 알고 있을 거기에, 사과를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게 여러모로 보기가 좋을 것 같았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상대를 궁지로 몰았던 것 역시 나였으니까.

-언제 같이 식사나 한번 합시다.

상대의 대답 역시 무척 깔끔했다.

함께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며, 더 이상 그 일을 거론하지 말자는 뉘앙스.

나도 그랬고, 상대 역시도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개인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소속되서 펼치는 비즈니스 판에선 때론 진심보다는 형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우린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또 최대한의 체면을 올려주는 선에서 당시의 식사 자리 해프닝을 정리했고,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켜 보자고 형식적인 약속을 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그리고 다시 며칠이 더 지나 만토바를 찍고 파리 일정까지 소화하고 돌아온 안 팀장.

출장 보고서와 함께 뜬금없이 명함 한 장을 같이 건네는 게 아닌가.

“모,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 이, 이 명함은 어디서 났습니까?”

말을 더듬을 수밖에.

파리에 가서 프랑스 법인장에게 인사나 하고 오라고 했는데, 그 길에 천하의 초특급 하이엔드 브랜드 모리엘츠를 잡아 온 안 팀장이었다.

모리엘츠 명함은 실제로 처음 봤다.

“저 지금··· 사고 친 거 맞죠, 차장님.”

“아, 아니··· 이 명함은 도대체 어디서 났습니까?”

“직접 만났습니다.”

“네? 누굴요?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를요?”

난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무실 전 직원들이 그런 날 힐끔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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