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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53화 (153/325)

# 153

넌 꼰대가 되지 마라

“상대가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님 진짜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건지 구분도 못 하고, 거기다 그런 거 옆에서 잘 확인하라고 보내놓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자기 인맥 다지기 바쁘고 말이야. 왜? 벌써부터 노후 대비하나? 이사 다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준비

를 해야 할 거 같아?”

“아, 아닙니다, 전무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기할래? 맞는지, 아닌지?”

박 이사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다.

“틀림없이 허허허··· 하면서 사람 좋은 얼굴로 그쪽 전무 분위기만 맞췄을 거 아니냐고.”

“···.”

“그런 게 아니었음 어떻게 그 당연한 무례조차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을 못 했겠어? 나랑 그런 자리 같이 안 다녀봤어?”

“···죄송합니다.”

“거기다 홍성을 대표해서 자리에 나간 놈은 뭐? 모욕을 당한 거 같다?”

전무님은 기가 막혀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는 투로 마른 웃음을 몇 차례 토해내셨다.

“모욕? 네가 모욕이 뭔지나 알아? 그게 뭔지나 알고 모욕을 받은 것 같단 그딴 소릴 해? 진짜 모욕이 뭔지 말해줄까? 가르쳐줘?”

“···.”

“회사가 힘이 없어서 정상적으로 물건을 다 깔아줘 놓고도 그 대금을 못 받아 몇 명 안 되는 직원들 월급조차 바로바로 못 줄 때··· 그럴 때 모욕을 받았다고 하는 거야. 없는 쌈짓돈 탈탈 털어서 그 몇 안 되는 직원들 데리고 가서 어? 그것도 좋은 것도 못 먹여,

돈이 없어서. 겨우 삼겹살 몇 쪼가리에 소주 한잔 먹여 가며 며칠만 기다려달란 부탁을 해야 할 때, 그런데도 앞에선 싫은 내색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직원들 얼굴을 마주해야 할 때, 그럴 때나 모욕을 받았다고 말하는 거라고. 내 직원들은 회식 한 번 제대로 못 시

켜주면서 유통 판 대리, 과장급 붙들고 제발 우리 물건 한 번만 깔아볼 수 있게 자리 좀 내주십시오··· 하며 룸싸롱 접대하고, 다음 날 위스키 냄새 풀풀 풍기면서 출근했다가 그 카드값 영수증 처리할 때 느끼는 감정 정도는 돼야 모욕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냐?”

“···.”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야, 이 회사가. 사장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고. 자네들은 어째서 우리 홍성의 진짜 힘이 아닌 걸 잠시 빌려 쓰면서 그게 진짜 우리 홍성의 파워인 양 착각들을 하는 거지?”

“···?”

이건 또 뭔 소린가.

“만토바 파워가 우리 홍성 파워야?”

“···!”

“지금 잠시 빌리고 있는 것뿐이야, 이 답답한 친구들아.”

전무님은 정말 답답해서 딱 죽을 맛이라는 얼굴로 하소연하듯 언성을 높이셨다.

“언제까지고 만토바 놈들이 우리랑 같이 갈 거 같아? 지금 관계가 천년만년 계속될 거 같아? 꿈 깨. 롯데, 신세계가 괜히 롯데, 신세계야? 작정하고 우리 한번 죽여 보겠다 마음먹으면 만토바 놈들 업어버리는 게 걔네들한테 큰일일 거 같아?”

“···!”

“왜? 걔네들이 못 할 거 같아? 내가 만토바라면 우리 홍성보다는 안전하게 롯데나 신세계를 잡을 거 같은데? 어째서 적당한 선이라는 걸 모르나? 아까 그 자리에서 사과하러 온 사람을 상대로 진짜 그 짓을 했다면··· 그랬음 그 뒤부터 벌어질 일들이 진짜 우리

홍성 입장에선 모욕이 되는 거야.”

아팠다.

잔소리를 들어서 아픈 게 아니라 팩트를 맞아서 아픈 거였다.

전무님의 말씀처럼 난 내가 만토바를 국내에 끌고 들어오고, 그로 인해 업계에 이름 좀 날리고 또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만토바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든든한 보험 정도로 당연하게 여겨 왔었다.

그 만토바라는 막강한 카드를 신경 써서 챙기고 관리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그 파워를 다 긁어서 쓸 수 있을지만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욕이라는 표현···.”

“···.”

“사장님은 단 한 번도 그 모욕이라는 표현을 당신의 자존심과 연결시켜 사용해본 적이 없으시다.”

“···!”

“비록 사장님은 카스테라 하나에 우유 한 통으로 점심을 해결하시며 유통 판 대리, 과장급한테 바람맞고 딱지 맞아가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셨지만, 그런 대리, 과장급한테 바람을 맞고 딱지를 맞았다고 모욕을 당했단 말씀은 단 한 번도 안 하셨어. 오히려 내 직

원, 홍성 직원들이 유통 판과 문제가 생겼을 때에만 불뚝하는 성격을 못 죽이시고 손해 볼 것을 뻔히 다 알면서 유통 판을 상대로 고집을 부리고 싸우셨다고.”

“···.”

“네, 자존심이 중요한 게 아냐, 성규야. 그게 중요하면 너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돼.”

전무님 사무실을 나오면서 우리 넷(나를 포함 상무보와 박 이사, 장 부장)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각자의 실수와 부족함, 그리고 섣부른 판단에 대해 인정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최소한 난 그래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도 우리 모두는 침묵했다.

임원실 층에서 문이 열렸는데, 상무보와 박 이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렸고, 다시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와 장 부장은 다시 또 각자의 생각에 잠겨 침묵을 유지했다.

“이거···”

“네.”

“가지고 있다가 한 부 복사해서 김 차장님한테 전달해.”

“···네, 알겠습니다.”

상대측 본사 상무가 준 홍성 특별전 제안 서류.

갑자기 이 제안 서류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상대 입장에선 ‘자, 이거나 먹고 떨어져.’ 하는 식이 아니었을까?

뭔데 이렇게 갑자기 스스로 초라해지고 또 자존심이 상하지?

“그럼, 수고.”

“···네.”

그렇게 장 부장과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지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홍성 특별전 제안 서류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며칠에 나눠서 써야 할 에너지를 오늘 하루 모두 당겨서 쓴 기분이었다.

퇴근 후에 정말 사우나라도 가서 땀을 좀 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후 4시.

아직 퇴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음에도 더 이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난 탕비실에서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17층으로 올라갔다.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퇴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렇게 농땡이를 부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뭐냐?”

그런데 바로 그때···

나처럼 머그잔을 들고 슬리퍼 차림으로 장 부장이 17층으로 올라왔다.

이것도 통한 거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장 부장 역시 뭔가 상당히 심란한 모양이었다.

내 옆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고 난간에 기대어 서며 장 부장이 말했다.

“만토바···”

“네.”

“빠른 시일 내에 출장 한번 다녀와라.”

“네, 안 그래도 저도 지금 그 생각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래, 전무님 말씀대로 우리가 그동안 너무 염치가 없었네.”

“···네. 만토바 쪽은 앞으로 좀 더 신경을 써서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만토바 쪽 말고.”

“그럼···”

“유통 판 말이야.”

“···?”

“그동안 갑질을 당해 왔단 생각에 그걸 복수해주고 싶었나 봐. 따지고 보면 진짜 갑질을 당했던 건 우리 세대가 아니라 우리 앞 세대 선배들이었는데···”

“···네.”

“사람이 그런 모양이다. 갑질을 그렇게 욕하면서도 정작 내 손에 그걸 할 수 있는 힘이 쥐어지면 그걸 써보고 싶은···. 참 잔인한 존재야, 우리가.”

“···.”

“하아··· 씨발 날씨 좋네···.”

“근데 부장님.”

“응.”

“아까 말입니다.”

“아까 뭐?”

“왜 안 말리셨습니까?”

“뭘?”

“상무보님요. 제가 느끼기에도 전무님 말씀처럼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시는 거 같았는데··· 그걸 부장님이 못 느끼셨을 리는 없고···.”

“아···.”

장 부장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바로 옆 방에서 전무님이 신입사원들 데리고 간담회 비슷한 걸 하고 계시더라고. 회의실에 전무님 명함이 끼워져 있잖아.”

“···!”

“지원과에 물어보니까 2시까지로 잡혀 있는 간담회라고 하더라고.”

“역시···.”

“상무보··· 아직은 백지야.”

“백치요?”

“백지, 백지. 하얗다고.”

“크크큭··· 순간 백치라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상무보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고?”

“누구 짤리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십니까?”

“하이고··· 백지라서 쓰는 대로 다 받아들이셔. 정말 다행인 건 그래도 모르는 건 물어보고 하신다는 거지.”

“···네.”

“내가 옆에서 잘 보좌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게··· 참 깨닫고 배워도 끝이 없는 거 같아. 오늘 또 전무님 말씀 듣고 보니까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뼈저리게 알겠더라고.”

“근데 사실 전 좀 심하단 생각도 살짝 들더라고요.”

“뭐가?”

“저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상무보님이나 박 이사님한테 싫은 소리를 하셔야 했나··· 하는 생각? 아까 회의실 앞에선 2팀 팀원들까지 다 있는 앞에서 상무보님 혼을 내시고···.”

“은태야.”

“네, 부장님.”

장 부장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걸어놓고 한참을 날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밑에 있는 사람 입장, 그리고 그 사람들 편에 선다고 해서 그게 다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야.”

“···!”

“그럼 뭐 완전 신입, 막내들은 누구 앞에서건 욕을 얻어먹어도 된다는 뜻이야? 그렇게 밑에 사람 편에서만 생각하고 이해하면 넌 깨어 있는 사람 소리 듣고, 꼰대 소리 안 들을 거 같아? 어차피 직장이라는 판 자체가··· 꼰대를 이해해야만 살아남는 판이야.”

“···그렇죠.”

“그걸 못 할 거 같음 자기 사업 하거나, 아님 승진을 기대하면 안 되지. 그리고 밑에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것도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요. 꼭 보면 뒤에서 자기 부하 직원들 모아놓고 마치 자기가 깨어 있는 사람인 것처럼 이게 옳고, 저게 잘못됐고, 또 어떻

게 부하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모욕을 줄 수 있느냐느니··· 그런 거 지적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치고··· 훗, 잘 봐라. 재밌게도 그런 말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치고 꼰대 아닌 사람 없다?”

“···!”

“넌 꼰대가 되지 마라. 객관적으로 보고 또 객관적으로 판단만 할 수 있음 되는 거야. 아까 그 상황은 누가 앞에 있었든 간에 전무님이 상무보한테 한 소리 하시는 게 맞아. 난 또 그걸 기대했었고. 아닌 말로 상무보님한테 그런 혼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이 회사에

몇 명이나 되냐?”

“···.”

“그리고 은태야. 우리가 상무님을 혼내셨던 전무님 스타일을 지적질 할 위치는 아니잖아?”

“그야 그렇죠. 그리고 제 말은 뭐 그걸 지적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노파심에서 해주는 말이야. 급한 승진 몇 번에 네 직장 생활 기준이 흔들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요즘 널 보면 가끔씩··· 현실엔 없는 직장 생활을 꿈꾸고 있단 기분이 들어. 뭐 그렇게 할 수 있음 얼마나 좋겠냐만··· 그런 꿈이 네 활동 범위, 발언,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걸 명심했음 좋겠다. 그게 걱정이 되는 거야, 난 다만. 그런 너만의 기준, 누군가가 미리 만들어 놓았는데 그게 네 가슴을 울렸던 기준들을 계속 속에 품고 놓고 상황을 보면, 결국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

“들어가자. 가서 퇴근 준비 하자.”

“···네.”

오늘 진짜 뭐지?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사람이 헷갈리지?

뭔가 이상하게 자꾸 설득만 당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장 부장이 별생각 없이 남기고 간 그 말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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