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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51화 (151/325)

# 151

널 못믿겠다, 더이상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긴장감이 폭발하는 오전 근무였다.

전날 내가 시킨대로 출근과 동시에 안 팀장이 상대측에게 마진 협조문 메일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 팀장은 상대측의 확인 전화를 감당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일단 이 부분은 윗선에서 결정되어 내려온 사안이라 제가 더이상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어제 양쪽 임원 식사 회동에서 이야기가 다 끝난 내용이라고 전달만 받은 입장입니다. 네, 네...정확한 내용은 귀사 상무님을 통해 전달받는 게 더 좋을 듯 싶은데요. 네,

확실합니다. 전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아니라 한성 측으로 오더할 브랜드 리스트만 보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네? 왜...라니요? 그걸 알아야 저희도 준비를 할 거 아닙니까? 그건 또 무슨...따로 전달 받으신 내용 없다고요?”

난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르라는 신호를 보내주며, 상대를 압박하고 있는 안 팀장을 응원했다.

“우선 전 제가 전달받은 내용을 보내드린 것 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네, 네.”

그리고 또 잠시 뒤 대략의 상황을 전달받은 상대가 뭔가 빌미를 잡아 다시 안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안 팀장은 본격적으로 살짝 피곤하단 기색을 실어 통화에 임했다.

“홍성은 만토바 제품에 관해서는 컨트롤러가 아니라 에이전시라니까요. 저희는 그냥 그 부분에 대해서 만토바에 전달만 하면 되는 입장입니다. 귀사가 일부 브랜드를 한성, 그러니까 CGM 제품으로 채우기로 했다고요. 아니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적으로 가져

가겠다는 걸 저희나 만토바가 어떻게 그러면 안된다고 하겠습니까? 참...평소엔 쉽게쉽게 되던 커뮤니케이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교차점 없이 평행선만 긋고 있는 거죠? 저희가 그 부분에 대해 굳이 한성한테 물건을 받지 말고 만토바 물건을 가져가라고 매달

릴 이유가 없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리고 저희가 물건이 없어서 못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귀사의 본사 상무님이 그러겠다고 하신 내용인데, 그 디테일을 저희한테 물어보시면 저희가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합니까? 네, 네...저도 아침부터 죄송합니다만, 그 디

테일은 자체적으로 받으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또 연락주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안 팀장이 상대방과의 통화를 끝내기도 전에 내 폰으로 박 이사의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네, 이사님. 전화 받았습니다.”

-방금 그쪽 상무한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어.

“아, 그렇습니까?”

-벌써 메일 보냈다며?

“네, 작성은 어제했고 안 팀장 시켜서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바로 보냈습니다.”

-실수였다고 하네.

“...실수요.”

-응. 어제 그 자리에서 자기네 편집샵 브랜드 중 일부를 한성한테서 받겠다고 말한 건 명백한 자기 실수였다고, 미안하다면서 저자세로 나오네.

“흐음...”

-그래서 내가 그 부분은 일단 너한테 일임을 한 부분이라 나중에 시간 날 때 전화 한 통 해주게끔 만들겠다고 하고 말았어.

역시 박 이사다.

거기서 우물쭈물 사과를 받아버리면 안되지.

-실수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렇죠. 편한 자리도 아니고 그런 자리에서 나온 실수는 진짜 실수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봐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반 사원도 아니고, 명색이 본사 상무 딱지를 달고 있는 놈이 뭐? 실수? 그 새끼들은 한 번 찔러보고 들어간다 싶으면 웃으면서 계속 찌르고, 어림도 없다 싶으면 실수라고 둘러대기 바쁜 놈들이야.

“그 말이 더 이사님을 흥분하게 만들었군요.”

-아니 우리가 자기 실수하는 거나 들어주자고 상무보까지 모시고 그 자리에 간 거야?

“에이...뭘 또 그만한 일에 흥분을 하고 그러십니까. 그렇게 나올 거 다 알고 계셨으면서...”

-생각하면 생각을 할 수록 괘씸해서 그래.

승기가 우리쪽으로 완전히 기우는 순간, 그동안 상대측으로부터 받아오던 은근한 갑질에 뭔가가 많이 쌓여있던 사람들의 울분이 하나둘 씩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심리가 그런 거 아니겠나.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생각없이 사과라는 걸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

뻔뻔하게 나가면 긴가민가 싶은 장면도 상대의 사과를 받는 순간 그 화가 배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아무튼 전화 한 통 걸어줘. 그리고 그쪽이랑 통화하고 내 방으로 잠시 올라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장 부장은 그냥 건너뛰게 된 나와 박 이사였다.

어쩔 수 없다.

장 부장은 또 장 부장대로 앞으로 몸을 담게 될 전사 운영본부 환경에 적응을 해야하는 입장이니.

“홍성 인터네셔널 공은태 입니다.”

-어후, 네. 공 부장님. 안 그래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이사님께서 연락 한 통 넣어드리라고 하셔서요.”

전날 함께 했던 식사 자리가 떠오르자, 지금 내가 어제 봤던 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상대의 음성은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브랜드 컨트롤 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귀사로부터 마진 협조문 메일을 받았다고.

“네, 어제 식사 자리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 베이스로 변경하겠다는 메일을 담당 팀장을 통해 보내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제가 박 이사님께도 먼저 통화로 어제 제 실수를 사과드렸는데, 어젠 제가 너무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갔던 거 같습니다.

“...아, 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또 어 다른 건데 식사 자리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또 거기다 술까지 한 잔 들어가다 보니까 제가 저도 모르게 선을 넘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염치있게 했어야 됐는데, 워낙 젊은 분들이 나오셔서 저도 모르게 절대 해선 안될

실수를 범했네요. 정말 그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사과를 안하셔도 되는 부분입니다.”

-어제 자리가 파하고 전무님께 꾸중을 상당히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을 해봐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죠. 저희 자체 편집샵은 기존에 해오던대로 전량 홍성을 통해서 유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야 당연한 거고.

“아...또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너무 성급하게 메일을 보내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 어제 식사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길래, 이미 자체적으로 이야기가 다 끝난 부분을 저희한테 양해를 구하는 거라고 오해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어제 그 자리는 어디까지나 전무님이 주관하셨던 자리였고, 일전에 저희 본사와 홍성이 서로 민망한 입장에 처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도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불편함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시고

어제 식사 자리에 절 부르셨더라고요.

하는 말을 그대로 다 믿어줄 필요는 없지만, 워낙에 달변이라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그냥 하는 말일지 심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노 상무님.”

-네, 공 부장님. 말씀하세요.

“저희는 이미 자체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 그렇게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

“실수였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사실 그게 실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실수라고 표현할 이유도 없는 거고.”

상대는 침묵했다.

“저희 쪽에선 사장님, 전무님을 대신해서 상무님이 직접 그 자리에 참석을 하셨던 건데, 그런 자리에서 실수라니요. 그런 건 일반 사원들도 안 할 실수 아닙니까. 꼬투리를 잡겠다는 게 아니라 저희 입장을 명확하게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미 저희는 어제

노 상무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고, 또 그래서 자체적으로 어떻게 현명한 대응을 해야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귀사에 기대하고 있는 관계와 호감은 그대로 유지를 하되, 지나친 의존은 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내렸고요.”

-그런데 공 부장님.

“네, 말씀하시죠.”

-어느 기업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존 마진에서 5퍼센트 씩을 더 올려 부릅니까?

그래, 이게 저쪽 사람들의 기본 근성이다.

저자세를 취하는 건 능숙한 연기일 뿐이고, 그게 안 통한다 싶으면 곧바로 이렇게 얼굴과 말투를 바꿔버리지.

-사실 이건 절 겨냥한 대응이란 생각에 살짝 기분이 나쁘려고 합니다.

“음...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저희쪽 상무님께 방금 노 상무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쓰읍...이렇게까지 상황을 극한으로 끌고갈 이유가 있나 싶은데?

“...?”

-이건 뭐 누가 봐도 상대 길들이기 아닙니까? 박 이사님은 공 부장님한테 전권 위임을 했으니 잘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시고, 또 공 부장님은 회사 차원에서 결정난 사안이라고 하고...뭐 좋습니다. 의도는 대충 알겠네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일단

들어나 봅시다.

“그...노 상무님.”

-네, 말씀하세요.

“말씀을 조금...예의를 갖춰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저희도 사실 어제 식사자리 끝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유쾌한 상황은 아닙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살짝 흥분이 된 상태예요. 죄송합니다.

이 사과만큼은 진심인 걸로.

-제가 오늘 중으로 귀사를 직접 방문해서 상무님께 어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아닙니다. 제 태도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조금 전 공 부장님이 지적하신 부분...제 태도에 문제가 많네요. 전 상무님께서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지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만큼 만토바 제품 마진 협조문의 파워는 막강했다.

“확인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대와 통화를 끝내고 상무보의 개인 폰으로 전화를 넣었다.

“조금 전에 노 상무하고 통화를 했는데, 어제 일을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고 싶다고 합니다. 언제 상무보님 시간이 괜찮으실지 물어보네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공 차장님.

“네.”

-어제 그렇게 집에가서 혼자 생각을 좀 해보니까...

“네.”

-어제 우리가 너무 모욕을 받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또 무슨...

-공 차장도 잘 알겠지만, 내가 항상 한 템포 느리잖아.

“아닙니다.”

-아니, 진짜로. 어제 그 자리에서는 내가 크게 못느꼈는데,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까...어제 그 식사자리...그쪽에서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었어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식사 하면서 우리가 하는 대화 내용 바로 옆 방에서 다 기록하고 있었잖아.

“...네.”

-그거...대놓고 우리 무시한 거 아니에요?

사실 난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냥 난 그런 상황 자체가 신선하고 또 재밌기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또 그런 업계 거물급이 나오는 자리엔 처음 초대를 받아서 가보다 보니, 그게 일반적인 건지, 아님 특수한 상황인지 의심을 해볼 정신도 없었고.

-내가 지금 너무 예민해진 건가?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데...저도 상무보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것도 좀 그런 거 같습니다.”

-그렇죠? 안 그래도 방금 장 부장님한테도 따로 한 번 물어봤어. 보통 그러느냐고. 근데 장 부장도 일반적인 건 아니라고 하네?

“...”

-나라서 무시를 한 건가?

“에이 설마요.”

-내가 아니라 전무님이 직접 가셨어도 그랬을까? 이거 지금 대놓고 나 압박해서 기죽이겠다고 그런 거 같은데?

“흐음...”

-일단 알았어요. 오후 2시 이후로 자기 편할 때 오라고 해요.

그런데 내가 여기서 상무보의 성격을 봐버린다.

상무보가 사람이 항상 웃는 얼굴로 어리숙하게 다녀서 그렇지, 어쨌든 사장님 핏줄 아닌가.

고집도 고집이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자존심이 여간 강한 게 아니었다.

상대가 오후 3시에 직접 본사로 찾아오겠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형 사이즈 회의실을 비워놨고, 또 거기에 내가 참석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지원팀에게 중요한 미팅이라는 걸 전달하며 회의실 준비를 철저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공 차장님.”

상무보가 회의실 쪽으로 다가오며 날 불렀다.

그런 상무보 옆자리엔 장 부장이 있었고.

“혹시 기획 2팀 팀원들 시간 좀 비울 수 있어요?”

상무보의 얼굴은 차가웠다.

어디에 화가 나 있는 건지, 무척 차가웠고 그런 상무보 옆에 서 있는 장 부장 역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분 나쁘네.”

“뭐가...”

“어제 그 식사자리 말이에요.”

왜 이제와 뒤늦게 이러는 걸까?

“우리도 똑같이 해줍시다.”

“뭘...”

“어차피 기획 2팀 일이잖아. 다 내려오라고 해요. 개인 노트북 들고. 우리 회의하는 거 옆에서 다 기록하라고 해. 그 기분이 어떤지 자기도 한 번 느껴보라고 말이지. 자기는 잘 알 거 아니야. 우리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안 그래요?”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갈 일인걸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옆에서 장 부장이 중간에서 상무보를 살짝 잡아줘야 함에도 그걸 안해주고 있다는 게 난 더 이상했다.

“근데 상무보님.”

“왜요?”

“그건 좀 아닌 거...”

“그냥 해요.”

“...네.”

피가 뜨겁구나.

확실히 사장님도 그렇고 상무보도 이성적인 스타일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누구보다 냉철한 장 부장이 아닌가.

괜히 내가 장 부장을 사이코패스라고 하겠나.

아무리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성을 잡고 있고, 아무리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가시 돋힌 말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장 부장이다.

그런 장 부장이 가만히 있다.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걸까?

상무보의 저런 반응이 저 위치에선 당연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난 일단 상무보가 시키는대로 기획 2팀 팀원들을 모두 회의실로 모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너네 여기서 뭐하냐?”

그 앞을 지나가던 전무님이 회의실 안으로 고개를 반쯤 넣으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전무님께 상무보가 조금 있다가 상대측 노 상무가 어제 일을 사과하러 직접 본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근데 저 친구들은 왜 다 이렇게 모아놨어?”

그리고 터져나오는 사자후.

우와...

한 때 박 이사가 영업부장이었을 시절, 박 이사가 영업부 전체에게 터뜨렸던 사자후는 상무보를 향해 내지르는 전무님의 사자후에 비하면 그냥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정신머리가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

“사과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상대로 똑같이 해주겠다? 야, 성규야.”

“...네.”

“네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어? 어?”

“그게...어제 그 자리에서 홍성이 모욕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네가 뭔데!”

“...”

“네가 뭔데 홍성이 모욕을 받았단 말을 해. 네가 홍성이야?”

“...”

“그리고 네가 홍성이라도 그래. 그 정도 모욕도 감수를 못해! 이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 관계인데, 네가 뭐라고 그만한 일로 모욕을 받았다고 이 난리야!”

“...”

“당장 다 안 올려보내!”

여전히 장 부장은 침착했다.

표정없는 얼굴로 상무보 옆을 지키며 안 팀장을 시켜 다시 기획 2팀 팀원들을 모두 사무실로 복귀시켰다.

상무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전무님은 천장을 쳐다보며 화를 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셨다.

“몇 시에 온다고?”

“...3시까지 온다고 했습니다.”

“여기로 모실 거지?”

“직접 참석하시려고요?”

“널 못믿겠다, 더이상. 너 그냥 올라가라.”

“하지만...”

“올라가라고.”

상무보는 그렇게 전무님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임원 사무실 층으로 올라갔고, 장 부장 역시 그런 상무보를 말 없이 뒤따랐다.

어쩌다보니 나와 박 이사가 전무님을 수행하는 그림이 되어버렸고, 내가 직접 본사 로비까지 내려가서 상대 노 상무를 맞이해야 했다.

“들어가시죠.”

회의실까지 올라오는 동안 노 상무에게 사정이 생겨서 상무보 대신 전무님이 자리하실 거라고 미리 언급을 해놨다.

그리고...

“아이고, 노 상무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는 사람처럼, 전무님은 두 손을 뻗어 노 상무의 손을 잡았고, 직접 그가 앉을 자리까지 안내했다.

짧은 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대답하며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노 상무가 전날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해 상무보는 자리에 없지만, 전무에게 대신 사과하는 훈훈한 모습까지 연출이 되었고, 난 이쯤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그쪽 노

상무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 상무님.”

“네, 전무님.”

“혹시 저기 저 놀고 있는 책걸상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전 상무가 어제 호텔 중식당에서 있었던 상황이 상당히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무슨...”

“바로 옆 방에서 식사자리에서 나온 대화 내용을 다 기록했다지요?”

“아, 그거요?”

“어제 그 자리...”

그 순간 전무님의 눈빛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납게 변했다.

“전 상무가 저 대신, 사장님 대신해서 나간 자리 아니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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