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네가 좋아서 하고 있는 거라는 걸
정확한 금액은 아니지만 일단 대충 7억이라고 잡고, 3억 5천만 원을 내가 원금까지 함께 상환해가며 이자를 내야한다는 건데...사실 자신이 있었다.
허리가 휠 정도로 무리한 금액은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 꽤 빠듯해지겠지만 말이다.
돈이라는 게 재미가 있어서, 혼자 원룸 골방에 살 때엔 몇 년을 악착같이 모아도 1억을 못 모으겠던데, 이젠 3억 5천도 그다지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특히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부모, 내 가족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갚아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말이다.
참고로 강혜선의 월급에 손을 댈 생각은 절대 없다.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매형의 자존심을 보며 절대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본 내가 아닌가.
또 그정도까지 염치가 없지도 않으며, 사실 우리 부부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전 재산에서 따지고 보면 거진 80퍼센트 이상이(평소엔 따져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을 계기로 따져보게 됐다.) 내쪽에서 나온 건데, 아무리 부부라지만 왜 내가 강혜선에게 아쉬운 소
리를 하겠나.
그것도 내 부모님 모실 집을 가지고.
의미없는 내용이고, 또 그 부분에 대해선 잠시도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강혜선에게 의견을 물어봤던 건 내가 한 결심이 맞는 건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였지, 그녀의 결정을 따르겠단 뜻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결혼을 준비할 때 내가 더 많은 돈을 가져왔다고 해서 내 멋대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부모님의 집 만큼은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놓아야 하는 숙제였단 뜻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강혜선 역시 내가 안고있는 일종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주고 있었고.
처음 마포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을 때에 우린 붙으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마음으로 혼인 신고를 하기 전, 강혜선의 이름으로 청약을 던졌었다.
결과는 떨어졌고.
그런데 이게 강혜선 본인도 본인이지만 내가 생각을 해봐도 너무 아까운 물건이었다.
사놓기만 하면 무조건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도 있었고, 신축이라 완공만 되면 누가 들어와 살아도 월세는 나간다는 게 어느정도 보장이 된 물건이었다.
그러다 진짜 상황이 안좋아서 월세가 안나가면, 현재 신혼집으로 살고 있는 집을 월세놓고 우리가 거기 들어가 살아도 되는 거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 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신혼집으로 살고 있는 집 역시 월세 수요가 많은 곳이니까.
그렇게 마포 아파트까지 해서 아파트 세 채를 확보하고 있으면 얼마든지 우리가 옮겨다니는 수고를 하더라도 돌려막으며 두 채는 월세를 돌릴 수 있겠단 결론이었다.
그래서 대출을 좀 일으켜서 피를 얹어 물건을 구입했었다.
아무리 피가 많이 붙어도 강남도 아니고, 그정도 평수의 아파트에 계약금 명목의 대출은 월 이자 40만 원을 넘어갈 수가 없다.
중도금이라는 것도 실입주를 하기 전까지 세 번에 나눠서 갚아주면 되는 건데, 이제는 16억 8천만 원까지 훌쩍 뛰어버린 강남의 아파트가 마치 내 자금운용의 본부처럼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으니 크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겠단 계산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작전을 펼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무척 머리가 아픈 내용인데, 내겐 든든한 16억 8천만 원짜리 아파트가 있었고, 또 1원을 10원처럼 굴리는 쪽에 있어서 강혜선은 나름 전문가였다.
은행에 다닌다고 다 돈 굴리는 머리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강혜선은 결혼을 하기 전부터 자기 부모님의 편의점 오픈부터, 언니 내외의 신혼집, 형부 병원 개원 등의 이유로 부담감을 안고 직접 대출을 일으키는 걸 수차례 경험해 해봤고, 그래서 속된 말로 간이 제법 커져있는 상태였다.
저금리 시대라는 행운도 우릴 따라와주고 있고.
거기다 우린 안전한 보금자리가 따로 있으니까 마포 아파트에 들어갈 원금과 이자는 그 아파트를 가지고 월세를 돌려서 만들면 되고 또 부족한 부분은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적당히 막으면 그만.
어차피 월세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받는 보증금도 2년 정도 묶여 있을테니까, 그걸로 이리저리 돌려막으면 크게 부담스런 내용은 아니다.
물론 모든 게 다 나와 강혜선의 계획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소극적일 이유도 없었다.
어디서 약간의 차질이 생기더라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하다.
현재 내가 받고 있는 월급 플러스 16억 8천만 원짜리 아파트에서 올라오는 월세를 더해서 나 혼자 월 800만 원을 찍고 있다.
차장을 달기가 무섭게 사장님이 장 부장에게는 회사차를 제공해주었고, 내게는 업계 최고 수준의 차장 월급을 보상으로 주셨으니까.
이것저것 다 떼고 월급만 놓고 보면 수중에 550 정도가 떨어지고 있다.
성과급은 제외를 하고 말이다.
그리고 현재 강혜선과 함께 살고 있는 신혼집의 대출 원금과 이자 역시 16억 8천만 원짜리 아파트에서 올라오는 월세로 커버를 치고 있고.
결혼을 할 때에 처가에서 1억을 해주셨고, 또 강혜선이 직장 생활을 하며 1억 정도를 모아 왔었다.
내가 혼자 살았던 원룸 전세 보증금과 우리 부모님이 해주신 2천, 거기에 이것저것 탈탈 긁어보니 대략 3억이 맞춰졌고, 거기서 부족한 부분만 대출을 일으켰던 거다.
신혼집을 자가로 한다고 4억 조금 안되게 대출을 30년 상환으로 일으켰는데, 공교롭게도 매월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 원금과 이자가 딱 16억 8천만 원짜리 아파트에서 올라오는 월세와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10, 20만 원 정도 차이가 나고 있긴 하지만, 그정도야 외식 한 번 안하면 충분히 커버가 되는 금액이니까 계산에서 빼는 걸로 하고.
안다.
물론 다 빚이다.
그런데 좀 더 빚을 내어 부모님 모실 집을 옮겨준다고 해도 빚 보다는 가지고 있는 실 자산이 두 배 정도 더 많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무리하게 빚을 내서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느냐고.
조금만 현명하게 생각을 해보라고.
은행에 갖다주는 이자만 차곡차곡 모아도 나중에 집을 한 채 사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고 돈을 굴리느냐의 차이지, 누가 맞고 틀리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거 아닐까?
아닌 말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근원은 말 그대로 로또 아닌가.
물 쓰듯 돈을 펑펑 쓸 생각은 절대 없지만, 그렇다고 꼬옥 움켜쥐고 마치 예전에 혼자 원룸 골방에 살 때처럼 궁상맞게 돈을 관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로또에 걸렸다고 바로 차를 바꾸기를 했나, 그 돈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 자랑을 하기를 했나.
난 그저 그 돈을 가지고 쌩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짓밟혀왔던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그걸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거고.
난 조금이라도 빨리 부모님을 좋은 환경에서 모시고 싶다.
부모님이 한 살이라도 더 젊으실 때.
그리고 조금 그럴싸한 집으로 본가를 둬서, 강혜선과 함께 부산에 내려갈 때에 더이상 집이 좁아 강혜선에게 민망한 상황을 안 보여주고 싶다.
그럼 두 달에 한 번 내려갈 거 세 달에 두 번 정도로 부산에 내려가는 횟수를 늘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되면 결국 떨어져사는 가족들과 식사 한끼라도 더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누나, 매형은 둘째 치더라도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영이에게 비록 네 부모는 현재 상황이 안 좋아 무척 어렵지만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은 건재하니 다른 거 신경 쓰지말고 학업에만 전념하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 어린 것이 벌써부터 공무원이 꿈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공무원을 비하하는 게 절대 아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공무원만큼 신의 직장이 어디에 있겠나.
다만 경제적으로 오죽 불안정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으면 녀석이 어릴 때부터 어디에 소질이 있고, 또 뭘 하고 싶어하는지 내가 빤히 다 아는데, 그런 삼촌한테 대학 전공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국립대 들어가서 공무원 준비를 할 거란 소리를 벌써부터
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말이다.
괜히 그런 말을 꺼내는 애 기를 죽일까봐 잔소리는 못하고 앞에서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진짜 억장이 무너지는 거지.
왜 이제와서 그러느냐고?
로또 당첨된 게 1년도 더 전인데 이제와 왜 갑자기 가족들을 그렇게 챙기느냐고?
아니다.
로또에 당첨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게 누나 내외를 부모님 집으로부터 독립시켜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또 지난 1년 동안 내가 생각해봐도 난 많이 성장을 해있었다.
방법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란 걸 지난 1년 동안 알아버렸다.
1주일 뒤 부산.
강혜선에게는 지현이 와이프와 만나서 그간 밀린 이야기나 나누라고 잠시 딴 곳으로 보내놓고, 누나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마트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누나와 단 둘이 만나 평소 나누지 못했던 남매간의 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처음이었던 거 같다.
누나와 이렇게 어른들의 대화를 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나눠본 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다보니까 아직은 누나 앞에서만큼은 어린아이 처럼 굴고 싶은 욕심이 있나보다.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누나 앞에서 어른이 되어야했다.
“혜선이는 어디갔노?”
“내가 잠깐 딴데 좀 보내놨다.”
“와?”
“누나랑 이야기 좀 할라고.”
“무슨 이야기?”
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염려된다는 식으로 대답을 재촉을 했다.
“와 뭔 일있나?”
“으으음...그런 게 아이고, 누나하고 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볼라고.”
“아, 그니까 뭐.”
“성격 좀 죽이라이. 와그래 급하노, 아직 커피 나오도 안했다.”
바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진동벨이 울렸고, 난 그걸 들고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받아왔다.
“와 생전 안하던 짓을 하노, 사람 겁나구로.”
“누나야.”
“아, 와! 부르지만 말고 말을 해라.”
“이사하자.”
“...이사?”
“응, 이사.”
“...갑자기 이사는 와?”
“집이 많이 좁다.”
갑자기 변하는 누나의 미안한 표정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이 부분을 말 안 통하는 부모님과 상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매형과 한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된다.
“누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나는 누나가 엄마, 아버지랑 같이 살아서 마음이 놓인다.”
“...”
“내가 조금 더 자주 내려와서 살펴보고 해야되는데...누나한테 다 떠넘기고 있는 거 같아가 미안하기도 하고 좀 그렇네.”
“하이고, 참... 그런 소리 하지마라. 누나가 돼가 이래 있는 거도 내 니 볼 면목이 없다.”
“아이다. 누나나 그런 소리 하지마라. 그...”
“...”
“내가 어떻게 해볼테니까 좀 넓은 평수로 옮기가자.”
“혜선이는 아나? 니가 이런 생각 가지고 있는 거.”
“알지.”
“뭐라 안하드나?”
“뭐라하긴 뭘 뭐라하노?”
“그래도 그런기 아이다. 아가 진짜 속이 좋아서 좋은 거겠나. 마음이 넓어서 이해하는 척 하는 거지.”
“집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아나?”
“뭐라는데?”
“자기만큼 복 받은 여자 있으면 나와보란다. 특히 시댁 관련해서.”
“니 듣기 좋으라고 그냥 하는 소리지.”
“뭘 그렇게 꼬아서 생각하노.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든, 아님 그게 진심이든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를...”
또 욱하고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
하지만 그 짜증은 절대 누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동생이 잘 한다, 처가에도. 그런 거 걱정하지마라.”
”알았다.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 순간 난 무너졌다.
항상 철부지 막내여야 하는데, 언제까지고 보호를 받고 참견을 받는 막내여야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나의 포지션이 중심에 섰다는 걸 느끼게 됐다.
“센텀에 집하나 봐놨다. 그쪽으로 옮기자.”
“센텀? 거긴 뭐가 있다고 갑자기 글로 옮기자고 그라노?”
“꼭 뭐가 있어서 그쪽으로 옮기자고 하는 게 아니라...그냥 내가 우리집이 그쪽에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쪽에 하나 봐놨다.”
그리고 난 스마트 폰으로 찍어놓은 사진을 누나에게 보여줬다.
“은태야, 이런 집은 있제...관리비만 해도 수억 깨진다. 집을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관리비 무서워가 못 드가 산다. 누나는 어디 뭐 집같은 거 안 알아보러 다니봤겠나?”
“내가 낼 거다.”
“...!”
“대충 집사람 통해서 대출 이자 싼 지점하고 대략적인 거 다 견적 뽑아놨으니까...이사 준비는 힘들겠지만 누나가 좀 해라.”
“갑자기 집을 옮기자하면 엄마, 아버지도 뭐라 하실 건데...”
“집안 분위기 좀 확 바꾸자.”
“...!”
“한 곳에 너무 오래 살았다. 가구들부터 해가지고 벽지, 타일...너무 오래됐다. 사람 기운이라는 게 있다아이가. 너무 많은 변천사가 그 집에서 있었다. 그라고 동생은...인자 그 변천사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누나 앞으로 적금 통장 몇 개를 건넸다.
처음 로또에 당첨이 되고 강혜선이 근무하는 지점에 가서 만들었던 소소한 적금 통장들.
거기서 강혜선을 처음 봤었지.
“이건 뭐고?”
“내 사실...작년부터 아영이 대학 드가면 줄라고 적금 하나 넣고 있었다. 그라고 이거는 엄마, 아버지 해외 여행 한 번 시켜줄라고 몇 푼씩 모았던 건데, 결국 못 썼고...이것저것 그냥 푼돈 비슷하게 적금 몇 개 들어놨었다. 아영이 적금은 3년 짜리라서 아직이고,
이거 두 개는 몇 푼 안되지만 가구 같은 거 살 때 보태라. 집은 싱크대까지 인테리어 싹 다 새로 돼있어서 따로 손 안 봐도 되겠더라. 그라고 왠만한 건 다 붙박이라서 침대하고 식탁, 소파 정도만 새로 사면 될끼다. 장식장 같은 거도 여유되면 하나 해넣고.”
“...”
“아영이 적금 이거...인자부터 누나하고 매형이 알아서 부어라. 그라고...매달 내가 엄마, 아버지한테 50만 원씩 통장으로 용돈 보내고 있었는데, 그거도 앞으로는 누나하고 매형이 좀 대신 드리라. 인자 매형도 일한다아이가.”
“...”
“내가 다 할 수는 없다, 누나야. 근데 누나랑 같이 하면 좀 힘들어도 그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아버지 살아계실 동안만이라도 다 할 수 있다. 그라고 내 혼자 다 하는 거 보다 같이 하는 게 더 보기가 좋지 않겠나?”
“...알았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알고 있다. 그때 매형도 그라데. 부지런히 모아서 따로 나가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하여간 쓸데없는 소리하는 건 국가대표다.”
“그게 언제라도 할만하면 해야지. 근데...매형한테는 참 미안한 말인데, 저렇게 우리 엄마, 아버지 늙게 만들어놓고 나중에 따로 나가 살겠다고 하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이기적인 거 아이가?”
“...”
“미안하다, 이런 말 해서.”
“아이다, 니 말이 맞다. 나도 니랑 같은 생각이다. 근데...니 부담 안되나? 월급도 뻔할낀데...”
“2년 거치로 대출 내면 그 2년 동안 이자만 주면 된다아이가. 관리비하고 나머지 부분은 내가 다 할테니까 신경 쓰지마라. 사실 누나하고 매형이 지금까지 내가 드리고 있었던 엄마, 아버지 용돈 부분만 대신 해주면 내 입장에선 매월 엄마, 아버지 용돈으로 드
리던 거에서 100만 원 조금 못되게 더 나가는 건데,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2년 뒤에는? 느그 2세도 인자 슬슬 준비해야 할 거 아이가?”
“뭐 2년 뒤에 벌어질 일까지 벌써 걱정을 하노? 거기까지 신경 쓰지 마라.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 안해봤다. 중요한 거는 2년 뒤가 아니라, 지금 현재가 어떻느냐하는 거 아니겠나. 지금을 조금 바까보자. 그라면...2년 뒤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져있지 않겠나.”
커피 한 모금.
오늘따라 참 쓰다.
“그라고 누나야.”
“와.”
“내가 진짜 집사람이나 처가에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지내길 바란다면...동생이 하자는대로 해도. 집 사람도 그렇고 사는 형편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말 만들어내는 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집 사람 부산에 데리고 올 때마다 우리집 사는 거랑 처가가
비교되는 건 나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더라.”
“...!”
“차라리 확 차이가 나뿌면 모르겠는데, 어설프게 비교가 되는 거 같아서 동생은 집 사람 보기에 그게 참 싫더라고. 사실 집 사람도 내가 그런 거 때문에 부산에 잘 안 내려올라고 하는 거 알고 있고.”
그렇게 부산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올라온 서울.
그리고 일상.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습니까, 차장님.”
“차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내 자리까지 가는 동안 난 각 팀의 팀장, 팀원들로부터 에너지 넘치는 아침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여기가 내 삶이구나.
확실히 이곳 회사 사무실이 이젠 내게 가장 편한 곳이구나...
밀려있는 업무.
변비처럼 꽉 막혀서 좀처럼 뚫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프로젝트들.
시시때때로 변하는 군상들의 얼굴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내겐 가장 편한 곳이다.
그리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주말동안 난 부산에 내려가서 내가 여기에 더 악착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만들어놓고 올라온 거야!
내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의 집을 더 크고 좋은 곳으로 옮겨드리기 위해선 난 이곳에서 더 버텨야 돼.
하지만 명심하자, 은태야.
네가 좋아서 하고 있는 거라는 걸.
회사 일이든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든 예전처럼 억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네가 좋아서 하고 있는 거라는 걸.
그러니 이젠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 하는 걸 연습하자.
“부산에 내려가신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탕비실.
먼저 커피를 내리고 있던 양 팀장이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네?”
“주말에 부산에 내려가셨던 거 아니었어요?”
“그걸 어떻게...”
“안 팀장이 그러던데요?”
“도대체 안 팀장은 모르는 게 뭡니까?”
“저요?”
어디서 나타났을까.
순간 소름이 올랐다.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안 팀장이 내게로 다가왔다.
“놀래라!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저 아까부터 쭉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럼 기척이라도 좀 하던가.”
“기척은 무슨...제가 모르는 거라...없습니다, 그런거. 아! 있다, 있다. 딱 하나 있네요.”
“...뭐요?”
“절 향한 차장님의 진심?”
“아, 좀 저리 떨어져요!”
“그런 의미로 오늘 마치고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오늘 월요일입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거 아닙니까?”
“라임 한 번 끝내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