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너랑 비교할 사람이 없었어
박 이사의 질문에 난 당황했다.
“안 팀장이 양 팀장한테 비교가 됩니까?”
“왜 안돼?”
“...”
왜 한 번씩 그럴 때 있지않나.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A가 B보다는 무조건 낫다고 믿고 있는...
내가 그랬던 거 같다.
안 팀장 보다는 양 팀장이 여러모로 차장 진급 순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입사 순서부터 시작해서 아무래도 안 팀장은 중국 법인을 길게 거치고 왔고, 또 안 팀장이 중국 법인 생활을 하고 오는 동안 양 팀장은 묵묵히 본사 영업팀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박 이사의 뼈 있는 질문이 몇 차례 이어지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보니까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양 팀장이 안 팀장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몇 달 정도 입사를 빨리 한 것과 본사 영업부를 쭉 지키고 있었다는 것, 그것 말고는 없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일을 잘하는 건 틀림없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나는 위에서 큰 그림만 보고를 받지. 그 말인 즉 영업부의 디테일에 대해선 더이상 예전만큼 훤히 꿰고 있을 수가 없어.”
“...네.”
“그런데 올라오는 매출만 보면 양 팀장이 안 팀장보다 크게 낫다고 할 수가 없어.”
“...!”
“매출을 떠나서 Kidshub...이것만 봐도 그래. 따지고 보면 안 팀장 아이디어로 발전된 거잖아. 그걸 지금 양 팀장이 차고 나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네.”
“H.I 편집샵 역시 공 차장 네 프로젝트였고.”
“...네.”
“양 팀장이 직접 띄운 프로젝트는 사실상 아직 하나도 없다고.”
분명 이유는 있을 거다.
내 마음 속으로 양 팀장을 안 팀장 위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
그런데 그 이유를 말로 풀어서 설명을 하려니까 생각이 자꾸 꼬이고 또 구체적일 수가 없었다.
“안 팀장 보다는 양 팀장이 무게가 좀 더 있습니다.”
내 말에 박 이사는 자기 앞에서 무게를 이야기하느냐는 식으로 가소로운 웃음을 흘렸다.
“무게? 하하하...무슨 무게? 무게로 일하나? 그리고 무게로 일을 한다고 쳐도 그래. 안 팀장이 가벼워?”
“네, 아무래도 스타일 자체가...”
“아이고, 이 사람아...가벼운 거랑 일을 쉽게쉽게 처리하는 건 크게 다른 거야. 회사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편하게 쳐내는 걸 가볍다고 해버리면...뭐 신입들의 무게는 사장급이게?”
“...!”
“내 눈엔 안 팀장이 사람 자체가 가벼운 게 아니라, 그냥 똑같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을 쉽게쉽게 처리하는 일 머리가 좋을 것 뿐이던데...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맞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거리를 줘도 한 사람은 하루가 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반나절이면 끝나. 그런데 그 반나절 만에 일을 끝낸 사람에게 남은 반나절 동안 아무런 일거리도 주지않고 있으면 그건 스스로 일거리를 찾지 않고 있는 사람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시
선으로 볼 것인가, 아님 윗 사람의 일을 주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것인가...”
이게 또 이렇게 까이는 명분이 되는 건가?
“물론 없는 일거리를 억지로 만들어 줄 수는 없지.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애들 놀고 있다고 멀쩡한 땅바닥 파라고 했다가 다시 덮으라는 식으로 의미없는 일을 시킬 수는 없는 걸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돼. 여기서 회사가 더 커져서 업무량
이 더 늘어났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두 배로 늘었다고 치자고. 과연 그때에도 양 팀장과 안 팀장이 올리고 있는 매출이 지금처럼 비슷할까?”
“...”
“과연 그 때에도 양 팀장이 지금처럼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업무 중압감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과연 그 때에도 안 팀장이 지금처럼 나풀거리며 다른 부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나 주워듣겠다고 기웃거리며 딩가딩가 할 수 있겠
냐고.”
박 이사는 조금 더 지켜보라고 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다만 지금까지 두 사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날 질책했다.
자기도 하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했냐고 말이다.
여기서 난 고집이 아닌 의심이 들었다.
고집이 절대 아니었다.
무의식 중이었지만, 내가 양 팀장을 안 팀장 우위로 놓고 있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게 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뿐이지, 분명 뭔가가 있을 거다.
며칠 동안 난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두 사람의 업무 스타일을 분석했다.
출근과 동시에 화장실도 가지 않고 집중해서 오전 근무를 쳐내는 안 팀장.
보통 안 팀장은 오전에 볼 업무, 오후에 볼 업무를 나누지 않는다.
한 번 책상에 앉으면 그날 쳐내야 할 업무를 한큐에 끝내버린다.
그래서 점심을 늦게 가는 경우가 많다.
그날 해야 할 업무가 끝날 때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으니까.
대신 점심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무척 여유롭다.
반면 양 팀장은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12시만 되면 바로 팀원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또 중간 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거나 탕비실에서 커피를 뽑아 올 때가 많았다.
두 팀장의 스타일이 워낙에 다르다보니 같은 사무실을 써도 두 팀의 색깔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하루종일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양 팀장의 기획 1팀.
짧은 순간 미친듯한 집중력을 만들어내고, 남은 시간 동안 설렁설렁 내일을 준비하는 안 팀장의 기획 2팀.
정말 뭐가 좋고, 뭐가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아직 멀었어?”
“잠깐만, 잠깐만...딱 5분만요.”
“그냥 갔다와서 해.”
“아, 5분만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보채시지? 거의 다 끝났단 말이에요.”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양 팀장이 안 팀장을 닥달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양 팀장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푹 내쉬며 안 팀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안 팀장은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미친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안 팀장 본인이 말한 5분 보다 10분 정도 더 시간이 지난 뒤에서 숨을 돌리며 자켓을 챙겼다.
“벌써 12시 반이다.”
“죄송, 죄송.”
“얼른 차장님한테 가서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해.”
모든 감각을 그쪽으로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듣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잠시 뒤 안 팀장이 내자리로 와서 말했다.
“차장님, 저기 사거리 뒷편에 재첩국집 기가 막힌 곳이 오픈했다고 하는데, 점심은 거기가서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쩐 일로 저한테 같이 가자는 말을 다 합니까?”
“양 팀장님이 오늘 차장님 모시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귓속말을 하듯 낮게 말했다.
“가자고 한 사람이 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시죠.”
양 팀장과 안 팀장.
이 두 사람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에 대한 그간의 나의 평가가 왜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우와...여기 국물 진짜 제대로네요.”
“그렇다니까.”
국물을 한숟가락 떠먹어보고는 양 팀장 앞으로 유난스럽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안 팀장.
그런 안 팀장의 리액션에 양 팀장은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술 먹은 다음날 해장은 무조건 이 집에서 해야겠어요.”
“매일 오겠단 말이네?”
저렇게 주거니 받거니 서로 도와가며 회사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두 사람.
난 그 두 사람과 식사를 끝내고 박 이사를 찾아갔다.
“누가 더 데리고 일하기 편하겠냐고 물으셨죠?”
“그랬지.”
“확실히 수월하기는 안 팀장이 더 수월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럴 거야.”
“그래서 차장 자리는 양 팀장을 앉히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
“정말 객관적으로 두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 입사 순서 상관없이 그냥 두 사람이 입사 동기라고 생각하고 며칠 동안 두 사람을 관찰해봤습니다.”
“그래서?”
“근데 참 안해도 될 짓을 했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양 팀장에게 차기 차장 자리를 안 팀장에게 줘도 되겠냐는 말을 할 엄두가 안납니다.”
“...!”
“그런데 반면에 안 팀장에게는 그냥 술 한 잔 사주면서 그렇게 됐다라고 말하면 끝일 거 같더라고요.”
“훗...”
“사실 둘 다 데리고 일하기 편합니다. 두 사람 다 잘 따라와주고 있고...다만 지금까지 같이 일해본 결과 안 팀장에 비해서 양 팀장에게는 싫은 소리를 하기가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건 아마도 공 차장 네가 처음 팀장 달았을 때 양 팀장 그놈이랑 마찰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어?”
“그렇죠. 그 부분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일종의 노이로제 비슷하게...그런데 바꿔 말해서...”
“...?”
“양 팀장이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그정도 노이로제를 줄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고 또 성격을 부릴 수 있단 말 아니겠습니까? 안 팀장은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좋아요. 거래처 사람이나, 다른 부서 사람에게 까지도요. 뾰족한 맛이 부족합
니다. 그래서 어쩌면...자기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절 나쁜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을 거 같습니다. 만약 현재 만토바 물건을 양 팀장이 컨트롤 하고 있었다면...”
“...?”
“정 팀장이 그렇게 회사를 나가고 나서 다시 홍성에 컨텍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해본들 거절은 거절대로 당하고 또 안좋은 소리만 들을 게 뻔할테니까요. 하지만 안 팀장이니까 그렇게 비비고 들어왔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양 팀장이었음 비록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더라도 그냥 자기 선에서 절대 안된다고 거절을 했을 거야.”
“그때 안 팀장이 저한테 그 내용을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해야겠냐고 묻는데, 저라고 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주라고 할 수 밖에요.”
“원래 사람은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 하나 있는 사탕을 줘버리는 법이거든. 너무 순한 아이는 살이 찔 수가 없어.”
“...네.”
“특히 영업하는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 성격 좋고 무조건 예스를 말하는 예스맨이 인정 받는다고 착각을 하지. 아닐 땐 아니라고 성격도 부릴 줄 아는 게 정말 중요한 건데 말이야.”
“안 팀장을 선택하는 순간 양 팀장을 잃어야 하는데, 양 팀장을 선택하면 그냥 둘 다 데리고 갈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렇지. 그게 바로 그때 공 차장 네가 말했던 무게라는 거야. 양 팀장한테는 그게 비록 너무 날이 선 날 것의 뾰족함이라도 그런 무게가 있어. 그런데 안 팀장 그 놈은 너무 뛰어나. 자기도 자기가 똑똑하고 일을 잘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다 만만한 거지. ”
“테스트...였습니까?”
“그 정도 판단도 못하는 사람한테 부장을 달아줄 순 없지. 내 입장에선 지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냐. 몹시 불안해. 욕심 같았음 장 부장, 공 차장 지금 라인으로 한 몇 년 더 가줬으면 좋겠지만, 사장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내가 뒤집을 순 없는 노릇이
고...”
“저 때도 그랬습니까?”
“뭐가?”
“저 차장으로 올릴 때에도 장 부장님을 상대로 이런 비슷한 테스트를 하셨습니까?”
“으으음...너때는 너랑 비교할 사람이 없었어. 그냥 너 하나 밖에 없었다. 다만 그때 나랑 장 부장이 골머리가 아팠던 건 너랑 김 차장, 손 차장 사이에 워낙 짬 차이가 많이 나니까 그걸 어떻게 김 차장, 손 차장 두 사람한테 인정을 시키느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