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누가 더 데리고 일하기 편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앞으로 홍성은 더 커질 거라던 사장님의 말씀.
나와 장 부장을 불러놓고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 그냥 던졌던 공수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디까지가 원래 계획이었고, 또 어디까지가 상황에 맞춰 전개되고 있는 시나리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현재 홍성은 한 단계 더 몸집을 키우기 위해 크게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거다.
“...?”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 팀장을 부서이동 시킨 이후부터 어지간하면 점심은 해외 영업부 팀원들과 같이 먹으려고 애를 썼다.
비어있는 팀장 자리.
난 중국 법인에서 넘어온 최 대리를 해외 영업부 차기 팀장 정도로 생각하고, 한 대리는 아무리 늦어도 내년 정도에 중국 법인 본부장과 말을 맞춰 팀장 승진과 함께 중국 주재원으로 보내줄 계획을 잡고 있었다.
장 부장과도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내용이었고, 현재 해외 영업부의 맨파워 상 그보다 더 깔끔한 그림은 그릴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모처럼 다른 팀원들은 빼고 최 대리와 한 대리만 불러서 회사 밖에서 점심을 먹었고, 그 점심 자리에서 장 부장까지 오케이 사인을 준 해당 사안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 해줬다.
“그러니까 현재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업무를 천천히 바꿔봐요.”
문 팀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중국 법인에서 넘어왔던 최 대리에게 법인 관련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 대리가 중국으로 넘기고 있는 국내 중저가 브랜드 업체들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됐고.
어느정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 싶어서 난 두 사람만 따로 불러 점심을 먹자고 했고, 그 자리에서 지금부터 두 사람이 알아서 서로의 업무를 서로에게 인계해주며 포지션을 바꾸겠끔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스타벅스 커피를 하나씩 들고 다시 회사로 복귀를 하는 중이었다.
신입 사원 공개 채용
본사 건물 입구 앞에서 시설부 아저씨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현수막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로비 입구에는 이미 신입 사원 면접 장소를 표시해 놓은 삼각의 사이니지가 세워져있었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
무슨 공개 채용을 이 시즌에 한단 말인가.
나와 최 대리, 한 대리 뿐 아니라 이제 막 점심 식사를 끝내고 복귀를 하거나 이제야 늦은 점심을 먹으로 나가던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멈춰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장님. 저기 부장님 오십니다.”
최 대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입 사원 공개 채용 현수막을 걸고 계시던 시설부 아저씨들의 곡예에 빼앗겼던 정신을 차려 로비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장 부장이 이문 본부장님과 함께 로비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문 본부장과 장 부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그 두 사람 역시 우리 앞에까지 다가와 잠시 멈춘 뒤 시설부 아저씨들이 달고 있는 현수막을 올려다봤다.
“식사하러 가십니까?”
“응. 회의가 조금 길어졌어. 점심들 먹었어?”
“네, 저희는 먹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근데 이건 뭡니까? 아직 시즌도 아닌데, 무슨 공개 채용을 벌써부터...”
“사람이 없으면 해야죠.”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는 듯이 이문 본부장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로비 입구에 세워진 삼각의 사이니지 방향을 살짝 틀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경력직은 받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고집만큼은 나도 어떻게 못해. 그냥 처음부터 홍성맨이어야 되는 거죠. 비록 다 키워놓고 다른 회사에게 빼앗기더라도 사장님은 여전히 아예 백지 상태로 들어와서 홍성맨으로 커나갈 인재들만 뽑겠다는 입장이시거든.”
굳이 이문 본부장이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더라도 그건 꼭 홍성 안에서뿐만이 아니라 업계 전체에 너무나 유명한 고집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장님 마인드 자체가 그렇다.
투자를 해서 직원을 키우는 걸 아까워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놓은 직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보장받고 이직을 하는 부분에 대해 큰 미련을 갖지 않으신다.
다만 이거 하나는 진짜 철저하게 고집하신다.
타 업체로부터 스카웃을 해오지 않는다는 부분.
“자신감인 거죠. 본인의 생각이 맞다는 걸 확신하시는 거예요. 그리고...이제 보니까 사장님 생각이 맞는 거 같애.”
“...?”
“그 고집이 업계에 소문이 나고 또 이 업계에 들어오려고 준비중인 취준생들에게까지 다 알려지니까, 결국 봐요. 우리가 업계 탑이 된 이후부터 모든 인재들이 다 우리쪽 문 부터 두드리잖아. 고민할 이유가 없는 거지. 일단 홍성 문 부터 두드려보고 안되면 고
민은 그때가서 하면 되는 거거든. 어차피 홍성에 있음 얼마든지 나중에 다른 곳으로 더 좋은 조건을 보장받으며 옮길 수 있는데, 다른 곳에 먼저 발을 담구면 홍성 쪽 기회는 아예 없는 거 잖아.”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의 그런 고집이 딱 지금 타이밍에 적중을 해버리네. 신입들이 많이 들어올 거예요. 상반기 공채 때보다 더 많이 뽑을 계획을 가지고 있거든.”
“하반기 공채는 없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으으음, 하반기 공채는 하반기대로 하고.”
“근데 왜 그렇게 많이 뽑습니까?”
“지금 있는 직원들 월급 올려주시겠다고.”
“...?”
평소에 농담을 잘 하시는 분이시니까...
농담인 건 알겠는데, 이상하게 실없는 농담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몸 값이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내 밑에 부하 직원이 많아야 돼. 비슷한 원리로 회사가 커지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
“직원이 많아야지. 그래야 카드빚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버티듯, 회사도 직원들 월급 챙겨줄 부담감에 더 긴장을 하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갑시다, 장 부장.”
“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장 부장으로부터 호출이 걸려온다.
기다리고 있었던 호출이었다.
17층에서 만나자고 하는 장 부장.
난 담배를 챙겨 17층으로 올라갔고, 자판기 앞에서 미리 뽑은 커피 한 잔을 입에 물고 다른 커피 한 잔을 뽑고 있던 장 부장을 발견했다.
장 부장은 금방 뽑은 커피를 내게 건네며 우리가 담배를 피우는 공간으로 가자고 눈짓했다.
“요즘 본부장님이랑 너무 자주 함께 다니시는 거 아닙니까? 이사님이 섭섭하다 그러시겠습니다.”
“네가 좀 챙겨드려라.”
그렇게 나와 장부장의 노선은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 말이 가진 의미와,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우린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너 뭐 따로 들은 이야기 없지?”
“무슨 이야기요.”
마치 장 부장은 자기 선까지만 알고 있는 회사 대외비가 혹시 다른쪽에서 새어나가지는 않았을까 염려라도 하듯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쁘띠토널 매출이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치고올라오는 걸 보고 회사가 방향을 살짝 틀기 시작했어.”
“이정도 매출은 이미 어느정도 예상을 했지 않습니까?”
“예상했던 기간보다 빠르게 올라오고 있잖아.”
“그렇다고 멕시멈 그래프가 더 올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건 크게 중요한 게 아니야. 회사 입장에선 우리 영업부가 이걸 얼마나 빨리 띄울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 우리가 쁘띠토널을 가지고 얼마나 매출을 뽑아낼지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었던 거 같다.”
난 장 부장 앞으로 담배갑 뚜껑을 열어 내밀었고, 그 속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문 장부장에게 불을 붙여줬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홍성이 쁘띠토널을 인수하고 지금까지 얼마나 벌었을 거 같냐?”
“아직 매입 과정에서 쏟아부은 투자를 생각한다면 번 것도 아니죠. 깎아가고 있는 중이지.”
“아니, 돈은 이미 브랜드 매입을 하는 순간 크게 벌었어.”
“...?”
“브랜드 가치라는 게 있잖아. 홍성이 인수하고 또 Kidshub 메인으로 한국, 중국 시장에 풀리면서 이미 브랜드 가치만으로 투자 금액 이상으로 돈을 벌었어. 이렇게 보면 돈 버는 거 참 쉽지, 그지?”
“돈이 돈을 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사가 지금 다른 국내 유아복 브랜드 업체들과 조심히 접촉하고 있는 중이야. 세경처럼 확장을 도모하지 싶다.”
“...!”
세경.
해외 명품 브랜드 컨트롤 쪽만 놓고 보면 홍성에 한참 못미치는 기업이다.
중형 브랜드 몇 개를 컨트롤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자체 브랜드들을 해외로 수출하는데 더 집중을 하는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홍성에겐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홍성과는 회사 규모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기업이다.
사업 롤모델을 보다 큰 기업으로 잡는 게 아니라, 홍성에게 한참 못미치는 기업으로 잡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아마 그때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너랑 나 승진 부분...큰 변수가 없다면 내년 상반기에 이뤄지지 싶다.”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본부장님과 자주 개인적인 미팅을 하고 있는 거고.”
“...네.”
“전사 운영본부가 해야 할 일을 영업부로 가지고 와서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아무리 내가 그쪽으로 이동을 하더라도 두 부서의 업무를 섞을 수는 없지.”
“정신 없으시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
“네가 신경을 조금만 더 써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차장님한테는 내가 따로 술 한 잔 사면서 이렇게 이렇게 될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 놓을테니까, 넌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신경 쓰지말고, 그냥 우리 승진 관련해서 회사가 공고를 띄우지 않더라도 네가 알아서 영업부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미리미리 연습해.”
“그 부분이야 그렇게 하면 되는 건데...”
“이사님은...앞으로 어지간한 부분은 나 안 통하고 바로 너한테 연락을 주실 거다.”
역시 철저하다.
빈틈이 없다.
“네.”
“너도 그렇게 하면 되지 싶다. 어지간한 내용은 나 거치지 말고 바로 이사님한테 올려.”
“앞으로 정말 바빠지겠네요.”
“좋은 거지 뭐. 너도 그렇게 해라.”
“...뭘요?”
“직원들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게 만들어. 지금 회사가 나나 너한테 하는 거 처럼.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 그날 내가 너한테 보였던 모습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사람이 흔들리는 거야. 부장 쯤 되면 그런 걸 잘 해야 된다. 무식하게 돌격 앞으
로만 외친다고 부하직원들이 다 따라오는 게 아냐. 그런 건 소수 인원을 데리고 움직이는 팀장일 때까지만 통하는 거고, 부장을 달면 돌격 앞으로라는 외침 보다는 일에 치여서 직원들이 일 외에 다른 생각을 못하게끔 만드는 기술이 필요해.”
“...”
“그러기 위해선...더이상 당근과 채찍만 가지고는 안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여름이 벌써 지나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있었고, 나와 장 부장의 승진 부분이 누가 먼저 퍼뜨렸는지 모를 소문에 의해 회사에 퍼져나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누가 괜찮겠어? 양 팀장, 안 팀장...둘 중에 누가 더 데리고 일하기 편해?”
박 이사의 사무실.
커피잔을 입술에 붙이며 다리를 꼬운채 박 이사가 넌즈시 나의 생각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