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40화 (140/325)

# 140

자네들 생각은 어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지혜를 포함해 홍성 본사 직원들이 프랑스로 넘어갔고, 그러는 사이 특송 프레스로 2주 만에 쁘띠토널 이월 상품들이 시즌 상품들보다 빨리 한국으로 들어왔다.

영업 기획부 1팀은 QA팀의 지원을 받아 서둘러 여주 아웃렛과 동부산 아웃렛에 입점된 Kidshub에 쁘띠토널 코너 부스 제작에 들어갔고, 그 기간 동안 나와 양 팀장은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만 했다.

“매장 맨파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양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최대한 많이 뽑아놓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얼마나요?”

“최소 10명은 뽑아놔야 할 거 같은데···.”

“전 최소 10명은 항상 매장에 스탠바이를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러려면 넉넉잡고 15명씩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글세··· 많나요? 전 그걸로도 부족할 거 같은데?”

“···?”

“어차피 쁘띠토널 단독 정상 매장도 각 지점별로 들어갈 거 아닙니까. Kidshub 말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아직은···.”

“미리미리 뽑아놓고 현장에서 고객들 상대로 세일즈 스킬을 익히도록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단독 매장 오픈시킨 뒤에야 부랴부랴 인원 충당하려고 하면 결국 내 마음에 쏙 드는 직원들로만 배치시키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하긴, 그렇긴 하죠. 그래도 그 인건비를 다 어떻게 충당을 하시려고···”

“식당이건 매장이건 최고의 인테리어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야 저기에 뭐가 있나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죠. 그 인테리어를 손님으로 채울 수 없다면 일단 직원들로라도 바쁘게 보이도록 만들어야죠.”

“아주 이번 프로젝트에 목숨을 걸고 계신 거 같습니다?”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왜 그렇게 신이 나 계십니까?”

“그래 보여요?”

“네. 그것도 아주 상당히.”

“재밌네요.”

“···뭐가요?”

“일하는 게.”

“참···.”

“진짜로. 아무튼 맨파워는 그렇게 가봅시다. 책임은 뭐 내가 질게요. 잘될 거예요. 잘될 수밖에 없어요. 감이 그래요. 그리고 오는 주말에 제가 동부산 맡을 테니까 양 팀장님이 여주 아웃렛 한번 다녀오세요. 양 팀장님 프로젝트잖아. 주말까지 일 시킨다고 나한

테 뭐라고 하지는 마세요. ”

“설마요. 진짜 이번 세팅만 잘 끝나면 소고기 한번 사겠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좀···.”

2주 가까이 양 팀장의 기획 1팀을 서포팅하는 데 전력을 다했기에 양 팀장은 내게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매일같이 야근을 했음에도 난 이상하게 뭐에 홀린 듯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안 피곤했다.

정말 누가 들으면 욕을 할 내용이겠지만, 쁘띠토널 건으로 인해 난 매일매일 출근하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하루하루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사이에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가 왜 로또에 당첨이 되고도 회사에 계속 출근을 하는지를··· 그 정확한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여긴 그냥 애초에 내 삶이었던 거 같다.

수선집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온갖 소재를 만져오며, 또 어린 나이에 고급 의류들을 봐오며 성장했던 나.

대학 졸업과 동시에 패션 업계를 선택했던 건 어쩌면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운명 속에서 치열하게 이십 대를 보냈고, 하나둘씩 입사 동기들이 각자의 이유로 떨어져 나갈 때에도 난 절실함 때문에 악착같이 회사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로또에 당첨이 됐다고 곧바로 사직서를 던지자니··· 그간의 절실함에 배신을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오직 돈 때문에 홍성을 선택했다고 하면 지난 내 20대가 너무 서글프게 다가올 것 같았다.

내게도 꿈이란 게 있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돈이 생겨 여유가 있으니 그런 감성 놀음이 가능했던 거겠지.

그 꿈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수만은 난관에 부딪히고 또 스스로 깎였지만, 갈리고 갈려 멘탈이 가루가 될 때도 무수히 많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홍성에 들어왔다는 걸 내 스스로에게 증명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그리고 로또에 당첨이 되기 전까지도 난 그걸 조금씩, 조금씩 실력을 인정받으며 증명해내고 있었고.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을 일을 하고 있었다면, 정말 출근을 하는 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질식을 할 것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거라면, 홍성이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줄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그리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있었다면, 그

런 쥐꼬리만 한 월급까지도 밀리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아마도 로또 당첨과 동시에 바로 사직서를 던졌겠지.

하지만 내게 홍성은 토익 890점과 어학연수, 각종 공모전 입상과 봉사활동 인증, 대학 4년의 결과물로 골인한 곳이었는데, 130억도 아니고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한 13억이란 돈 때문에 그걸 포기해 버리면 아직은 열정이 가득한 내 젊음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쪽으로. 거기 자리 없네. 없는 자리에 왜 그렇게 끼어 앉으려고 해요? 저 전염병 같은 거 없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부산 기장의 한 짚불 꼼장어집.

아웃렛에 근무하는 Kidshub 매장 직원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

유아, 아동복 매장답게 하나같이 직원들 모두가 나보다 최소 5살, 많게는 10살까지도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들이었고, 다른 성인복 매장 직원들과는 달리 모두가 가정적인 분들이셨다.

거기다 급하게 매장 인원을 뽑느라 정직원들보다는 파트타임 개념으로 매장 일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전 직원이 총출동을 해야 하는 주말을 잡아서 난 부산으로 내려갔고, 여주 아웃렛 쪽은 양 팀장에게 맡겼다.

일반 매장 실장들 접대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던 게 아주머니들이 술을 별로 안 드셨다.

건전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 자리가 진행됐고, 그 덕에 난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그분들에게 홍성의 계획을 설명할 수 있었다.

“어디 사세요?”

“양정이요.”

“아이고··· 멀리서 다니시네요. 양정보다 더 멀리서 출퇴근하시는 분 계세요?”

“전 다대포요.”

“힘드시겠다···.”

부산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특별한 커리어가 없는 가정주부들에겐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설명을 들으며, 난 마트에서 캐셔 일을 보고 있는 누나를 떠올렸다.

다들 내 누나 또래였다.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으로 뽑은 거지, 사실 현재 Kidshub뿐 아니라 홍성 본사의 계획상 유아, 아동복 쪽으로 매장 직원들이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조만간 쁘띠토널이 국내 주요 백화점에 단독 브랜드로 매장을 꿰차고 나가게 될 겁니다. 오늘도

보니까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매장 안에 손님들보다는 저희 직원들이 더 많은 거 같던데··· 위축되지 마세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

“서면, 센텀, 온천장, 광복동 지점으로 쁘띠토널이 단독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가면 여기 양정에서 오신 분이나, 저기 다대포에서 오신 분들처럼 멀리서 출퇴근하시는 분들은 그쪽 쁘띠토널 단독 매장으로 가실 수 있도록 조치를 할 겁니다.”

아주머니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난 함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쁘띠토널 제품 공부를 제대로 해두세요. 그리고 손님들이 들어오면 한 번이라도 더 쁘띠토널에 대해 언급을 해주시고요.”

“에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차장님.”

아웃렛 Kidshub 점장이 안심하라는 듯한 투로 말했다.

“성인복과는 달라서 유아, 아동복은 아무리 명품이라도 해외 제품의 경우는 고객들이 잘 몰라요. 성인 명품들 줄줄 꿰고 있듯, 그렇게 다 알고 있는 애 엄마는 거의 없어요. 요즘 어디 애 많이 낳는 부부가 어딨어요? 다 많아 봤자 하나 아님 둘이지. 그 말인즉 아

이 옷을 사러 오는 고객들 역시 브랜드를 잘 모른다는 소리거든요. 거기다 일반 성인복하고는 크게 다른 게 매장 직원들의 추천이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쪽이 바로 유아, 아동복이에요. 부모들이 애기들 사이즈도 잘 몰라. 얼마나 크게 입혀야 되는지, 또 애들이 얼

마나 빨리빨리 크는지···. 거기다 하나둘씩 낳아서 키우다 보니까 애한테 돈 쓰는 걸 전혀 안 아깝게 생각해요. 이렇게 인센티브까지 빵빵하게 넣어주신다고 하는데, 거기다 단독 매장 근무까지 고려해 주신다고 하고··· 안 팔 이유가 없잖아요? 다들 안 그래요?”

점장의 말에 아주머니들은 특유의 포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또 너무 쁘띠토널만 밀지 마시고요. 적당히, 하지만 집중적으로··· 내가 말하면서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싶네. 하하하. 아무튼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쁘띠토널이 정상 매장이 아닌 아웃렛 쪽에서 먼저 국내 론칭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매출은 예상했던 목표치에는 아쉽게 못 미쳤지만, 언논 브랜드치고는 성공적이다 할 만큼 올라오기 시작했고.

때를 기다렸다.

한 번에 훅하고 매출이 치고 올라와 주는 브랜드는 없다.

나크리스는 지나치게 예외적인 브랜드였고,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제외를 시키고.

창고에 산처럼 쌓여있는 쁘띠토널 이월 상품 물량.

워낙에 노 마진으로 받은 물건이라 브랜드 영업 매출 분기점은 손쉽게 넘겼지만, 이걸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운 결과였다.

하지만 본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네, 차장님.”

중국 법인의 손 차장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가뭄에 내린 달콤한 소나기였다.

-광저우 이우에 있는 유펀 아웃렛에 Kidshub 들어가기로 방금 최종 확정 났어.

전화기를 손에 든 채 난 다른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고, 소리없는 환호성을 속으로 몇 차례나 터뜨렸다.

될 듯 말 듯 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어 오던 유펀 아웃렛 입점 건.

손 차장의 사소한 성과 하나가 나를 비롯해 마진 손해를 보고 쁘띠토널 정상 제품을 받아야만 했던 양 팀장의 기획 1팀까지, 쁘띠토널 이월 제품들을 확보하고 있었단 이유로 가장 큰 수혜자로 변신을 하게 됐다.

-그거만 들어가면 신장에 있는 이우 유펀에까지 넣는 건 일도 아냐. 카자흐스탄 이쪽 애들도 다 거기서 물건 떼가잖아. 한시름 놔도 되겠어.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지?

“될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말해 버리면 굿 뉴스를 전하는 내 입장이 민망해지잖아.

“물론 감사하고요.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말했던 마진 베이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줘야 한다?

“물론이죠. 본사에서는 15퍼센트만 재미 보고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쓰자.

“본사 복귀 안 하실 겁니까? 어차피 복귀하시면 차장님이 맡게 될지도 모르는 건데 뭘 그렇게 싹 다 긁어가려고 하십니까?”

-하여간 말로는 못 이긴다니까.

“본부장님이랑은 요새 좀 어떠세요?”

-그냥저냥 잘 지내려고 서로 노력하고 있지. 그쪽에선 최대한 나 안 건드리고 나도 사람들 앞에서 말 잘 듣는 연기 해 주고 있고···. 그러면서 가끔 술 한 잔씩 같이 하다 보니까··· 타지 나와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아서 뭐 하겠어? 그냥 나와 있는 동안 서로 편하

게 지내다 가는 게 장땡이지.

타이밍 싸움이었다.

중국 법인의 성과를 미리 예상하고 프로젝트를 준비했다는 걸 위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회사 일이라는 게 결국은 보여주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실력을 인정받을 수도, 때론 일은 잘하는데 욕심이 없다는 안타까운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

대회의실.

전무님 참관하에 상무보와 박 이사, 재무 이사 그리고 이문 본부장이 자리했고, 그곳에서 난 장 부장과 함께 쁘띠토널을 포함해 Kidshub에 들어간 전 브랜드 이월 상품들을 중국 법인에 넘기는 기획안을 발표했다.

크게 준비할 건 없었다.

이미 처음부터 이걸 보고 달려든 프로젝트였고, 위에서도 영업 기획부가 무리해서 쁘띠토널 이월 상품 전량을 확보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걸 기대하고 진행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을 테니까.

“공 차장은 운까지 따라주네.”

전무님이 말씀하셨고, 이문 본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운도 실력인데··· 사실 이건 운이라고 하기보단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평소 무리하게 판을 짜는 친구가 아닌데, 그런 도박을 할 정도였음 어느 정도 될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선수 쳐서 물량을 다 확보했던 거 아니겠어?”

내가 대답했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쁘띠토널 마진 베이스 건으로 윤 부장이 각자도생이란 표현을 저희 쪽 팀장에게 썼다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역시 그렇게 본사와 중국 법인, 그리고 프랑스 법인이 독립적으로 경쟁 구도를 가

지며 성장하길 원하는 거 같았고. 그런데 결국 쁘띠토널도 다른 만토바 제품들처럼 한국을 한 번 거쳐서 중국으로 들어갈 건데, 본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홍성 브랜드라는 이유로 그걸 아무런 성과도 못 잡고 다 그냥 해주자니 이건 각자도생이 아니란 생각이 들

었습니다.”

모두가 손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내 심정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월 상품이라도 미리 다 확보해놓고 알아서 ‘본사’ 매출을 만들어내자는 생각에 무리수였지만, 밀고 나갔습니다.”

“무리수는 아니죠.”

상무보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공 차장의 기획부는 해당 이월 상품에 대해 매출 분기점을 국내에서도 넘겼잖아요.”

“회사가 짠 판을 입맛에 맞게 변형을 시켰다라··· 이건 진짜 칭찬을 들어야 되는 부분이다. 공 차장 수고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장 부장도 서포팅해 준다고 고생 많았고. 다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지.”

“저는··· 사장님한테···.”

이문 본부장이 급하게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전무님은 아차 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상무보하고 이문 본부장은 따로 식사하고 나머지는 나랑 같이 움직이지?”

처음이었다.

비록 가장 끝자리라도 전무 군단에 끼어 본사 로비를 걸어본 게.

항상 멀리서 지켜만 봤었다.

그리고 상상을 했었다.

이 대열에 끼어 걸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지···.

그런데 다음 날 정말 뜻밖에도 아침 출근과 동시에 장 부장으로부터 호출이 들어왔고, 장 부장은 상무보 지시라면서 자기와 함께 사장실로 올라가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은 또 금일봉을 주시려나?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금일봉이란 것도 뭔가 실적이 확실하게 올라온 뒤에나 받는 거 아닌가?

중국 법인과 프랑스 법인이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본사 쪽으로 유리한 상황을 연출시켜 놓은 건 사실이지만, CGM 때처럼 벌써 금일봉을 받을 정도로 기가 막힌 한 방을 터뜨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자, 이건 회사 차원이 아니라 내가 내 개인 돈으로 챙겨주는 용돈 정도로만 생각해라.”

“···.”

일단 나와 장 부장은 영문도 모른 채 이문 본부장과 상무보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사장님으로부터 봉투를 하나씩 건네받았다.

“장 부장.”

“네, 사장님.”

“올해 몇 년 차야?”

“13년 됐습니다.”

“13년··· 꽤 됐네. 공 차장은?”

“7년 찹니다.”

“차이 많이 나네.”

나와 장 부장은 그저 듣기만 했다.

“장 부장은 어떻게 보면 회사가 이제 막 스타트업을 벗어난 상황에서 들어왔고, 공 차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가운데 들어왔겠네.”

“···.”

“올렸던 성과에 비해서, 또 데리고 있는 공 차장에 비해서 장 부장이 승진이 늦어. 그럴 수밖에. 당시엔 아무리 장 부장이 날고 기어도 위에서 빠져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스타트업이었다 뿐이지 업계는 완전 호황이었잖아. 중국 관

광객들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또 그땐 한번 오면 아예 쓸어가다시피 했을 때니까. 거기다 내수만 해도 소비력이 엄청났었고.”

“···네.”

“그런데 내가 수시로 공 차장 이름을 들을 만큼 공 차장 실력을 이렇게까지 올려놓을 정도면, 그리고 한때 홍성 에이스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조금 부족한 감이 있을 거야.”

“아닙니다.”

“내가 맞는 거 같은데, 왜 자네가 아니라고 하나.”

“···.”

“근데 회사가 그래. 자네도 잘 알겠지만, 워낙에 이 업계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전 직원들한테 공평하게 나눠줄 수가 없어.”

“네.”

“그래도 챙겨야 할 직원은 따로라도 잘 챙겨줘야 하는 거고. 그게 내 스타일이니까. 내가 그때 회사 차 타라고 하나 줬잖아.”

“네, 감사히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내가 그거 하나 내주라고 할 때도 사실 속으로 고민을 진짜 많이 했었단 말이야. 좀 더 해줘야 되는데··· 하는 생각에. 근데 부장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딴 걸 더 줄 수는 없는 거 아냐, 현실적으로.”

“···.”

“회사가 계속 커지고 있다. 자네들은 프로젝트 쳐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게 피부로 잘 안 와닿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홍성은 현재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커질 거야. 앞으로 1년 정도면 충분하나?”

누구에게 묻고 계신 걸까?

“앞으로 1년 뒤에 장 부장 자네가 전사 운영 본부장으로 올라가고 또 지금 자네 자리에 공 차장 앉힐 수 있겠느냔 말이야.”

“···!”

“사장이 직접 직원들 인사에 관여하는 게 여러모로 보기가 안 좋을 수도 있어. 근데 또 내가 이렇게 교통정리를 안 해주면 인사부장이 자기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타이틀들도 아니잖아. 전사 운영 본부장 자리나 영업부장 자리가 말이야.”

전사 운영 본부장 자리.

임원 직행 티켓을 따낸 걸 의미했다.

사실 그 자리에선 10년 정도 승진을 안 하고 유지만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현재 이문 본부장이 그러하듯, 그 자리는 이미 평부장들과는 파워 자체가 다른 거니까.

사장 직속이다.

오히려 그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임원 진급을 꺼린다.

잘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올해까지만 상무보 유지시키고 내년엔 상무로 올려줘야 하지 않겠어? 나도 이제 많이 늙었고··· 그러려면 상무보도 본인 직할대가 하나 정도는 필요할 거고, 그걸 지금 여기 본부장한테 계속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냐고.”

사장님은 이미 다음 세대 홍성을 그리고 계셨다.

그리고 이문 본부장님은 특유의 미소로 날 바라보셨다.

“내가 똑똑한 놈들, 학벌 좋고 그런 놈들 다 써봤는데··· 결국 홍성은 영업이야. 이상하게 인물들은 영업부에서 다 나오더라고. 내가 그렇게 대충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불만들 없지?”

할 수만 있다면 사장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었다.

그럼 난 정말 내년에 부장이냐고.

“요즘은 다들 사원에서 부장까지는 직급, 호칭 파괴하고 누구누구 씨, 누구누구 프로님 이렇게 부르는 게 대세라며? 우린 아직 거기까진 아닌 거 같고··· 대신 명색이 트렌드로 먹고사는 기업에서 어느 정도 기업 문화 트렌드에 합류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

겠어? 나이보단 실력으로 평가받고, 또 연차보단 실적으로 승진을 시켜주는 문화···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때? 한번 해보다가 아닌 거 같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되는 거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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