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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39화 (139/325)

# 139

그렇게 하고 나갔음 좀 잘되던가

박 이사의 약속은 신속하게 지켜졌다.

그리고 나에 대한 장 부장의 신뢰는 절대적이었고.

이틀이 지난 뒤 재무부로부터 쁘띠토널 이월 상품 전량을 받아내는 프로젝트의 최종 승인이 떨어졌고, 난 그제야 프랑스에 넘어가 있는 윤 부장에게 안부 인사 겸 전화를 한 통 넣었다.

-어, 공 차장.

“정신없으시죠?”

오후 4시.

프랑스 시각으로 윤 부장이 전화를 받기 좋을 때까지 기다려서 전화를 걸었고, 마침 윤 부장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상쾌하기만 했다.

-만약 두 달 뒤로 돌아갈 수만 있음 프랑스 파견 근무 신청 같은 어리석은 짓은 안 했을 거야.

“안 그래도 박 이사님 통해서 현지 사정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은근슬쩍 박 이사의 존재를 거론해서 본론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파견 근무자들이 지낼 아파트까지 직접 알아보고 계시다면서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야. 어쩌면 파견 근무자들 비자도 제때 안 나올지 모른다고.

“그래요?”

-최대한 푸시를 하고 있긴 한데, 까다롭네. 일이 한 번에 진행되는 꼴을 못 보겠어. 뭐 하나 시켜놓으면 이건 이래서 이게 필요하고, 이건 또 이래서 저게 필요하고···. 아주 그냥 상전들을 모시고 일하고 있는 기분이야. 뭐가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지 말고 직접

구해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글쎄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고 하는데요?

-그걸 왜 자기들이 직접 구하느냐는 거야.

“헐···”

-융통성이 없어. 조금이라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선 일단 보고부터 하고 보는 거야.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거긴 한데, 하다못해 컴퓨터 기종까지 나한테 물어보는 거 보고 아이구야··· 싶더라니까?

“그런 애들이랑 매일같이 전화통 붙들고 앉아서 지지고 볶는 게 저희 영업부 직원들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근데 진짜 답답하긴 하다. 난 여기 와서 그동안 내가 데리고 일했던 애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 애들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실 겁니다. 저도 한 번씩 제 맘대로 안 움직여주는 부하 직원들한테 화를 내놓고, 또 프랑스, 특히 이탈리아 애들 일하는 거 보면서 반성을 참 많이 하거든요. 그래, 그래도 우리 애들이 에이스다··· 하면서 말이죠. 하하하···.”

-여긴 뭐 여기까지가 내 일, 그러니까 난 딱 여기까지만 하면 돼··· 하는 식의 사고를 가진 애들밖에 없어.

“그런 게 합리적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합리적인 게 맞지. 합리적인 게 맞긴 맞는데, 그래도 상황에 따라 움직여줘야 할 거 아냐. 회사 시스템 자체가 아예 제로 세팅이 되고 있고, 처음부터 뭔가를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다들 너무 여유로워. 얘네들이랑 같이 일하다 보면 한 번씩 내가 이

상한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니까?

“걔네들 입장에선 윤 부장님이 이상한 게 맞을 겁니다. 하하하···.”

-그렇겠지?

“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해야 되는 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조만간 본사에서 에이스들 넘어갈 겁니다.”

-그래, 여긴 정말 홍성에서 누가 와도 다 에이스야.

“진짜 에이스가 하나 넘어갈 겁니다. 지혜라고 왜 부장님도 아실 텐데···.”

-알지, 안 그래도 비자 발급 명단에 지혜 이름 있는 거 보면서 공 차장이 진짜 양보 많이 했구나··· 싶더라.

“그게 어디 제가 보내는 건가요. 본인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내는 거지.”

-그래도 다행인 게 지혜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큐먼트 정리 부분은 한시름 놔도 되겠다 싶더라. 며칠 전에 있었던 실수도 서류 보고 체계가 엉망이라 생긴 일이었거든. 서류 스탠다드 잡는 건 지혜가 정말 잘하잖아.

“그것만 기대하고 계시는 거라면 일하는 거 보고 더 깜짝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명색이 기획 1팀 센터라고요. 현지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지혜한테 다 맡겨도 될 겁니다.”

-기대된다. 제발 시간 좀 빨리 갔음 좋겠다. 혼자 하려니까 기가 딸려서 안 되겠어.

“하하하···.”

그렇게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주고받다가 내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쁘띠토널 이월 제품들 말입니다.”

-어, 안 그래도 본부장님 통해서 이야기 들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내 입장에서야 환영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다행이고요.”

-이월 상품 처분이야 시간이 생명이잖아. 제로 세팅 한단 생각으로 다 보내줄 테니까, 서로 도와 가면서 하자고.

“그래야죠. 그런데 부장님.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응, 이야기해.

“현재 쁘띠토널 자체 홈페이지에 해외 직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있지.

“보니까 주로 이월 재고들은 그 직구 시스템으로 빼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배대지가 독일이고.”

-그런데 잘 안 나가.

“그런 거 같더라고요. 잘 안 나가니까··· 그 직구 시스템을 아예 빼버리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계산을 끝낸 윤 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물건을 쏴버리면 한국 현지에서 가격 경쟁이 힘들겠지?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고, 쁘띠토널처럼 가격을 확 낮춰서 이월 상품을 처분하는 브랜드를 쁘띠토널과 함께 체크해 보니까 그런 브랜드들은 회사가 기대하는 브랜드 급이랑은 많이 다른 거 같더라고요.”

-그 말도 본부장님 통해서 전해 듣긴 했어.

“쁘띠토널 이전 시스템이야 만토바, 링겐도 없었고 또 Kidshub라는 확실한 채널을 가지기 전이었으니까 그렇게라도 현금을 만드려고 이월 상품에 대한 마진을 포기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는 거 아닙니까. 결국 브랜드라는 건 상품이 아니라 이미지인

건데··· 매 시즌 콘셉트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이월 상품은 가격이 크게 떨어지니 정상 제품을 사는 건 손해다··· 하는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심어주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리 있어.

“아직 한국, 중국, 일본에는 언논 브랜드(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아닙니까. 이미지는 앞으로 만들기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홈페이지에서 그 카테고리 자체를 아예 빼버릴까?

“어차피 저희가 전량 다 받을 건데, 가지고 계실 이유가 없죠. 한국 소비자들 깐깐한 건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틀림없이 아웃렛에서 구매해놓고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홈페이지 찾아 들어가 가격을 확인해 본다고요. 아님 사이즈만 매장에서 확인해보

고 실구매는 직구로 하거나.”

-알았어. 그 부분이야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일 거 같네. 그렇게 정리해 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혜 말입니다.”

-응.

“신경 좀 써주십시오.”

-···?

“팀장 달고 처음 받은 신입이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애착이 많이 가는 친굽니다.”

-공 차장이 이지혜 챙기는 거야 회사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하하하···.

“본인 스스로도 앞으로 쭈욱 홍성에서 크길 원하고, 저 역시 본인만 욕심이 있다면 제대로 한 번 키워 보고 싶고요.”

-그래 본들 시집가면 끝이야.

“그래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않습니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공 차장이 부탁을 안 해도 난 지금 고사리손 하나가 절실한 상태라고.

“네, 알겠습니다. 하하하···.”

-근데 그건 그렇고··· 이월 재고 물량이 너무 많지 않나? 그거 다 어떻게 뺄 거야?

“···.”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영업 기획부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대, 바람,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꼭 뭔가가 크게 한 방 터질 것만 같은 묘한 설렘 비슷한···.

내 입으로 내가 이걸 잘했다 못했다라고 판단하긴 참 애매하지만, 어쨌든 내가 칼같이 문 팀장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켰고, 그 과정에서 난 영업 기획부 팀원들을 포함해 회사 전체에 나란 사람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데 성공을 한 상태였다.

차장이 팀장을 그렇게 즉각적으로 부서 이동을 시킬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팀장이 부정을 저지르거나, 혹은 커버가 불가능한 해사 행위를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난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더 이상 문 팀장과 일을 같이 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윗선을 설득시켰고, 나냐 문 팀장이냐를 결정하란 한마디로 인사부장의 승인을 받아냈다.

그만큼 회사가 날 지지해주고 있다는 의미였고, 또 난 그 지지가 합당하다는 걸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책임감을 떠안게 된 상태였다.

겸손해야 했다.

현재 이 파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더 겸손해야 했고, 또 작은 행동 하나까지 조심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불편하거나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겸손해지는 건 이상하게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에 재미가 있었고, 또 행동에 조심성을 넣는 건 그게 나란 사람의 습관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다 보니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정 팀장님 있잖아요.”

하루는 안 팀장이 날 찾아왔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퇴사를 하고 자기 회사를 차려 홍성 영업부 직원들을 빼돌렸던 정 팀장을 언급했다.

“정기준 팀장 말입니까?”

“네.”

“안 팀장님이 정 팀장과 안면이 있었던가요?”

“안면이야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정 팀장은 왜요?”

“어제 뜬금없이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안 팀장님한테요? 안 팀장 연락처는 또 어떻게 알고?”

“기태한테 먼저 연락을 했었던 모양이에요.”

“아···.”

“기태한테 사정을 했나 봐요. 하도 매달려서 제 번호를 안 줄 수가 없었답니다.”

하긴 당시 박기태 역시 정 팀장이 차린 말도 안 되는 구멍가게로의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만토바 물건을 좀 받을 수 없겠냐고 하던데···.”

“참···.”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인간이란 동물이 간사하다지만 그렇게까지 얼굴에 철판을 깔 수 있을까란 생각.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란 의문이 함께 들어간 웃음이었다.

“다른 업체도 아니고 정 팀장이 차린 업체다 보니 제가 혼자 판단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왜 거긴 요즘 물건을 못 구한대요?”

“다 짤린 모양이더라고요.”

“크크큭···”

뜻밖의 통쾌함.

개인적으로 나에게 실수한 건 하나도 없지만, 이상하게 뭘 하더라도 그게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이 내겐 정 팀장이었다.

개인적인 원한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냥 하는 짓이 얄미울 뿐이다.

“만토바는 애초에 막혔지, 폭스타운이랑 링겐에서 간신히 물건을 받아서 팔고는 있었는데, CGM 도발로 만토바가 이탈리아 브랜드들을 다 휘어잡아 버리니까 마진 좋은 브랜드 중에서 마땅히 떼다가 팔 브랜드가 없는 모양이에요.”

“그 와중에도 마진을 생각하네. 뭐라도 팔 게 있음 감지덕지하며 구해서 팔아야지.”

“안 된다고 하는 게 낫겠죠?”

안 팀장의 물음엔 그래도 회사만 오케이 한다면 팔고 싶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안 팀장이 어떤 인물인가.

애초에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날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다.

“데리고 나간 직원들 월급이나 제대로 챙겨주고 있답니까?”

“이건 기태한테 들은 내용인데, 거의 다 나갔다고 하더라고.”

“당연하지. 꼬드겨서 데리고 나간 사람이나 거기 뭐 먹을 게 있다고 생각 없이 따라간 사람들이나 다 오십보백보지··· 주세요.”

“진짜요?”

“감정은 감정이고 또 사업은 사업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당시 이사님께서 직접 만토바에 말해서 물건 공급을 못 하도록 지시를 한 사안이라고 들었는데···.”

“그 후로 이사님께서도 마음이 참 안 좋으셨어요. 다른 사람들 보는 눈이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거고, 또 부장님도 당시엔 화가 많이 나셨고··· 그런데 얼마 전에도 술자리에서 정 팀장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참 안타까운 친구라고···.”

안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철저하게 오버 마진, 최소 물량 개런티 보장받으면서 물건을 주세요. 그게 싫다고 하면 우린 관용을 베풀었지만, 상대가 못 잡은 게 되는 거니까.”

“어느 선까지···”

“너무하네··· 하는 말이 나올 선까지?”

“주지 말란 말이군요.”

“혹시 압니까? 그렇게라도 받아가겠다고 할지. 그리고 또 그렇게라도 받아가겠다고 하는데, 물건을 안 줄 이유는 없잖아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진짜 다급했던지 우리가 제시한 마진과 최소 물량 개런티를 떠안고 정 팀장이 물건을 받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난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을 장 부장에게 보고해야만 했고.

“줘라.”

장 부장 역시 그에 대한 괘씸함은 이미 사라져버린 듯, 그리고 더 큰 프로젝트가 쌓여 있는 상태에서 정 팀장이라는 작은 감자에 감정을 빼앗기기 싫다는 투로 오케이 사인을 던졌다.

“어차피 만토바 물건 중국으로 넘기기 전까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매출 일정 부분은 우리 쪽 커미션으로 잡히잖아. 대신 안 팀장한테 절대 틈을 보여선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둬. 조금이라도 마진 가지고 징징대면 바로 자르겠다는 뉘앙스를 확실하게 전달하라

고 하란 말이야. 장기 계약 아냐. 그냥 단타성으로 물건 한 번 주는 거로 그쳐야지 거기서 계속 대주겠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만들면 곤란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서 이렇게 만나게 될 거, 나갈 때 조금만 제대로 하고 나갔음 좀 좋아?”

“그러게요···.”

“이게 뭐냐, 이게. 회사 물건 가지고 장사하는 건데, 한때나마 한솥밥 같이 먹었던 사람들 챙겨주는 게 우리한테 큰일이야? 그냥 주면 되는 거잖아. 아닌 말로 도매가로도 넘겨줄 수 있는 문제 아니냐고.”

“···그렇죠.”

“이만한 일로 에너지 빼앗기지 마라. 만토바 물건 중간에서 우리가 컨트롤하기로 결정한 순간, 우린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야 하는 거야. 참 별의별 놈이 다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들,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비비고 들어올 수밖

에 없는 놈들, 물건 좀 받아간다고 자기가 갑인 것처럼 위세 떠는 놈들, 그리고 물건 안 주겠다고 하면 대기업 행패니 뭐니 하면서 홍성 이름에 스크래치 내기 바쁜 놈들···.”

“많이 불편하시죠, 정 팀장 소식 들으니까.”

“좋을 게 뭐가 있어? 그렇게 나갔음 좀 잘되던가.”

“···.”

“이렇게 말하는 나도 참 이중적인 놈이다. 엿 먹어 보라고 숨통 끊어놓은 게 난데, 또 이런 말을 하고 앉아 있다. 뭐 더 다른 건? 다른 거 보고할 내용 있어?”

“이상입니다.”

“알았다. 가서 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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