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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33화 (133/325)

# 133

나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 여기 있었네

한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문 팀장에게 짐을 싸라고 말한 부분 만큼은 절대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고민을 많이 해봤다.

특히 과연 스마트하게 일을 쳐낸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를 많이 고민해봤다.

상무보는 내게 참 스마트하게 일을 잘 한다며 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고 있지만, 사실 난 스스로가 스마트한 일처리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그냥 약간의 손해 정도는 내가 안고 가는 게 마음이 편했고, 또 그래서 가급적 큰 분란을 만들지 않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게 나의 역할이라는 마인드로 출근을 했던 나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난 홍성에서 일을, 직장 생활을...장 부장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절대적인 인정을 받아내고, 또 부하직원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장 부장.

사실 그게 가능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일을 잘한다.

일을 잘하니까 위에선 예뻐하고 밑에선 어려워할 수 밖에 없는 거였다.

그런데 경험이 부족했던 난 그런 장 부장의 일하는 스타일을 오해할 수 밖에 없었고.

짬이 안 될 때의 난 장 부장이 너무 출세를 위해 소처럼 미련하게 일만 하는 상사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가 그렇게 일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부하직원들은 그의 업무 템포를 따라가느라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거고.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장 부장은 미련하게 일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느 누구보다 스마트하게 일을 하는 진짜 실력자였고, 또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하아...문 팀장 걔, 진짜 왜 그러냐?"

역시였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장 부장은 나의 팀장 관리 능력을 지적하고 문제삼기 보단 문 팀장의 경우 없는 이기심에 더 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문 팀장 걔 때문에 해외 영업부에서는 몇 명이나 신청도 못해본 거야? 그래서 한 대리가 빡이 쳐서 사직서를 던진 거고?"

장 부장의 귀 주변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화가 제대로 뻗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청은 했죠. 그게 짬이 된 거고."

"지금 나랑 말장난 해?"

"...죄송합니다."

얼음보다 차가운 눈으로 날 쏘아보는 장 부장.

하지만 이젠 이런 노여움이 결코 현 상황을 보고하는 날 향한 노여움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예전의 난 이런 걸 잘 구분하지를 못했었다.

그냥 뭔가 어이없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난 그 사고를 덮기에만 급급했었다.

위로 보고를 하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내가 다 혼이 난다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더 스스로를 샌드위치로 만들어왔던 게 아니었나 싶다.

밑에서 터진 사고.

그걸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포장을 잘 해서 위로 보고하는 걸 참 못했던 나.

그냥 밑에서 작은 사고라도 무슨 사고가 터지기만 하면 난 일단 스트레스부터 받고 시작을 했던 것 같다.

그 사고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만 하면 어쩌면 내게 그 사고는 단순 사고로만 그치지 않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런 걸 알 수 있는 내공이 부족했던 거지.

사고가 터지기만 하면 난 그게 다 나의 경험 미숙, 나의 관리 능력에서 나온 사고라고 죄책감을 가져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참으면, 내 선에서 이리저리 효과적으로 무마를 시키기만 하면 최소한 위에서 큰 소리는 안 나오니까 이번에도 참고, 또 참으며 부하 직원들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던 거 같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일을 해왔는데, 이번 문 팀장 사건으로 인해 더이상은 그렇게 일을 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위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 내가 계속 끙끙대며 끌어안고 가야할 스트레스지만, 욕 한 번 얻어먹을 각오하고 일을 공론화시키면 그 뒤부턴 내 윗선의 스트레스가 되는 건데, 왜 난 그걸 차장을 단 이후에 알게 됐을까.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문 팀장한테 짐 싸라고 했습니다."

당당하게 나갔다.

비록 여전히 장 부장이 어떤 실망과 짜증스런 표정을 만들어낼지는 두려웠지만, 내 실수가 아니라는 점, 난 분명 팀장 미팅에서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회사의 의견과 나의 입장을 말해줬다는 부분을 재차 강조하며 장 부장에게 말했다.

"하아...어쩔 거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했다고 하고, 또 맨파워가 가장 부족한 양 팀장까지 지혜를 양보했는데 여기서 흐지부지 덮어지면 말이 안되는 거지. 근데 문 팀장 걔는 원래 그렇게 네 말을 잘 안 들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 같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앞에서는 잘 듣는 척을 하면서 뒤로는 아니었던 거죠. 사실 이번에 한 대리가 이렇게 나오지만 않았다면 제가 무슨 수로 문 팀장이 짬을 시켰던 걸 알 수 있었겠습니까?"

장 부장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간 크다. 본인은 모를 거 아냐, 이게 얼마나 큰 실수...아니, 실수가 아니지. 큰 잘못인지."

"알고도 했다면 진짜 나쁜 거고요."

"그래서 문 팀장은 뭐래? 짐싸라니까 그냥 그러겠다고 해?"

"신경 안 썼습니다. 더 들어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런 애들은 한 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자기 개인 사정이나 늘어놓으면서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려고만 하지, 진짜 뭐가 잘못인지를 모르는 애들이야. 그렇게 한 번 넘어가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가보다...하면서 언젠간 똑같은 짓을 또 해. 그게 그

런 애들의 특징이야."

드디어 숨이 쉬어졌다.

박 부장이 내 입장과 판단을 존중해준다는 부분에서 안도감이 들었던 거 같다.

"그런데 괜찮겠어? 안 그래도 맨파워가 부족한데..."

"제가 조금 더 하면 됩니다."

"...그래, 알았다. 올라가서 문 팀장 나한테 오라고 해."

그렇게 점심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오전 근무 시간 내내 영업 기획부 사무실은 살얼음판이었다.

해외 영업부에선 문 팀장과 한 대리 뿐 아니라 프랑스 파견근무 신청서를 문 팀장에게 전달했던 직원들이 차례대로 장 부장에게 불려갔고, 그러는 동안 사무실 안으로는 저 멀리 파티션 가장 끝에 있는 팀의 팀원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내 자리에까지 다 들

릴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네, 영업 기획부 공은태 입니다."

그러다 한 통의 내선 전화를 받게 됐다.

-어, 나 인사부장인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네, 부장님."

-시간 괜찮으면 잠깐 나한테 와줄 수 있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난 보던 업무(사실 하루종일 기 싸움만 했지 제대로 된 업무는 전혀 손을 안대고 있었다.)를 잠시 덮어놓고 인사부로 향했다.

"일단 장 부장하고도 이야기를 좀 해봤고, 문 팀장, 한 대리하고도 다 이야기를 나눠봤어."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인사부장은 특유의 피로를 얼굴에 걸어놓고 조근조근 말을 이어갔다.

"네."

"으음...좋은 게 좋은 거잖아."

"보통 그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서...제가 좋았던 부분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에이...그렇게 철벽까지 치지는 말고."

난 웃었다.

인사부장의 입장을 이해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보인 웃음 앞에서 인사부장 역시 내게 무조건 적인 이해를 바라는 건 불가능이란 걸 눈치챈 듯 해보였다.

"불안해서 같이 일을 못하겠습니다, 부장님."

"..."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그렇게 자기 독단적으로 차단을 해버리는 사람과 무슨 일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차단을 하더라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죠.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

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기 고집과 욕심, 계산만으로 그렇게 불통을 하는 사람이라면...데리고 있는 내내 불안할 거 같습니다."

"지금 현재 인원이 너무 안 나온다."

인사부가 항상 하는 말이지.

언제는 인원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나왔던 적이 있었나?

여기서 난 지금껏 우리 영업부에 호의적이었던 인사부장을 상대로, 다음에 내가 조금 더 살갑게 다가갈 각오를 하고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상태에서 문 팀장을 계속 데리고 가라고 하시면...전 일 못합니다."

최고의 강수를 둔 거다.

나냐, 문 팀장이냐를 놓고 회사가 고민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흐지부지 되어버리면 팀원들 볼 낯도 없다.

"진짜 힘들겠어?"

"여기서 잘라내지 않으면 힘들어질 게 빤히 눈에 보이는 거죠."

"어디 마땅히 보낼 곳도 없다. 아닌말로 지금 이 분위기에서 중국 법인에 가라고 하면 그건 좌천이 아니잖아. 거기다 장 부장은 그냥 영업부에서 제외 시키겠다고 하고 있고..."

"창고 같은데 보내시면 안됩니까?"

"그건 문 팀장한테 알아서 제 발로 회사를 나가란 말이지."

"그러라고 좌천을 보내는 거 아닙니까? 자기 욕심 채우자고 한 대리를 제 발로 나가게 만든 사람인데, 회사는 왜 그렇게 하면 안됩니까?"

"그런데 한 대리 말이야."

"네."

"그 친구는 진짜 왜 그랬나 몰라."

"뭐가요?"

"내가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좀 해보니까, 정작 자기는 프랑스 파견근무 신청도 안했다더만?"

"...!"

"몰랐어?"

"...신청을 안했다고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건 또 전혀 몰랐던 부분이다.

난 당연히 자기 신청서가 짬이 되서 그렇게 노발대발 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지.

순간 인사부장에게 약점을 잡히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이도 인사부장은 그 부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중국 법인 인원 보충 건부터 시작해서 부하 직원들 신청서가 문 팀장 선에서 짬이 되는 걸 계속 옆에서 지켜보는데, 이건 진짜 좀 아닌 거 같았다는 거야. 그래서 이걸 공론화 시키기 위해 사직서를 던지는 강수를 둔 거라고 하는데...미련한 거지. 방법을 몰랐던

거고. 자기가 무슨 여포도 아니고 말이야."

"..."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성급했던 나 자신에게 살짝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내가 듣고싶은 말만 들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분명 한 대리와 이야기를 꽤 오래 했는데, 어째서 인사부장이 알아낸 그 부분을 난 알아내지 못했던 걸까.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뭘?"

"한 대리 사직서..."

"안 그래도 따로 빼놨어. 자, 이거. 가지고 가. 내가 봤을 때 한 대리는 그냥 혈기 한 번 부려본 거야."

"...감사합니다."

다시 사무실로 올라와서 해외 영업부 파티션 앞에서 한 대리를 불렀다.

불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문 팀장은 그냥 무시를 해버렸다.

한 대리를 데리고 비어있는 회의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난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영어를 못합니다."

"...!"

"애초에 중국 법인 관련 해외 사업부로 입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프랑스쪽은 제 관심 밖의 기회였고요. 그리고 또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 지원을 안했을 겁니다. 일손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아니, 그런데 왜..."

"문 팀장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고, 또 진심으로 응원한 마음이 컸기에 실망 역시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문 팀장이 쭉쭉 치고 나가줘야 저희 해외 영업부의 파워가 조금이라도 올라간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해외 사업부 시절의 좋지 못한 비리 이미지를 고스란히 안고 가고 있는 해외 영업부 아닙니까. 문 팀장에게 힘이 실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저희를

너무 자기 개인 도구취급 하더라고요. 이건 좀 아닌 거 같았습니다."

"우와..."

"..."

"나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 여기 있었네."

한 대리는 입술을 숨긴채 고개를 숙였다.

"한 대리님."

"네, 차장님."

"음...오늘 나랑 소주 한 잔 안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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