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13화 (113/325)

# 113

언제나처럼 응원하겠습니다

묻어 간다라...

말이 쉽지.

세상에 그런 직장 생활을 안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어느 미친놈이 내 개인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똑같은 월급에 매 분기 고만고만한 성과급을 받으면서 하는 회사 일을 내 일처럼 목숨걸고 하고싶어 할까.

할 수만 있다면 다 누군가에게 적당히 묻어가며 어느정도는 한 발 뒤로 빠져서 책임감을 덜어내며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그럴 수만 있음 정말 꿈같은 직장 생활이죠."

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이문 본부장이 장 부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장 부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나에게 괜찮은 조언을 해주고 싶음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보면 나나 공 차장은 정말 복 받은 케이스죠."

"어째...서요?"

"사수들이 열정맨들이잖아요. 그런 사수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복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열정 사수 밑에서 적당히 욕 얻어먹어 가면서 끌려가기만 해도 어느정도까지는 자동 승진이 보장이 되는 거거든."

생각을 해보니까 남자랑 단 둘이 쌈을 먹으러 온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맛이야 있지만, 귀찮잖아.

이문 본부장은 케일 위로 쑥갓 몇줄을 올려 그 위로 제육볶음 한 점, 썬 마늘 한 조각, 손으로 자른 풋고추 하나를 넣고 쌈을 쌌다.

그리고 그걸 한 입 크게 넣으며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저러나...싶을 정도로, 우리들 눈에 말이야. 그렇게 회사에 과잉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네...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생각이 있어요. 자기들 눈에는 자기 빼놓고는 다들 월급 도둑놈들이거든. 사장도 그런 생각을 안하는데, 자기들만 그런 생각을 해. 우습지."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장 부장이 정말로 그런 스타일이었으니까.

지금은 부장을 달고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아 보이긴 해도, 이문 본부장의 말처럼 장 부장이 정말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선 장 부장 같은 스타일이 예뻐 보이면서도 동시에 불안불안 한 거예요."

"불안불안 하다는 건..."

"빨리 지치거든, 그런 스타일이. 본인만 지치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부하 직원들까지 지치게 만들어. 그래서 장 부장이 참 대단한 거 같아요. 한 결 같잖아. 거기다 공 차장을 에이스로 키워서 이 자리까지 잘 끌고 오기도 했고. 이건 실력이거든."

"...?"

"이제 공 차장도 차장 정도 달았으니까 윗 사람들 보다는 부하직원들이랑 부대끼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질 거예요. 잘 보란 말이야. 부하 직원들 중에 누가 필요 이상으로 회사에 과잉 충성을 하는지, 그런 직원들이 과연 회사에 언제까지 충성을 하는지. 보통 회

사에 충성을 많이 하는 직원들일 수록 그 충성이 회사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아..."

"그런 경우 본 적 없어요?"

"허다하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공 차장."

"네, 본부장님."

"부하직원들한테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는 말아요. 그러는 순간 딜레마가 오는 거예요."

참 난해한 말이었다.

"보통 회사에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들 치고, 그런 말을 진짜 회사에 충성을 하라는 의미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 잘 보면 자기한테 충성을 하란 소리를 회사에 충성을 하란 소리로 비겁하게 돌려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

들을 보면 말이에요."

"..."

"내가 지금 꼴랑 쌈밥 정식 하나 사주면서 너무 꼰대짓을 하나?"

"아뇨, 아닙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시고...또 지금 저한테 정말 필요한 내용들인 거 같아 감사합니다."

"그럼 하는 김에 조금만 더 꼰대짓을 할게요."

나는 그냥 들었다.

이문 본부장.

대충 그럴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직장 생활 내공이 대단한 분이셨다.

"이게 참 말 장난인데, 부하 직원들한테 회사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다 보면 실적이 멀어져요. 그런데 실적을 요구하잖아요? 그럼 충성이 따라온다? 이게 진짜 매직이야."

"..."

"그런 의미에서 저번에 공 차장이 했던 결정은...내 개인적으론 정말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무슨..."

"중국 법인 쪽으로 영업 기획부 아이디어를 토스 했던 거. 충성 보다는 실적을 선택한 결과라고 난 생각하거든. 내가 오해를 한 걸 수도 있지만 말이에요."

"아..."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요. 상무보가 공 차장 따로 불러서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들을 상무보가 아닌 법인 본부장에게 줬다는 걸. 그래서 내가 언제 시간되면 따로 밥 한 끼 사줘야겠다...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 그런 자리에서 그런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사

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장 부장이 공 차장 가이드를 참 잘 해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든든한 거예요, 이게. 다들 상무보 줄 한 번 타보겠다고 이리저리 계산 돌리고 있을 때, 여기 공 차장이나 장 부장은 그게 뭔지는 모르겠

지만, 가지고 있는 소신을 지켜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민망했다.

만약 그때 장 부장이 중간에 커트를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시 생각을 해봐도, 잔인했던 내 계획에 소름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문 본부장에게 이런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고 있는 게 상당히 불편하기도 했고.

식사를 끝내고 다시 돌아간 회사.

이문 본부장과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난 그 엘레베이터를 타고 17층까지 올라갔고.

늦은 점심을 한 탓에 3시간만 더 버티면 퇴근이었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강혜선에게 카톡을 하나 남겼다.

오늘도 퇴근 후 같이 집으로 갈 수 있을 거 같다고.

아무래도 술자리가 잦은 일을 하고 있다보니, 같이 합쳐서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기 전에 이런 카톡 메시지 하나를 꼭 남겨줘야만 했다.

그렇게 담배를 다 피우고 사무실로 내려가는데, 임원층에서 엘레베이터가 멈췄다.

그리고 열린 엘레베이터 문 앞에 상무보가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나에 대한 온도가 확실히 식어있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상무보.

내가 몇 층으로 가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내 옆으로 나란히 서서 13층 버튼을 직접 눌렀고, 난 내 몸에서 날 담배 냄새가 걱정스러워 옆으로 한 발 떨어졌다.

"..."

"..."

띵동.

13층에 도착한 엘레베이터.

상무보가 먼저 감정없는 미소를 띄우며 날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럼."

"네."

진짜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닫힌 엘레베이터 문을 통해 그의 표정을 살짝 훔쳐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 같았다.

"후우..."

다시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상무보와 함께 엘레베이터 안에 갇혀 있으면서 참아야 했던 한숨이 터져나왔다.

뭐 어때?

어쩌면 이게 너무나 정상적인 관계인 것을.

그동안 상무보와 너무 가까웠다.

난 그게 항상 부담스러웠고.

"푸흡..."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면서도 상무보 라인에 어느정도 욕심이 있었던 난,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한 비웃음을 흘려놓고...그렇게 난 마치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다시 내가 해야할 업무로 복귀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온기가 돌기 시작한 신혼집.

지난 한 달간 새로 한 인테리어에 사람 때가 묻기 시작해서 그런지, 아님 봄이라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조금씩 갖춰지는 살림살이들 때문인 건지 어쨌든 드디어 조금은 사람 사는 집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혼식 당일이 찾아왔고, 난 결혼식이 이렇게 정신없이 후다닥 끝나버리는 행사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차장님! 오늘 너무 멋지세요!"

"연락을 드리면서도 거리가 있어서 오시기 부담스러우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무슨 소리. 당연히 와야죠."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강혜선 쪽이 아니라 내 쪽 하객이 상당히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영업을 하다보니 여기저기 경조사를 많이 챙길 수 밖에 없었으니까.

뿌린 게 많으니 뿌린만큼은 거둬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내가 홍성 생활을 하면서 집안 경조사를 찾아갔던 사람들의 리스트를 뽑아봤고, 단체 쪽지로 모바일 청첩장을 돌렸는데 뷔페 식사권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축하를

해줬다.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울 인근의 지점별 백화점 매장 실장들까지.

내 앞으로 온 화환이 신랑 쪽에 다 놓지 못할 만큼 많이 들어와서 신부측으로 옮겨야 할 정도였다.

직장 생활 하는 사람치고 이정도로 많은 결혼 화환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까.

타이틀이 차장이다보니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지방권에 있는 매장 실장들이 화환을 많이 보내왔다.

그리고 난 그 장면을 보면서 내심 홍성에 감사했다.

부모님 앞에, 장인, 장모님 앞에...그리고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온 모든 하객들 앞에 나란 사람의 기를 살려주고 있었으니까.

"부장님."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는 장 부장.

그런 장 부장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난 장갑낀 두 손으로 그가 내민 손을 꼬옥 잡았고.

"어머니, 여기 저희 회사 부장님이세요."

나의 소개에 부모님이 함께 고개를 숙이시며 장 부장과 인사를 나누셨다.

"근데 이사님 못 봤어?"

"아뇨, 아직."

"어디 가셨지?..."

"같이 오셨어요?"

"내가 모시고 왔지. 요 앞에 내려드리고 난 주차하고 올라왔는데..."

하객들이 밀려오는 상황이었다.

난 웨딩홀 입구에서 부모님들과 다같이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하객들을 맞이하며 인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그런 내 시야 속에서 장 부장은 박 이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

저 멀리서 박 이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박 이사와 함께 나란히 걸어오며 자켓 안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상무보.

장 부장도 상무보와 박 이사를 발견한 듯 했다.

우리 가족 쪽에서는 매형이 축의금을 받고 있었는데, 장 부장이 상무보와 박 이사를 모시고 그쪽으로 가서 축의금을 먼저 내고 다시 내 앞으로 왔다.

"축하해요."

모처럼 내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상무보.

그리고 말로만 했던 게 아니라 결혼식에 오겠다는 약속을 정말로 지켜준 그의 성의를 보며 난 알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된다.

"감사합니다."

더이상 부모님들께 상무보와 박 이사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이미 먼저 내가 소개를 해준 장 부장 보다 이 두 사람이 회사 안에서 더 높은 사람들일 거란 건 급하게 자리로 모여드는 회사 직원들이 대신 다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상무보와 박 이사의 등장으로 홍성 본사 직원들(영업부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결혼식 주인공을 앞에 두고 상무보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 직원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 서운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저랬으니까.

그냥 난...상무보가 진짜 내 결혼식에 직접 왔다는 게 더 신기할 뿐이었다.

"근데 내가 보낸 화환이 안 보이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환들을 확인하고 있는 상무보.

화환까지 보냈다고?

회사에서 보낸 게 아니라 자기 개인적으로?

그래놓고 축의금까지 냈다고?

"화환을...보내셨습니까?"

"보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공 차장님 장가가는 날인데..."

신부측 화환에서 자신이 보낸 화환을 발견한 상무보.

"아, 내가 보낸 거 저기 있네. 신부 측에 있었구나."

그래서 난 상무보가 있는 앞에서 재빨리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시켜, 상무보가 보낸 화환을 신랑측 화환 가장 앞으로 눈에 잘 보이게 옮겨놓게 만들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니에요, 아니에요. 당연하지. 하객들 맞이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건데, 무슨 수로 화환까지 일일이 다 확인을 하나. 공 차장 정신 없을 건데, 우린 이만 들어가죠?"

상무보가 식장 안으로 들어간 뒤, 난 그가 보낸 화환 앞으로 서서 잠시 스마트 폰을 꺼냈다.

찰칵.

그냥 모르겠다.

모든 화환이 다 감사했지만, 이상하게 그가 보내준 화환만큼은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축 결혼

언제나처럼 응원하겠습니다.

홍성 인터네셔널 상무 전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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