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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08화 (108/325)

# 108

앞으로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이번에도 역시 공 차장이란 말이 나올 줄 알았고.

하지만 장 부장의 반응은 내가 했던 예상과는 반대로 차갑기만 했다.

"흐음..."

내가 올린 기획안을 덮어 책상 위로 올려놓고 장 부장은 한참동안 침음을 흘렸다.

뭐지?

뭔가가 마음에 안든다는 신호가 분명한데, 난 그게 뭔지 몰랐다.

그렇게 난 한참동안 장 부장의 눈치를 살폈고, 잠시 뒤 장 부장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네 책임이 될 수가 있어. 아니, 네 책임이 되는 거야."

"뭐가...요?"

"너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네?"

"이 기획안...내용은 정말 꼼꼼하고 탄탄한데 이걸 나한테 가지고 온 의도가 너무 위험해. 난 네가 다시 한 번 침착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도대체 무슨 말인 걸까.

내용은 꼼꼼하고 탄탄한데 의도가 위험하다라...

"왜 없는 적을 스스로 만드려고 그래? 그리고 이건 네 스타일이 아냐."

꼭 말로 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눈빛만 보더라도 지금 상대가 어떤 감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장 부장은 나란 사람에 대해 살짝 실망, 혹은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난 그런 장 부장의 눈빛이...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이젠 장 부장이 내게 샤우팅을 날리는 것 보다 이런 실망스런 눈빛을 보내는 게 백 배는 더 무섭다.

나와 장 부장 사이에 흐르는 침묵 속으로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의 업무 보는 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거래 업체에게 컴플레인을 걸고 있는 날이 선 통화 음성, 복합기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한 곳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농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리다가, 그 웃음 소리를 장난스럽게 지적하는 김 차장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왜 네가 직접 손에 칼을 쥐고, 그 칼에 피를 묻히려고 하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네가 그랬잖아. 기대하는 만큼의 어마운트가 안나오면 그 어마운트를 만들어줄 수 있는 상대를 붙여달라고 징징거려 보겠다고."

그제야 난 날 바라보는 장 부장의 눈빛 속에 든 감정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대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너는 이게 법인을 상대로 직접 밥상을 차려주고 밥까지 다 떠먹여주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법인 입장에선 소화시킬 자신이 없는 부담스런 음식을 억지로 먹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상당히 폭력적인 상황을, 그것도 공 차장 네가 만들었다고 밖에 해석이 안될 거 같은데?"

"...!"

"그리고 조금 전 나한테 말한 이 기획안의 의도까지...너 그렇게까지 잔인한 놈 아니잖아. 왜 그래, 갑자기?"

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자, 장 부장은 사무실 직원들의 눈치를 한 번 살피며 안되겠다며 잠시 따라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올라간 17층에서 장 부장은 내게 자신의 담배 한 개피를 건네준 뒤 불까지 직접 붙여주었다.

"쥐를 쫓을 때도 도망갈 구멍은 열어줘가며 쫓는 거야."

"하지만 그때 부장님도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운영본부장 중국 좌천이 확정됐을 때."

"그거랑 이건 다른 거지, 이 친구야. 얌통머리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런데도 회사로부터 받아가는 건 우리랑 똑같고. 거기에 베알이 안 꼴릴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렇다고 내가 뭐 그 사람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냥 평소 얌통머리 없이 일하던 사람들이 더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직접 몸으로 뛰게 생겼으니 그게 쌤통이란 뜻이었지."

"하지만..."

"그래, 하지만. 하지만...이미 투 아웃이야. 내가 봤을 땐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쓰리아웃 당할 가능성이 높아. 그런데 왜 네가 직접 칼을 들고 선봉에 나서겠다는 거야?"

"...!"

"아님 뭐 네가 방법을 다 준비했으니 선봉은 나더러 서라...뭐 그런 뜻이야? 뭘 위해서? 그렇게 운영본부장 나가리 시켜서 우리한테 남는 게 뭐가 있는데? 은태야."

"...네."

"너 그날 청첩장 돌리러 올라가서 상무보랑 무슨 이야기 했냐?"

"..."

"상무보가 너더러 직접 칼춤을 추래?"

"...아니요."

"만약에 상무보가 너한테 그런 주문을 했다면 그건 상무보가 상당히 잘못 하고 계시는 거야. 일을 해야지. 일을 하러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한테 그런 걸 시켜서야 되나. 거기다 네가 어디 뭐 월급 루팡짓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놓는 기획안들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데, 명색이 사장 아들이라면 너 같은 에이스를 그렇게 써선 안되는 거지. 그리고 너도 그래. 어디 운영본부장이랑 원수졌냐? 운영본부장이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뭘 얼마나 너한테 크게 잘못했길래, 이런 잔인한 카드까지 만들어서 나한테 올리냐?"

"..."

"상대가 널 문 게 아니잖아. 운영 본부장이 너 한 번 죽어봐라, 하면서 널 콱 물었다면 네가 이러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얌통머리가 없다는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잔인한 카드를 준비해서 나한테 내민다는 게...그동안 네가 어떻게 일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인지 쭉 지켜봤던 내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안되네."

그제야 난 내가 어떤 욕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욕심으로 인해 나도 몰랐던 내 속의 잔인함과 마주하게 됐다.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현재 급하게 관광비자만 들고 법인으로 떠나있는 전사 운영본부장 이하 몇몇 그의 부하직원이 다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다.

소름이 올라왔다.

만약 여기서 장 부장이 생각없이 어, 이거 괜찮은 기획안이네? 하며 박 이사에게 올렸다면, 그리고 그게 박 이사에게 커트를 당하지 않고 다시 그 위로 그대로 올라갔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아찔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잠시...뭔가에 씌었던 모양이다.

"다들 그 가정을 지키겠다고 회사 나오고 있는 거 아니냐고. 너나 난 뭐 크게 다르냐?"

"..."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명백한 내 욕심이었고, 그 욕심이 날 생각없게 만들었다.

"우리가 다른 부서 사람들에 비해 힘들게 일한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선 안되는 거야. 우린 힘들게 일하는 만큼 다른 부서 사람들에 비해 성과급을 많이 받아가잖아. 다른 부서에 비해 목소리도 크게 낼 수 있고 말이야. 그 맛에 이 회사에서 영업일 하는 거고."

"...네."

"평소 이런 부분은 내가 말 안해줘도 알아서 잘 컨트롤하던 놈이 갑자기 왜 이래? 뭐가 널 이렇게까지 흔들고 있는 거야?"

"..."

"아닌 말로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 할 수만 있다면 월급 루팡짓 안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어? 다들 편하게 일하고 싶어 하잖아. 물론 내가 그 양반들 편을 드는 건 아냐. 도가 지나치긴 했어, 그동안. 하지만 내 기준에선 중국 법인으로 좌천된 거면 이미 충분하다고 봐. 급하게 좌천당하는 거라 내가 듣기엔 운영본부장 그 양반은 가족들이랑도 떨어져지내야 하는 거 같더만. 애들 학교 문제 때문에 다같이 넘어갈 형편이 못되는 모양이야."

"후우...네. 제가...생각이 많이 짧았네요. 제가 회사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일하자, 일. 응? 은태야."

"네."

"다른 사람들이 얌통머리 없이 일을 하든, 월급을 날로 먹든 그런 거 신경 쓰지말고, 우린 그냥 우리가 해야 될 일만 하자고. 회사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야. 그렇게 쉬운 일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줘야 너처럼 물불 안가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빛이 나는 거 아니겠어? 다들 너처럼 밤낮없이 일만 한다고 생각해봐라. 무슨 수로 네가 지금처럼 팀장 생활 1년도 안하고 바로 차장을 달 정도로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겠어? 적 만들지 마라. 특히 우리처럼 영업 뛰는 사람들은 더 그래야 되는 거야. 이젠 이런 거 까지는 내가 말 안해줘도 되잖아. 잘 알잖아."

"...네."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어차피 궁지로 몰려있는 사람인데, 너까지 그러지마라. 일하는 스타일이 우리랑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고, 그렇다고 이런 기획안 하나면 정말 회사 입장에서 그 양반들 골로 보낼 수 있는 건데, 그걸 왜 네가 빌미를 제공하나. 뭐 상무보가 앞으로는 자기 라인 타달라고 해?"

"..."

"그런 거라도 이렇게 공격적으로 하지는 마. 회사가 작정을 하고 누군가를 궁지로 모는 건 상황에 따라 당연한 게 될 수도 있는 거지만, 서로의 사정을 빤히 다 아는 우리가 앞장서서 그러면 너무한 게 되는 거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장 부장은 먼저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난 저 멀리 펼쳐지는 빌딩 숲을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 다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후우...쩝."

인정.

회사로 부터 받고 있는 인정과 관심, 그리고 계속되는 상무보의 프로포즈에 나도 모르게 깊이 취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비공식적인 회사 내의 파워로 상대의 목숨줄을 쥐락펴락 하려고 했던 게 틀림없다.

내가 그렇게나 질색을 하고 또 난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했던 것들 중 하나를 상무보 라인을 바로 탈 수 있다는 야망에 눈이 멀어 내가 하고 있었던 거다.

담배 한 모금을 다시 깊게 빨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허, 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이미 난 내가 홍성에 처음 입사를 하며 꿈꿨던 오늘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나.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는 사람,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으로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게 내 원래 목표 아니었나.

평범보다 조금 더 위의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게 내 원래 목표였다.

그런데 왜 난 처음 내가 입사를 하며 꿈꿨던 오늘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운영본부장을 비롯해 그의 부하 직원들, 그들의 가족들까지 궁지로 몰 잔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내 회사가 아닌데.

그냥 난 내가 해야할 일만 하면 되는 건데.

굳이 상무보 라인을 타지 않아도 난 이미 충분히 만족할만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다.

"그랬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혼잣말.

회사에 와서는 다른 거 말고 정말 딱 일만 하고싶다고 항상 생각해왔던 나.

그런데 이제 와 일이 아닌 게임을 하고 있는 나였다.

"후우..."

난 담배를 입에 물고 스마트 폰을 꺼내 장 부장에게 바로 카톡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장 부장으로부터 답장이 온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난 그 일주일 동안 회사를 조금 더 넓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려고 애를 썼다.

유독 안 팀장에게만 꼰대기질을 만들어냈던 나.

나와 다른 사람이라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그가 한국 기업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계속 해왔다.

그런데도 난 열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안 팀장의 장점만 봐줘야지...하며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 착각을 하며 지냈던 거 같다.

하지만 안 팀장은 충분히 알아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 선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 기업문화에 결여된 융통성을 잘 섞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양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팀장이라는 보기 드문 재능러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치고 나가는 속도가 더디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양 팀장만큼 꼼꼼한 재능러는 없었다.

나크리스를 영업 마케팅부로 넘겨주고, 기획 2팀의 Kidshub를 넘겨받은 양 팀장.

분명 한 번 정도는 문제가 생길만도 한데, 그 어떤 잡음도 만들어내지 않고 처음부터 그렇게 진행이 되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업무인수인계를 끝내놓았던 거다.

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모여서 직장 생활이라는 걸 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어느 집안의 가장인 사람들을 아웃시키는 작전을 짜고 있었던 것일까.

장 부장의 말처럼 그 결과를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다시 한 번 내가 했던 지난 생각들로 인해 소름이 올라왔다.

APEC 카드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전사 운영본부장과 그의 부하직원들.

안봐도 비디오다.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겠지.

법인 운영건으로 박 이사가 장 부장과 날 불렀다.

그리고 그 자리엔 운영본부장도 함께 자리했고.

지루한 미팅이 시작됐고, 그 미팅이 끝이 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운영본부장이 내게 커피나 한 잔 같이 하자며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공 차장."

"네, 본부장님."

"본사에서 많이 좀 도와줘요."

"어후, 제가 도와드릴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현지 사정을 본부장님처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운영 본부장은 입을 꼭 다물며 여러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손 차장이랑 뭐가 잘 안 맞네."

"..."

"손 차장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손 차장 입장에선 내가 폭탄일 거 아냐. 나만 아니었음 법인 본부장 대리 자격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테니까. 난 잘 지내고 싶은데, 거리를 좁히기가 많이 힘드네."

"사실 손 차장님이랑은 저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서요."

"아, 그래?"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영업부 자체가 워낙 팀별로 움직이는 부서다보니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렇구나...쩝, 그래, 알았어요."

"...많이 힘드십니까?"

"쉽지가 않네. 이게 어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업무랑 겹치는 게 있어야지. 거기다 바로 밑에 손 차장까지 마음을 쉽게 안열어주니까 더 힘들고."

정말 어이없게도 운영 본부장의 모습에서 매형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어디 닮은 구석이 있다거나, 아님 스타일이 비슷해서가 아니다.

그저 위태위태한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공통분모가 날 착각하게 만들었던 거 같다.

"음...손 차장님은 그동안 저희 영업부에서 여우로 통했습니다. 마음을 사겠다고 자세를 낮추고 들어가시면 오히려 더 힘드실 겁니다."

"..."

"쩝, 후우...회의실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난 사무실로 돌아가 지난 주 장 부장에게 올렸던 기획안을 챙겨서 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말과 함께 그 기획안을 운영본부장에게 건냈다.

"...!"

"이걸 본부장님이 현지 법인의 실정에 맞게 살짝 변형시켜서 손 차장한테 쳐내라고 지시를 하면 어떨까 싶네요. 법인 직원들도 있을 거고, 또 현지 직원들도 있을 거니까...충분히 쳐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마음이 그런 모양이다.

딱히 나에게 잘못한 건 없지만, 평소 회사 내에서의 그의 이미지 때문에 그가 잘못되길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그런 상대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됐다.

그러면서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혼자 꼬옥 안고 있었던 비밀스런 계획.

다행이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으니.

그래,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다들 사정 빤한 사이에 왜 누굴 물먹이지 못해 안달하고, 또 왜 누굴 밟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런데 정확하게 삼일 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전무님이 참석한 전사적 회의 자리에서 운영본부장이 그때 내가 건넸던 기획안을 베이스로 급하게 PPT를 만들어 발표를 했는데, 그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특히 어지간하면 태클부터 걸고 보는 전무님마저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운영본부장의 발표에 집중을 했고, 발표가 끝난 뒤엔 "그대로 진행하면 되겠네. 어쩐 일이야? 간만에 입댈 게 없도록 준비를 했네." 라며 회의장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운영본부장이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돌발 행동을 한다.

"영업부에서 준 소스를 바탕으로 만든 내용입니다."

"...!"

"부끄럽게도 사실 저희가 준비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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