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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06화 (106/325)

# 106

꽁으로 주고 받는 게 아닙니다

"안 팀장님."

"네, 차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미팅 한 번만 하시죠."

안 팀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지금 당장에라도 날 따라올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획 1팀이 모두 외근을 나간 탓에 사무실 안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상무보와 이야기를 끝내놓고 난 곧바로 안 팀장을 내 자리로 불렀고, 놀고 있는 의자를 하나 더 준비해서 내 사무 책상을 회의 테이블 삼아 안 팀장에게 몇 가지 중국 실정에 대해 물었다.

"그때 말씀하셨던 팝업 스토어(Pop-up Store - 일종의 임시 매장. 고정 매장을 할당받는 것이 아닌 임시 매장 형식으로 짧은 기간 다양한 노출을 통해 높은 판매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말입니다."

"팝업 스토어요? 무슨 팝업 스토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 그때 중국 시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안 팀장님이 현재 중국 대형 성에 있는 메이저 백화점들은 5,6년 전 한국처럼 팝업 스토어가 열풍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

안 팀장은 당시 나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이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거 필요 없을 거 같다고 더이상 안 물어보셨잖아요."

"다시 필요할 거 같습니다."

순간 눈치 빠른 안 팀장은 실눈을 뜨며 날 쳐다봤고, 그런 안 팀장에게 난 계속 말을 바꿔서 미안한데 다시 한 번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이랑 똑같습니다. 다만 한국보다 트랜드가 조금 느린 거 뿐이죠."

"중국도 한국처럼 팝업 스토어에 들어가면 일단 행사 가격으로 물건을 풀어야 하는 거죠?"

"의무는 아니고요. 하지만 행사 가격으로 물건을 풀지 않으면 딱히 팝업 스토어로 들어갈 의미가 없는 거죠. 백화점 측에서도 자리를 줄 이유가 크게 줄어드는 거고. 팝업 스토어라는 거 자체가 일단 신규 브랜드를 시장에 알리고 또 고객들의 반응을 빠르게 살피기 위한 일종의 홍보 수단인 건데, 아닌 말로 아무런 인지도도 없는 브랜드를 누가 정상 매장에서 제 값 다주고 사려고 하겠습니까? 하다못해 명품들도 신규 브랜드들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들어가잖아요."

"중국 백화점 팝업 스토어 입점 및 신청 조건 좀 알아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내가 한 번 했던 부탁이었다.

중국 법인으로 전사 운영본부장이 가게 됐단 걸 알게 된 뒤 더이상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했고.

"다른 업무 보느라 정신 없으실텐데, 계속 왔다갔다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그런 건 괜찮은데..."

1팀 전원이 외근을 나가있는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안 팀장은 주위를 둘러본 뒤 상당히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차장님 혹시...중국 주재원 관심 있으십니까?"

그런 안 팀장을 향해 난 웃는 얼굴로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 주재원 근무 관심 없는 직원도 있습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놀라는 거 같아 일단 안심을 시켰다.

"뭘 또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

"지난주에 이사님이 저랑 부장님만 따로 부르셨어요. 중국 법인이 우리 본사 영업부가 밀어넣을 프로젝트들을 무리없이 다 소화할 수 있도록 영업 레이아웃을 한 번 잡아주자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왜 저희가..."

"저나 부장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그냥 뻐대고만 있었던 거예요. 안 그래도 할 일은 많고 일 손은 부족해 죽겠는데, 죽 쒀서 남의 집 개 줄 일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인 실적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당연하죠."

"근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까 어차피 우리 실적이더라고."

"...?"

"현지 중국 법인에서 원활하게 소화를 해줘야 앞으로도 그쪽으로 프로젝트들을 계속 밀어넣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 영업 마케팅부는 국내용, 우리 영업 기획부는 해외용이에요.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부서 분할이 이뤄졌던 거예요.

"흐음...뭐 딱히 논리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일단 차장님이 그렇다고 하시니 알겠습니다."

"사실...배가 좀 아팠어요. 중국 법인에선 아무것도 안하는데, 그들의 매출까지 우리가 다 신경을 써주자니까 괜히 우리만 일을 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위에서 준비를 좀 해달라고 하는데."

"그것만 준비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음..."

"편하게 말씀하세요. 찔끔찔끔 업무를 주시는 것 보다, 그냥 한꺼번에 필요한 걸 다 말씀해주시면 제가 알아서 교통정리 해가며 한 번에 다 준비하는 게 더 수월합니다."

"그럼 중간에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 법인이 직접 매장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알아봐주시겠습니까?"

이 역시 예전에 안 팀장에게 한 번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다가 접었던 내용이었다.

"..."

"...왜요?"

"아무래도...그냥 일반적인 업무 지시 같지는 않습니다?"

"당연하죠.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에요."

"으으음..."

확실히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안 팀장은 얼굴에 장난기를 걸어놓고 고개를 흔들며 날 쳐다봤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니라 그냥 차장님 단독인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죠."

"설마요."

"분명 뭔가가 있어..."

"또 뭐가요?"

"저 안낙현입니다."

"아, 쫌! 그 말 좀 그만해요. 그래서 뭐? 안낙현인데 뭐요? 뭐만 하면 저 안낙현입니다...그래. 안 팀장이 안낙현인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차라리 귀신을 속이세요."

"속이긴 뭘 속인다는 거예요? 보니까 또 간만에 안 팀장님 많이 심심한가보네."

"그런 의미로 저녁에 일 마치고 막창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인간적으로 결혼 준비 하느라 정신없는 사람은 건드리지 맙시다."

"지금 아니면 건드릴 기회도 없잖아요. 벌써부터 이렇게 결혼 핑계 대시는데, 진짜 막상 결혼을 하시면 얼마나 더 비싸게 굴 겁니까?"

"참..."

"요즘 너무 저한테 소홀하셨어요."

"아, 또 뭐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저에겐 막창에 소주 한 잔이 칭찬입니다. 혹시 또 압니까? 막창에 소주 한 잔으로 차장님이 생각도 못했던 뭔가를 제가 뻥! 하고 터뜨려드릴지."

"..."

"그럼 진짜 싸게 치이는 거잖아요. 저는 누구처럼 비싸게 굴지 않습니다."

"하이고..."

"콜? 오늘 저녁에 콜?"

"그냥 괜찮은 여자 만나서 연애를 해요, 엄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연애? 그게 뭡니까? 먹는 겁니까, 바르는 겁니까? 아님 입는 건가요, 이렇게?"

"푸흡..."

"콜?"

"...콜."

안 팀장은 저녁 술 자리에 나에겐 미리 말도 해주지 않고 박기태를 데리고 왔다.

처음엔 약간 당황을 했지만, 현재 안 팀장과 박기태가 자주 붙어다니는 걸 감안해보면 크게 놀라울 일도 아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 안 팀장은 날 상대로, 그리고 박기태를 상대로 팀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내 정치를 펼쳤다.

"아까 낮에 차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중국 법인 관련 내용은 내일 점심까지 제가 각 프로젝트 별로 마케팅 기획안을 만들어서 자리로 갖다드리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빨리 준비할 수 있는 내용들인가요?"

내 말에 안 팀장은 검지와 중지를 붙여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대답했다.

"이미 차장님이 물어봐주시기 전부터 이 속에 다 들어가 있던 내용들입니다."

"..."

"본사로 복귀하기 전까지 지난 4년 간 현지 법인 생활을 하는 동안, 전 분명 하면 무조건 되는 것들이라 생각해서 위로 기획안을 올렸다가 계속 까였던 내용들이거든요.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 차장님이 팝업 스토어 카드를 꺼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또 중국 시장에 대해 잘 모르셔도 그 만큼의 감이 있단 말이겠죠. 문 팀장이 진행하고 있는 국내 중저가 브랜드들...그런 브랜드들이 중국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아직 중국에선 코리안 브랜드라는 게 먹히는 시절이죠. 그 컨셉만 잘 잡아서 풀어버리면 초기 고정 매장에 들어갈 인테리어 비용도 자연스럽게 팝업 스토어 매출로 커버를 칠 수 있고, 또 그만큼 물량 회전이 빨리 돌 거니까 브랜드에 대한 매장 직원들의 적응도 빠를 겁니다."

"근데 왜 당시 중국 법인에선 안 팀장님의 이런 아이디어를 계속 짬을 시켰던 겁니까?"

"돈이 안되니까요."

"이게 어째서 돈이 안된단 말입니까?"

"언더 더 테이블이 안된단 말이죠. 하면 회사는 무조건 돈을 벌죠. 근데 그렇게 투명하게 일을 하는 걸 손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정말 싫었고요. 상사에 대한 도덕적 존경심이 사라지니까 그것만큼 일에 대한 동기가 꺾이는 게 없더라고요."

"흐음...그렇죠. 그럴 겁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랑 같은 레벨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사람들한테 지시를 받으며 일을 하는 건 더더욱 못하겠더라고요."

"..."

"아무튼 뭐 오늘 얻어먹는 술값 정도는 내일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진짜 내일까지 다 가능하겠어요? 그렇게 급하게 안해도..."

"아, 우리 차장님 또 사람 입 아프게 만드신다. 야, 기태야."

"네, 팀장님."

"내가 누구냐?"

"안낙현입니다."

"들으셨죠? 저 안낙현입니다."

그동안 매일같이 붙어다니면서 저런 재미없는 농담이나 짜고 주고받으며 놀았던 모양이다.

아주 그냥 죽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안 팀장과 술을 마시면 그 분위기가 가벼워서 참 좋다.

물론 너무 자주 마시자고 술자리를 권해서 탈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와 함께 술자리를 가질 때면 요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표현들이 유행을 하고 또 어떤 맛집, 안주들이 새로 나왔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거기다 회사 이야기를 하더라도 유쾌하게 진행이 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고.

그런데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박기태를 같이 데리고 나온 것 부터가 살짝 의심스러웠고.

"그런데 차장님. 저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요?"

"요놈 기태..."

앉은 상태에서 박기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안 팀장이 말했다.

"대리 승진 고려 좀 해주십시오."

이미 이 술자리 전에 박기태와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인 거 같았다.

박기태는 놀라기 보다는 민망하다는 식으로 고개를 떨궈 나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향은 씨가 대리 승진을 한 상태 아닙니까."

"한 팀에 대리가 두 명이면 안된다는 사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네 명이 정원인 팀에 팀장 하나에 대리 둘, 그리고 이제 막 인턴에서 사원으로 올라간 직원 하나면 밸런스가 많이 떨어지죠."

"저희가 하는 일이 팀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장 대리가 일을 참 잘해주고 있긴 한데...저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요?"

"해외 출장을 한 번 가더라도 제가 어떻게 장 대리랑 단 둘이서만 가겠습니까?"

"..."

"거기다 지금 장 대리는 만토바 브랜드 컨트롤을 전담하고 있다보니 열외로 두셔야 됩니다. 만토바 관련 사업만 확실히 해주는 것 만으로도 이미 장 대리는 이삼인분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다른 걸 더 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죠."

"그럴 겁니다."

"추가 인원 보충도 힘들다 그러고...기태 요놈 벌써 3년차 접어들었습니다. 저나 차장님은 2년차 때 대리 달았지 않습니까. 유별나게 빠른 승진도 아닙니다."

"그 부분은 제가 내일 부장님이랑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지금 우리 회사에서 차장님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입니다."

"..."

"그리고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놈이 작년에 한 번 이직을 준비했었다는 것도, 또 차장님께 직접 대리만 달면 이직을 할 생각이라는 말을 했었다는 것도. 물론 나중에 말을 바꾸긴 했지만, 차장님 입장에선 불안불안 하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책임지고 한 번 끌고 가 보겠습니다."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안 팀장의 인원 보충 요청은 무척이나 당연한 부분이었고, 그럼에도 회사는 그 부분을 만족스럽게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절대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겨야 한다...하는 게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안 팀장이 말했다.

"하나는 공안. 개인 장사는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저희 홍성 같은 기업들도 중국에선 공안의 눈치를 수시로 봐야 됩니다.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서 소방관련 검열을 하고, 저희 업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위생관련 검열을 하거든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꽌시죠."

박기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안 팀장이 말했다.

"우리 말로는 인맥, 관계...뭐 그 쯤 되는 표현일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 꽌시는 그냥 꽁으로 주고 받는 게 아닙니다. 빌려주고 또 갚아주는 거죠. 지난 4년간 제가 중국에서 만들어놨던 제 개인적인 꽌시를 모두 차장님께 빌려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시다고 하면 노하우까지도요."

"...!"

"기태, 요놈...대리 승진시켜주시는 걸로 그 꽌시를 갚아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제 말을 곡해하시면...중국애들이랑 절대 같이 사업 못하십니다. 생각의 시스템 자체가 한국 사람들이랑 많이 다르거든요."

"곡해는요, 무슨..."

"그럼 저 내일 점심까지 각 프로젝트 별로 마케팅 기획안 만들어 올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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