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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85화 (85/325)

# 85

우리가 더 커야 돼

월요일 오후 팀장급 미팅 자리였다.

오전 시간 내내 박 이사에게 붙잡혀 있었던 장 부장.

하달받은 전달 사항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장 부장은 박 이사와 따로 가진 점심 식사 후 곧바로 영업 마케팅부와 영업 기획부 전 팀장들을 소집해서 팀장급 미팅을 열었다.

“물류 창고 한 번 뒤집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장 부장의 질문에 김 차장은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영업 마케팅부 내에서 자체적인 미팅을 가졌다고 말하며, 그에 필요한 몇 가지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뒤집어야죠. 이번 기회에 쌓여있는 재고 싹 다 털어내고 인벤토리 초기화 시켜보겠습니다.”

“만만치 않을 겁니다.”

“예상하고 있습니다.”

“영업 마케팅부 인원만 가지고 가능하시겠습니까?”

“...힘들죠.”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인벤토리 초기화라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물며 브랜드 하나도 아니고 계약 파기를 희망했던 브랜드들 전부를 해야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머리가 지끈거릴까.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 있었던 기회도 잠시, 이젠 앞으로 쳐내야 할 업무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우리 영업 기획부랑은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영업 기획부와 엮여있는 브랜드는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 아는 거지.

우리 쪽에서 헬퍼를 보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건 QA팀이나 영업 지원팀에서 붙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끝은 내겠지만, 그들이 어디 자기네 일처럼 애살있게 해주겠나.

시키니까 하는 수 없이 하는 시늉만 하는 거지.

꼼꼼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니만큼, 타 부서의 도움을 받는 건 도움을 받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장 부장만 입장이 난처해지는 거다.

결국은 헬퍼 요청을 우리 영업 기획부에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영업 기획부는 어디 놀고 있나.

나크리스 매장 확장에 여념이 없는 기획 1팀은 두 말 할 나위도 없고, Kidshub 오픈 준비로 눈코뜰새 없는 기획 2팀. 해외 영업부는 맨파워만 탄탄하지, 막상 실무를 쳐낼 핵심 인물은 법인 비리를 거둬내면서 다 아웃을 당한 상태다.

“...”

말 없이 빤히 나만 쳐다보기 시작하는 장 부장.

난 재빨리 김 차장의 시선을 확인한다.

김 차장 역시 살짝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기 시작한다.

난 그 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눈을 밑으로 깔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침묵.

난 무의식 중에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이젠 아예 작정을 한 듯 노골적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장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난 다른 팀장들도 다 보고 있는 앞이라 입술만 달싹거리며 왜 그렇게 날 보는 거냐고 물었고, 그런 나의 물음에 장 부장은 대답을 생략하고 그냥 날 계속 쳐다봤다.

“하아...진짜 이건 아니죠.”

내게도 약간의 액션은 필요하니까.

나라고 왜 모를까.

내가 장 부장이라도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하지만 문 팀장의 입장도 고려를 해줘야 하는 부분이니까.

영업 기획부의 대장으로서 최대한 커버를 치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했다.

그런데 다행히 문 팀장이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 도대체 몇 명이나 필요한 겁니까?”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그제야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김 차장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에이, 팀장들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몇 명이나 필요한지 정확하게 말씀을 해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맨파워를 추릴 거 아닙니까.”

“한 열 명 정도?”

“말도 안된다, 진짜...”

“여덟 명...”

“아, 왜 그러십니까, 차장님. 저희도 좀 삽시다.”

“일곱 명.”

그렇게 나와 김 차장의 의미없는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맨파워를 내줘야한다는 걸 눈치챈 문 팀장이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듯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희 팀에서 지원하겠습니다.”

“크흐...역시 문 팀장. 복 받을 거야.”

영업 마케팅부 소속 팀장들 모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차피 만토바 물건 중국으로 샌딩하는 업무도 저희 해외 영업부가 맡아야 하는 거잖아요. 해외 영업부 직원들 전부 그동안 국내 브랜드만 취급을 해와서, 해외 명품 쪽에 관해선 무지합니다. 이참에 물류창고에서 영업 마케팅부가 진행할 인벤토리 업무 보조하면서 하나하나 배우게끔 만들어보겠습니다.”

이어지는 건의사항 타임.

이번엔 내가 김 차장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헬퍼 부분으로 우리쪽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으니, 이번엔 김 차장이 총대를 메라는 의미였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후 김 차장이 장 부장에게 말했다.

“저기 부장님.”

“말씀하세요.”

“우리...맨파워 조정 좀 해주셔야 됩니다.”

김 차장의 말에 우리 모두는 입을 다물었다.

“어떤...”

“계약직 사원 티오를 인턴으로 다 돌렸잖아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많습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직원들 뿐 아니라, 그런 불확실한 직원들을 가르쳐가며 일을 쳐내야하는 핵심 인력들의 발목을 잡는 일입니다.”

“흐음...”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는데만 벌써 세 달이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을 좀 시켜볼까 싶으면 세 달 밖에 안 남는 거죠. 여기서 문제는 정규직 채용이 안될 거 같아서 스스로 포기를 하는 직원들입니다. 본인들 입장에서야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만, 회사 입장에선 어영부영 세 달을 보낸 거고, 또 그렇게 남은 세 달을 정규직 전환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버티려고 하다보면, 진짜 업무가 아니라 그 인턴 직원들 컨트롤하는데 더 진이 빠져버리거든요.”

“인사 부장 입장에서도 뭔가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본사 업무는 처음이시잖아요. 이제 아시겠죠. 그렇게 순발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대신 감사하다 인사드리겠습니다.”

“...?”

“그동안 그 부분에 큰 불만 가지지 않고, 불만이 있었더라도 크게 노출하지 않고 참고 기다려주셔서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 영업 이사님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진짜 풀기 어려운 숙제죠, 그 부분은.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우리 홍성을 업계 사람들이 뭐라고 부릅니까? 영업 전문학교, 영업 사관학교라고 부르죠.”

진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홍성 출신이라고 하면 업계에서는 믿고 써도되는 인재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린다.

애초에 이곳저곳 몇 차례 이직을 통해 빠른 타이틀 획들을 노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홍성에 충성도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계속 붙어 있으면 손해라는 기분을 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 부하 직원들이 하나둘 씩 빠져나갈 때마다 새로운 인원에게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는 것이고.

워낙에 직원 교육 매뉴얼이 잘 갖춰져있다.

그리고 그 매뉴얼을 유지하는 영업부의 문화도 단단하고.

그러다보니 몇 년만 빡빡한 홍성 문화를 버텨내면 분명 업계에서는 나름 에이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팀장들은 직원들 편에서만 서서 이 사안을 보지 말고 회사 입장과 직원들 입장 중간에 서서 객관적으로 이 부분을 봐줘야 돼. 물론 계약직이 있던 당시엔 정규직 전환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 돈 부어서 인재를 키우겠다고 투자를 해놨는데, 바로 이직들을 해버리니 어디 투자할 맛이 났겠냐는 거지.”

우리 모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직원들이 직접 가져가는 돈이 아니라서 실감은 못하겠지만, 신입 딱 받아서 대리급까지 키우는데, 회사 입장에선 한 사람당 못 들어도 최소 1억 정도 비용이 들어. 그렇게 돈 부어서 키워놨는데, 홍성에서 배운 매뉴얼, 홍성에서 만든 인맥, 또 노하우 다 가지고 다른 회사로 이직들을 해버리니 어쩌겠어. 만약 당신들이 이 회사 사장이라고 생각을 해봐. 어떻게 해야겠어?”

“...”

“결국은 악순환의 반복이야. 다른 회사에선 직원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딱히 필요가 없으니 홍성보다 월급 조금 더 올려서 스카웃을 할 수 있는 거고. 이 부분에 대해서 영업 이사님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결론은 하나 밖에 없더라고.”

“...?”

“우리가 더 커야 돼. 직원들 월급을 조금씩 더 올려주고, 전 직원 정규직으로 뽑는다...이런 건 의미없는 시도일 뿐이고, 또 결국엔 거기에서도 헛점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고육지계고, 그냥 우리가 다른 기업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커버리는 수 밖에 없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장님.”

김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누구의 무능력도 아니다.

새로 부임한 인사 부장이 본사의 실정을 몰라서 헤메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지지고 볶는 우리 영업맨들의 부하직원 관리 소홀도 아니다.

이건 그냥 결국 잘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일 뿐이다.

그렇게 이해하는 수 밖에.

“어떻게 저떻게 운이 좋아서 CGM의 공격은 역공으로 막아냈지만, 결국 CGM으로 인해서 이 업계의 치킨 게임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시장의 균형, 다 같이 먹고 살자, 독점은 나쁜 거다...뭐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니란 말이지. 그런 이야기도 업계를 완벽하게 장악을 한 놈이 하면 멋이 있는 건데, 상대적으로 약한 놈이 하면 그냥 징징 짜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리는 거잖아. 안 그렇습니까, 김 차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기회 좋잖아요. 만토바까지 끼고 있고. 또 유통판들과 서열 정리도 우리쪽이 유리하게끔 끝이 났고.”

“...”

“지금까지 우리 홍성이 키워놓은 인재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빼갔던 업체들을 상대로 치킨 게임 한 번 해봅시다. 우리가 키워놓은 인재들을 그냥 가져다가 쓰고 있는 대가로, 우린 그들이 가진 브랜드들을 다 가지고 오는 걸로 합시다.”

무서운 말이다.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해보자는 말이니까.

“그렇게 타 업체와 비교가 불가능한 기업이 되어줘야만 인재들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영업 이사님께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계약직원이 왜 필요하고, 인턴이 왜 필요하겠어요? 그냥 다 정직원으로 뽑아서 쓰면 되는 거지. 영업 이사님 생각에 전 100퍼센트 공감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이는 순간이었다.

나도 내가 왜 홍성에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 부장이 한 타 업체와 비교가 불가능한 기업으로 만들어보자는 그 한 마디에 내 가슴엔 그 성질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팀장급 미팅을 마무리 지으며 장 부장이 나와 안낙현은 잠시 남으라고 했다.

“왜...”

“두 사람 내일 출근할 때 여권 들고 와.”

“여권이요?”

“중국 상용 복수 비자 신청하게. 내일 여권 가지고 와서 인사부에 줘.”

“그것 때문이라면 전 이만 나가봐도 될 거 같습니다.”

안 팀장이 말했다.

“저는 상하이에 후커우가 있습니다.”

“후커우? 그게 뭔데?”

“음...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주민등록증 같은 건데, 주민등록증이랑 성격이 완전 똑같지는 않고 일종의 신분과 거주지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있는 카드? 뭐 그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걸 안 팀장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어? 혹시 뭐 상하이에 집이 있어?”

“네.”

우와, 대박.

순간 나와 장 부장은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안 팀장을 다시 봤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중국 난징에서 공장을 하셨거든요. 그때 제 명의로 상하이에 작은 아파트를 하나 구입해주셨죠.”

“이야...상하이 거기 집값 장난 아니지 않냐?”

“운이 좋았죠. 처음 아버지가 사업하러 들어갔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그렇게 미친듯이 비싸지는 않았으니까요. 아무튼 전 후커우가 있어서 따로 비자 부분은 걱정을 안하셔도 됩니다.”

안 팀장이 회의실을 나간 다음 나와 장 부장은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었어.”

장 부장이 말했다.

“그랬으니 그 간 큰 짓을 했던 거지.”

“...그러게요. 그나저나 중국 비자는 왜...”

“앞으로 너 중국 갈 일 계속 생길 거 아냐. 만토바 물건 샌딩하는 거 중국 법인에서 손 차장이 어떻게 핸들링하는지도 컨트롤 해야할 거고.”

“알아서 잘 하겠죠.”

“넌 아직도 사람을 믿냐?”

“하긴...알겠습니다.”

“그리고...”

“네.”

“내일 사장님 회사 출근하실 거다.”

“네.”

“아마 너도 같이 자리를 해야 할 거다.”

“저도요? 제가 왜요?”

“상벌이 확실한 분 아니냐. 그 큰 일을 해냈는데, 이대로 그냥 넘어가시겠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왜 네가 한 게 없어?”

“아이디어 툭 내뱉은 거, 그리고 만토바 한 번 다녀온 거 말고 제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백화점 측, 브랜드 측 압박한 거 다 부장님이 직접 하신 거잖아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

“네. 전 그냥 비오는 날 파전이 먹고싶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 저한테 부장님이 파전을 만들어줄테니 직접 마트에 가서 파전 만들 재료를 사오라고 하신 거고요. 제가 한 건 딱 거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 재료로 최고의 파전을 만들어낸 건 부장님이시죠.”

“난 비 오는 날 파전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어. 아무튼 내일 사장님 오실 거다. 너도 같이 참석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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