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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80화 (80/325)

# 80

그럼 끝나는 거 아닙니까?

“임원 연수를 왜 보내는 건지, 그것도 2주 씩이나 말이야...내가 그걸 이번에 알았다는 거 아냐.”

박 이사의 개인 사무실.

상석 소파 자리를 잡고 앉은 박 이사는 자신의 두 팔을 올린 소파 팔걸이를 아직은 어색하다는 듯 계속 만지작거렸다.

브랜드 업체 측과의 미팅을 끝내고 곧바로 나와 장 부장만 자신의 사무실로 따로 불렀다.

그리고 2주간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별 특이 사항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고.

“처음 한 며칠은 좋았어. 말이 연수지 거기 가서 하는 게 뭐가 있겠어? 근데 이것도 한 삼사일 정도 지나니까 슬슬 지겨워지더라고. 그리고 딱 일주일째 되니까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커피 한모금을 홀짝인 후 다시 말을 잇는 박 이사.

“우리가 언제 마음놓고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때부터 슬슬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라고.”

“뭐가요?”

장 부장이 물었고, 박 이사는 피식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내가 없는 동안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궁금하니까.”

“그래서 제가 꾸준히 메일 보내드렸잖습니까.”

“그러니까 더 궁금한 거지. 막상 출근을 해도 하는 건 크게 없으면서 출근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지.”

“이사님도 참...”

“참이 아니야, 이 사람아. 장 부장, 너도 한 번 해봐. 이게 지난 세월동안 몸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 적응이 되어 버렸더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기엔 지난 2주 동안 얼굴이 너무 좋아지셨는데요? 야, 공 차장. 이사님 얼굴에 살 좀 오른 거 같지 않냐?”

“살 찌신 건 잘 모르겠고 피부가 아주 그냥...”

“근데 너희 얼굴엔 지난 2주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다들 왜 이렇게 폭삭 삭았어?”

박 이사의 농담에 우리 모두는 잠시 웃음을 터뜨리며 가벼운 농담을 이어갔다.

그리고 박 이사가 이런 제안(제안이라고 하기 보단 이사 재량으로 하는 지시)을 하나 한다.

“이번주 금요일,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에 장 부장 너 휴가 이틀 써라.”

“네?”

“토, 일 끼우면 그래도 4일 아니냐. 지금 현재 회사 분위기상 더 쓰라고 말은 못하겠고...그렇게 휴가 좀 다녀와.”

“갑자기 휴가는 왜...”

“올해 휴가 못 다녀왔잖아. 작년에는 썼었냐?”

“...아뇨, 못 썼죠.”

“다 먹고 살자고...잘 한 번 살아보자고 하는 짓인데, 그렇게 밑에 부하직원들도 다 쓰는 휴가까지 반납해가면서 이럴 필요가 있는 건가 싶다. 내가 널 너무 혹사시켰어, 그동안.”

“...”

“그리고 다음주엔 공 차장이 똑같은 방법으로 휴가 한 번 다녀오고.”

나와 장 부장은 거의 본능적으로 서로 눈을 마주치며 박 이사의 뜬금없는 제안에 어리둥절했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말고, 한 번 쉬어봐. 회사가 박살이 나도 두 사람 쉬는 동안 회사에서 아무런 연락도 못하게 만들어줄테니까, 회사, 일...아무것도 생각하지말고 그냥 한 번 추욱...늘어질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쉬다가 와. 진짜 지금 마음 같아서는 쌓여있는 휴가 다 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쩝, 그러자니 내가 자신이 없어서 안되겠고...”

모르는 사람이 박 이사가 하는 말을 들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꼴랑 금요일, 월요일. 그것도 당연히 챙겨먹어야 하는 휴가를 쓰게 하면서 무슨 생색을 저렇게 내느냐고.

거기다 토,일은 당연히 쉬는 날인데.

하지만 우린 아는 거지.

그게 지금 현재 회사 상황을 고려해보면 박 이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큰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푹 쉬면서 머리를 비우고 돌아오면 현재 막혀있는 프로젝트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보이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또 몸도 슬슬 근질거릴 거고. 치킨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

“그러니까 컨디션 챙겨가면서 하자. 그거 제대로 못 챙기면 자기도 모르게 평소엔 없던 회사에 대한 불만들이 계속 생겨나는 거야. 그럼 결국 제 풀에 꺾이는 거고.”

치킨 게임.

박 이사는 CGM의 한국 진출과 그에 대한 파장을 치킨 게임에 비유를 했다.

CGM이라는 거대한 공룡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결국엔 어중간한 중소 업체들은 모두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원 연수를 다녀온 뒤 가장 먼저 했던 게 사장님과 전무님이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한 면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장님으로부터 직접 CGM의 막강한 화력을 견뎌낼 영업부의 내구력을 갖추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다들 알겠지만, 원래 사장님 스타일이 직진이잖아. 상대가 누구건 일단 한 번 들이받아보고 시작하는 스타일이신데, 이번엔 상당히 조심스러우셔.”

“흐음...”

“저렇게 신중하셨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결국엔 중국통이시니까 그러시는 마음도 이해는 가는데, 중국 시장에서 답을 한 번 찾아보자고 하시는 것만 봐도, 한국 시장에선 CGM과 붙어 이길 자신이 없단 말씀이신 거지.”

몇 단계 프로그래스를 뛰어넘고 있는 박 이사.

나와 장 부장은 그 사이 비어있는 스토리를 유추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CGM이 들어온 뒤 홍성이 국내 시장에서 받게 될 로스를 중국 시장에서 채우자는 말씀이신 겁니까?”

박 이사는 짧게 고개를 흔든 뒤 말했다.

“어차피 CGM의 목표는 중국 시장이지, 한국 시장이 아니야. 항상 한국은 중국 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거치는 중간 단계지, 최종 목적지가 될 수는 없는 시장이거든.”

“...”

“CGM입장에선 독일에서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기엔 관세 부분이 크게 걸리는 거야.”

“그렇겠죠, 아무래도.”

“그리고 또 아무리 독일에서 물건을 쏜다고 해도 메이드 인 이탈리, 메이드 인 프랑스가 붙으면 거기에 따른 관세를 이중으로 떠안아야 되는 거고. 근데 이게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서 한국을 한 번 거치면 말이 달라지거든. 중국 시장 명품 쪽이 그래.”

“그렇다고 한국이란 시장이 작은 시장이냐. 그냥 물류 창고 정도로만 쓰기엔 아까운 시장이니, 어차피 한 번 거쳐야 하는 거, 여기부터 싹쓸이를 해놓고 들어가자...”

장 부장의 말에 박 이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간신히 쫓아갈 수 있게 될 즈음 한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그럼 CGM 입장에선 우리 홍성처럼 컨트롤 기업 형태로 들어올 게 아니라 폭스타운 컨셉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게 훨씬 더 유리한 거 아닌가요?”

“하려고 하다가 막혔잖아, 롯데, 신세계한테.”

“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CGM 정도 자본력이면 관세 조율 포기하고, 그냥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 관세가 공 차장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 왜 중국 애들이 외국만 나가면 명품들을 그렇게 쓸어오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리고 그런 관세 부분을 포기한다고 해도 CGM은 중국에 마땅한 인프라가 없는 거지. 만토바나 폭스 타운 애들이 어디 외부 영업 뛰는 거 봤어? 다 자기 자리 떡하니 지키고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물건 넘겨주는 것만 해봤지, 직접 나가서 물건을 파는 애들은 아니잖아.”

살짝 핀트가 어긋나는 순간이다.

도저히 박 이사와 장 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중국에도 들어갈 브랜드들은 다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중국도 아웃렛 열풍 상당하다.”

“아무리 그래도...홍성 자금력으로 중국 시장에서 CGM과 정면으로 붙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그런 거라면 오히려 CGM을 제대로 압박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박 이사와 장 부장은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뭔 소리야?”

장 부장이 엄한 소리 할 생각이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투로 살짝 눈치를 줬다.

그런데 난 이해가 잘 안되는 거지.

이런 판이라면 어째서 홍성이 긴장을 해야하는 것인지...

“아니, 그냥...”

“이야기 해 봐.”

박 이사가 개소리라도 좋으니 그냥 편하게 말을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장 부장의 눈치를 애써 무시하고 생각이 나는대로 말했다.

안 그럼 이 상황이 내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전체적인 그림이 이게 맞는 것인지 확인을 받기 위해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하나, 하나 순서를 붙여가며 말했다.

“현재 우리가 걱정해야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아닙니까? CGM이라는 거대 공룡이 한국 시장에 들어와서, 기존의 컨트롤 기업들을 초토화 시킬 것이고, 거기에 어쩌면 홍성도 포함이 될지 모른다. 그 이유 하나. CGM쪽이 한국에 들어와서 그쪽 자본력으로 치킨 게임을 시작할 건 불보듯 뻔하다. 그럼 피터지게 경쟁을 시작할 홍성과 CGM 중간에 끼어서 어부지리로 백화점 쪽에선 임대료 퍼센테이지를 올릴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 홍성과 CGM이 동시에 취급하고 있는 브랜드들. 틀림없이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홍성이 포기를 해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지.”

“그리고 그 두가지 중에서도 특히 후자인 브랜드 경쟁이 홍성 입장에선 더 위험한 것이고요.”

“치명적이지.”

내가 지금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CGM의 최종 목적이 한국 시장이 아니라 중국 시장이라면, 오히려 더 쉬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왜 나만 하고 있는 걸까?

홍성의 중국 법인은 한국 브랜드들을 최대한 좋은 마진으로 받아서 중국 시장에 유통시키는 게 주요 업무이지, 한국 본사에서 하는 것처럼 해외 명품을 유통시키는 게 아니다.

CGM의 사업 골자와는 크게 다르다.

“홍성은...”

“...?”

“중국 법인은 이미 중국 쪽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 소리야, 아까부터 계속.”

장 부장이 살짝 신경질적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그런 거라면, CGM이 제일 무서워 하는 애들만 홍성을 통해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자본력 제외하고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 수, 유통시키고 있는 전체 물량, 전체 명품 시장 장악력 모두 CGM을 그냥 능가하는 애들을 앞에 세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하아...애가 오늘 진짜 왜 이러지? 그런 애들이 어딨어?”

“만토바요.”

“...!”

“...”

여기서 만토바라는 답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난 박 이사와 장 부장이 서서히 얼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솔직히 아무리 CGM이 공룡이라도 만토바에 비빌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톡 까놓고 말해서 걔네들도 향수쪽 빼놓고 패션의류만 놓고 보면 만토바랑 비교할 수준은 아니죠.”

“...”

“...”

“만토바한테 중국시장 들어가라, 관심없냐, 우리가 도와줄게...우린 이미 중국 유통쪽에 확보하고 있는 채널이 많다...대신 한국으로 먼저 물건 보내라. 그게 싸게 친다. 퍼센테이지 나눠 먹자는 거 아니다. 그냥 우리가 컨트롤해서 보내줄게. 그럼 만토바 브랜드들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건데...설마 만토바에서 자기네 브랜드를 뺄 간 큰 브랜드 업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

“...”

“그럼 끝나는 거 아닙니까?”

“...”

“...”

“...아닌가요?”

“...”

“...”

“죄송합니다.”

“만토바 애들이 하겠다고 할까?”

박 이사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고, 장 부장 역시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안 할 이유는 없겠죠. 중국 시장에 욕심을 안 가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거기다 홍성이 한국에서 에이전시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브랜드 확보만 도와주면 그냥 윈윈하는 전략으로 돕겠다고 하는 건데.”

“그렇지?”

“만토바 애들도 중국 시장에 대한 방법을 모르고 루트가 없어서 못하고 있는 거지, 홍성 중국 법인이 루트를 빌려준다면 돈이 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그래도 창고때기 도매만 하던 애들인데, 소매를 하겠다고 할까?”

박 이사의 걱정은 내 입장에선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 도매를 중국에가서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줄 수도 있는 거죠.”

장 부장이 허를 찔린 듯한 표정으로 내가 낸 아이디어를 소리내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 채널을 빌려주는 댓가로 한국에선 만토바의 브랜드를 확보한다...”

그리고 박 이사가 드디어 내 생각의 포인트를 찾아냈다.

“홍성이 국내에서 만토바가 가진 브랜드들만 확보할 수 있다면...CGM은 가지고 들어올만한 브랜드가 별로 없긴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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